대승, 현상과 본질을 뛰어넘다 중권이 나왔습니다.
대승, 현상과 본질을 뛰어넘다 중권이 나왔습니다.
책 발간에 도움을 주신 분들과 백일학교 후원회원들께는 곧 발송될 예정이니 신청하지 마시고 잠시 기다려주세요.
여러분 모두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 강의는 2012년 8월부터 2014년 4월까지 깨어있기 워크숍1)을 들은 오인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것으로 의식이 펼쳐지는 과정을 과학적이고 치밀하게 분석, 분해한 글입니다.
이번 대승기신론 중권에서는 경험의 ‘세계’를 넘어선 ‘세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세계世界라는 것은 마음으로 분별하여 나누어놓은(界) 곳이라면, 세상世上이라는 것은 나눌 수 없는 불이不二의 세상으로, 우리의 감각으로는 볼 수도 느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곳입니다. 우리는 그 있지도 않은 세상, 그렇다고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그 세상을, 감각으로 그려내어 가상의 그림 속에서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나’라는 것을 형성하여 세계 속을 운전해가며 삶을 이루는데, 이 ‘나’라는 운전자는 그저 잠시 운전대가 맡겨진 임시직일 뿐인데 스스로 삶의 주인이라 여기니 괴로움 속에 있게 됩니다.
그 타들어가는 듯한 번뇌는 생겨나는 과정이 있으니 바로 의식의 전개과정을 보면 명백히 드러납니다. 번뇌, 그 괴로움은 어떻게 생겨나는가? 먼저 그것을 번뇌로 느끼는 ‘나’라는 의식이 형성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형성되어 의식하게 되는 것일까요?
‘나’라는 것의 최초 기반이 되는 카르마Karma 즉, 타고난 경향성이라고 불리는 것이 업식業識입니다. 부모로부터 받은 유전적인 특성, 인류의 유산, 생명체로서 부여받은 경향들이 모두 모여 업식을 이룹니다. 예를 들어 성격이 급하고 빠른 경향도 고치기 힘든 업식이며, 인간 사회에 살아가면 언어를 저절로 터득하게 되는 것 등도 업식입니다.
이제 그러한 업식을 기반으로 마음이 한번 움직이면 ‘주체’와 ‘대상’으로 나뉩니다. 그것을 전식轉識이라 합니다. 마음이 ‘움직여’ 주체와 대상으로 나뉜다는 것은 이렇게 실험해볼 수 있습니다. 지금 눈을 감고 자신이 전에 가보았던 멋진 장소를 하나 떠올려 봅니다(실제 떠올린 후 글을 읽어가야 이해됩니다).
그런 후 자신이 그 장소를 마음에서 ‘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봅니다. 이때 마음은 보여지는 대상과 보는 주체로 나뉘었고 주체에서 대상을 향해 주의가 ‘움직인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마음이 움직여 주객이 생긴다’는 말의 의미입니다.
이렇게 주체와 대상으로 나뉜 것이 확고해지면 이제 대상이 하나하나 분별되며 세분화 됩니다. 그것이 현식現識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세계’라 부르는 현상이 드디어 나타나게 됩니다. 그동안 ‘나’와 ‘나 아닌 것’만 구분되다가 이제 ‘나 아닌 것’이 책상, 의자, 집, 하늘, 나무, 강 등으로 그 느낌이 세분화 됩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는 바로 이렇게 마음이 분별하여 나타나는 느낌의 세계입니다. 마음이 보는 상象의 세계가 나타난(現)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일체분별 즉 분별자심一切分別 卽 分別自心이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그렇게 대상들이 하나하나 분별되고 나면 다음으로 대상들 간에 비교가 일어나고 그중 어느 것이 좋고 나쁜지 구별해내는 지혜가 호오好惡를 알게 합니다. 이것이 지식智識입니다. 그리고 이 지식에서부터 번뇌는 시작됩니다. 왜냐하면 좋고 나쁜 것을 알게 되면 좋은 것에 끌리고 그것을 즐기며, 곧이어 집착하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모든 번뇌는 이렇듯 분별된 느낌에 집착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이 과정을 명백히 보고 ‘나’가 살고 있는 경험의 세계, 그 느낌의 세계를 넘어 불이의 세상으로 들어가기를 기원하면서...
- 책머리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