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the content... Loading depends on your connection speed!

홀로스

강좌 제목 : (서울) 비개인성을 위한 감지 인텐시브
  • 강사 : 나무, 아소, 해연
  • 장소 : 서울
  • 기간 : 2026.08.29 10:00 ~ 2026.08.30 18:00
  • 수강료 : 30만
  • 입금처 : 농협 053-02-185431 이원규 (카드 결제 가능)
  • 문의 : 02-747-2261, 010-2667-226
  • 주의사항 : ※ 모든 강좌 3일 전 접수 마감




깨어있기의 핵심인 비개인주체의 발견 과정은 4단계로 일어납니다. 1단계에서는 다양한 연습을 통해 감지가 분명해지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어서 2, 3단계에서는 감지를 도구로 해서 ‘나’라는 느낌과 존재감을 경험하고 파악하게 됩니다. 점차로 깊게 몰입해서 존재감을 경험하게 되면 4단계로 넘어가게 되고 여기서 우리는 ‘나’라는 의식이 없이 존재감이 보여지고 경험됨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서 모든 현상의 본질로서 작용하고 있는 비개인적인 주체에 대한 통찰로 이어지게 되지요.

이렇게 깨어있기 공부의 과정은 단순하고 명확합니다. 그런데 시작단계인 감지가 분명하지 않으면 이후의 단계에서도 공부가 불분명해지게 됩니다. 바꿔말하면 감지가 분명하게 될수록 이후의 단계는 물흐르듯이 다가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감지라는 도구를 얻는 것은 조각가가 예리하고 손에 꼭 맞는 칼을 쥔 것과 같습니다. 감지가 분명하면 먼저 생각과 느낌을 분리할 수 있게되고 생각과 호오의 판단 없이 지금 일어난 현상을 관찰할 수 있게 됩니다. 관찰이 깊어질수록 감지가 예리해지며 미세한 의식적인 느낌들도 구별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감지의 중요성을 더욱 실감하게 됩니다.

깨어있기 공부를 하며 감지의 필요성을 느끼지만 정작 감지가 무엇이고 어떻게 감지를 연습해야 하는지 어려움이 있다면 감지교실에 참여해보시기 바랍니다(해연).


감지교실의 진행 방식은 1일차(10/21(월))에 서울에서 안내자와 함께 종일 연습 후 일주일간 개인적으로 감지연습을 해나가고, 일주일 뒤 2일차(10/28(월))에 다시 안내자와 만나 종일 연습을 하며, 그 일주일 감지연습 중간(10/24(목))에 온라인(줌)으로 중간점검이 있습니다.




안내자│나무 (나무/나無의 이중적 의미)

‘나’에 대한 불만, 감정적 괴로움 등 ‘나’가 참 버거웠던 가운데 평소 나와는 멀다 느꼈던 마음공부에 인연이 닿았습니다.

공부초반 귀가길 동네 가로수와 공명되어지며 “이미 존재 자체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충만함의 경험이 일어난 이후 크고 작은 체험들에 의해 투명해진 나로서 걸림없는 일상이 오랜동안 지속되었으나, 그간의 경험이, 마음의 구조와 원리 등 마음작용에 대한 근본적 통찰로는 연결되지 않았기에 투명한 개인성은 또다시 ‘나’의 강화로 이어졌습니다

깨어있기 과정 후 어느 날 반야심경의 ‘無안이비설신의’가 품어진 채 주객관계의 동시발생 동시소멸이, 그동안의 크고작은 경험들을 기반으로 구조적으로 직관되고 경험되면서 ‘나’라는 것이 일시적이고 임시적인 현상이자 느낌이라는 것이 통찰되었고, 이후 ‘알았다’에 빠지는 과정도 거쳐지면서, 인연의 세계를 넘어선 비개인성에 뿌리내려지는 삶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안내자│<b>아소</b> (兒笑 아이의 미소) 

마음공부 과정을 돌이켜보니 경계 없이 확장되는 의식과 이완의 과정이었습니다. 절정의 통찰은 있음과 없음을 넘어 느껴지지 않는 '완전한 이완', 미지입니다. 그 후 개인성으로 돌아가 맑고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려는 마음이 일어나지만, 생겨나는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 완전하다는 것을 알게 된 후라 거부하거나 집착하는 마음 없이 일어나는 느낌을 알아차리게 되고 알아차려진 느낌은 사라집니다. 자주 머물거나 오래 머무는 느낌은 원인을 찾고 이해하며 무의식 정화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점점 '머묾'과 '머물지 않음'의 감각적 차이가 의식화되고 머물지 않을 때 가벼움이 편안해지면서 느낌이 사라지는 속도가 빨라집니다. 이 과정이 저절로 일어나는 점수 과정이고 미지에 뿌리내리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아소의 상태는 불쾌한 느낌은 흘려보내지고, 쾌한 느낌은 머묾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안내자│<b>해연</b> (解緣)

밖에서 들여온 온갖 고귀하고 화려한 말들이 더는 삶의 동력이 되지 못하고 방전되던 즈음에 깨어있기를 만났습니다. 공부를 시작하며 인연의 타래가 아픔 없이 잘 풀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해연解緣이라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막막한 시간이 쌓여가던 어느 날 ‘나’가 사라진 ‘있음’에 머물다 나오는 순간, 나와 세계가 그려지고 있음이 드러났고 모든 분별과 개체성이 드러난 이 자리가 ‘나 없음’의 상태와 같은 바탕의 일임이 저절로 자각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슴에서는 임시적인 현상으로서의 나 자신에 대한 가벼움과 자유로움이 일렁거렸습니다. 경험들은 지나가고 일상은 다시 그대로이지만 거기에 생각을 더해 스스로 불편해지는 일들은 줄어들고 있으며 습관적인 동일시의 과정을 보는 눈도 이전보다 밝아지는 듯합니다.



새댓글 쓰기


  • HereNow 2025-11-03 11:53:21   답글 | 수정 | 삭제
    서울 13차 감지 인텐시브 (2025-10) 참가 후기



    다르마(승려)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이 출현했고, 중학교 때부터 문득 문득, 특히 고등학교 때부터 빈번히 세상과의 분리감과 고독한 자아감이 강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어김없이 나와 세상이 나타나고, 매일 밤마다 나와 세상은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지만 여전히 아무 영문도 모르고 있었다.

    단지 부모님에게서 언어를 배웠다는 사실밖에는 아직 정확하게 아는 것이 없었다.

    언어는 감각하고 지각한 경험들에 명칭을 부여하고 타인과 소통하는 데 유용하다. 문자를 사용하면 시공을 초월해서 정보를 전달할 수도 있다. 언어문자를 통해서 고도의 문명을 개발하여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인간은 말의 힘, 즉 생각의 위력(관념 및 견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더군다나 인간은 어린아이 시절에 수동적으로 세뇌되다시피 후천적으로 무의식적인 언어문자 습관을 익히게 되므로 막상 언어문자를 사용하면서도 언어문자의 정체를 알지 못한다.

    언어문자, 즉 생각을 통해서 인식되고 묘사되는 나와 세상은 그 실체성이 의심받아 본적이 없고, 그 견고한 실재성은 무너뜨려진 적이 없다.

    안이비설신의를 통한 감각과 지각은 그 경험되는 인식 과정이 순식간에 발생하고, 그 기능은 자동적으로 사용되므로 좀처럼 그 정체를 알 수가 없다.

    감지 인센티브는 이와 같은 인간 인식의 실재성에 대한 탐색이고 관찰이다. 감지 연습을 통해 인식의 발생과 소멸 과정을 살펴볼 수 있고, 인간의 감각과 지각의 구조와 작용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인간의 인식경험에는 분별되는 언어 문자의 세계만 있는 것이 아니고, 생각이 아닌 것들이 있으며 그 인식경험들은 변화하는 유동적인 느낌들이며 다양한 요소들의 결합이라서 그 실체성을 무엇이라 고정시켜 규정할 수 없다.

    특히 인식의 발생과 소멸에는 주의(attention)라는 물질이자 생명이자 정신 에너지인 인식 요소가 깊이 관여되어 있다. 균형 내지 평형 상태에서 주의 에너지가 움직이면 전체성이 국소화되는 것처럼 느껴지고 일체성이 붕괴되어 분리와 개별화가 진행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국소화되고 개별화된 느낌들에 명칭이 부여되면 더 이상 유동적인 느낌의 차원이 아닌 고정되고 분리되고 실체적인 무엇이 된다.

    주의 에너지가 흐르고 있음을 문득 알아차리고, 주의 에너지가 쏠리는 대상에서 물러서거나 주의 에너지의 강도를 약화시키면, 견고한 무엇처럼 인식되었던 것들은 가변적인 느낌으로 전환된다. ‘나’라는 자아관념도 주의 에너지가 국소화되고 쏠림 현상이 발생하는 과정에서 출몰하는 변화되는 느낌들이며, 하루 24시간 지각되는 느낌도 아님에도 ‘나’라는 명칭이 부여되고 후진적으로 학습된 경험과 그 흔적인 기억에서 수반된 호오와 애증의 감정 요소들이 부가되면 자아는 고정되고 태생적인 고유의 개인성인 것처럼 인식된다.

    감지 인센티브를 안내해 주신 나무 님에게 감사드리며, 감지 연습시에 얼핏 지나가는 소소한 경험들과 작은 통찰들을 일상에서 잊지 않고 자주 되돌아보고 확인하는 숙제가 여전히 남아 있음이 저절로 떠오른다.

  • HereNow 2025-04-28 18:16:55   답글 | 수정 | 삭제
    보리 / 서울 7차 감지인텐시브 참가 후기 (2025년 4월)

    서울 나무님 감지 교실에 두 번째 참가했다.

    화장실 불을 켰다 껐다를 여러번 반복하면서

    전기 에너지가 가면 사물이 보이고, 안 가면 안 보이듯이

    주의 에너지도 가면 보이고, 안 가면 안 보인다는 체험을 했다.

    그리고

    눈뜨고 주의를 사물에 보낼 때는

    사물에 대해 뚜렷하게 세세하게 보인 방면

    눈을 뜨고 주의를 보내지 않는 상태에서는

    사물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는 차이점이 조금 더 알아졌다.

    오감 역시 주의를 얼마나 주느냐에 따라서

    알아지는 정도가 차이가 있음을 다시 한번 복습했고

    몸에 주의를 줬다 공간에 주의를 주었다 반복하니

    주의에 따라서 몸이 나라는 느낌이 점점 줄어듬을 알게 됐고

    책상 앞에 있는

    커다란 화병의 꽃과 작은 나뭇잎 스텐 긴스텐 찻잔수저 등을 보고

    떨어져서 보는 내 느낌과

    직접 가서 만져보는 내 느낌이 크게 다름을 알고

    그 과정에서 내가 과거에 만져봤던 그 느낌을 경험으로

    그 사물들을 본다는 것이 아주 실감있게 알아졌다.

    내 느낌과 실제 경험이 같아도

    그 역시 과거 경험으로 본다는 것도 역시 알아졌다.

    지난번에 봤던 공부방의 사물 배치와 오늘 봤던 사물 배치가

    다름을 보고 이것 역시 지난번 환경을 기준으로 하고

    변화된 것을 알 수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느낌의 속성은 상호의존성으로 서로의 관계에서 나온 것이며

    그 순간의 조건 속에서 나온 일시적 현상이라는 것도

    탁자를 손바닥으로 만져봄과 손등으로 만져봄과

    저번 때 만져봤던 느낌과

    오늘 만져본 느낌이 다름이 한번 더 경험되었다.

    ***

    책상 앞에 컵이 있는 것과 컵을 치워서 없는 것의 차이점과

    공통점이 무엇인지를 아는 실험을 통해

    컵이 있는 것을 알고 없는 것을 아는

    둘 다 안다는 공통이 있는 것은

    머리로는 알겠는데 아직 조금은 덜 와 닿는다.

    또 태극의 동그라미는 알 수 없지만

    동그라미가 둘로 나뉜 것이 증거다.

    둘로 나뉜 것이 이미 통으로 한바탕의 작용이다.

    주의를 어디에 두느냐의 차이다.

    통으로 하나인데 작용에 의해 둘로 나뉘면서 불균형을 이루는데

    원래로 돌아가려는 작용에 의해 주의가 (의도가) 저절로 일어난다.

    그래서 분별은 자동으로 일어나고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저절로 흘러간다는 설명이 있었는데

    이 부분은 아직 모르겠고 조금 더 경험으로 알고 싶다.

    이번 공부에서는 나의 과거 경험으로 꽃과 나뭇잎을 보고 있듯이

    모든 것을 그렇게 보고 있겠구나라는 체험이 와 닿았다.

    느리지만 설명과 경험으로 몰랐던 것을 하나씩 알아가고 있는 것 같다.
  • HereNow 2025-03-19 13:29:14   답글 | 수정 | 삭제
    보리 / 2025년 3월 서울 감지인텐시브 참가 후기

    서울 감지교실에서 나무 님과 이틀간 공부를 하였다. 나는 진도를 많이 나갈 게 아니라 가장 기초인 주의 연습 하나만이라도 이해를 하고 오자라는 목표를 가지고 갔기 때문에 조급하거나 평소에처럼 많이 알려는 마음이 별로 없이 차분히 했다.

    주의라는 것을 감 잡아보기 위해서 나무 님이 유도하는 대로 몸을 중심으로 밖에 있는 대상으로 나가는 주의와 몸 안쪽으로 향하는 주의에 대해서는 ‘아 ~ 방향만 다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몸으로 주의를 보낼 때는 뚜렷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주의를 다른 데로 보내면 주의가 가지 않는 곳은 전혀 못 느끼는 경험을 조금 더 피부로 느껴지게 알게 됐다.

    아직은 서툴지만 주의가 가지 않으면 어떤 것도 인식할 수 없다는 것, 주의가 많이 가고 조금 가는 것도, 자동적 주의와 의도적 주의 등에 대해서도 더 알게 된 것 같다.

    화병을 볼 때 어쩔 때는 화병이 더 커져 보였다가 다음 순간 약간 축소되어 보이기도 하고 어제는 책상 바닥이 꺼끄러웠는데 오늘은 매끄럽게 느껴지는 경험 등이 느낌은 수시로 다르게 달라진다는 것을 알게 했다.

    또 일상생활에서 지금 하고 있는 일과 주의의 불일치로 살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래서 나의 감정, 느낌도 잘 알 수 없어서 어떻게 할 줄 몰라 남의 지식이나 지혜를 빌려보고자 했던 것 같다.

    이번 공부에서 나무 께서 여러 가지 말씀을 해 주셨는데 사물이 공간을 기반으로 하고 있듯이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 나는 나에게 가장 문제이고 기초인 주의에 대해서 중점을 많이 두고 들었고 이 주의와 함께 다른 것들을 설명하니 이해가 되는 것들이 많았다.

    앞으로 시간이 날 때마다 일상생활에서 틈틈이 주의연습과 주의를 대상화 하는 것을 많이 연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두처럼 궁금해 하는 용어나 문제들을 한번 듣고 실천해보고 관심을 갖고 또 듣고 하는 반복 학습이 중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무 님과 대화를 하면서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무엇을 알고 싶어하는지를 잘 캐치해주시고, 이해가 안 되서 눈을 굴리는 순간, 주변에 있는 여러 가지 도구와 사물과 현상을 예를 들어 쉽게 이해하도록 많이 애써 설명해주신 나무님께 감사드린다.

  • HereNow 2024-11-28 10:04:09   답글 | 수정 | 삭제
    서울 2차 감지 인텐시브 (2024-11-23, 24) 참가 후기



    준아 (직장인)


    서울에서 이틀간 집중 감지연습 수업에 참여하였다. 평소에 감지연습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점검을 받고 싶은 목적이 컸다.

       첫날에, 앞에 놓인 여러 가지 사물을 두고, 이름을 떼고 형태와 질감에만 집중하는 연습을 하였다. 어떤 경우는 이름이 계속 생각나 어려운 경우도 있고, 어떤 경우는 쉽게 형태와 질감에 집중이 가능했다. 숟가락 같이 많이 사용하는 익숙한 사물은 형태와 질감보다는 이름과 목적과 용도가 계속 생각으로 떠올라 오롯이 감지하는 데에는 시간이 제법 걸렸다. 익숙하지 않은 주방용품 같은 경우에는 비교적 쉽게 감지가 되었다.

       사물을 바라볼 때 익숙하다... 안다...는 느낌이 동시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은 이전의 경험으로 인해 데이터베이스가 쌓인 상태이며 죽은 감지에 해당한다고 나무 님이 가이드해주셨다. 데이터베이스는 세상을 살아가는 효율적이고 편리한 방식이긴 하지만, 사물이나 현상을 제대로 볼 수 없게도 만든다. 이전에는 잘 알지 못했던 부분이, 그간 주의가 갈 때 대상으로 온전히(?) 간다고 착각했던 부분이다. 쌓여진 데이터베이스를 경유한 주의는 일종의 색안경을 만들어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왜곡시킨다. 

       또, 대상에 주의를 보낼 때 주의의 비율을 조절할 수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상의 이름이 떠오르는 것은 일부의 주의가 그 이름 쪽을 향한 것이고, 온전히 형태가 질감에만 집중하게 되면 그 대상에 100%의 주의가 쓰인 것이다. 내 몸과 대상 사이의 주의를 100:0, 50:50 등으로 조정해서 보면, 이 비율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달라지고 비율이 0이 되면 더 이상 인식되지 않는다.   

       둘째 날에 주변 숲의 나무를 대상으로 감지연습을 하였다. 처음에 나무의 경계를 그리고, 그 경계안의 나뭇잎, 줄기 등의 세부대상을 세세히 감지하고, 마지막으로 전체 나무의 경계를 다시 감지하는 형태로 연습하였다.

       처음에 경계를 그릴 때는 잘 느껴지지 않던 부분들이 두 번째 경계를 그릴 때는 생생하게 드러났다. 전체 나무의 세부적인 부분을 세세하게 감지하면 전혀 인식되지 않았던 새로운 부분들이 생겨난다. 나뭇잎의 모양이 이렇게 다양했던가? 색감이 이렇게 선명했던가? 색의 농도도 나무의 위치나 각도에 따라 다르고, 줄기가 뻗은 모양은 첨엔 몰랐는데 정교한 방향과 방식으로 그 줄기에서 나뭇잎을 지탱하도록 저마다의 세계를 이루고 있다. 색감이 선명해지고 모양은 풍성해지고 꽃들은 주의가 가는 곳에 반응해서 움직이는 것같이 느껴진다.

       주의가 살아있게 한다!

       똑같은데 다르게 보인다!

       흑백 필름이 컬러사진으로 변한듯하다.

       이번 집중 감지수업을 통해, 주의의 비율을 통해 보이는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는 통찰을 얻게 되었다. 지속해서 자연 속에서 연습해보고, 동물과 사람에 확대해 보겠다고 다짐해본다.

       이번 감지수업을 맞춤형으로 정성스럽게 지도해주신 나무 님, 아소 님, 무유 님, 해연 님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기보 (의사)


    나무 님, 무유 님, 아소 님, 혜연 님이 도와주셨고 준아 님이 함께 참가해주셨습니다.

       몇 가지 감지연습 후 질문과 점검을 통해 개인 성향과 상태에 대해 알아보고 거기에 따라 연습을 추가로 했고 향후 연습방법에 대한 안내가 있었습니다. 감지에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감지의 레벨에 대해 보다 자세히 파악하게 되었습니다.

       10월 탱크체험 다녀온 후 월인 선생님께서 추천해 주신 연습으로 사물에 대해 30%와 70% 강도의 주의를 번갈아 보내기를 틈틈이 해왔는데, 한다고 했지만 원활하게 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고 있던 참에, 이번 모임을 통해서 연습이 잘 안 되는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평소 생각과 감정이 잘 떠오르지 않고, 죽어있는 감지에 익숙해진 상태로 일상을 살고 있다는 점과, 주의가 가는 것 자체를 잘 못 느끼고 생생히 살아있게 느끼는 감지가 잘 되지 않는다는 점 등을 알게 되었습니다.

       향후 주의를 더 잘 느끼고 풍부하고 명확한 감지를 위해서, 기존에 하던 사물에 강도를 조절하며 주의를 보내는 연습과, 몸의 각 부분, 혹은 사물에 주의를 보내고 주의가 가는 것을 알아차리는 연습, 죽어있는 감지와 살아있는 감지를 번갈아서 느껴보기 연습 등을 해보고자 합니다. 도움주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 HereNow 2024-10-31 07:35:34   답글 | 수정 | 삭제
    서울 1차 감지인텐시브 (2024-10-21~28) 참가 후기



    다르마 (승려)




    푸른 소나무가 있다. 노란 가을 국화가 활짝 피었다. 털복숭이 강아지가 지나간다. 소나무도, 국화도, 강아지도 스스로 자신을 소나무라고, 국화라고, 강아지라고 명명한 적이 없다. 그렇게 불러달라고 한 적도 없다. 사람이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 눈을 감았다 뜬다. 소나무가, 국화가, 강아지가 시야에 들어온다. "소나무"라고, "국화"라고, "강아지"라고 이름붙이지 않아도 시야에 들어온다. 소나무를 "바위"라고, 국화를 "구름"이라고 강아지를 "범"이라고 불러도 아랑곳하지 않고 전면의 시야에 형색이 저절로 들어온다. 나의 의지나 의도와도 무관하게 들어온다. 전면에 천연색 칼라의 시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왼쪽, 오른쪽, 위, 아래, 그리고 뒷면의 흑백의 공간이 동시에 있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전면의 칼라색 시야는 사라져 흑백의 공간이 되고, 새로운 장면이 총천연색으로 들어온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위로, 아래로, 뒤로 돌려 본다. "경의선 숲공원"이라는 공간이 완성된다. 지난 주에는 처음 온 곳이라서 공원전체가 조망되지 못하였는데 오늘은 구석구석 빠진 데 없이 퍼즐조각이 맞춰진다. 동서남북이 구분되고, 카페와 식당과 주택이 분간이 된다. 감지연습을 위해 빌린 모임 공간도 낯설지 않고 단번에 찾아 들어간다. 안내자 분들에게 그동안 담아둔 채 풀지 못했던 질문 보따리를 풀어헤친다. 예전에 비해서는 질문거리가 많이 줄어들었고 가급적 경험에 바탕을 두는 질문으로 양상이 조금 달라졌지만, 여전히 경험을 앞서가는 질문들이 많다. 불평 없이 질문에 답변해 주시는 아소 님, 해연 님, 나무 님의 인내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동참해 주신 수얀 님께도 감사드린다. 함께하는 도반이 계셔서 덕분에 감지연습에 좀 더 몰입할 수 있었고, 미처 돌아보지 못했던 실수와 오류를 발견한다. 생각의 차원에서 감지의 차원으로, 감각의 차원으로 그리고 마지막 걸음은 부처님 가피로, 신의 은총으로 _()_



    수얀




    첫날, 설레임으로 오아네 공간(*감지연습을 위해 대여했던 곳)으로 향했다. 전철을 내려 10분을 걷는 도심속 경의선 숲길이 기분을 참 좋게 하였다.

    오전에 사물을 죽 널어놓고 이제껏 해오던 주의주기 감지연습을 여유있게 즐겼다. 경험해 보지 않은 물건들이 많아 이름표 뗄 것도 없이 한참을 보니 작은 공은 단단한 불투명으로 느껴졌다가 투명한 속이 보이는 유리공으로 보이기도 하고, 눈에 보이는 것들이 시간차를 두고 한가지가 아닌 다른 느낌으로 변화된다.

    오후에는 경의선 숲길에서 식물에 경계짓고 주의주기 활동을 하였는데 “나-대상인 나무”로 대화는 가능했으나 ‘의도가 들어간 주의주기’로 인해 나무와 하나가 되진 못했다.

    집으로 돌아간 저녁 문득 ‘나의 틀이 깨지는 통찰’이 일어나면서 의식이 확장됨이 느껴진다.

    며칠 후 줌화면으로 만나 그동안 있었던 일을 얘기 하던 중 “감지연습하기를 잊어버려 평소에 잘 안된다”는 나의 투정(?)에 아소님이 “대화를 하는 상대의 말을 의미로 듣기도 하고 소리로 듣기도 해 보라, 그러면 평소에도 감지가 될 거다”며 지금 자신의 말을 소리로 들을 때와 의미로 들을 때 어디서 느껴지는지 경험을 하게 했다. 소리로 들을 때는 가슴에, 의미로 들으려고 할 때는 머리에 느낌이 존재했다. 순간, 남편의 말을 경청하지 않고 나의 경험치로 “소통이 안된다”고 떠들고 있는 부끄러운 내 모습이 떠올랐다.

    셋째날, 다르마 님과 나는 아담한 작은 공간에서 해연, 나무님의 열정으로 감지를 통한 통찰을 이어나갔다. 숲에서 나무를 볼 때 은행나무, 단풍나무, 포플러 줄기의 매끈함과 거침, 하늘을 향해 봤을 때 수려함과 수평으로 봤을 때의 느낌의 차이, 잎의 빽빽함과 듬성듬성함을 보고 다름을 느꼈고, 비둘기, 산책 나온 강아지와 사람들의 모습을 감지하는 경험을 하면서 편안해졌고 피곤함(3시간 잠)이 느껴지기도 하였다.

    아담한 공간으로 돌아와 느꼈던 얘기를 하던 중 나무님이 “나-대상-나를 보는 다른 나-또 다른 대상-빈 공간-컵-있다가 없다가-인식”을 따라 집중하고 있는 내가 비어 있음이 느껴지면서 ‘불교의 연기’가 떠오르고 ‘존재하였다가 없어졌다가’ 빈 공간에서 나 또한 그때그때 쓰이고 있는 존재구나가 떠오르면서 감지연습 또한 하나의 방편이구나, 바보같이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지를 묻고 있었구나를 깨달았다.

    사물들에 대한 인식이 계속 변하고 있다는 의식을 깨치도록 “나, 대상, 나, 대상, 느낌”을 외치는 해연, 아소, 나무님의 열정이 지금도 느껴져 너무 감사드리고 나의 도반 다르마 님의 따스한 정 감사드립니다. 나를 아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고 싶다.

    오늘도 ‘자율주행 순리대로’ 만트라를 외치면서 아침을 시작한다.
  • HereNow 2024-09-17 08:40:17   답글 | 수정 | 삭제
    한분의 후기를 공유합니다.



    투명하게 있는 것과 침묵상태를 아는 ‘그것’은?

    _ 프리



    오인회 소식을 문자로 받았습니다. 8월부터 함양에서 감지집중연습을 갖는다고 하고, 일반 오인회원들에게도 열려있다고 하니, 함양에가고 싶은 마음은 많은데, 월인 선생님 뵈온 지 너무 오래되어 용기가 나지 않았지만 용기를 내어 2박 3일로 신청하고, 안의터미널에 도착하니 처음 뵙는 나무 님이 마중나와 주셔서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월인 선생님을 뵈니 천진한 미소로 반갑게 맞이해주시고 여전하셔서 감사한 마음 뭉클했습니다. 나무 님에게 나의 지난 경험을 이야기 하다보니 나는 아무것도 아는 게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둘째날 오전, 나무 님의 가이드로 단순한 사물부터 형태와 질을 느끼는 감지연습을 시작했습니다. 컵의 형태와 질을 느낄 때 안다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휴지로 형태를 그리고 질을 느끼면서 휴지와 나의 분리됨을 알아챘습니다. 감지는 경험된 것에 의해 내면에 쌓인 것을 통해 보는 것이었습니다. 감지로 쌓이고 감지끼리 부딪치면서 나(에고)와 생각, 감정이 같이 올라옴을 느꼈습니다. 산책 시간에 여러가지를 감지하면서 걷고 있는데 길옆 담장에 너무나 아름다운 나팔꽃을 보고 형태와 질을 느끼면서 한참을 보고 있는데 안다는 느낌도 사라지고 나팔꽃의 아름다움만 느껴졌습니다. 감지 연습을 하면서 감각, 생각, 감정이 일어나는 마음의 구조를 제대로 파악하게 되어 정말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둘째날 오후 하루 종일 비가 오락가락 했습니다. 나무 님이 투명하게 보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냥 나 자신을 대상으로 느낄 때 나라는 느낌이 사라지고 투명한 존재감으로 느껴지고 투명한 존재로 있을 때 사물들이 보이지만 끌리거나 밀침 없이 그냥 보여짐을 느꼈습니다. 나무 님이 ‘투명한 있음’에 있으면서도 드문 경우지만 미묘하게 동일시가 되기 쉽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내가 존재함을 투명하게 느끼고 있을 때에도 미세하고 희미하게 이원성이 있었고, 내적인 부딪침은 거의 없는 상태지만 언제든지 동일시되는 확률은 남아 있음을 알아챘습니다. 그때 나무님이, “투명하게 있는 것과 침묵 상태로 있는 것을 아는 것은 뭘까요?”라고 저에게 물었습니다. “‘그것’이 있으니까요” 하는 그 순간 ‘내’가 바로 ‘그것’ 자체였습니다.

    월인 님께서 전에 ‘내가 침묵이고 전체임을 경험했는데 왜 흔들렸냐’ 고 물으셨습니다. “존재의 중심을 ‘그것’에 정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선생님께서 생활하면서 많이 적용해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셋째날 오전, 월인 님께서 지금은 어떤 상태냐고 물으시면서 화가 올라오면 어떻겠냐고 하셨을 때 ‘그냥 볼뿐’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선생님께서 ‘이 몸과 마음은 바다에 떠있는 하나의 조각배와 같다’고 하시면서, 바다와 같은 ‘그것’에 안주하면 조각배에 화가 나든 기쁘든 ‘볼 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이 공부는 ‘느낌’의 발견이고 100% 확신의 앎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대화중에 ‘이 모두를 내가 다 만들었다’라는 표현을 하였더니 선생님은 ‘만들었다’라는 것은 의도가 있는 자아(에고)의 상태이니, 그것보다는 ‘마음의 내용이 만들어지고 있다’라는 표현이 더 맞는 말이라며, 모두 비개인성(전체성)에서 ‘만들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헤매였던가? 어느 선사가 깨어있기는 세수하다가 코만지는 것보다 쉽다고 했습니다. 월인 선생님의 가르침은 정말 단순하고 간결했습니다. 알고보면 이보다 더 쉬울 수는 없습니다. 근원에 안착하면 무엇에도 구속됨이 없고 더 이상 생각이나 감정에도 휘둘리지 않으며 모든 것을 ‘볼 뿐’입니다.

PC버젼 홈

Copyright 2026. 홀로스 All rights reserved!

CALL US SMS US COLLAP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