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사 :
- 장소 : 함양 홀로스교육원
- 기간 : 2026.10.12 14:00 ~ 2026.10.14 17:00
- 수강료 : 체험비는 일정에 따라 상이하므로 개별 문의 바랍니다
- 입금처 : 농협 053-02-185431 이원규
- 문의 : 02-747-2261, 010-2667-226
- 주의사항 : 매월 첫주, 둘째주에 감각차단탱크 체험을 진행합니다.
[참가대상] 오인회원(과 그 지인), 미내사회원

오인회원 대상 감각차단탱크 체험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탱크 체험은 3박4일 정도를 기본 체험시간으로 하도록 하려합니다. 1번 정도 체험은 큰 의미를 느끼지 못할 것이고, 또 함양까지 와서 1회만 체험하고 가기에는 시간과 에너지가 들기에 그렇습니다. 3월 첫주부터 신청을 받고 일단 후원자 우선으로 받으려 합니다. 주말을 주로 정한 것은 일을 하시는 분들을 고려해서입니다. 그러나 꼭 1일체험이 필요하신 분들을 위해 첫주와 둘째주 화수목을 열어두었습니다. 1년 계획을 미리 세워 신청을 받으려 하니 미리 신청해주세요 (좌측 세로메뉴에서 강좌일정표를 보시고 매월 첫째, 둘째주 비어있는 날짜에 신청해주세요). 자세한 신청은 보내드린 오인회 소식지 표를 참고하세요.
● 탱크 내 프로그램: 집중, 명상, 몸은 자고 마음은 깨어있기, 본질로 가는 감지연습
(탱크 내에서 수중 이어폰으로 음성 안내 또는 바이놀 비트 음을 통해 깊숙이 들어감)
● 탱크 외에서의 측정 : 탱크 이용 전후로 ①뇌파 ②HRV ③인체에너지장을 측정을
통해 심신에 일어나는 변화를 측정하고 적용할 프로그램을 수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오인회원은 사무실로 연락주세요. 1년간 예약을 받아 진행하므로 미리 신청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좌측 세로메뉴에서 강좌일정표를 보시면 비어있는 시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탱크 체험과 본성을 깨닫기
본성을 향한 길에서 가장 큰 장애물은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본성이란 나누어지지 않은 것인데 생각은 거기에 분열을 일으키고 분별하고 나 누기 때문입니다. 의식은 기본적으로 ‘나눔’을 통해 일어납니다. 아무 리 깊은 명상을 하고 요가를 한다고 해도 생각이 끼어든다면 거기 어 떤 합일은 없습니다. 합일에 대한 생각은 합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생각은 무엇인가? 그것은 내적인 시뮬레이션을 위한 도구입니다. 즉 내적인 환영을 만들기 위한 장치이며, 그 장치를 통해 우리는 외부라 부르는 세계를 탐험하고 이름과 생각으로 할당하여 그와 유사한 내적인 환영의 세계를 구성합니다.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각각 의 길에는 여러 층의 단계가 있습니다. 그 세세한 과정을 의식하지 못 하는 사람은 그냥 툭- 하고 깊은 상태로 들어갔다고 여기지만 세세히 바라보면 일련의 과정을 거칩니다. 그리고 가장 기본적인 과정은 생 각과 느낌이 만들어내는 환영을 멈추고 그것을 넘어가는 것입니다.
감각차단탱크 속에 들어가 누우면 감각적 느낌은 점차 사라지고 의식적 느낌만 남는 상태가 됩니다. 그래도 여전히 감각과 의식 적 느낌은 일어나고 기억과 미래 예측으로 부터 많은 생각이 일어납니다. 그것들이 일 어나도록 허용하면 충분히 드러나고 경험된 후 서서히 사라지며, 이때 주제를 품으면 마음은 주제에 집중되며 깊은 층으로 들어 가게 됩니다. 거기서 통찰을 위한 기본 토대가 형성됩니다.
그러므로 집중이 잘 안되는 분들은 탱크 체험에 많은 관심을 두기를 바랍니다.
감각차단탱크 경험 팁
외부를 향한 주의를 가지고 감각차단탱크에 들어가면, 그저 텅 비고 아무것도 느낄 것이 없는 상태를 경험할 뿐입니다. 그러나 주의가 내부로 향할 때는 다릅니다. 내부로 향한 주의를 가지고, 또 주제 의식이 있을 때는 감각차단탱크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그 주제에 몰입할 수 있는 최대의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마디탱크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감각차단탱크의 경험은 외부로 향하던 주의가 자연스럽게 내부로 옮겨올 때 최대의 효과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내부로 향한 주의로 돌렸을 때 주의는 어디를 향해, 무엇을 향해야 하는가? 바로 이때부터 주의는 내적인 주제를 향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제를 품고 들어가도록 하십시오.
그 주제라는 것은 ;
1. ‘의식의 본성이 무엇인가’ 또 는 ‘지금 이 순간에 나는 무엇인가’라는 주제가 됩니다. 그것은 이 순간에 존재하는 나를 찾으려는 것에 주의가 가는 것입니다.
2. 또 다른 하나는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해결해야 될 문제를 가지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표면의식이 가라앉으면 방대한 무의식적 아이디어가 드러날 수 있습니다.
3. 뭔가 이루고자 하는 욕구에 초점을 가지고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목표를 가지면 거기에 해당하는 해결책이 떠오릅니다.
4. 또는 부수적으로 몸이 만성 통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게 하는 조건이 되기도 합니다. 거의 무중력에 가까운 탱크 속에서는 긴장속에 있던 1기압의 대기압에서 벗어나 깊은 이완을 이루기 때문에 숨겨진 통증이 드러나고, 풀려서 만성통증이 약해지거나 해소될 수 있습니다.
이런 네 가지가 탱크 체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결과이고, 또한 주제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의 명상의 삶, 건강한 삶에 도움되기를 기원합니다.
** 감각이 차단되면 왕의 요가 중 전반 5단계를 뛰어넘어 바로, 마지막 세단계(다라나, 디야나, 사마디)에 직접 들어갈 준비가
되게 됩니다.
감각차단탱크 체험기
지난 3월부터(2024년) 감각차단탱크, 일명 사마디탱크 체험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 들어갔을 때의 체험은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감각이 약해지거나 사라지나 생각이 많아지거나 텅 빈 느낌을 느끼거나 졸고 잔 것 같은 느낌이라는 후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런 주제를 갖지 않고 들어가 그저 체험했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주제가 없는 일상은 그저 흘러가는 날들이지만, 주제를 가지면 통찰이 일어나고 원하는 일이 이루어짐을 통해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후에는 주제를 품게 하였습니다. 아래 몇분의 후기를 공유하니 체험을 예약하신 분들은 참고하시고, 오인회 여러분 도 많은 참여 바랍니다. 아래 몇분의 탱크 체험 후기를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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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상담/통찰력게임 안내자)
사마디탱크에 들어가기 전에 주제를 떠올린다.
나는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어떤 일이 해결되기를 원하는가, 중심에 붙들고 탐구하고 싶은 것이 있는가, 또는 면밀하게 보고자, 알고자 하는 게 있는가 등등 스쳐가는 주제들 중에 잡아지는 것은 딱 하나 ‘나는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를 종종 떠올리던 어느 때에 ‘나는 누구인가를 묻지않는 사람이다’가 툭 떠오르고 나서 십여 년, 그동안 묻지 않던 질문이 ‘나는 무엇인가’로 돌아왔구나.
찬찬히 준비하고 탱크 뚜껑을 열었다. 푸른빛이 파리하니 흐릿하게 보인다. 지난봄 첫 경험 때 찬란할 만큼 경쾌하게 보이던 느낌과 다르다. 이것은 실제 물리적 변화인 건지, 오래된 연인 같은 상습에서 오는 건 아닌지? 그렇다면 단지 몇차례 접한 것만으로 첫 감각과 다른 빛깔로 만나는 게 우리의 일상이 되는 것이겠구나.
날마다, 매순간 새롭게 보라는 그 의미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주문이면서, 이 또한 지속적으로 찰나찰나 정신을 가다듬으라는 메시지로구나.
그래서 <오직 그것만을 주의집중!>하는 방법을 배우고 익히고 훈습해 나가는 필요가 있는 것이네. 안 그러면 우리는 늘상 찬란함이 빠져있는 흐릿한 실상만을 접촉하며 사는 것일 테니까.
물의 온도는, 접촉할 때는 몸보다 찬 듯 경계가 그려지지만, 담가지면 따뜻하여 안정감으로 이어진다. 자리를 잡고 다시 한 번 공간을 느낀다.
하얀, 푸른, 따뜻한, 아늑한, 그리고 양 옆의 검고 동그란 스위치, 그동안 내가 눌러본 어떤 스위치보다 크다.
스위치를 누른다는 것은 원하는 것이 있고 그 원함을 작동시키고자 하는 명령을 신호로 보내는 것이다.
그 명령을 보낼 수 있는 창구가 크고 선명하니, 이 안에서 숨쉬기 힘들거나 두려울까 염려하는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그 선명하고 큰 단추 하나가 안심하시라 당신을 지키기 위해 나 여기에 있다, 나를 또렷이 기억하시라 얘기하는 것만 같아서, 염려를 표현하는 분들과 그 염려에 응답하는 양편의 사람들이 같이 호흡하는 것 같아, 편안하고 흐뭇한 안정감이 되었다.
그 누구도 이 안에서 위험을 겪지 않으리라.
숨 한 번, 물결 한 번 주고받으며 자신의 내면에 투명해지리.
그 경험이 막연한 불안을 실체없음으로 명확하게 알아지는 기회가 될 수도 있겠지.
습관을 알아차리고 본질의 질문을 듣고~~
나는 무엇인고?
오늘은 우리 공부 친구들 여럿을 인솔하여 온 사람이고, 어제는 배고파하는 정하에게 먹일 밥을 구하기에 마음이 쓰였던 사람이다.
이런 것은 내가 한 행동, 내가 경험한 심정일 뿐, 나는 아니다.
두루 앞으로 결정해야 할 일에 대해서 떠오르다가 지나간다.
그리고 어느 순간, 꽃대 하나 스르륵 올라와 흰꽃 두송이 화들짝 피어나다가 이내 누런 갈색으로 후두둑 꺽여 떨어지는 것이 보인다. 봄날 비온 뒤 꽃밭에 상사화 분홍꽃이 하루아침에 피어나 놀라웠는데, 이건 훨씬 더 빠르고 압축적이다.
앞으로 삶을 어떻게 살까? 거처는? 관계는? 늙음과 죽음을 과제로 안으려는 나에게, 스르륵 피고지는 꽃의 일생을 찰나지간에 마주침으로서, 천지간의 이치를 보여준 것 같았다.
숙고가 지나치면 허송이 되고, 염려가 지나치면 고심이 되리. 한송이 꽃이 피듯이 우리는 피어났고, 두송이 꽃이 지듯이 소리 없이 변태를 한다. 네송이, 다섯 송이, 수없이 피고지는 과정들~
생멸하는 모든 것. 우리 삶의 문양은 물결을 만날 때 선명하게 드러나기도 하고, 그 찰랑임에 씻기워져 흔적은 사라지기도 하고~
나는 무엇인가를 질문했던가.
‘나’라는 실체를 잡을 수가 없는데 그것을 무엇이냐고 어찌 물을 수 있겠는가.
한사람 한사람 경험을 나누고 말씀 듣는 모습이 진지하다.
햇살이 좋은 초겨울 함양에서 질문 하나를 내려놓다.
박정하 님
여러 선생님들과 함께 홀로스평생교육원에 가는 과정부터, 그곳에서 보낸 3박 4일은 전반적으로 참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첫날의 저는 그냥 들떠 있었어요. 사마디탱크가 어디에 있을지, 어떤 모습일지, 들어가면 어떤 느낌일지 온통 궁금했고, 그렇게 도착한 다음 날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체험 첫째 날
탱크가 있는 공간은 아주 조용했고, 물빛의 예쁜 조명이 켜진 탱크에 몸을 맡긴 채 1시간 동안 제 안의 느낌과 생각을 모두 만나보겠다는 마음으로, 그리고 제가 품고 있던 ‘원망’이라는 감정을 들여다보겠다는 다짐을 하고 들어갔어요.
자리를 잡고 뚜껑을 완전히 닫으려는 순간, 느껴보지 못했던 두려움과 거부감이 확 올라왔고 결국 1cm 정도 틈을 둔 채 누웠습니다.
물이 담긴 욕조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익숙할 수 있어 달래보았지만, 그 위를 스스로 완전히 덮는 감각 앞에서는 떠올린 생각이 금세 힘을 잃었어요..
물 위에 힘을 빼고 떠 있었는데, 체감상 5분쯤 지났을 무렵 뒷목부터 통증이 올라오기 시작했어요.
평소에도 목과 어깨 통증이 있긴 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떠 있기만 해도 이 정도로 괴로울 수 있다는 건 처음 느껴봤습니다.
통증은 어깨 라인과 승모근, 목과 연결된 머리 아래쪽으로 번졌고, 시간이 지날수록 머리 전체와 등까지 찢어질 듯 아파왔어요.
분명 힘을 빼고 가만히 있는데도 통증은 점점 심해져 이 상태로는 더 버티기 어렵겠다는 판단이 들어 결국 나오게 됐고, 밖으로 나와 보니 35분이 지나 있었어요.
그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월인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제가 평소 얼마나 목과 어깨를 강하게 긴장시킨 채 살아왔는지를 처음으로 자각하게 됐어요.
제가 생각한 ‘힘을 뺀 상태’는 진짜 힘을 뺀 게 아니더라고요. 잠시나마 ‘힘을 빼는 법’을 조금 연습했고, 다음 날의 목표는 단순해졌습니다.
내일은 꼭 1시간을 채워보자.
체험 둘째 날
둘째 날에는 폐쇄된 공간에 대한 두려움은 거의 없었고, 다만 “오늘도 목이 아프면 어쩌지” 하는 걱정을 안고 들어갔어요.
역시 5분쯤 지나자 슬슬 통증이 올라왔지만, 전날 배운 대로 아주 미세하게, 조금씩 힘을 더 빼는 연습을 해봤습니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통증이 점점 옅어졌고, 시간이 지나도 참을 만한 수준으로 유지되더라고요.
몸이 편해지니까 기분이 좋아져서 팔다리를 조금 움직이게 됐고, 그 움직임은 점점 커져버렸습니다.
그러다 귀에 물이 들어오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반드시 가만히 있어야지’ 하고 멈췄는데, 잠깐 평온해졌다가 자각하지 못한 채 또 움직이고 있더라고요.
그러다 귀에서 공기가 빠져나가는 소리와 함께 미세한 압력이 느껴졌고, 그때는 이건 안 되겠다는 판단이 들어 나왔습니다. 둘째 날의 기록은 40분이었어요.
중간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이전에 체험했던 선생님 두 분이 뚜껑이 열려버렸다는 이야기가 스쳤는데, 그 순간부터 너무 춥게 느껴지는 거예요.
어차피 밀폐된 공간이니 참아보자 했지만 찬 공기가 저를 덮쳐서 도저히 안 되겠어서 ‘뚜껑을 닫아야겠다’ 하고 탱크 안에 불을 켰습니다.
그런데 뚜껑은 아주 잘 닫혀 있더라고요.
그걸 확인하는 순간 몸의 감각이 바로 달라졌어요.
아까까지 그렇게 차갑게 느껴졌던 공기가 전혀 춥지 않게 느껴졌고, 그냥 괜찮아졌어요. 뭐지 싶어서 그때 뻘쭘한 옅은 웃음이 나왔어요.
생각 하나로 몸의 감각이 이렇게까지 바뀔 수 있다는 것과 그걸 경험한 자체가 정말 신기했어요.
몸의 감각이 상황보다 ‘생각’에 훨씬 크게 반응하고 있다니..
탱크에서 나온 후,
아쉬움을 안고 씻으려는데 순간 어릴 적 저를 한 번도 혼낸 적 없던 할머니가 “지독하게 말 안 듣는다”고 하시던 말씀이 불현듯 떠올랐고, 그 기억에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어요.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전제를 알고 있으면서도, 몸은 계속 먼저 움직이고 있었고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어기고 있었습니다.
시작부터 뚜껑을 완전히 닫지 못했고, 끝내 가만히 있지도 못했지만 그런 저를 비난하지 않고 바라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 경험은 제게 아주 값졌습니다.
제 몸의 긴장, 제 성향, 제 무의식적인 행동 패턴을 이토록 선명하게 마주한 시간은 흔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가서 선생님들 얼굴도 다시 뵙고, 다음에는 탱크 안에서 1시간을 온전히 채우며 나에 대해 더 깊이 보고 싶습니다.
오경애 님
1. 차단의 두려움
감각을 차단한다?
감각을 차단하면 느낌과 욕구, 감정 상태가 없는 숨만 쉬는 상태인가? 그야말로 깊은 생각과 더불어 내가 없는 상태도 될 수 있겠구나. 그렇다면 무아? 그러나 기대감이 있는 동시에 물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했다. ‘일단 해 보자’는 나의 삶의 모토인 행동으로 들어갔다.
발을 담그니 따뜻해 내 몸에 큰 반응은 없다. 누워야할 텐데 누워지기는커녕 양팔을 벌린 채로 앉아 어딘가를 잡고 있다가 서서히 누웠다. 어깨, 양팔, 손목, 열손가락은 힘을 빼지 못하고 죽을힘으로 계속 잡고 있다. 무서움에 눈도 못 뜨고 그러고 보니 눈에도 힘을 주고 있다. 어찌해야 할까? 평화가 아닌 고통과 인내심, 불안과 싸우는 중에 목덜미 뒤부터 척추를 타고 꼬리뼈까지 쉿덩어리를 지고 있다. 가벼워지고 싶었지만 마음은 꼬이고 비틀어진다. 내가 이렇게 무거운 짐을 지고 살고 있나? 진실로 안정과 행복이란 걸 알기는 아나? 싶기도 했다. 온몸이 긴장감에 천근만근이다. 무거운 생각이 더 짓누르는 같다.
코로 호흡을 길게 계속 하면서 서서히 왼팔에 힘을 빼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오른팔도 놓으니 물 위에 떴다. 몸을 내 의지대로 할 수 없으니 꼼짝 않고 그대로 누워 있다. 60 평생 처음 경험이다.
처음보단 진정이 되었지만 양손은 여전히 가슴 앞으로 오그려 꼭 붙이고 있다. 아무 생각이 없고 언뜻언뜻 잠드는 순간도 있었다.
이제는 약품 비슷한 냄새가 코로 들어오더니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심장까지 오는 듯 토하기 직전이다. 머리도 어지러워진다. '참아야지 한 시간 정도야 금세 지날 거야 지나간다...’
얼마가 지났을까 뭔가 빛이 보이는 듯하다. 잠시 있다가 서서히 실눈을 뜨다가 완전히 뜨고 내 모습을 보니 누워서 웅크리고 있다. 아기가 태어나 두 손을 웅크리고 있는 것처럼.
‘진짜 두렵고 무서웠구나. 그래도 잘 참았네. 괜찮아, 이제 됐어. 안심해.’
씻으며 토를 몇 번 하고 얼굴을 보니 완전 일그러져 고통스러워 보였다. 처음 보는 낯선 얼굴이다.
어지럽기도 해서 대충 씻고 들어가 누웠는데 아무 생각이 없다. 편안한 호흡을 하며 심장이 편안지기를 바랄 뿐이다.
2. 발견
월인 선생님과 체험 한 동료들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에 수영과 물을 좋아하는 사람은 나처럼 물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고 비슷하게 목과 어깨에 강한 통증과 짓눌림이 있다는 경험을 들을 때는 큰 숨이 나오고 비슷하다 싶어 위안도 받았다.
약품 냄새는 선생님이 약간 있을 수 있다고 하셨는데 내가 체험에 몰입을 못하고 냄새에 강한 저항이 올라와 냄새가 더 강하게 덮었겠구나 싶었다.
약품 냄새는 사실이고 물에 대한 두려움과 저항에 몸을 맡기지 못했구나 인정하니까 어제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두 번째 체험에 들어갔다.
호흡을 자연스럽게 하고 싶어 이번엔 문을 약간 열어 놓고 들어갔다. 탱크 안에 불을 끄고 몸을 살짝 뉘어 왼팔을 놓고 오른팔을 살살 놓았더니 몸이 약간 흔들거리더니 물 위에 떴다. 순간 모든 게 멈춘 듯 깜깜한 두려움이 온몸을 덮었다. 정신을 차리자 하고 깊은 호흡을 천천히 계속했다.
‘내가 여기에 온 까닭은? 왜 굳이 이런 체험을 하고 있는 건가? 의미는 있는 건가? 하지만 새로운 나의 의식을 경험하며 확장해 가고 싶음이 있기에 온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긴장이 서서히 풀리는 듯 했다. 시간은 흘러가고 어제보다는 두려움이나 어깨, 등짝 무거움이 덜했다. 한결 가벼워지고 있다. 의도적으로 정수리, 이마, 눈, 눈꺼풀, 코, 얼굴, 인중, 턱, 목 … 발가락까지 힘을 뺐다. 점점 가벼워지는 듯하다. 잠깐 잠도 들고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아무 생각이 없을 때도 있었다.
그러다 문득 엄마, 아버지가 떠오른다. 내가 자라며 지금까지의 순간들이 필름처럼 지나간다. 행복했던 순간보다는 늘 내가 혼자인 모습이 더 보인다. 그래도 ‘60평생 물을 거부했던 몸을 물에 맡긴 경험을 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눈물이 흐른다.
양양 바닷가 근처에 살면서도 물을 발목까지만 허용했던 내가 물에 몸을 맡기다니 나에겐 엄청난 모험이고 도전이다. 탱크 안은 물이 주인이고 나는 떠 있고 가만가만 숨만 쉬어야한다.
‘그렇구나. 나는 살면서 몸과 영혼을 온전히 누구에게 맡긴 적이 없었어. 믿지도 않아. 언제부터 물을 거부했는지 기억이 없어. 어릴 적부터 그냥이었어. 아님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거부했던 건 아닐까? 사람들은 엄마 뱃속 양수 안에서 따뜻하고 평화롭고 안전한 느낌이라던데 난 한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기억이 없어. 이미 그때부터 엄마 뱃속에서 갑갑증을 느끼고 엄마와 투쟁을 했을지도 모르지. 엄마와 사랑, 애정이라는 감정을 느껴본 경험이 기억나지 않아.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꿈에도 보인 적이 없어. 나를 키우며 기쁨도 있으셨겠지만 내가 어찌 알까. 엄마에게 따뜻한 밥상을 받아 본 기억이 없는데. 그래서 나의 삶에는 따뜻하고 정갈한 밥상을 중요시하는지도.’
탱크 경험을 통해 엄마와 관계를 보게 되었다. 아주 멀고 가깝거나 밉거나 사랑스러운 관계가 아닌 그냥 한 발짝 떨어진 사람 관계로. 엄마도 나처럼 나에게 많이 섭섭했을 거라는 생각에 아릿하다. 생명주시고 키워주심에 진심으로 아버지, 어머니께 고맙고 감사하다.
물을 두려워했단 까닭은 이미 뱃속에서 갖고 세상과 만났음을 알았으니 다시 물과 온전히 만난다면 진정으로 몸과 영혼이 해방을 맞이할 것이다.
아바타 영화 《물의 길》에서 로아카와 고래와 비슷한 돌쿨과 바다에서 자유롭게 노는 장면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지금 떠오르는 나의 모습은 탱크 들어가는 입구가 흰고래 머리가 연상 된다. 다시 경험한다면 흰고래와 로아카처럼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성민정 님
지난 4월에 한 사마디탱크 경험이 신비하고도 좋았기에, 시간을 내어 이번에도 참여했다. 양양에서 5시간 긴 시간이었지만 고마리 샘이 동행해주셔서 덜 지루하게 오갈 수 있었다.
탱크에 들어가기 전에 주제를 정하면 좋다고 말씀하셨는데 나는 딱히 주제가 떠오르지 않아 오랫동안 내게 감각되는 목과 어깨쪽 묵직한 통증을 만나보고 싶었다.
월인 선생님께서 감각차단탱크, 즉 사마디탱크에 대해 사전설명해주실 때, 의식적으로 다섯 가지 감각으로부터 탈출, 감각을 차단해줌으로써 바로 의식관찰로 들어갈 수 있는 효율적인 장치라고 말씀해주시면서 만성 통증 환자들에게도 효과가 있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탱크에 들어가 따뜻한 물속에 누우니 편안하고 좋았다. 힘을 빼고 그냥 누워 있으면 그 자체로 아주 편안하고 좋아서 엄마 뱃속 양수 속에 있을 때 마치 이런 느낌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편안한 맘으로 물결을 살짝살짝 일으켜 보기도 하고, 탱크 안에서 이쪽에서 저쪽 벽까지 스르르 움직여가보기도 하면서 놀이를 하다가 잠이 든 것도 같다. 평소 통증과 불편감을 느끼는 몸의 부분으로 주의를 옮겨가자 몸이 꿈틀거리고 근육의 뒤틀림, 움직임이 있고 움직임이 잦아들면서 거친 날숨을 뱉어낼 때마다 코 고는 소리가 난다. 익숙한 몸의 반응이어서 그대로 한동안 내맡기며 거친 날숨을 뱉어냈다. 그 감각을 더 관찰해 들어가보니 무거운 불편감은 슬픔이었다. 근원을 알 수 없는 슬픔이 올라와 가슴에 손을 대고 잠시 눈물을 흘렸다. 내 몸속에 들어있던 슬픔과 무거움이 조금씩 녹아서 거친 호흡으로 몸에서 빠져나오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녹여서 뱉어내기를 반복하며 조금 지루해질 때쯤 불이 켜지고 첫 번째 체험이 끝났다.
지난 4월에도 월인 선생님과의 나눔 시간에 많은 알아차림과 배움이 있었는데 이번에 내게 남는 것은, 우리는 흔히 느낌이 나인 줄 착각하고 사는데 느낌은 나가 아니며 나의 본질은 고요라고 하신 말씀과, 느낌은 신호이니 충분히 잘 느껴줄 필요가 있다는 말씀이었다.
느끼기는 경험하기인데 오랫동안 쌓여온 느낌을 경험하지 않으면 무의식이 느껴주라고 자꾸만 자극을 준다, 느낌을 통해 무의식이 신호를 주는 것이니 느낌 받아들이기 / 느낌 벗어나기 훈련을 통해 알아차림을 키워갈 수 있다고 하신 말씀이 인상적이었다.
김현아 님
함양으로 3박4일 여행가는 것 같은 설레는 기대를 안고 향했다.
사마디탱크에 들어가기 전 어떤 주제를 정할지 생각해보다. 불안으로 정했다.
탱크에 들어가기 전 사전영상을 보며 ‘귀에 물이 들어가면 어쩌나’, ‘나도 물에 뜰까’ 걱정했고 ‘나만 아무것도 못 깨달으면 어쩌나’ 등 걱정을 잔뜩 달고 밤 8시 타임이라 약간 심란함을 안고 향했다.
맛있는 음식이 너무 많아서 배가 부른데도 저녁을 잔뜩 먹고 한껏 부른 배를 안고 끅끅대며 간 탓에 물에는 떴지만 속이 불편했다. 계속 속이 꾸르륵거렸다.
그러다 물에 뜬 채 내 식탐을 마주했다. 나는 은근 식탐이 많아서 적당히가 아닌 배가 꽉 차도록 먹는 편인데 ‘아, 그것도 미래가 불안하니 지금 꽉꽉 채워놓으려는 내 불안감으로 인한 거구나’가 갑자기 알아차려졌다. 그 순간 성경 속 그날 내려 주시는 만나가 내일은 혹시 내리지 않을까봐 절대 저장하지 말라고 한 명령을 어기고 저장했다가 다음날 썩어버린 만나를 마주하는 이들이 바로 나였구나 알아졌다. 그리고 그들처럼 절대자나 보호자에 대한 신뢰가 없음이 불안으로 이어짐도 깨달아졌다.
어릴 때는 부모님이, 지금은 남편이 미덥지 않고, 늘 혼자인 나를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불안을 발동시키며 살고 있는 모습. 탱크 안에서 둥둥 뜬 채 몸이 오른쪽을 향해 부딪히다가 발이 탱크와 닿으면 탈출할 수 있는 입구랑 멀어져서 불안했다.
이제 1시간 쯤 된 것 같은데 불이 안 켜지니, 혹시 시간이 지났는데 불이 안 들어오고 있는 건 아닌가, 자꾸 나만 안 되고 나만 제외되지 않을까 내내 불안에 시달렸다.
아직도 내 불안은 더 마주하고 알아주어야 하겠지만, 내 불안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지를 마주하게 된 것 같다.
여러 사람이 모인 곳에서 각각의 고민과 깨달음을 지켜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었다. 새롭고 신선한 경험을 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_ 자공 (교사)
[1일]
*1회차 전
저녁 모임 때 월인 님께서 감각차단탱크를 경험해 보려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어보셔서 이렇게 답변 드렸다.
1) 호기심의 해소
2) 깊은 이완과 휴식
3) 몸이 내가 아님을 경험적으로 깨닫기
이렇게 답변을 드리니 첫 번째 세션에서는 이완과 휴식을 목적으로 하고,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 말라고 하셨다. 감각이 차단되면 생각이 더 떠오를 수는 있는데 그럴 때는 생각에 끌려가지는 말고 일어나는 생각을 그저 바라보라고 하셨다.
*1회차 중
탱크에 들어가니 몸이 저절로 떠오르는 것이 기분 좋고 신기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불을 끄고 몇 초 지나가 오른발 복숭아뼈 근처에 내가 몰랐던 상처가 있는지 따끔거림이 느껴졌다. 여름이라 양말을 신고 다니지 않아서 알게 모르게 상처가 났던 걸 몰랐던 것 같다. 그리고 왼쪽 귀마개를 제대로 하지 못했는지 뽀글뽀글 소리가 나면서 왼쪽 귀로 물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나가서 바세린도 다시 바르고 귀마개도 제대로 할까 하다가 그냥 몇 분 기다리니 다행히 불편감은 없어져서 그냥 누워 있었다.
귀마개를 해서인지 숨 쉬는 소리와 침 삼키는 소리가 크게 들렸고 평소와 달랐던 점은 심장 뛰는 소리가 들렸다는 점이다. 어두운 곳에 둥둥 떠서 심장 소리를 듣고 있자니 엄마 뱃속이 이렇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애기들이 이렇게 따뜻한 곳에 둥둥 떠서 있다가 밝고 시끄러운 세상 밖으로 정말 나가기 싫겠다, 우리 엄마가 25세에 나를 낳으셨는데 참 어릴 때였네 등등 이어지는 생각들이 떠올라서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 생각들이 사라지고 나자 내일 아침식사는 아침모임 전에 먹을까 후에 먹을까부터 후기는 뭐라고 쓸까 등등 이런 저런 생각들이 계속 떠오르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러면서 알게 된 것은 생각을 하는 데에는 ‘에너지가 쓰인다’는 것이다. 평소에는 밥을 먹으면서도 생각을 하고, 길을 걸으면서도 생각을 하기 때문에 생각에 딱히 에너지가 쓰인다는 생각을 못했는데 아무 저항이 없는 곳에서 생각을 하니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실제 그 행동을 하는 것보다는 덜하겠지만) 에너지가 쓰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하루 종일 그 많은 생각을 하며 소모되는 에너지가 어느 정도일지... 또한 생각을 따라가며 거기에 빠지는 것보다는 바라보는 것이 에너지가 덜 소모됨이 느껴졌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며 누워 있었는데 크게 불편하거나 답답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자꾸 뭘 하려고 하는 나를 발견했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려본다거나 눈을 깜빡여본다거나 하는... 특이한 점은 내가 눈을 뜨고 있는지, 감고 있는지가 점점 구분이 안 가게 된다는 점이었다. 지금 내가 눈을 뜨고 있나 감고 있나 헷갈리게 되고 눈을 깜빡여보아야 알게 된다. 아무튼 뭘 하려고 하는 것까지 알아차리며 누워있는데 한 시간이 꽤 길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쯤 끝나려나? 하는 생각이 세 번 정도 지나서야 불이 켜졌다.
*1회 후
밖으로 나와 샤워를 하니 상쾌함이 느껴졌다. 온천탕 등에서 목욕을 하고 나오면 뭔가 묵직하면서 이완된 느낌이 느껴졌다면, 탱크 체험 이후에는 가벼운 상쾌함이 느껴졌는데 이게 몸의 상쾌함이라기보다는 정신의 가벼움이 더 컸던 것 같다. 정신이 가볍고 텅 빈 느낌이 들었다.
[2일차]
*2회차 전
아침 모임 때 1회차 측정 때의 경험을 나누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어제보다는 선명하지는 않았지만, 생각이 일어나며 에너지가 사용되는 것이 느껴졌는데, 그 에너지가 아깝게 느껴졌고 내게 주어진 생명 에너지를 좀 더 가치 있는 곳에 쓰고 싶다는 마음이 대화를 나누며 더 명료해졌다.
2회차 주제는 ‘몸이 느낌임을 알기’로 잡았다. 월인 님께서는 몸의 느낌을 지켜보라고 하셨다. 애써서 지켜보기보다는 일어나는 느낌들이 바라봐지는 상태로 있으라 하셨고, 탱크 체험 전 주제를 명료히 하는 시간을 가졌다.
*2회차 중
2회차에는 상처도 잘 보호하고, 귀마개도 정성을 들여 막았더니 초반의 불편한 느낌이 많이 경감되었다. 목적이 없이 들어갔던 1회차 때와는 달리 주제를 가지고 들어가자 떠오르는 생각들이 1회차 때만큼 명료하게 인식되지는 않았다. ‘주제’를 품는 데에 일정 정도의 에너지가 들어가서 생각이 흐릿하게 인지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흐릿한 만큼 오히려 은근슬쩍 생각에 끌려가는 경우가 많아서 그때마다 알아차려야 했다.
몸을 알아차리려고 하니 귀마개 안에서 들리는 숨소리, 침 삼킬 때 나는 소리, 머리와 어깨의 약간 묵직한 느낌, 얼굴의 간질거림 등이 번갈아가면서 느껴졌고, 시간이 더 지나자 심장의 박동에 따라 흔들리는 몸의 진동도 느껴졌다. 하지만 이 모든 걸 담기에는 의식이 부족하다고 느껴졌고, 몸의 다양한 느낌들과 예측불가능함이 거대하게 느껴졌다.
내가 탱크 안에 있고 이게 내 몸이고 내 키는 몇이고 이런 틀 안에서 몸을 느끼면 몸의 느낌이 축소되며 의식이 몸보다 크게 느껴지고 내 몸을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런 이름과 생각, 시각적인 틀을 다 내려놓고 몸의 느낌만을 느끼려고 하니 몸의 느낌들이 예측불가능하고, 컨트롤하기 어렵고, 크기를 가늠할 수 없게 느껴졌다. 마치 몸은 눈에 보이지 않는 우주 괴물이고, 의식은 그것을 탐사하는 우주선과 같이 느껴졌다.
2회차는 1회차보다 더 짧다고 느껴졌으나, 중간중간 몸을 움직이고 싶은 마음, 자꾸 무언가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마음은 변화를 일으키고 경험하게끔 되어있음이 느껴졌다.
*2회차 후
1회차 때와 마찬가지로 정신의 가벼움과 상쾌함이 느껴졌고, 만성적으로 갖고 있던 가슴통증과 불편함이 사라졌음을 느꼈다.
점심 식사를 하며 경험을 나누던 중 위의 경험을 말씀드리니 “그렇다면 평소에는 왜 정신이 가볍지 않을까? 왜 몸에는 통증이 있을까?” 라는 질문을 주셨다. 나는 기본적으로 ‘삶은 고통이다’라고 생각하고 있고, 거기에서 오는 마음의 전반적인 무거움에 대해 말씀드렸다. 삶은 고통이고 고통은 집착에서 오며 거기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설명한 것이 붓다의 가르침인데 사람들이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일부만 들으면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집착을 버리면 되는데 왜 집착을 버리지 못할까?” 이 질문에 대해 나는 나 자신을 지키고 싶은 마음, 삶은 고통이라고 하지만 그 사이의 위안과 즐거움에 만족하는 마음 등을 떠올렸다. 통증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미리 계획하고 통제하려는 관성에서 오는 무의식적인 긴장 등이 원인일 것이고 서울로 돌아가면 계획세우지 않고 즉흥적으로 생활해 볼 것도 제안해 주셨다.
*3회차 전
3회차에도 2회차와 같이 ‘몸의 느낌을 탐구하기’로 주제를 잡았다. 2회차 때에는 다른 느낌들이 왔다갔다 하였으나 이번에는 느낌 한 가지를 잡아 집중해 보기로 하였다. 만약 몸을 움직이고 싶은 의도가 생기면 그 부위를 경계 그리고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 범위를 좁혀가며 집중해 보라고도 제안해주셨다. 같은 차원에서 느낌을 옮겨 다니는 것은 하지 말고, 더 깊은 차원으로 옮겨가는 것은 괜찮다고 알려주셨다.
*3회차 중
탱크에 눕고 좀 지나자 팔이 떠 있지 않고 바닥에 닿아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 흥미로워서 팔의 무게감에 집중을 해보기로 했다. 경계 그리고 집중하였으나 시간이 지나도 느낌이 변화가 없고, 움직이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고 나무토막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 가지 느낌에 집중해 보기로 마음을 먹었기에 주의의 대상을 옮기지 않고 팔의 느낌에 계속 두자 집중의 어려움이 느껴졌고 그 과정에서 잠이 들었던 것 같다.
그러다 좀 지나 잠에서 깨었고 다시 팔의 느낌에 경계 그리고 느껴보려고 하였다. 비슷한 느낌이 느껴졌고 변화가 없었으나 계속 집중하려고 했고 그 과정에서 에너지가 많이 쓰였다.
그러다 발가락을 움직이고 싶은 느낌이 강해져서 그 느낌에 경계 그리고 느끼기를 하였다. 발가락을 움직이고자 하는 의도가 어디에 있을까? 머리 쪽에 있나? 나라는 느낌과 가까운 부분에 있나? 이런 생각을 하며 의도가 일어나는 부분을 찾아보니 그 의도는 발의 중심 부분에 있음을 발견하였다. 내 지식이나 기존 관점에 따르면 나라는 느낌 근처에 있을 것 같은데 관찰하는 나라는 느낌과 발가락을 움직이려는 느낌이 멀찍이 떨어져 있음을 관찰하였다.
*3회차 후
집중을 하느라 에너지를 많이 써서인지 피로감이 느껴져서 체험 후 낮잠을 잤다. 공부를 하는 과정 중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집중을 지속하는 힘이 없고 집중에 어려움이 느껴져서 집중력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을 먹으러 오디관으로 올라가는 길에 몸의 느낌을 감지해보니 체험 이전보다 훨씬 선명함이 느껴졌다. 이전에는 내 몸에 대한 시각적 이미지와 키, 생김새 등의 관념 등이 몸의 느낌에 덧붙어 잘 분리가 안 되었다면, 촉각적 느낌과 에너지적인 느낌이 더 선명하게 감지되었다.
나눔을 하며 집중이 잘 안되었음을 말씀드리자, 집중은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는 것이라고 알려주셨다.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면 마음은 거기에 머무르기 힘들다고.. 아까 체험할 때 팔의 느낌이 고정된 것처럼 느껴짐에도 계속 집중하려고 애를 썼으나 그렇게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우며, 그럴 때는 느낌의 미세한 변화를 관찰하는 것이 집중할 수 있는 길이라 말씀해 주셨다. 나는 그간 집중을 ‘변화를 감지하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를 쏟아넣는 것, 고정하는 것’이라는 오해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3일차]
*4회차 전
몸의 느낌에 집중하기를 다시 한번 주제로 잡기로 하였다. 월인 님과의 대화를 통해 얻은 집중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기반으로 탐구해 보기로 한다.
*4회차 중
탱크 안에 누우면 이런저런 몸의 느낌들이 떠오르는데 그 중 하나를 골라 집중하기 위해 그 느낌들을 느껴보았다. 이런 저런 느낌들에 집중하려고 해보았으나 쉽지가 않았고 그나마 호흡에(코 주변) 주의를 기울이니 변화가 느껴지며 집중이 되어 한동안 집중해 보았다. 그러나 왼쪽 귀에 물이 들어가기 시작하고 귀가 간질거려서 주의가 그쪽으로 쏠리기에 아예 그 부분에 주의를 기울여 보았다.
왼쪽 귀에서 소리가 들리고 간질거려서 처음에는 왼쪽 귀 전체로부터 시작해서 간질거리는 부분으로 부위를 좁혀가 보았더니 어떤 점에서 간지러움이 일어나고 있음이 느껴졌다. 간지러움이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리듬을 타듯이 심해졌다 잦아들다가 반복하다가 점점 사그라들며 사라지고 그 자리가 심장 뛰는 소리로 대체됨이 느껴졌다. 거기에 더 집중하려 했으나 이번에는 오른쪽 복숭아뼈 근처의 상처가 따갑기 시작해서 거기로 주의가 자동으로 이동되었다.
복숭아뼈 근처의 상처에 주의를 기울이니 그곳에서도 따가움이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하다가 몇 분 이내로 점점 사그라들더니 잔잔해졌다. 그 때 그 아픔을 느끼는 자가 누구이지? 무엇이 이 아픔을 알고 있지? 라는 질문이 떠올랐는데 그걸 관찰하려고 마음먹고 있던 나라는 느낌이 아는 것은 확실히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상처 근처의 무언가가 상처를 알아차리면서 동시에 상처를 일으키는 느낌? 아픔이 아픔을 알아차리는 느낌? 정도로밖에 표현을 못하겠다.
탱크 안에서는 시각적 자극이 없기 때문에 각 부위에서 느껴지는 느낌들이 각각 분리되어 느껴졌고, 각각의 주체를 갖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나’라는 것이 어떤 하나의 실체가 아니라 여러 느낌들이 어떠한 조건에 의해 조합되어 드러나 있고 ‘나’라는 이름과 개념과 믿음이 그 느낌들을 하나로 묶어 주어 우리가 편리하게(에너지를 적게 쓰며) 살아갈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번 회차에서는 고통에 자연스럽게 쏠리는 주의와, 고통에 집중하기가 쉬움을 알게 되었고 우리의 삶이 (깨어있지 못하다면) 이 고통에서 저 고통으로 주의를 쏟으며 살게 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4회차 후
점심 식사를 하며 4회차 때 경험한 것을 나누었다. 발목의 상처의 아픔은 아픔대로 있고 관찰하는 나는 나대로 있어 몸이 내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고 말씀드리자, 그럼 그 경험을 다른 경험에 적용하였을 때에도 똑같이 느껴지는지를 살펴보라고 하셨다. 불편한 목소리나 감정, 정신적인 어떤 패턴 등 다른 것에도 적용해 보면서 그럴 때도 정말로 그 경험이 내가 아닌지 확인해보라고 하셨다. 몇 가지를 적용해보니 동일시되는 것들이 있어 일상 속에서 다양하게 확인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5회차 전
5회차에는 ‘나라는 느낌’에 집중하기를 주제로 잡았다.
*5회차 중
탱크에 누워 나라는 느낌에 경계 그리고 느끼기를 하고 있는데 오른쪽 귀에 물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계속 소리가 나고 불편감이 심해져서 앉아서 귀마개를 다시 넣어보려고 하다가 그냥 빼고 누웠는데 이번에는 왼쪽 눈에 소금물이 들어가서 무척 따가웠다. 평소 같았으면 ‘아..내 눈!’ 이러면서 무척 괴로워했을 텐데 몸의 느낌에 대한 탐구를 수차례 하고 나서인지 눈의 아픔은 아픔대로 있고 나는 나대로 있는 분리감이 느껴졌다. 가만히 누워 아픔을 관찰하고 있으니 4회차 때처럼 아픈 느낌이 이리저리 변화하다가 사라졌다.(나중에 생각해보니 귀에 물이 들어갔을 때도 이런 식으로 알아차렸어야 했다. 그런데 귀마개를 아주 정성스럽게 넣은 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짜증이 났고 거기에 동일시되었던 것 같다.)
이후 나라는 느낌에 대해 경계 그리고 느껴보는 것을 반복하였다. 평소 탱크 밖에서 연습할 때와는 조금 다르게 느낌이 잡혔다. 어쩌면 일상 속에서 연습할 때는 몸을 기준으로 하여 고정된 그림을 그리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몸을 느끼기 연습할 때와 마찬가지로 느낌에 집중하는 것에 애가 쓰이고 관찰에 에너지가 많이 들었다. 그러다보니 지치게 되고 그 사이 다른 느낌들에 주의가 옮겨지는 경험이 반복되었다. 그러다 보니 괴로운 느낌이 일어나고, ‘이 공부가 과연 끝나기는 끝나는 건가, 안 그래도 괴로운 삶에 공부의 괴로움까지 더할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일어날 즈음에 불이 켜졌다.
*5회차 후
저녁 모임 때 경험한 것을 말씀드리니 괴로움 없이 탐구하기 위해서는 ‘흥미로운 부분, 궁금해하는 부분’에 주의가 끌려가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해주셨다. 만약 무언가가 정말로 궁금하다면 3일 밤낮을 탐구해도 지루하거나 괴롭지 않다고 하셨다. 그 관점에서 내 공부를 돌이켜보니 나는 이 공부의 질문마다 어떤 고정된 답이 있다고 여기고, 그걸 알아내야 한다고 생각했지, 정말로 호기심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또한 ‘나라는 느낌-전체주의-존재감’으로 이어지는 의식이 확장되는 탐구와 ‘나라는 느낌-그것을 아는 자’와 같이 집중해 들어가는 탐구의 차이에 대해서도 질문을 드렸는데 그런 것이 궁금할 때는 차이점보다는 ‘이 둘은 왜 차이가 나지? 이 차이는 무슨 의미지? 작용의 의미가 뭐지? 이것이 뭘까?’ 등등 원리를 파악하는 쪽으로 질문을 하고, 질문의 방향을 자꾸 주체 쪽으로 가져가라고 답해 주셨다.
[감각차단탱크 세션을 모두 마치고]
같은 탱크일지라도 내가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들어가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를 가져왔다. 감각차단탱크를 경험하려는 분이 계신다면 경험의 목적을 분명히 하시면 좋을 것 같다.(휴식인지, 탐구인지..)
처음 가지고 온 세 가지 의도(호기심의 충족, 심신의 이완, 몸이 나가 아님을 느끼기)가 어느 정도 충족되어 만족스럽다. 경험이 경험으로 그치지 않고 이어지는 월인 님과 도반님들과의 대화 속에서 공부로 이어짐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이곳에서의 경험을 그저 기억 속에만 남기지 않고 이어지는 생활 속에서 적용하고 탐구해 볼 것이다.
올 때마다 큰 기쁨을 주는 함양의 동,식물들과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도움주신 자생 님과 바다 님, 언제나 탐구의 길을 자세히 안내해 주시는 월인 님에게 감사한다.
요가의 고전으로 알려진 파탄잘리의 요가수트라에 요가의 8단계중 아사나-프라나야마(호흡)를 지나면 다섯 번째에 프라티아하라(감각제어)가 나온다. 집중-선정-삼매로 들어가기 전에 거쳐야 할 관문으로서의 감각제어가 어쩌다 명상 중에 살짝 맛볼 때가 있었지만 나에겐 다소 어려운 주제였다. 그러다 오인회를 통해 감각차단탱크가 소개되고 나는 언젠가 꼭 한번 체험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먹었었다. 두 달 전 수목원을 퇴직하고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되면서 함양과 일정을 조율해 드디어 탱크체험을 하게 되었다.
막상 시간이 다가오니 4일간이나 묵게 되는 조건이 어떠할지,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약간의 긴장감과 불안감이 감돌았지만 첫날 2시에 도착해 월인 님을 뵙고 바다님의 안내에 따라 사전 체크를 하고 바로 탱크로 들어갔다.
탱크 숙지사항을 충분히 보았어도, 다른 사람의 경험을 글로 아무리 읽어도 현장은 늘 새로움으로 다채롭다. 캡슐을 닫고 들어가 탱크 안의 불을 끄자 불빛이 새어 들어오는 것을 알아차렸고 공간의 불을 끄지 않고 들어왔음을 알게 된다. 이미 누운 상태라 눈을 감는 것으로 외부의 불빛을 차단한 채 탱크 안을 탐색한다. 생각보다 쉽게 몸은 떠오르는 듯 했지만 몸의 긴장은 뻣뻣하게 힘이 들어감이 느껴졌다. 계속 이렇게 떠있을 수 있나, 잠들면 어떻게 될까... 미지의 불안감이 툭툭 올라오는 중에 몸과 물 사이에 확연한 경계감이 그려졌고 물 위로 살짝 드러나있는 신체 부위에는 서늘한 온도차가, 코에서는 소독약 같은 냄새도 잡혔다. 귓가에는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리며 감각차단이 아니라 오감이 더 미세한 안테나를 세우고 뭔가를 수신하는 듯 했다. 감각이 차단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머리를 조여오며 온 몸에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혼자서 바디스캔을 하듯이 다리... 팔... 머리... 신체 하나하나에 의식적 에너지를 보내 힘을 빼내자, 조금씩 이완이 찾아온다. 몸과 물의 경계지점이 서로가 뒤섞이듯 하나로 일체화되면서 묵직한 무게감만 남고 경계가 사라진다. 어느 때부터인가 온도차도 사라지고 냄새도 더 이상 잡히지 않는다. 동일한 환경의 노출 속에 익숙해진 것인지, 진짜 감각이 차단된 것인지 확실치 않은 상태에서 잠깐 몸이 물에 쑥 빠지는 듯한 착각이 일어나 순간 눈을 번쩍 떴다. 바깥의 불빛 탓인지 희미한 상태의 캡슐 윤곽이 잡히면서 그대로 물 위에 떠있는 것이 확인되어 바로 다시 눈을 감았는데 너무나 완벽한, 투명할 정도로 환한 흑백의 대비가 선명하게 나타났다. 이게 뭐지~ 하며 다시 눈을 떴다가 감으니 또다시 투명한 흑백이 보이다가 천천히 희미해진다. 무슨 의미인지 해석이 불가능해 그냥 경험으로 놓아버린다. 지루할 틈 없이 시간이 지나고 갑자기 밝은 불이 켜진다. 뭘 해야 할지 몰라 이리저리 살피다 보니 거센 물살이 뿜어져 떠밀리듯이 손잡이를 밀고 일어나 탈출하듯 밖으로 나왔다. 그렇게 첫 날은 부유의 안전함과 물과 몸의 경계가 사라짐에 대한 경험만 확인한다.
다음날 아침, 두 번째 탱크에 들어가며 공간의 불을 확실하게 껐다. 탱크 안의 불도 끄고 모든 시각적 작용이 꺼지는 깜깜함을 느끼며 물속으로 머리를 담그는데 아뿔사! 이번엔 귀마개를 놓치고 왔다. 머리에 잔뜩 힘이 들어간 채로 조금씩 조금씩 입수를 하자 귓가로 물이 꼬르륵꼬르륵 들어가는 느낌을 받는다. 귀가 완전히 물속으로 들어가기까지 안전함에 대한 불안과 긴장하는 마음을 바라본다. 몸으로는 조금씩 귀를 적시며 실험하듯이 머리를 물속으로 떨어뜨리고 마음속에서는 귀마개없이 바닷가에서 수영하며 놀던 기억을 오버랩시키며 스스로를 안심시키려는 자신을 본다. 귀 전체가 물속에 잠겼다. 약간의 물이 들어오는 듯 했다가 더 이상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확인한다. 얼마간의 시간이었는진 모르겠으나 아주 촘촘히 자신의 안전을 점검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공간과 부유상태에 대한 확인이 믿음으로 다져진 후, 팔을 한번 들썩, 다리를 들썩, 머리를 조금더 아래로 움직이며 몸의 이완을 통해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낀다. 탱크에 들어갈 때 주제를 가지라는 월인 님의 말씀에 따라 오늘은 ‘나라는 느낌’을 확인해 보자 의도를 내기로 했다. ‘나라는 느낌이 뭐지’라는 물음을 내는 순간 내가 나타나고 몸의 감각을 느낄 때면 내가 사라지고 누가 감각을 느끼지?할 때 다시 내가 나타나고 하는 순간적 경험이 왔다갔다하며 호흡과 비교를 한다. 호흡은 의식하는 순간 호흡함을 알아차리고 의식하지 않으면 느끼지 못하는데 나란 느낌도 그런 것인가? 하다가 나란 느낌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생각에 빠짐을 알아차리고 다시 몸의 느낌으로 주의를 돌린다. 어디선가 미세하게 들리는 삐뽀삐뽀하는 기계음, 이 소리는 실재하는 소리일까, 상상의 소리일까~ 분명 실재하는 소리인 듯 했는데 시간이 흐른 후 고요해졌다. 이번엔 입안에서 미각이 느껴진다. 함양의 모든 식구가 아침을 먹지 않았는데 입안 왼쪽 혀 주변에 매운 맛과 짠 맛이 느껴진다.
탱크에서 나와 나눔을 하는 중에 자생 님이 청향관 바로 옆밭에서 경운기 작업이 있었다고 하니 실재하는 소리였을 수 있겠고, 미각이 움직인 것은 몸 안의 독소가 빠진 게 아닌가 추측해본다. 나라는 느낌과 호흡의 차이에 대해서는 월인 님께서 호흡은 물리적 활동으로 존재하지만 나라는 느낌은 의식적 활동으로 바라볼 때만 나타난다고 설명해주셨다. 두 번째 체험 역시 몸의 감각에 대한 확인만 된 셈이다.
오후 3시, 확실하게 불도 끄고 귀마개도 하고 완벽한 준비를 한 상태로 세 번째 체험에 들어간다. 비로소 처음부터 완전히 힘을 뺄 수 있음을 느끼며 엄청난 안온감과 편안한 느낌을 받는다. 누워서 몸의 움직임이 멈추자 바로 모든 경계가 사라지며 마치 깊은 바다 속에서 숨쉬는 듯한 가라앉음을 느끼는데 언제부턴가 위에서 짓누르는 듯한 압박감에 갑갑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몸이 물에 젖은 수건처럼 아래로 쳐지며 이완이 아닌 불편함, 무거운 느낌이 느껴졌다. 보통은 내 몸의 느낌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불편함이 해소되는 경험이 있었는데 아무리 지켜보아도 점점 더 무거워지는 느낌에 당황스러웠다.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순간 일어남을 알아차리고 몸에서 느껴져는 감각을 감정과 분리시켜 순수하게 감각적 느낌만으로 살펴보았다. 이것은 <무거움>, 이것은 <누름>, 이것은 <답답함>, 이것은 <불편함>...이렇게 이름 붙이며 느낌에 집중하자 짓누르는 느낌에서 훨씬 자유로워졌다. 세 번째 체험은 그렇게 동일시된 감각으로부터 벗어남을 경험한다.
어느덧 함양의 공간이 편안해졌다. 새소리 따라 아침 산책을 즐기고 고양이, 개와 눈인사도 나눈다. 9시 백일학교 아침 미팅에 옵서버로 참석한 후, 복잡한 마음을 좀 더 깊게 지켜보기 위해 1시간에서 1시간 20분으로 늘려 네 번째 체험을 맞는다.
어제의 무거움을 동일시에 대한 이해로 벗어나긴 했지만 무엇이 그렇게 무겁게 했을까~ 살펴보니 탱크 체험에서 무엇인가를 경험해야 할 것 같은 과도한 의도와 알아차리려 애쓰는 마음의 무거움이 머리를 무겁게 하며 온몸을 짓눌렸던 것이었다고 해석되어 조금 더 편안히 지켜보자는 생각을 가지고 들어갔다. 감각의 경계는 쉽게 무너져 빠르게 아무런 감각경험이 없는 순간을 경험하는 듯 했다가 찰나적으로 찌릿한 팔의 통증이 지나감이 감지된다. 오직 <찌릿>이라는 감각의 형태로만 감지되는 느낌, 약간의 움직임으로 물방울이 귀 밑으로 뽀글뽀글 두 방울 밀려오는데, 부드럽다는 느낌을 일으키기 전, 오직 <뽀글>로만 감지되는 감각의 고유의 질을 알아차리며 더 이상 판단이나 기억,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감지의 순간을 즐긴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시간이 늘어나면서 나의 느낌을 이래저래 실험한다. 머리가 무겁다는 느낌에는 육체적 느낌과 감정적 느낌이 따로 있음을 알아차리고 여전히 남아있는 약간의 무거움이 신체적인 느낌인지 확인하기 위해 머리를 이리저리 움직여 본다. 편안하다. 완전히 힘을 뺀 상태로 충분히 이완되어 있음을 바라본다. 그럼 이 느낌은 감정적인 느낌인가 묻고 여전한 마음의 무거움이 그림자처럼 번져있음을 본다. 마음의 무거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마음에 집중해보아도 잡히지 않는 구름처럼 멍하기만 하다. 다만 이것이 마음의 무거움이구나 알아차려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훨씬 가벼워짐을 느낀다. 감각을 느끼는 몸이 있고 마음을 느끼는 내가 있고 몸과 마음의 동요를 알아차리는 전체적인 의식이 있음을 바라보는 것으로 네 번째 체험을 마치고 돌아온다. 더 이상 공간에 대한 불안감, 시간에 대한 구애가 없음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네 번째 체험은 귀하다.
셋째날 오후 3시, 다섯번째 마지막 탱크 체험이다. 마지막은 어떤 의미일까? 무엇인가를 얻어야만 할 것 같은 채무감을 안고 다시 1시간 20분을 약속하고 들어간다. 첫날에 가졌던 졸음이나 빠짐에 대한 걱정은 쓸데없는 기우였음을 경험으로 체득하고서야 비로소 탱크가 완전히 내 공간이 되어 편안한 느낌을 일으킨다. 입수 후 처음으로 앉아서 탱크를 훑어본다. 물살도 만져본다. 소금물이 이렇게나 부드러웠어? 반문하며 첫경험인 양 새로워한다. 팔과 다리를 뻗어 공간의 넓이와 길이도 재어본다. 자리를 잡고 눕자 마치 잊어버린 듯 몸의 경계가 사라지고 모든 감각이 문을 닫아 버린다. 바로 질문으로 들어가 나는 이 탱크체험에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지금 ‘나’를 아는 자는 누구인가, ‘나라는 느낌’이 이건가, 저건가.... 다시 머리가 무거워짐을 느낀다. 질문에 깊이 들어가기보다 옆길로 빠져서 쉬운 감각을 즐기기를 선택한다. 일부러 물살을 일으키고 캡슐 벽에 닿아도 보면서 노는데 몸의 감각이 아닌 그 모두를 지켜보는 의식이 잡혀버린다. 비밀스런 공간에 아무도 보지 않아도 너무나 선명하게 뚜렷하게 보고 있는 하나의 의식이 그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음을 바라본다. 대체 그 의식은 뭐지... 물어도 더 이상의 통찰은 일어나지 않고 갑갑한 마음에 이번 생은 여기까지라고 스스로 포기하고 의식을 따라가기를 멈춘다. 모든 구함을 내려놓고 그저 남은 시간 이 공간에 그대로 있자 마음먹고 한숨 돌리는데, 불현듯 내 몸의 사지가 그대로 정지하는 느낌을 받는다. 팔을 움직이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는데 팔이 꼼짝도 하지 않는다. 동영상이 멈춰버린 듯 정지컷이 나타나고 숨조차 멎은 세상의 고요를 발견한다. 마음이 미동도 하지 않는 평온함이 느껴진다. 고요와 평온이라는 단어가 이런 상태의 느낌이었음을, 마음의 동요를 멈춘다는 것이 이런 것이었음을 경험하는 최초의 순간이다. 환희심이 차오르려다가 환상인가 싶어 바로 빠져나와 의도적으로 어떤 구함도 없는 상태로 들어가본다. 다시 세상이 멈춘다. 몸이 없는 것이 아니라 붙박힌 듯이 고정된다. 고요함이 찾아온다. 두 번, 세 번 반복해보아도 같은 느낌을 확인한다. 탱크에 불빛이 켜지고 가벼운 마음으로 빠져나온다.
함양에서의 시간은 생각보다 바쁘게 지나간다. 아침이면 들려오는 새소리가 청아하고 아직 영하를 오르내리는 싸한 공기가 정신을 일깨운다. 오롯이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도 여느 고급 호텔보다 아늑하다. 요즘 어느 tv프로그램의 백억짜리 아침식사라는 제목처럼 감각차단탱크를 위한 3박4일간의 시간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시간을 선물한다.
하루 두끼 정성껏 밥상을 베풀어준 꽃마리 님, 탱크 체험을 세세하게 살펴준 바다 님, 태풍이, 밤이 밥주고 불 때고 나무 자르며 함양교육원을 지키시는 자생 님,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무지한 나를 이끌어주신 월인 님, 내가 이곳까지 찾아와 이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음에 무한한 감사와 경배를 드립니다._()_
- 노래
1회차
감각차단 탱크! 이름만으로도 매료되었다. 감각을 차단하는 환경을 만들 수 있다니~ 눈만 감아도 달라지는데, 귀만 닫혀도 고요할 텐데 닿는 감각까지도 멈추어볼 수 있다면 오롯이 순수한 감각만 살아나는 것일까.
월인 님이 탱크체험 목적을 물으시기에 무색무취의 환경을 경험하고 싶다고 했다. 그 경험은 군더더기를 좀 더 알아차리게 하려니~ 감지, 감각을 좀더 명료하게 남기려니~
나는 목적보다 체험 자체에 대한 호기심이 더 큰 듯하다. 무색무취! 어쩌면 고향 같은 그리움일까!
씻고 불을 끄니 깜깜하다. 깜깜한 채로 들어가 자리 잡았다. 누웠다가 혹시 귀가 덜 막혔나 싶어서 귀로 주의가 가고 있다. 몸에 대한 불안이나 집착의 반영일까? 일어나 앉은 자세를 취하고 귀마개를 꼭꼭 다지고 다시 누웠다. 마음이 놓여 끄달리지 않게 되었다.
통 크기를 보았으니 그리 넓지 않은 것을 이미 알고 있는데 둥둥 떠서 이리저리 흔들리니 마치 커다란 호수에 떠있는 것 같이 넓은 곳을 다니는 듯하다. 자유, 편안함 그리고 재미. 잠시 그러했다.
생각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달리 떠올리는 생각은 없지만 계속 나의 상태를 보려는 생각이 지속된다. 감각이 없는 것도 모르겠고, 체험 영상을 미리 본 것이 어떤 상을 만들고 기다리는 건지? 아무튼 현재 상태를 느끼려는 마음이 지속되고 있다.
입수 30분쯤 되었을까? 아주 잠깐 졸았던 건지, 문득 암흑에서 벗어난 듯한, 우주의 빛깔같은 느낌이 살짝 들었다. 졸다가 깬 건지, 뭔가를 본 건지 몇 초 정도 살짝 일별.
왼쪽 다리가 저린다. 요즈음 같은 자세로 오래 있으면 손이나 팔이 저릴 때가 있는데 다리도 그런 현상 같다. 누우면 자느라 저린 것을 몰랐고 깨어있을 때는 움직였으니까. 손가락으로 잼잼 움직이니 물소리가 독특하게 들린다. 다리가 저리기도 하고 좀 춥기도 하고 슬슬 지루하기도 하여 다리를 움직여본다. 이 물에 대한 감각이 상당히 느껴진다.
은근 지루해지고 혹시 끝났음을 전하는 메시지를 내가 못 들었나 싶기도 하고, 다음에는 알람을 맞춰놓아서 명확하게 끝났음을 인지할 장치를 해두어야겠다. 이런지 저런지? 하는 궁금증을 일으킬 요소는 조금이라도 차단해두는 게 좋겠다 등등 이런저런 생각하는 중에 파란 불이 들어왔다.
끝나기 약 20분쯤 전일지? 미리 한가운데 노오란 황금 불빛이 반짝 일어났다가 서서히 사라졌다.
흥미로 시작한 체험, 월인 님과 인터뷰를 하면서 느낌에 주의를 두고 그 느낌을 느끼는 주체를 보는 것을 주제로 받았다. 통찰력게임을 할 때에도 주제를 정하는데, 감각차단탱크 체험을 하면서 주제를 전혀 생각하지 않았음을 간파하니, 얼마나 아이처럼 호기심만 팽배했었는지 알아차리니 웃음이 나왔다. 어쩌면 나는 이 세상살이가 놀이동산인 걸까? 진지함보다는 가벼움이 작동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다! 놀기도 하고 공부도 하자!
느낌에 집중한다. 감각하는 이것은 뭐지? 마음에서 더듬어서 찾으라. 의식적 어두움 속에서 더듬어 찾으라. 언뜻언뜻 몸은 자고 마음은 깨어있는 상태가 되기도 한다.
2회차
경험이 아무것도 없었다. “느낌을 보라, 느끼는 주체를 보라.” 하셨는데 어떠한 느낌 한조각도 만나지 못했다. 물에 닿아있는 몸의 느낌조차도 만나지 않았다. 주의를 온통 ‘느낌 느끼기’에 주고 있었으니 몸의 감각조차도 느껴지지 않았다. 지루함도 없었고, ‘보겠다는 집중’ 이외는 아무것도 없었다.
1차 때에 후반부에는 지루했었는데 이번에는 한시간이 그 절반인 듯 시간이 참 빨리 지나갔다. 끝남을 알리는 파란 불빛이 참 아름답다.
3회차
느낌을 느껴보려는데 아무것도 없다. 주제를 정해야지 싶어서 나는 누구인가를 탐구하자며 주제로 떠올리는데 내 안에서 허허 웃는 이가 있고 분명 나는 아니었다.
몇 번이고 이 주제를 떠올리면 아무튼 내 안에서 웃음이 일어난다. 실제 얼굴이 웃기도 한다. 여러 차례 그리하다가 그러고 있는 사실이 웃겨서 나도 입을 벌리고 하하 웃었다.
대체로 아무 느낌 없고, 어느 순간 “공이란, 공성이란 바구니 같은 것이다. 주는 대로 받아 담지만 남기는 것은 없다.”는 말이 떠오른다. 그렇군. 그렇지.
거의 끝나 갈 시점에 검푸른 우주의 빛 같은 것이 잠시 보인다. 대단히 아름다운 장면은 아니고 약간 아름다운? 검은 바탕에 푸른 남색의 핵심 같은 것이 빙빙 돌았다.
음악소리가 들린다. 내가 폰으로 알람을 해두었는데 그 음악은 아닌 듯~ 1분 이상 듣고 있다가 아무래도 시간이 된 것 같아서 뚜껑을 여니 내 알람소리가 맞다. 허허, 전혀 다른 소리로 들렸구나? 나오는 중에 탱크에 불이 켜지니 딱 맞는 시간에 나온 것이네.
4회차
바구니를 주제로 잡았다. 바구니를 보는 자는 누구인가? 주의를 재차 삼차... 쏟아부어도 어떤 통찰도 일어나지 않는다.
문득 푸른빛에 눈을 뜨니 그동안 잔 것 같다. 주제를 잡고 20여분 있었던 듯하니 40분쯤은 거의 무의식이었든 잤든~
푸른빛을 맞으며 일어나는 과정이 아주 간결하고 매끈하다.
월인 님이 잔 것이 아니라고 하신다. 진짜 잤다면 물속에서 그렇게 흔들림 없이 간결하게 일어나지 못했을 거라 하신다. 잠들지 않았다면 반가운 이야기다. 그렇게 무념무상이 가능하구나.
그런데 어떤 통찰이 따르는 걸까? 통찰할 준비가 되는 몸이 되는 걸까? 아니지, 의식상태가 되는 걸까?
5회차
다시 빈 바구니. 바구니를 보는 자는 누구인가? 바구니가 사라지는 것을 보는 자는 누구인가? 그것을 보려하는 자는 또한 누구인가?
입수하며 눕는 방식도 적절하게 터득하여 시작부터 고요하고 편안하다. 바구니를 보는 자를 떠올리는데 바구니가 수없이 많이 보인다. 처덕처덕 무질서하게 쌓여있는 바구니~
내 안의 의식의 파편들이든, 상념의 가짓수이든, 또는 많은 인류의 정돈되지 않은 모습들이라고 느끼는 순간, 한 줄로 주루륵 포개지며 정렬되었다. 양도 그리 많지 않다. 그렇지. 알고 보면 하나겠지. 내 안의 것들도 단순하리. 우리 인류의 것들도 실상 하나겠지. 그것이 무엇인지는 규정할 수 없겠다.
인류의 가장 오랜 염원이라는 깨달음이라고 할 수도 없겠다. 매슬로우의 욕구표처럼, 안전하고 소속되고 등등의 대여섯가지로 통일해 적용할 수도 없다.
그러나 단순함은 알겠다. 바구니처럼 받아 담고, 그리고 남길 것 없이 비어서 무엇이든 담고도 이내 흐르게 되는 것.
그러한 바구니조차 무색무취의 흰색, 우리 모두의 것이 하나로 정렬되는 간단함.
알아차림이, 보는 자가 떠오르기를 기다리지 말고, 더듬어 찾으라고 하셨기에 줄곧 정신차려 f어보아도, 더듬어 찾을 손도, 더듬거려볼 벽도 없다.
그렇게 더듬지조차 못하고 있다가, 후반 10여분 남았을까? 탱크 옆쪽으로 고릴라가 슬금 들어온다. 나의 정신이 말갛게 있고 또한 나의 몸도 느끼는데 고릴라가 한마리씩 들어온다. 마치 목욕탕 욕조 벽을 두 손으로 짚고 다리 하나씩 집어넣어 조심하듯이, 가만가만 신중하게 들어오는 고릴라들이다. 들어온 고릴라는 모이지도 않고, 물론 움직임도 없이, 사라지는 광경조차 없이 남아있지 않다. 그저 줄줄이 들어오기만 할 뿐이다. 그러다가 내가 고릴라가 되었다. 나도 그대로 누워있고 고릴라도 누워있다. 그렇다고 포개진 것도 아니고 둘도 아니다. 이어서 토끼, 사슴, 커다란 영지버섯~ 모두 같이 춤을 추고 어우러지다가 파란 불빛에 끝남을 알고 찬찬히 일어났다.
침팬지라면 다윈이 말한 인류 시조로부터의 연결일까 싶겠지만 하필 왜 한번도 연상해 보지 않은 고릴라인 것이 의문이었다. 아주 해로운 일을 하는 사람을 상징하는 거라면, 사람 평가하지 말고 누구라도 존중하라는 메시지로 여기련마는~ 그것도 아닌 듯하다.
월인 님이 질문하신다. 그 고릴라는 어떤 성질인가? 대체로 우직하고 그저 조용히 옆에 있으면 든든한 친구 같겠지만, 화나면 무서울 것 같다. 그런 사람이 누가 있는가?
ㅋㅋㅋ 바로 나네~ 그렇구나. 고릴라, 토끼, 사슴, 그리고 영약이라는 영지버섯까지~ 그렇게 이런저런 성질, 힘도 세고 착하고 순한 역할을 하는 그런 삶을 의미하겠구나~
다섯 번의 탱크 체험 이후, 기분도 가볍고 몸도 가볍다.
남편이 하늘로 가신 이후, 아릿한 아픔이나 어둡던 그림자가 녹아져 흘러내린 듯 홀가분하다. 팔뚝의 은근한 통증도 얼추 거의 사라졌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할까 말까 하던 일을 하겠다!’고 결정하고 그 일을 하기 위한 수순을 밟고 있다. 세상은 재미있고 아이디어들이 넘쳐나, 몸과 마음, 영적 깨어남에 유용하면서도 획기적인 도구들을 새록새록 만들어두셨구나~
며칠간의 체험으로 얻게 된 영혼육의 가벼움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터닝포인트가 되겠구나 싶으니 내 곁에 있는 아무개, 긴장이 힘든 아무개, 불안이 출몰하는 아무개 이완이 필요한 아무개들, 근육이 고통인 아무개, 통증치유가 중대한 과제인 아무개에게 치유와 성장을 넘어 깨어있는 삶으로의 진보를 위해 같이 가보자고 궁리를 해본다.
_저절로 (화가)
# 탱크체험 1차
생각에 빠져 나를 잊고 있다가 몸이 자각되면 머리부터 가슴, 다리 까지 순차적으로 힘이 들어가면서 몸 전체의 형체가 그려졌다. 마치 쭈그러진 풍선에 바람을 넣으면 공기주입구부터 바람이 차올라 말단까지 순차적으로 팽팽해지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몸 전체에 힘이 들어가면서 존재감이 살아났다. 그리고 거기에 ‘내 몸’, ‘나’라고 이름 붙이니 온 몸이 힘이 더 강하게 들어옴을 느꼈다.
몸의 느낌이 생겨나고 사라짐에 집중하다 거기서 빠져나오니 허공에 그것을 지켜보는 놈이 또렷이 느껴졌다. 처음엔 그 놈이 마치 주인처럼 여겨졌지만 그것 또한 느껴진다는 사실이 자각되었다. 그 느낌에 내 눈, 내 얼굴을 덧입히고 있는 과정이 보여 졌으며 그러면서 ‘본다’가 ‘내가 본다’로 바뀌고 있었다.
몸에서 힘을 빼면 나란 느낌도 사라졌다. 그 상태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던 생각을 떠올려보니 위력이 강하지 않고 밋밋하게 여겨졌다. 나, 내 생각, 내 감정.... ‘나’란 이름만 붙으면 에너지가 강력하게 몰리면서 작동됨이 경험되었다. 습관적으로 몸에 힘이 늘 들어가 있으니 나란 느낌도 늘 기본 모드로 작동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 탱크체험 2차
생각은 결국 그림을 그리는 것이니 제외하고,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은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몸을 느끼거나 존재감을 느끼거나 그 무엇을 느껴도 모두 주의의 느낌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 자각되었다. 여기엔 안팎이 없고, 너나가 없었다. 모든 인식되는 것들에는 주의의 느낌이 포함되어 있었다. 모든 것이 다 한 가지 재질로 이루어져 있음이 통찰되었다. 일견 삼라만상이 제각각인 양 보이지만 세상엔 사실은 주의 밖에 없었다. 마음에 걸려있던 사람도 나와 다르지 않구나 라는 통찰이 올라왔다.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이 사라짐이 느껴졌다.
주의가 가면 에너지가 간다. 주의가 곧 에너지인 듯하다. 에너지는 느낌에 실체감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그 느낌이 마치 실재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주의는 마술봉 같다. 그런 일이 저절로 일어났다. 딱히 주재자가 있는 듯 여겨지지 않았다. 그럼 그 주의를 느끼는 것은 무엇인가? 그 주의가 오가는 공간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 올라왔다.
# 탱크체험 3차
머리 혈관이 뛰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그 소리를 누가 듣는지 물어보았다. 익히 아는 대로 그 소리를 아는 자가 발견되기를 기대한 듯하다. 하지만 ‘그냥 일어난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 소리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그냥 일어나는 듯했다. 생각이 그냥 일어나고 내 몸의 느낌이, 찰랑거리는 물의 느낌이 그냥 일어났다. 모든 것이 그냥 일어나고 있었다.
# 탱크체험 4차
이번 체험의 질문은 ‘이 순간에 무엇이 진정한 나인가?’였다. 먼저 이 순간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몸도 느껴지고 살펴보는 의도도 느껴지고 생각도 느껴졌다. ‘그것을 아는 것이 나인가?’ 라는 앎이 올라왔다. 앎은 다 내려놓기로 했다. 그리고 그 모든 느낌을 내려놓았더니 모름, 텅빔의 상태가 되었다. 그럼 이 순간 진정한 나는 무엇인가? 질문을 했다. 어려웠다. 그 순간엔 무엇이 나인지 가려내기가 어려웠다. ‘모름을 아는 것?’ 이라는 앎이 또 올라왔다. 그걸 내려놓고 그 모름 속에 집중해서 들어가려고 해보기도 하고 그 상태를 자세히 살펴보며 찾아내려고 했다. 그러고 있는 의도도 느껴졌고 그것을 아는 것이 나란 앎도 올라왔다. 그 와중에 그 텅 빈 상태에서 심장소리가 점점 들러오기 시작했다. 그것을 듣고 있자니 그 들려오는 소리가 듣는 자가 함께 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보는 나, 듣는 나’는 이름이고 개념이었다. 그 말 때문에 그것을 대상과 분리되어 “따로 있다고 여기고” 찾게 되었던 오류를 범한 것 같았다. 보는 나, 듣는 나란 독립된 무엇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대상으로 인해 저절로 알아지는 것이었다. 이전에도 그 말을 그렇게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름이 붙어있기 때문에 직접적인 무엇으로 잡으려고 무의식적으로 헛손질을 했던 것 같다.
마치 내가 눈이 멀었는지 아닌지를 확인하려면 거울로 눈을 비춰보아야 아는 것이 아니라 눈앞의 대상이 보이면 눈의 건재함을 증명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눈을 직접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작용을 통해 눈의 존재를 아는 것이다. 모든 대상이 느껴짐이 주체를 증거하는 거였다. 나란 느낌, 존재감도 그 자체가 내가 아니라 그것이 느껴지고 있다는 자체가 진정한 나를 증명하는 것이다. 그럼 여기에 따로 더 찾아야 할 것이 있는가? 깊이 들어가야 할 것이 있는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No’라는 답이 올라왔다.
# 탱크체험 5차
심장소리가 진정한 나를 증거하는지 다시 확인해 보았다. 힘을 빼고 내 몸도 나란 느낌도 사라졌을 때 들리는 심장소리는 그것이 홀로 있지 않고 그것을 아는 무엇이 함께 있음을 증거했다. 심장소리가 크게 울릴 땐 그것이 비개인적주체를 강하게 증거했다. 하지만 그 소리가 점점 잦아드니 그것을 아는 느낌도 점점 약화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대상이 사라지면 비개인적 주체도 함께 사라진다는 것이 와 닿았다.
대상이 비개인적주체를 증거하고 있음을 경험했지만 그것을 내가 아는 알음알이와 연계지어 다시 정리하고 그림을 그리려는 의도가 느껴졌다. 그것 또한 그림이고 그림을 그리면 다시 대상이 되어버림을 인지했다.
더 이상 따로 찾을 것이 없음은 분명한데, 그 사실에 대한 강도, 즉 그것이 얼마나 체득되었는지에 대한 미진함은 있다고 느껴졌다.
# 탱크체험 6차
귀한 탱크체험을 하러 와서 생각에 자꾸 방해받는다는 사실이 짜증이 났다. 하지만 그 생각 자체가 비개인적 주체를 증거함이 자각되었다. 사실 따져보면 생각뿐만 아니라 모든 대상, 느낌들이 주체가 작용하고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팔목이 소금물에 닿아 따가웠다. 그 느낌을 느끼면 그것으로 향하는 주의도 나타나고 그것을 보는 나도 생겨났다. 하지만 그것들에 힘을 빼면 주객이 모두 사라지고 따가움이라 이름 붙은 느낌, 감각만 남았다. 보는 자가 사라졌는데도 인식되는 느낌이 있음이 새롭게 다가왔다. 보거나 느끼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인식하는 무엇이 있는 것이다. 또한 주객관계도 나타나고 사라지는 느낌이자 그림임이 좀 더 명확히 인식되었다.
늘 존재감에 대해 미심쩍고 개운치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좀 더 느껴보았다. 존재한다는 느낌, 깨어있다는 느낌도 그림임이 어느 순간 와 닿았다. 그림이라는 것은 이미 아는 느낌이란 의미다. 알지 못하면 그렇게 인식할 수 없다. 실제로 깨어있는 것이 아니라 깨어있는 느낌이고,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한다는 느낌이란 사실이 좀 더 명확해졌다. 느낌은 아무리 투명한 느낌이라도 인식되는 것은 이미 저장된 그림이 투사되는 것이다. 내가 실재로 살아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깨어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런 척 할 뿐, 아는 정보가 투사되었을 뿐이었다. 다 속았다. 내가 있고, 세상이 있고, 내가 살아있다는 굳건한 믿음이 허구였음이 자각되었다.
어제 심장소리로 통찰한 바와 같이 존재감이란 대상이 사라지면 비개인적 주체도 함께 사라진다. 마치 아침 이슬처럼 햇빛이 비춰지면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대상뿐만 아니라 비개인적 주체마저 이렇게 일시적인 것이라면(이름은 달리 쓰지만 비개인적주체와 대상을 분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여겨진다), 그렇다면 도대체 남는 것은 무엇인가? 없다는 것도 느낌이고 분별일 텐데 말이다. ‘없다’도 사라진 것은 무엇인가? 미지인가? 과연 미지는 무엇인가? 새로운 의문이 남아버렸다.
감각차단탱크 체험 후기 (2024. 8.2~8.5)
이 고요한 앎은 늘 있던 그것
_ 준아 (IT기업)
첫번째.
첫 체험은 특정한 주제를 정하지 않고 그냥 체험하기로 했다.
탱크 안으로 들어가서 불을 끄자 완벽하게 암흑으로 변한다. 빛이 완벽하게 차단되어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아무 변화가 없어 지금 눈을 감고 있는 게 맞나 싶다. 탱크 안에서 누워 몸의 균형을 잡는 것이 처음엔 어색하고, 특히 팔의 위치가 편하지 않아 자세를 몇 번을 바꿔보니 괜찮아졌다. 몸이 수면으로 떠오르고 몸의 힘이 빠지자 가볍고 편안해졌다. 사해라는 바다에서는 소금의 염도가 진해서 몸이 저절로 뜬다더니... 이런 느낌이겠구나 싶었다.
처음에는 귀에서 두근두근 거리는 소리가 한밤에 큰북소리처럼 크게 들리다가 점차 잦아들고, 몸의 자세가 어느 정도 편해지고 나니 처음에 들었던 두려움도 사라지고 이제 몸의 촉감과 호흡, 그리고 불쑥불쑥 돋는 생각들이 관찰되어지기 시작했다. 물이 몸을 받치고 있는 느낌과 더불어 머리로부터 어깨, 등, 엉덩이, 종아리까지 부드럽고 편안한 경계가 그려지고, 간간히 호흡소리가 들려왔다. 시각과 청각 정보가 차단되니 마음의 변화가 좀더 세밀하게 관찰해지는 것 같았다. 몸의 느낌과 함께 생각들이 오고간다. 파리 올림픽 양궁 소식, 회사에서 최근에 처리하던 일들... 그리고 맥락 없이 불쑥 끼어드는 이유 없는 생각들을 느끼다 탱크 안 램프불이 들어왔다. 시간은 짧게 느껴졌다. 1시간이라고 들었는데 체감상 20~30분 정도 지난 것 같다.
두번째.
주제를 정하지 않으니 생각이 두서없이 생겨나는 것이라는 월인 님 조언에 따라, 주제를 정하기로 하고, 무엇이 이 느낌을 아는가?로 정하였다. 첫 체험보다는 익숙한 느낌으로 곧 편안한 자세가 되었다.
탱크 안에서는 감각기관으로 들어오는 시각과 청각정보는 따로 없으니, 수면으로 드러난 피부에서 느껴지는 물방울이 굴러가는 촉감과 오고가는 생각들이 주로 관찰되었다. 주제를 질문하고 느낌을 관찰하던 중에, 지속적으로 떠오르는 생각 때문에 힘들어졌다. 맥락없는 생각들이 끊임없이 올라오다 보니 스토리를 따라 들어갔다가 관찰로 빠져나오기를 반복하였다. 평소 산책이나 명상을 하다 생각이 올라오면 스토리에 빠져 허우적대는 경우가 많다보니 또 그런 상황이 반복되는 게 아닌가 걱정이 들었다.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 생각을 향해 더 이상 너를 상대하지 않겠다..라고 선언했다. 몇 번 더 스토리 속으로 빠져들다가 나오기를 반복할 때마다 너를 상대하지 않겠다...고 되뇌었더니 어느 순간 생각이 더 이상 올라오지 않기 시작했다.
또, 물이 피부 위를 흐르는 느낌에서 ‘물’이라는 이름과 ‘흐른다’는 동사를 빼버리고 나니, 의식의 어디에선가 조그만 자극만으로 인식된다. 그리고 생각을 상대하지 않자 생각마저 빠져버리게 되니, 그냥 텅 빈 공간(?)에 아무런 스토리가 없는 선명하고 투명한 의식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시작되는 무심의 느낌. 모든 변화와 느낌이 인식되는 그냥 투명한 앎. 생각은 끊어지고 생각이 어디 있는지 살펴봐도 생각을 찾고 있는 주의만 느껴진다.
주제로 삼은, 무엇이 이 느낌... 아니 이 변화(느낌이라는 단어가 모호하다는 생각이 들어 느낌을 변화로 바꾸어보았다)를 아는가?하는 질문에 그냥 ‘텅 빈 마음이 안다. 이 자체가 안다. 모든 사소한 변화도 알아차리고 있다’고 느끼다가 체험이 끝나는 불이 켜졌다.
세번째.
무엇이 이 느낌을 아는가?라는 주제를 품고 세번째 탱크체험을 시작했다.
주제 질문을 던지면서 강조하는 단어에 변화를 주어보았다. '느낌'에 힘을 주었다가 '무엇'에 좀더 힘을 실어보기도 하였는데, 질문에 힘을 주는 단어에 따라 돌아오는 느낌도 조금씩 변화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투명한 존재감과 노곤한 느낌이 반복되었다. 또다시 불청객처럼 끼어드는 생각과의 업치락뒤치락. 생각이 걷히고 명료한 알아차림 상태이다가도 어느새 노곤하고 지루한 느낌이 들고.... 무엇이 이 느낌을 아는지 다시 질문하고.... 노곤한 느낌이 걷어내어지면 투명한 느낌으로 변하는 과정을 몇 차례나 반복하다 탱크불이 켜졌다.
어제 두번째 체험에서의 생각이 끊어진 무심을 기대해서인지, 생각과 씨름만 반복한 것 같아 답답함이 올라왔다.
네번째.
앞선 세번째 체험에서처럼 생각 속에 빠져 허우적대나 나오면 어떡하나...걱정도 되었지만, 그냥 모든 것을 맡겨보자 다짐하고 탱크 속으로 들어갔다. 탱크 안에서 자세를 잡고 편안해지자, 이번에는 의외로 생각이 떠오르질 않았다 (체험직후에 월인 님과의 대화에서, 생각이 올라올 만큼 올라왔기 때문일 수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생각이 어디 있지...하고 샅샅이 살펴보았지만 생각은 보여지지 않는다. 간간히 느껴지는 물방울의 느낌과 숨소리만 느껴진다.
무엇이 이 느낌을 아는가? 무엇이 이 변화를 알아차리는가? 질문을 계속해나가자, 문득 심해 바다 속 바닥에 도달한 것처럼 느껴지면서, 편안함과 명료함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모든 것이 열린 상태에서 모든 변화가 알아차려진다. 이것은 마치 무엇으로인가 가득 차 있다는 느낌인데.. 또 가득 찬 그것이 알아차리는데, ‘아무리 사소한 느낌이라도 변화되는 것이라면 그 즉시 알아차리구나’...라는 통찰로 다가왔다. 비유를 해보자면, 마치 바닷물로 가득 찬 바다에서 헤엄치는 물고기가 움직이면 그 물고기의 아주 사소한 움직임이라도, 그 파장이 움직이는 즉각 느껴지는 그런 상태라고 할까. 문득 진공묘유(眞空妙有)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텅 빈 것 같은데 무언가 있구나. 내가 그 바닷물이야...
한동안 그런 상태를 경험한 것 같다. 생각은 끊어지고 명료한 자각만 남은 상태. 그냥 있다...는 느낌. 동시에 인식의 끝에서 끝까지 어떤 느낌도 알아차려진다. 순수한 알아차림.
다섯번째.
마지막 체험이다. 주제를 바꾸어볼까 잠간 생각하다가 변화보다는 심화가 나을 것 같아, 같은 주제질문을 품고 탱크 안으로 들어갔다. 몸의 촉감과 느낌들이 이내 가라앉고, 고요함이 알아차림과 같이 펼쳐진다.
물방울 하나가 또르르 배 쪽 피부에서 물속방향으로 떨어진다. ‘또르르르 떨어진다’..라고 표현은 되었지만, 그것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느낌을 제대로 설명하고 있지는 못하다는 자각이 들었다. 일전에 월인 님이 이름을 붙이면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하셨는데, 또르르르라는 단어에 물방울이 굴러가고 있는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 알아차려졌다.
또, 탱크 접속부분 어디선가 찌리리릭 하고 물이 빠지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물에서 나는 소리(느낌)와 찌리리릭이라는 개념(단어)이 동시에 떠오르는 것이 보였다. 소리와 개념이 동시에 생겨나는구나! 느낌의 세계와 개념의 세계가 동시에 펼쳐지고 있구나!
어떠한 느낌이 알아차려지면, 그와 동시에 단어 혹은 개념이 붙고, 단어가 연결되어 문장으로 떠오르고, 문장과 문장이 합쳐져 하나의 스토리가 되고, 그 스토리에서 감정에 생겨나는 일련의 과정들이 순간 알아차려졌다.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것이 이렇게 생겨나는구나...라는 통찰이 다가왔다. 표현되는 말이나 생각은 지금 이 순간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묘사하는 매우 제한적인 도구일 뿐이며, 지금 보여지는 현상을 어떻게든 이해를 해보려는 장치이구나.
이런 과정을 통해 느낌의 세계를 개념으로 해석한 현실은 진실(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이 변하는 현상)과 결코 동일할 수 없고, 지금 이 순간을 표현하는 다양한 견해 중의 하나일수 밖에 없고, 코끼리를 묘사하는 장님의 표현과 같이 지극히 개인적이고 단편적임을 알게 되었다. 결국 사람이 스스로 창조한 세계에서 살아가는 것.
완전한 고요와 평화로움을 느끼다 어느덧 끝남을 알리는 탱크불이 들어왔다. ‘이 고요한 앎은 늘 있던 그것이었다’는 통찰이 강하게 다가왔다.
생각, 느낌들이 무한대 공간에서 선명하게 일어났다 사라지다 _ 백랑
선무님과 함께 2박3일 감각차단탱크 경험하러 함양수련원에 갔다.
첫 번째 체험
선무님이 불꺼주며 그냥 탱크 안에 들어가라 해서 들어갔고 탱크문을 닫아주려고 하니 갑자기 깜깜함과 함께 고립되는 느낌에 무서움이 올라왔다. 눕다말고 벌떡 일어나 비상시 스위치와 손잡이 등의 위치, 문열고 나오는 방법까지 자세히 알고나니 편안함이 느껴져 탱크 안에 누웠다. 맨 처음 물 위에 둥둥 떠있는 느낌이 낯설었지만 곧 편안함과 함께 평소 디스크 증세로 불편한 허리부터 발뒤꿈치까지 땅김이 느껴졌다. 땅김을 충분히 느껴보기 전에 서서히 사라지고 나의 거친 숨소리만이 무한대공간에 가득찼다. 가래가 있는지 들숨이 매끄럽지 않고 기도 부분에서 약한 가르릉소리가 들렸다. 평소 몰랐던 가래가 기관지에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온 공간에 퍼져있는 숨소리가 너무 커 의도 적으로 숨소리를 줄여보니 소리가 조금 작아지고 의도적으로 숨을 가느다랗고 길게 쉬어보니 숨소리가 사라졌다. 이어 평소 아침에 눈을 뜨면 이명이 있었는데 풀벌레소리같은 이명소리가 들렸다. 발끝이 벽 에 닿는 느낌이 있어 발을 살짝 움직이니 허벅지부터 다리 전체가 몸 과 연결되어있지 않고 따로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팔도 그럴까 생각 하면서 팔을 살짝 움직여보았다. 역시 팔도 어깨와 연결감 이 없었다. 마치 나무토막이 물 위에 둥둥 떠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보다는 보여지는 느낌이었다. 이 몸은 나라고 할수 없구나라는 평소 생각을 재확인했다. 몸의 느낌에만 집중되어있다는 생각이 들어 의식을 무한대 공간으로 확장시키자 불이 켜졌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체험
두 번째 체험은 ‘끝날 시간이 되었을 텐데 불이 왜 안들어오지?’라는 질문이 들며 약간 지루함을 느끼는 순간 불이 들어왔다.
‘이번에도 물 위에 둥둥 뜨자마자 허리 뒷부분부터 발꿈치까지 당기 다가 잠시 후 사라지고 평안함이 느껴졌다. 전체적으로 몸의 무게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가벼운 느낌이 지속되다 양쪽 견갑골에 묵직한 통 증이 느껴졌다. 평소에도 어깨에 긴장이 느껴질 때마다 어깨를 의식 하며 긴장을 푼다고 생각했었는데 어깨 근육의 뭉침이 묵직하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끝나고 청향관에서 오디관으로 걸어가면서 평소 디스크로 인한 뒷다리 당김이 적어져 신기함이 느껴졌다. 주제를 잡고 들 어가면 뭔가 달라질 거라 말씀하셨다.
네 번째 체험
앞서 두 번의 약간의 지루함을 느껴서인지 아님 밀린 일에 대한 부 담감 때문인지 체험을 하기싫었다. 하기 싫다고 선무님한테 말하니 탱 크에 들어가 싫은 것을 주제로 삼고 해보길 권해 마지못해 탱크 안에 들어갔다.
전과 다르게 몸 속근육까지 이완되는 느낌에 잘 들어왔다는 느낌과 함께 의식은 무한공간으로 확장되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 지만 갑자기 여성도, 남성의 목소리도 아닌 “변화!”라는 명료한 소리 가 전체공간에서 들려졌다. 분명히 내 입은 닫고 있었는데 어떻게 이 런 소리를 들을 수 있지? 참으로 신기했다.
곧 이어 토욜 약속에 대해 내가 잘못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 떠오르 면서 탱크에 들어오기 전 불편을 초래했던 모든 것들이 순리대로 정돈 되는 느낌이 들었다. 탱크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다가오는 토요일 아침 강의하러 울산역으로 가야 할 것을 부산역으로 가서 돌이킬 수 없는 난감한 상황에 처할 뻔 했다. 월인선생님께서 자연의 에너지는 늘 조 화와 균형을 맞추고자 흐른다고 말씀하셨는데 무한한공간과 하나된 내가 조화와 균형이 깨질 것을 무의식에서 알아차리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탱크 밖으로 나와 들어가기 전의 무겁게 느껴지던 적어놓은 목록들 을 다시 보니 탱크들어가기 전과 전혀 다르게 그 목록들이 새털처럼 가볍게 느껴졌다.
다섯 번째 체험
들어가기 전 지금까지와 다르게 무언의 기도가 저절로 올려졌다. 네 번째까지는 눈을 감았다 떴다 했는데 눈을 계속 뜨고 했다. 눕자마자 23
몸이 가벼워지며 전체 무한대 공간으로 확장되어졌다. 잠시 숨을 고르 니 숨소리가 들리지 않고 심장의 박동소리가 리드미컬하게 울렸다. 잠 시 후 모든 소리가 사라지고 무한대 공간에서 물의 표면에서 몸 경계 따라 아주 가늘고 희미하게 접촉되는 것이 느껴졌다 사라졌다 했다. 이 접촉만이 몸이 살아있다는 증거라 느껴졌다. 순간 눈물이 흘러내렸 다. 이 감각마저 사라져도 살아있는 무한대 공간은 늘 펼쳐져 있을테 니까. 그 다음부터는 말과 글로 표현하기 어렵게 느껴진다. 생각, 느 낌들이 무한대 공간에서 선명하게 일어났다 사라지지만 무한대 공간 과 같은 느낌이었다. 파도는 파도라는 이름일 뿐 언제나 물 그 자체인 것처럼 일어나는 생각과 느낌들이 무한대 공간의 한 현상일 뿐 공간과 따로 떨어져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원래 대상이라는 것이 없었다. 마 치 허공에 날아가는 새 한 마리가 허공과 하나인 것처럼.
’아! 어쩌면 이것을 통찰하라고 탱크를 이 자리에 설치 하셨구나~‘라는 느낌이 들어감사한 마음이 일어났다.
다섯 번째 체험은 시간이 아주 짧게 느껴졌다.
탱크에서 나오면서 몸의 그림자가 벽에 나타났는데 내 몸이라기보 다 공간에서 일어난 하나의 현상으로 느껴졌다.
탱크 체험을 편안하게 할 수 있게 균형있는 영양식과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준 바다 님과 자생 님, 감각차단탱크를 체험하자고 먼저 제안하 고 늘 함께하는 도반인 선무 님께 감사드립니다. 개인성에 묶이지 않 는 진정한 자유를 알게 해주신 월인 선생님께 무한 감사를 드립니다.
일상생활로 돌아와 하루를 지내보니 개인적인 나로 규정한 것들(예: 나는 나 자신에게 진실해야만 해! 나는 논리적이지 못해! 라는 생각과 느낌 등)에서 힘이 빠져나간 것처럼 느껴졌다.
몸과 개인의식, 개인의식과 비개인 의식의 층을 분별하다-익명
이번 체험에서는 몸과 의식이 분리된 듯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탱크체험을 마치고 샤워를 하면서도 몸은 몸대로 있고, 의식은 의식대로 따로 있는 듯 했습니다. 몸의 느낌이 사라진 채로 오래 있다보니 아마 의식과의 연계성이 느슨해지거나 희미해졌기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걸으면서도 몸이 걷고 의식은 그와는 다르게 있었습니다. 그러자 문득 지금 의식되는 ‘의식적 느낌’ 역시 몸의 느낌과 무엇이 다른가 하 는 통찰이 올라왔습니다. 더 미묘하고 섬세한 느낌일 뿐 의식적 느낌 역시 몸의 느낌과 다르지 않은 느낌의 일종이다라는 것이 와닿자, 그 것을 의식적이게 하는 비개인적 앎의 작용과 분리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면서 마음에서 일어나던 여러 가지 걱정과 근심들, 해야할 일들이 아주 가벼워졌습니다. 그 당시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그 문제 해결을 주제로 삼고 탱크에 들어갈까도 생각했지만 의식적 경험 에 더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래서 문제해결책은 크게 오지 않아, 그로 인해 벌어질 사항들이 좀 무겁게 느껴지고 있었는데, 의식적 느낌 역시 경험되는 무엇이라는 통찰이 오자, 갑자기 문제가 가벼워진 것입니다. 이는 몸이 의식과 따 로 작용하듯이, 개별적 의식 역시 비개인적 앎의 작용과 별개의 층에 서 움직이니, 의식적 문제들이 훨씬 가벼워진 것입니다.
이제 문제가 가벼워지니 그 해결에 대한 실마리를 찾기도 쉬워질 듯합니다. 또 짐으로 여겨지지 않으니 해결에 초점을 맞추기도 쉬워지고 있습니다.
탱크 체험기 4
심장뛰는 소리, 쿵쿵... 이 소리만 있지는 않았다! _저절로(화가)
마음을 탐구하는 데 있어 생각에 방해를 많이 받는 나로서는 감각차단탱크를 경험해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반가웠다. 직접 접한 탱크 는 예상한 것보다 무척 크고 내부 공간은 넉넉했다. 그리고 세련되고 유려한 외관으로 마치 프라이빗 스파를 경험하는 듯도 여겨졌다. 물은 적절히 따뜻했는데 뚜껑을 닫아도 밀폐감으로 답답하게 여겨지지는 않았다. 첫날은 기대와 긴장감으로 마음이 잘 가라앉질 않았고,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주어진 시간을 다 써버린 것 같았다. 체험 횟수가 늘어날수록 적응이 되면서 탐구에 집중할 수 있었다. 탱크 속에서는 감각이 차단이 되면서 의식 활동이 무척 강렬하고 또렷하게 인식된다. 그래서 오히려 생각도 더 많이 올라오는 듯이 여겨지고 느낌도 세밀하24
게 느껴진다. 그래서 마음 작용에 대한 통찰을 일으키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
탱크 속에서는 각 감각들이 많이 차단되기 때문에 몸의 느낌이 왜곡 되어 느껴지거나 부분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느껴지지 않기도 했다. 몸의 느낌을 느껴보면 처음엔 몸의 이미지가 일상과는 다르게 그려졌다. 사지는 얇은 뼈다귀마냥 느껴지고 머리만 큰 공처럼 느껴졌는데, 그 느낌도 점점 다른 이미지로 변화했다. 그리고 의식작용에 주의를 집중하면 몸의 감각적 느낌과 이미지는 자연스레 잊혀 졌는데, 마음에 어떤 의도를 내면 몸에 힘이 들어가면서 몸의 이미지가 마치 풍선이 부풀 듯 다시 되살아났다. 날숨에 몸의 이미지가 살아나고 들숨에 사라지기도 했다. 그러므로 몸의 느낌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쓰이기 위해 필요에 따라 생겨나고 사라지는 느낌처럼 느껴졌다.
탱크 내부에서 감각이 차단되면 인식되는 대상들도 잦아들고, 그러 면 자연스레 빈마음 상태가 될 듯도 한데 나는 그 속에서 빈마음을 만들려고 애를 썼던 것 같다. 그런 와중에 이제까지 내가 애써 만든 빈 마음은 어떤 느낌을 잡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 빈마음의 느낌은 넓은 허공의 이미지일 수도 있고, 없음의 느낌일 수도 있고, 또 무중력의 느낌일 수도 있는데, 그 모든 것이 알아지면서 인식된 느낌이라 는 사실이 와 닿았다. 그리고 빈마음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되는 것이 란 사실, 빈마음을 만들려고 한다면 그 의도가 이미 마음을 채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없음’ 또한 ‘있음’을 전제하지 않으면 느껴지지 않는, 또 하나의 느낌일 뿐이라는 사실도 통찰되었다.
그리고 그 고요한 마음 상태에서 ‘나란 느낌’을 느껴보았다. ‘나란 느낌’이 생겨나면서 경계 없던 세상이 좁게 축소되는 느낌이 들었다. ‘나 란 느낌’을 느끼고 힘을 빼고를 반복해보니 그 느낌이 점점 밋밋해지면서 특유의 느낌은 사라지고 에너지의 쏠림과 퍼짐만 느껴졌다. ‘나 란 느낌’도 결국 사물의 느낌처럼 비개인적 주체의 작용과 데이터의 만남으로 조합된 느낌일 뿐이구나 하는 사실이 통찰되었고, ‘나란 느낌’은 태생적으로 장착된 실존의 느낌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 생겨나고 사라지는 느낌이며, 다른 대상의 느낌과의 구별을 위해 그런 느낌으로 특정 지어진 느낌이며, 그 느낌의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좀 더 명확하게 지켜볼 수 있었다.
탱크 속에선 가끔 내 심장소리가 청진기를 댄 것처럼 매우 크게 들리기도 했는데, 태아가 자궁의 양수 속에서 엄마의 심장 소리를 들으면 이렇게 들릴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처음에는 이 소리로 인해 고요가 깨지는 것 같아 주의를 주지 않으려고 애썼는데, 어느 순간엔 그냥 이 소리만 집중해서 들어보게 되었다. 그러니 곧 모든 것은 잊혀지고 빈 허공에 이 ‘쿵쿵’ 하는 소리만 덩그러니 남은 듯이 느껴졌다. 그러자 곧이어 ‘어? 이 소리 혼자만 있진 못할 텐데?’ 하는 자각이 문 득 일어났다. 그리곤 이 소리를 듣는 무언가가 소리와 함께 있음이 느 껴졌다. 그때 이 소리뿐만 아니라 모든 인식되는 것은 그것 자체로 홀 로 존재할 수 없음이 와 닿았다. 더불어 기저의 데이터가 없다면 비추 는 작용만으로는 대상적 느낌을 만들어낼 수 없음도 함께 통찰되었다.
탱크 속에서는 몸의 감각은 많이 둔화되고 잊혀지기 때문에 주로 의식적 대상이 관심의 대상이 된다. 고요함 속에서 오가는 의식적 느낌들만 관찰하자고 맘먹고 지켜보는 와중에 지켜보는 힘이 빠지는 순간 지켜보려는 강력한 의도가 작동하고 있었음이 느껴졌다. 이제껏 다른 의식적 느낌들만 대상으로써 알아차렸지 그걸 지켜보고자 하는 의도 또한 대상임을 놓치고 동일시되어 있었음이 자각되었다. 이와는 달리 근원의 알아차림은 저절로 일어나는 의도 없는 ‘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지켜보려는 의도, 지켜보는 느낌마저 저절로 알아차리는 것이 근원의 알아차림이란 것이 통찰되었다.
몇 차례의 탱크체험을 하면서 탱크 속의 고요함을 빌려 결국 내 몸, 나란 느낌을 포함한 모든 느낌들과 의도, 주의, 인식작용들이 보여지 고 있음이, 빈 마음을 만들겠다는 의도, 그 결과로 만들어진 빈 마음, 깨달음을 얻기 위한 노력들이 모두 인식된 대상임이 더 분명하게 와 닿았다. 체험 기간 동안 경험에서 얻은 통찰에 관해 늘 세세하게 피드 백 해주시고 마음을 써주신 선생님과, 여러 번의 뇌파측정으로 애써주신 나무 님, 탱크 체험을 위한 여러 가지 실질적인 노고와 도움을 주신 바다 님, 그리고 정성으로 가꾸신 아름다운 정원을 가이드해주신 자생님께 무한한 감사를 전하고 싶다. 결국 한 사람은 단지 한사람으로서만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음을 다시 통감하는 시간들이었다. 감사합니다.
탱크에 들어가 불을 끄고, 두 손을 바닥에 짚은 채 좌우로 넘어지지 않 도록 조심히 앉은 후 천천히 머리를 뒤로 젖히며 누웠다. 몸이 살며시 물 위에 뜬다. 머리를 편안히 그냥 두어도 가라앉지 않고 가볍게 떴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무 냄새도 나지 않으 며, 아무런 맛도 느끼지 않는 상태이다. 오직 약간의 촉감만 있다. 물 이 손과 발에 닿는 약간의 찰랑거림이 느껴진다. 물이 몸에 닿은 느낌 을 느껴본다. 그 느낌은 잠시 후에 흐려지고 사라진다. 이제 모든 느낌 은 희미해지고 사라져간다. 모든 감각적 자극이 희미하고 사라져가니 주의는 자연스레 내면으로 향한다. 지금 상태를 관찰해본다.
느낌이 있다는 것은 의식이 있다는 것이고, 의식은 내가 무언가를 느끼고 분별한다는 것인데, 그것은 일단 몸이라는 감각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감각이 점점 둔해지고 사라지니 남는 건 의식적인 분별만 남는다.
감각의 차원에서 바라보았다. 그러자 느낌이 없으면 감각이 작동할 까? 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해서 남아있는 약간의 감각적 느낌에 깊숙히 들어가보니 그 느낌이 사라지면서 의식도 투명해진다. 감각적 느낌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투명한 무엇이 있다. 그 투명한 의식적 느낌에 집중해 본다.
그리고 느낌은 느낌 이전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그 이전을 찾아보려고 하였다. 몸의 느낌이 있다는 것이 몸이 있는 증거 인데, 그 느낌이 없다면 몸이 있다는 것도 알 수 없으니, 몸은 과연 있는 것인가?
마찬가지로 의식적 느낌이 있다는 것은 그 이전이 있는 것인데 의식 적 느낌이 없다면 그 이전은 과연 있는 것인가? 라는 질문이 올라온다.
여기에 대한 유비를 통해서 올라오는 질문으로 “지금 내가 느끼는 가? 느낌이 없다면 나는 누구인가? 느끼는 나라는 게 과연 있는가?” 를 살펴볼 수 있었다.
[참가자 2] 느낌 이전은 무엇인가?
탱크 체험을 해보았다. 이번으로 3번째 체험이다. 선생님께 어떤 주제를 품고 하는 것이 좋을지 여쭈어보았는데 ‘느낌 이전은 무엇인지’ 탐구해보라고 말씀해주셨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체험 때 나의 경우에는 오히려 몸의 감각이 민감해져서 몸에서 느껴지는 불편한 느낌에만 주의가 가 탐구가 잘 안되었다. 이번 체험 때도 초반 20분은 몸의 불편한 느낌에만 주의가 갔 다. 귀마개를 잘못 껴서 귀에 물이 들어오고, 다시 끼다가 눈에 소금 물이 들어가는 등의 헤프닝이 있었다.
그러다 주제가 떠올라서 몸의 불편한 느낌에 저항하기보다 지금 느껴지는 느낌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니 어느 순간 몸의 느낌 또한 마음 위에 떠오른 그림이라는 것이 의식되었다. 귀가 불편한 느낌은 정말로 귀가 불편한 것이 아니라 내 귀가 불편하다는 그림이 마음 위로 떠오른 것이라는 걸 발견했다. 22
그것이 마음 위로 떠올랐다는 것을 의식하니 곧 사라졌다. 그러니 모든 몸의 느낌이 사라지고 의식적인 느낌들만 남았다. 나라는 느낌, 내가 관찰한다는 느낌, 투명한 존재감, 살펴볼 것이 없다는 느낌, 관찰 하려는 의도 등이 내가 아니라 대상이라는 것이 분명해지면서 느낌이 아닌, 느낌의 배경이 함께 있다는 것이 조금 더 뚜렷하게 다가왔다.
그후 20분은 잠을 자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꿈꾸는 것과 비슷한 상태로 있었던 것 같다. 그 시간에는 흐릿하게 마음에 여러 그림과 느낌 들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그 경험을 통해 강하게 와닿은 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몸의 느낌을 느낄 때 정말 그 느낌 자체를 느끼기보다 그 몸의 부위에 대한 마음의 그림을 갖고 느껴왔다는 것을 발견했다. 항상 알게모르게 몸에 대한 그림을 마음속으로 그려놓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것이 마음속에 떠오른 그림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기에, 몸이 실체가 있다 고 여기고, 그 몸과 나를 동일시하고 있었던 것 같다. 또한 외부자극 이 있는 한 그것에 적절히 반응하기 위해선 몸에 대한 그림이 필요하며, 많은 상황 속에서 끊임없이 그림이 떠오르기에 그것을 의식화하는 것이 더 어려웠을 것 같다. 하지만 자극이 없는 탱크 안에서 몸에 대한 그림과 느낌이 의식되고 모든 몸의 느낌이 사라지는 과정을 경험하며 그것이 마음 위에 떠오른 대상이었다는 것을 조금 더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두 번째로 와 닿았던 것은 ‘어디에 관심을 두고 어디에 초점을 맞추는가?’가 탐구의 과정에서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몸이 불 편하다는 생각에만 초점을 맞출 때는 몸에 대한 마음의 그림과 생각을 실제라고 믿게 되었다. 하지만 주제를 떠올리며 의식적으로 ‘지금 느 껴지는 느낌’에 호기심을 갖고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니 어느 순간 생각과 마음의 그림은 사라지고 조금 더 투명한 느낌들이 의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