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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스

강좌 제목 : 100차 깨어있기 심화과정
  • 강사 : 월인
  • 장소 : 홀로스교육원
  • 기간 : 2026.12.18 14:00 ~ 2026.12.20 16:30
  • 수강료 : 60만원
  • 입금처 : 농협 053-02-185431 이원규 (카드결제 가능)
  • 문의 : 02-747-2261
  • 주의사항 : 깨어있기 기초과정 이수자만 신청 가능합니다
    ※ 모든 강좌 3일 전 접수마감

 

 

 

(본문에서...) 절대의식은 어디 저 멀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발로 딛고 서있는 지금 이곳에 이런 저런 일상의 생각이 활개치는 상대의식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늘 음양을 포함하는 태극과 같습니다. 음양이라는 표면의 상대세계가 멈추면 바로 그곳이 태극의 세계인 것입니다. 당신이 괴로워하는 그 번잡한 생각과 감정들이 멈추는 순간 바로 그곳이 절대세계인 것입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로 채워진 드라마의 세계, '나'와 '대상'이 있고, 이것과 저것이 있는 상대 세계는, 바로 그 순간 절대세계 위에서 벌어지고 있으므로 항상 지금 이곳에 이 둘은 함께 있는 것입니다. 마치 파도와 물이 같이 있듯이...(중략)

 

준비물 : 깨어있기 책자, 통찰기록용 작은 수첩과 필기구, 세면도구 및 타올

[관련강좌]

- 깨어있기™ 워크숍 기초과정

- 깨어있기™ 워크숍 심화과정

- 깨어있기™-계절 수업

- 삶의 진실 100일 학교

[관련도서]

- (단행본) 『깨어있기-의식의 대해부』

- (단행본) 『관성을 넘어가기-감정의 대해부』

- (단행본) 『대승, 현상과 본질을 뛰어넘다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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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ereNow 2025-08-18 10:10:01   답글 | 수정 | 삭제
    93차 깨어있기 심화과정 참가 후기 2025-08



    삶의 참된 의미를 물으며 깨어있는 사람들 _ 다안 (대학원생)


    2박 3일의 과정이 알차게 지나갔습니다. 바쁜 생활 중에서도 언제나 마음 한편에는 ‘삶의 본질이 뭐지’와 ‘나와 내 주변에 모든 것들을 만들어내고 유지시키며 언젠가는 없애버리는 근본적인 무언가에 대한 갈망’이 자리 잡고 있었고 꽤나 오랜 시간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살았습니다. 이번 과정을 통해 앞서 이 길을 걸어가시고 세상에 저 같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신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여기서 배운 방법들 그리고 동기들과 함께 연습을 통한 경험을 나눌 수 있어서 뜻 깊었습니다. 점점 더 기계적이고 복잡하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여전히 삶의 참된 의미를 물으며 깨어 있는 사람들(혹은 그러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이 길을 걷는 사람으로서 감사하고 즐거웠습니다.

    이번 과정에서 선생님 책 내용 ‘내가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다. 나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를 경험할 수 있었고,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이제 워크숍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이박삼일 동안 느끼고 경험한 것이 일말에 사라지지 않도록, 매 순간을 깨어 있을 수 있도록, 무의식적 행위들과 ‘나’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이번 과정을 함께 한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탐욕이나 개인적 성취와는 비교할 수 없는 자연스런 삶 _ 도란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과, 동시에 그 느낌을 느낌으로 보는 깨어 있는 의식을 수련하였다. 주관적 감정을 느끼되 그 감정에 빠지지 않고 마음의 구조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나’라는 걸 느끼는 투명한 의식을 경험하였다. 느낌들은 매번 달라지므로, 느껴지는 모든 것이 진짜 내가 아니고, 변하지 않는 그 무엇이 나였다. 평소 느낌에 고착되어 무겁고 부정적 감정을 일으키는 상태에서 벗어나 그것은 편안하고 가볍고 상념들이 떠올라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는 상태였다. 불안한 나, 스트레스 받는 나가 아닌 그냥 모든 것을 인식하는 감각기관으로 존재하였다. 주체가 사라지니 삶의 목적도, 무엇을 선택하며 살아야 할지도 사라졌다. 텅 빈 마음, 텅 빈 공간만 있었고, 감각들의 움직임만 있었다. 이 움직임들은 균형을 향해 조화롭게 흘러간다. 자연의 이치가 그러한 것 같다. 그 속에서 나도 개별적인 존재가 아닌 자연으로, 흐름의 일부로 존재했다. 이 커다란 에너지 속에 나가 녹아들어 전체의 흐름에 따라 흘러가 보는 삶을 기대해본다. 이러한 삶은 개인의 욕심이나 탐욕이나 성취 등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큰 에너지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삶일 것 같다.



    꽃마리


    진정 나로부터 자유로워지며, 전체를 위해 에너지를 원활하게 쓰며 조화롭고 균형 있게 살고 싶다는 내 바람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원리를 탐구하는 교육 과정이었다. 마음의 속성인 분별해서 더 좋은 걸 추구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이해가 생겼다. 거기서부터 괴로움이 온다는 걸 경험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나와 대상으로부터 모든 게 시작되지만 그 이전에 대해서는 선뜻 무엇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전체라고 표현해 보자면...) 주의가 어디에 더 실려 있느냐로 분별의 에너지가 강해지고 편중됨에 따라 불균형이 일어나겠다는 통찰이 있었다. 결국 주의가 어디 얼마나 쓰이느냐, 주의가 없다면 남는 건 뭐지? 라는 물음을 품게 됐다. 나를 지키고 높이고 채우려는 욕망보다 주의를 전체에, 깨어있는 의식에 더 둔다면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배움의 기회를 주신 월인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함께한 분들과 배움의 장을 함께 할 수 있어서 뜻 깊었습니다.



    생강꽃 (공무원)


    이번 과정에서는 감지를 복습하고 ‘감정, 생각, 느낌과 함께 깨어있기’를 했다.

    감지는 무엇인가? 감지는 나만의 느낌이고 호불호가 없다는 특징이 있다. 감지연습을 하는 이유는 감정에서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내 목표를 이루기 위함이다.

    의식의 시작은 분별하려는 의도에서부터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그러한 의도에 대해 집착과 저항을 멈추지 못하고 끄달려 가면 그것이 괴로움의 시작이 된다.

    그럼 깨어있기란 무엇인가? 느낌은 ‘나’라는 주체와 느껴지는 ‘대상’이 만날 때 일어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느낌이 일으키는 생각과 감정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

    자기 안에서 불균형이 발견되고 그것을 의식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의식 공부를 한다고 한다. 그런 공부의 과정에서 나라는 것은 존재의 도구라는 것, 감지는 내 마음이 고장났을 때 고칠 수 있는 정비 도구임을 배웠다.

    연습을 통해 깨어있음은 마치 무중력 상태처럼 나를 잡으려는 의도의 힘이 없는 것처럼 가볍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깨어있음이 있으면 자아에 대한 집착이 없어지고, 자아(경험의 실타래)에 주의를 두면, 이것이 나라는 생각이 들어 내가 있다고 여기게 된다.

    생각 느끼기에서는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내 몸에서 느껴지는 물리적 느낌에 경계를 그리고 느껴본다. 그렇게 하면 그 느낌이 내가 아님을 느낄 수 있게 되고 그것을 일으킨 생각도 가벼워진다.

    깨어있기의 한 측면으로 감정과 투명함이 같이 있는 상태를 연습해 보았다. 1. 두려움 느끼기, 2. 화내기 (이유 없이) 3. 슬퍼하기 (이유 없이) 4. 행복함 느끼기 등을 연습했다. 이후 이 감정들이 꺼졌다 켜졌다 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고, 나라고 여기는 마음을 대상으로 하면 이것 역시 끄고 키고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느낌은 비어 있다. 내가 아는 모든 것은 느낌으로 이루어진 내 과거의 경험이다. 이런 느낌이 내가 아님을 경험하기 위해, 느낌이 느껴지면 경계 그리기를 하고, 진한 부분을 느끼고, 경계 짓고, 느끼기를 계속 반복하면 느낌이 사라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라고 여겨지는 느낌에 묶여 있던 기준을 풀어주면 전체와 하나가 된다는 것을 느꼈다. 너와 나를 나누는 것은 없다고 느꼈다.

  • HereNow 2024-03-20 08:56:42   답글 | 수정 | 삭제
    85차 깨어있기 심화과정 (2024-03-15~17) 참가 후기



    니케탄 (상담가)


    23년 베니스에 방문한 적이 있다. 아름다움에 빠져 여기저기를 흥미로움 속에 돌아다니다가 밤이 되어 집에 돌아가는 길에 베니스의 미궁에 빠진 느낌이었다. 결국 그날 골목골목을 지나 한참 길을 헤맨 후에 생각한 곳의 반대쪽에 도달해 어안이 벙벙했다.

    “이치를 앎이란 무엇인가?”

    이는 베니스의 지도를 얻는 것과 같이 현상과 경험에 대한 이해가 되고 깊어지게 만들어준다.

    이번 심화과정을 통해 깨어있음 안에서, 근본 바탕 안에서 작용이 분명해지고, 수련과 과정과 단계가 보다 명료해져서 후련한 느낌이 들었다.

    지금 눈앞에 ‘내가’의 이원성을 넘어가는 여정이 펼쳐져 있다.



    고통달 (만화가)


    깨어있기 심화를 두 번째 수련하며 이렇게 살아있는 마음공부를 아낌없이 전해주시는 월인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작년과 같은 깨어있기였지만 올해의 깨어있기 심화는 생각 다루기를 주재료로 진행되었고, 전에 없이 깊은 체험과 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깨어있기는 매번 다르고, 매번 다른 걸 배웠다는 분들의 이야기가 와 닿았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이 현실이 내가 만들어낸 환상일 뿐이라는 느낌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얼핏얼핏 올라옵니다.

    인연 따라 저절로 내가 이 자리에 서있음에 감사의 마음이 올라옵니다. 올라온 그 마음에 경계 그리고 주의 제로를 해봅니다.



    푸리 (카이스트 전산학석사, 금융 분석가)


    이번 깨어있기는, 생각을 깊이 다루었다. 생각의 내용이 아닌 느낌으로 파악하는 연습을 하였다. 느낌에 집중하고 있으면(즉, 동일시되면) 다른 것이 전혀 보이지 않지만, 느낌에 가는 주의에 주의를 기울이는 순간 주변이 보이기 시작한다. 따라서 느낌으로 인해 고통스러울 때는 주변의 물체를 보고, 그 주의에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동일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즉, 생각으로 주의가 가는 것을 막는 대신, 주의가 가는 것을 ‘보는 자리’에 있는 것.

    머리에 열감과 저릿한 느낌이 나는 것은, 대체로 두 생각이 충돌해서 생기는 현상이며, 그 충돌이 지속되면 통증이 된다. 두 생각에 동일시가 50:50 정도로 일어나는데, 두 생각이 모순일 경우에는, 둘 중 아무것을 선택해도 된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생각을 물리적 느낌으로 치환하는 것. 머리나 몸의 물리적 느낌으로 다루는 것이 훨씬 쉽다. 생각이 올라오는 초기에 그 물리적 느낌을 바로 잡아야 하는데, 생각이 스토리로 가버리면 에너지가 강력해서 빠져나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숙제: 웃는 표정을 지으면서 내적인 느낌의 변화를 관찰하기.



    향기 (산림치유지도사)


    깨어있기의 감지연습은 일상을 생기롭게 한다. 사람과의 만남, 숲속의 생명과의 만남, 그리고 모든 사물과의 만남.

    깨어있기 동기들과 다시 만남은 더욱 변화와 생기를 느끼게 했다. 직접 만나지 못하고 꾸준히 ‘비개인 주체’ 모임을 통해 연결되어 있었기도 했지만 2박 3일간 함께 하면서 서로의 변화를 실시간 영상을 보는 듯 흥미로웠다. 그 배경은 고요했고.

    이번에도 함께 공부하는 이로움을 깊이 느낀다. 나라는 개체로서 드러나는 느낌이 우리라는 확장된 존재로서 공유되었던 느낌들을 의식적으로 발견하고 확인하며 커다란 역동을 만드는 것을.

    이번 깨어있기를 하고 알아간다는 것과 발견한다는 것의 차이를 생각하게 된다. 첫 깨어있기 공부 때, 선생님께서 이 공부는 아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무얼 찾으려고 헤매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여정처럼 느끼며 힘들다고 그 길에 멈추어선 느낌이 있었다. 한편 어딘가에 묶인 답답한 느낌도 동시에 들었었다.

    충분하고 적절한 비유가 되지 않지만 이야기 속에 파랑새가 떠올랐다. 본디 그것에 있으면서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하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묶임이 있어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게 ‘나’라고 생각하는 틀에서 벗어나기를 두려워하는, 그 나를 사용했던 관성이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크리스토퍼 로그의 시도 떠오른다. 'come to the edge' 한 발짝 앞으로 나가면 자유롭게 날 수 있을 텐데 ‘나’라는 관성에 두려워하고 주저하고 있는 모습을 본다. 여전히 그 끝에 서 있다.

    그리고는 안다. 그 관성에서 벗어나 생명의 힘을 발현하며 창조적인 삶을. 이미 그것에서 일어남을.



    바다 (공동체학교 과정)


    요즘 공허감이 자주 느껴졌다. 그러다가 이번 선생님의 중론 강의를 통해 공허감 밑에 의미있다는 느낌이 배경으로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의미있음의 느낌이 내가 되어있었기에 호기심을 기울여 공허감을 살펴보기 전에는 그것을 알지 못했던 것 같다. 또한 의미 있다고 느껴지는 것을 추구해왔지만 그것은 곧 공허감에 대한 강한 저항이었으며, 공허감에 저항함으로써 오히려 공허감을 붙들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번 깨어있기 심화가 주는 가르침 또한 그것과 연결되었다.

    주체와 대상은 의미있음-공허감처럼 함께 나타나있지만 대상에만 초점을 맞춤으로써 주체는 보지 못하고 주체와 동일시되어 있었다는 것이 이번 깨어있기 심화에서 한 연습들을 통해 조금 더 와닿았다. 주의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 찾으면서 대상이 아닌 주체에 초점을 맞추었고, 주의 자체에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의식 안의 내용이 아닌 그 성질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떠오르는 생각과 느낌에 주의제로 함으로써 우리의 본성은 떠오른 것이 아니라 그 배경에 가깝다는 것을 의식할 수 있었다.

    또 인상 깊었던 연습 중 하나는 존재감을 느끼고 있는 상태에서 눈앞의 식물에 주의를 줌으로써 주객을 전환하는 연습이었다. 존재감을 느끼니 너/나 없이 투명해졌다. 하지만 주의를 다시 식물에 보내려 하니 다시 ‘나’가 생성되었다. 그래서 저쪽으로 주의를 보내고자하는 의도와 주의가 간다는 느낌을 잊어보았다. 그러니 나무가 내가 되어 이쪽(나)을 보고 있었다. 어느 순간 나무와 몸 주변의 배경이 의식되었다. 그러면서 그 배경 위에 나무와 내 몸 둘 다 나타나 있다는 것이, 주객이 배경 위에 나타나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아직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 배경이 더 본질적인 주체에 가깝다는 생각이 올라온다.

    깨어있기를 여러번 들을 수 있음에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 올라왔다. 소중한 가르침을 주시는 월인 선생님과 함께 공부한 도반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자생 (임대업)


    100일학교 시작한 이후로 두번째 깨어있기 심화 과정이다. 저번에 했으니 비슷하게 진행될 것으로 생각됐지만 이번 심화과정은 더욱더 깊게 들어가고 내가 부족했던 부분을 더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특히 둘째 날의 아버지 얼굴을 떠올린 후 주의제로하는 것을 시작으로 어머니, 가족 그리고 시공간, 내 몸을 하나씩 주의제로하는 과정은 무아의 경지를 체험하는 귀한 시간이었다.

    그것을 보고 있는 그 주체는 투명하고 물들지 않았으며, 우주보다 크고 세상 모든 것이 그 바탕 위에서 잠시 나타났다 사라짐을 경험했다.

    이번 심화과정의 핵심은 주의제로였던 것 같다.

    계속해서 사물, 식물, 동물 그리고 거울 속 나까지 느끼고 경계 짓고 주의제로하고 그 텅 빈 공간을 인식하고 하는 과정들을 반복하다보니 점점 빠르게 텅 빈 공간을 확인할 수 있었고 함께 참여한 도반님들과의 나눔 시간에도 내가 느끼지 못한 것들을 공유할 수 있어서 뜻 깊은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두번째 심화라 편할 것이라는 안일한 마음이 있었는데 여태껏 교육받았던 다른 프로그램에 비해 더 피곤하고 집중을 요하는 시간이었다.

    가르침을 주신 월인 선생님 그리고 같이 참여하여 나눔 주신 푸리님, 향기님, 바다님, 니케탄님, 고통달님 정말 감사합니다.

  • HereNow 2024-01-17 08:38:31   답글 | 수정 | 삭제
    84차 깨어있기 심화과정 참가 후기 (2024-01-12~14)



    바다 (공동체학교 과정)




    깨어있기는 정말 들을 때마다 다르게 다가오는 것 같다. 공동체학교 과정을 하면서 여러번 깨어있기를 들을 수 있는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올라왔다. 이번 심화를 통해서는 나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조금 더 깊이 탐구해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인상 깊었던 연습 중 하나는 주의의 시작점을 확인하는 연습이었다. 주의가 어디에서 흐르는지 확인하며 주의의 시작점이 점차 뒤로 가다가 어느 순간 퍼졌다. 그러면서 주의의 시작점을 찾고 있는 ‘나’도 대상으로 확인되었다. 그러자 내용이 점차 사라지면서 ‘나’ 없이 보는 마음만 남았다. 그때 선생님께서 다른 참가자에게 ‘보는 마음을 아는 것은 무엇이지?’라는 질문을 하셨다. 그 질문이 일어나면서 보는 마음도 지금 이 순간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보는 마음도 인식되고 있기에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보는 마음이 인식된다는 것은 이것을 보는 무엇이 있다는 것이며, 그것이 진정한 나에 가까울 것이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그러나 어떻게 해도 그러한 나를 대상을 잡듯이 잡을 순 없다는 것이 조금 더 분명하게 와 닿았다.

    사물을 보며 주의제로를 한 후, 주의를 다시 주면서 느낌이 생긴 것은 투명한 주의 때문임을 확인해보았다. 처음에는 아리송하게 느껴지다가 주의제로를 조금 더 철저히 해보니 어떤 느낌도 없는 상태에서 투명한 주의가 흘러가며 느낌이 생기는 과정을 조금 더 명료하게 의식할 수 있었다. ‘정말 이 느낌이 투명한 주의로 인해 생겨난 것이구나!’가 체험적으로 와 닿으니 느껴지는 모든 느낌에서 투명한 주의가 확인되었다. 이러한 투명한 주의를 확인하고 느끼는 것은 무엇인지 질문하니 내가 느낀다는 느낌 없이 투명한 주의가 느껴졌다.

    식물을 바라보며 주의를 쏟는 연습을 해보았다. 주의를 쏟을수록 식물의 느낌이 뚜렷해지면서 동등한 인격체로 느껴졌다. 어느 순간 식물에 더 많은 주의가 가니 식물 쪽에서 시선이 느껴졌고, 그 시선에 의해 나라는 느낌이 관찰되고 있다고 느꼈다. 처음에는 식물 쪽으로 보냈던 주의가 ‘나’라는 느낌이 있는 쪽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왜 주의가 다시 되돌아온 것인지 궁금했다. 그런데 주객의 전환에 초점을 맞추어 다시 살펴보니 ‘나’라는 느낌보다 식물의 느낌이 더 강하게 느껴졌을 때 주객이 바뀌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는 느낌, 식물의 느낌, 이 둘은 모두 같은 느낌인데 결국 얼마나 강하게 느껴지는가, 느낌에 얼마나 많은 주의 에너지가 쏠려있는가에 따라 그 느낌이 주체가 되기도 하고, 대상이 되기도 했던 것이다. 또 무언가를 본다는 느낌, 주의가 강하게 흐르고 있다는 느낌은 동일하게 느껴지고 있는 상태에서 주객만 바뀜으로써 식물의 느낌을 보고있다가, 나라는 느낌이 보여지는 현상이 일어났던 것이라는 이해가 올라왔다. ‘나’라는 느낌 없이 주의가 흐르는 느낌만 있으니 ‘식물을 내가 본다’에서 ‘나라는 느낌이 보여진다’로, ‘나 없이 보는 상태’로 넘어갔던 것이다. 그래서 ‘나’라는 느낌을 내가 보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느낌이 식물에 의해 보여지고 있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런데 왜 나라는 느낌 쪽으로 주의가 다시 되돌아와서 식물이 나를 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식물의 느낌이나 나라는 느낌이나 둘 다 느낌이라는 것을 의식한 순간에도 여전히 ‘나’라는 느낌이 식물의 느낌보다 중심에 가깝다고 여겨서 그랬다는 생각이 올라왔다. 지금까지 늘 ‘나’ 중심으로 사고하고 행동해왔기에 이쪽이 중심이라고 여기는 마음이 있는 것일 뿐 사실 느낌들에 있어서는 중심이 따로 없지 않을까? 보다 투명해서 느낌들의 바탕이 되는 느낌들은 있어도 중심에 더 가까운 느낌, 중심에서 먼 느낌은 없을 것 같다. 어떤 특정한 느낌을 중심이라고 여기는 것도 ‘중심’ 같은 느낌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알아차림은 그 안에 머물 때는 중심도 주변도 없다는 글이 떠올랐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정성을 들이며 안내해주시는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이 올라왔다. 그리고 꽃마리 님, 수얀 님, 자생 님, 현재 님과 함께 공부하며 도움을 받을 수 있음에 감사했다.





    현재(교사)



    작년 3월 깨어있기 심화를 처음 참가하고 감지 연습을 하려 하는데 감지연습이 무엇인지 개념이 잡히지 않았다. 정신없이 수업에 따라가느라 개념 정의도 하지 못하고 끝난 것이었다. 깨어있기 책을 다시 읽어보니 이름표를 떼고 그대로 느껴보기인 것 같았지만 다시 여쭤보고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1차 심화수업 참가 후 같이 수업에 참여했던 으름이 님의 후기가 영상에 올라왔다. 죽 읽다가 으름이 님이 선생님과의 대화 중 번쩍하고 스치는 것이 있었다는 구절을 읽는 순간 오래전 마음공부를 처음 시작하고 명상을 배우던 중 같은 경험을 했던 기억이 순간 나며 그 순간이 통찰되었다. 강했지만 무엇인지 모르는 경험이어서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었다. 정말로 선배도인들의 말씀처럼 본성은 여여하고 생각과 느낌의 차원으로는 절대로 알 수 없는 것이었다. 2~3일간 몸과 마음이 가볍고 잔잔한 즐거움이 유지되며 외부의 어떤 말과 행동도 영역밖에서 그저 왔다가 사라지는 상태가 유지되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 상태를 유지하려는 의도가 늘 바탕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바다 님의 100일학교 소감에서 현존이 중요하다는 말을 듣는 순간 개념으로 갖고 있던 현존이 통찰되며 반쯤은 개념이 떨어져 나가고 바라는 마음과 지금 이순간이 아닌 생각속의 시간에 살던 마음이 많이 사라졌다.

    그러다 다시 깨어있기 심화수업 참가신청을 하고 참여했다.



    둘째날 사물의 형태를 그리고 느끼고 그리고 주의 제로 후 주의를 올리면서 느끼기를 하는 순간

    -투명한 스크린이 나타나며 사물의 모양과 빛깔이 주의의 정도를 올림에 따라 스크린에 필름처럼 올라가며 그것이 느껴지고 있었다. 모든 것이 정말 투명하고 스크린에 나타난 것들이 그대로 느껴지고 있었다. 투명한 그것은 무엇인가.

    주의를 보내는 것, 느낌을 느끼는 것, 그것을 다 아는 것들의 관계는 무엇인가에 관심이 쏠리면 그저 주의인 채로 있다.

    아직도 그 순간의 경험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모든 경험은 존재를 변화시키고 지나간다는 월인 선생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생각, 감정, 느낌은 의도적이든 의도적이 아니든 주의에 따라 나타나고 느껴진다는 것이 깊게 통찰되었다. 보는 마음만 있을 뿐이다.

    동일시된 감정에서 분리되기 위해 가슴이 타들어 가는 고통에 숨이 컥컥 막히고 죽고 싶은 마음을 참기 위해 이를 악물고 버텼던 지난 순간이 떠오른다. 열심히 하든 그냥 하든 놓지 않고 그냥 계속 가면 된다는 생각이 올라왔다.



    공포 영화를 보며 놀라는 순간, 놀라는 것에 빠져 놀라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 잘 되지 않았다.



    마음속에 나라고 느껴지는 것을 찾아 그것으로 깊숙이 들어가기

    -앞서 처음 심화수업 때 보다 훨씬 나라는 것이 없어져 있다. 선생님의 인도에 따라 나라고 느껴지는 부분을 찾아 깊이 들어가기를 하니 생각들이 떠오르다 그 주변에서 사라진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더 계속해서 깊이깊이 들어가고 싶고 그 상태에 머무르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올라왔다.



    거울명상을 하며

    -나를 보는 거울속의 내가 많이 낯설었다. 거울속의 눈빛이 안쓰럽고 그윽하게 응시하는 눈빛이다. 그 느낌으로 산책을 하니 모든 사물의 느낌이 안쓰럽게 응시하는 느낌과 똑 같았다.

    존재감으로 산책을 하니 모든 사물이 존재감으로 느껴졌다. 느낌대로 보일 뿐 사물을 사물 그대로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통찰되었다.



    주의 옮기기를 하며

    사물에 주의를 옮기면 사물이 나를 응시한다.

    주의를 50:50하고 대화를 하면 상대와 나의 경계가 없다.

    경이로운 주의의 세계이다.



    월인 선생님 수업에 참여할 때마다 통찰이 오는 수업이 정말 감사하다.

    수얀 님, 자생 님, 바다 님, 꽃마리 님,

    3일을 함께하며

    경험을 나누고 느낌이 증폭되며 개념이 바로 서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감사하다.





    꽃마리 (산림치유지도사, 백일학교 과정)



    수업이 시작됐다. “자유로운 나, 행복한 나가 되려고 할 필요가 없다. 이 ‘나’와 ‘경험’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필요할 뿐. 본질을 발견하는 데 방법은 필요 없다. 마음먹을 필요도 없다. 마음먹는 순간부터 의도가 작용하니까. 이미 있는 것이기 때문에 알아차리기만 하면 된다. 정말 필요한 건 본질에 대한 호기심, 절실함이 있는지 스스로 들여다보는 것이다.”라고 선생님 말씀이 이해됐다.



    이번 수업 중에 내게 답답함과 짜증이 기저에 깔려 있었다. 이 느낌의 신호는 뭘까? 질문하자 초등학교 2학년, 피아노학원 다닌 지 얼마 안 됐을 때가 떠올랐다. 혼자 도저히 모르겠고 막막해서 울어버렸던 기억. 선생님이 달래주며 집에 보내줬었다. 다음날 무거운 마음으로 피아노학원을 갔다. 웬걸, 어제 연습했던 악보가 언제 어려웠냐는 듯이 술술 쳐지는 거다. 이것의 의미는? 어제오늘 짜증과 답답함은 ‘도약 직전’이라는 것! 꽃마리의 무의식에 호기심이 강하게 있지만, 집중력+세밀함+경험이 부족하다. 호기심을 따라가지 못하는 능력치를 가졌다. 이 상태는 절반은 온 거고 ‘도약 직전’이라고 여기게 됐다. 하하. 그래서 다음 연습들부터는 가벼운 마음으로 임했다.



    느낌의 본질은 주의다. 주의는 투명하다. 왜냐하면 주의가 닿는 대상의 느낌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대상의 느낌이 느껴진다는 것은 99%의 주의(에너지)와 대상의 내용 1%로 완성된다.

    감정도 똑같다. 화의 99%는 주의, 1%는 화의 내용. 즉 주의를 다른 곳에 보내면 대상(감정, 사물)이 없어진다. 그래서 주의는 투명하다. 는 것이 경험되는 여러 연습을 했다.



    그러자 대상에 주의(에너지)를 보내야 느낌이 느껴지는 게 실감 났다. 내가 주의를 보내야 보인다는 것은 ‘어딜 봐도 다 내 에너지다!’라는 생각이 번뜩 올라온다. 나는 내 느낌의 세계에 신GOD이구나. 마치 모든 건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내 느낌의 세계에서 주의 99%가 모든 느낌을 만들어 낸다는 게 흥미롭고 신기했다. 이것의 의미는? 투명한 주의는 생명 에너지 같다. 모든 느낌을 태어날 수 있게 한다.



    <주의 50:50으로 상대와 대화하기> 이 연습을 영광스럽게도 선생님과 했다. 주의를 선생님과 나에게 50:50으로 똑같이 하고 대화했다. 성급한 반응보단 차분하고 안정감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했다. 누굴 만나든 이걸 기본값으로 장착하면 더 조화롭게 관계 맺을 수 있겠다. 선생님에게서 느껴지는 투명함은 바이칼호 같다. 누군가에겐 심해공포증을 불러일으킬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자신의 마음을 들키기 싫은 사람은 특히. 그리고 상대에게 주의를 최대한 쏟고 정성을 다하려고 하는 내 습관이 발견됐다. 이것의 어둠인 측면은 불균형 상태를 초래해 전체를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한 내가 주의를 쏟는 만큼 상대도 그러하길 바란다는 기대도 있었다. 이 연습의 의미는? 주의를 전체 조화와 균형에 맞게 조정하는 지혜가 이미 우리에게 있다. 알아차리기만 하면 된다.



    <거울 속 내가 밖의 나를 보도록 주의 옮기기> 연습을 했다. 이걸 식물에도 적용해 본다. 식물이 나를 보는 느낌과 식물이 내가 돼서 나를 보는 느낌은 숲에서 자주 경험했었다. 이 연습의 의미는? 주의가 몸에서 나가지 않고 ‘마음의 보는 작용’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보는 작용과 주체 간의 관계가 헷갈렸다. 보는 작용이 주체와 대상 둘 다를 보는 관계임을 인지했다. 자각으로써 ‘나’가 있다는 것을 알아챔은 무슨 의미일까? 자각의 ‘나’가 주의의 시작점이라면 생명 에너지인 주의가 느낌을 일으킨다. 주체인(몸) ‘나’에 고정된 게 아니다. 이런 생각을 해봤다. We’re the world. 가 아니라 I’m a world.(여기서 I는 자각의 I를 의미)



    <기억으로서 나를 넘어가기> 연습에는 나라는 느낌과 존재감의 차이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나라는 느낌은 꽃마리. 존재감은 내용 없이(꽃마리x) 주의중립했을 때 느낌이라고 이해했다. 나라는 내용 없이 존재감을 느끼는 것과 느낌에 빈 공간 느끼기는 뭐가 다른 걸까? 나라는 느낌에 빈 공간을 느끼는 것이 존재감 같다. 빈 공간 느끼기는 존재감을 위한 예행연습이었나? 둘의 원리는 비슷하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지금 몇 번을 해봐도 비슷하게 느껴진다.



    존재감의 의미는? 존재감으로 있으면 대상이 맑고 투명해 보였다. 그 대상은 내용 없이 맑고 투명한 상태의 마음을 증명한다. 왜냐면 마음이 비어있으니까. 비어있다는 것은 내용 없이 또는 호오 없음을 의미하는 것 같다. 이것이 비개인적 주체나 본성과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선생님께서는 본성은 직접 볼 수 없으니 이치로 깨달아야 한다고 하셨는데, 앎만 발동하고 사색은 잘 안 된다.



    수업의 마지막에는 앞으로의 구체적인 계획과 연습 내용을 적은 슬라이드가 띄어졌다. 감동이었다. 사려한 가르침이라고 느껴졌다. 선생님께 감사했고 지금도 감사하다. 오인회가 무슨 뜻인지 여쭤봤는데, 그때 선생님 표정이 밝고 눈빛이 반짝인다고 느껴졌다. 선생님이 항상 빛에 측면으로만 보이길 바라는 꽃마리를 발견했다. 예전 같았으면 선생님이 건강하고 행복하셨으면 좋겠다.라고 적었을 것 같다. 함께했던 모든 분들을 비롯 모든 존재에 감사하다.





    자생



    이번 깨어있기 심화 과정은 정말 집중력을 요했던, 하지만 그렇게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집중되었던 교육이었던 것 같습니다.

    같이 교육받을 도반님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번엔 잘 울 수 있을까 화를 낼 수 있을까 걱정을 하며 시작이 되었습니다.

    월인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하나씩 하나씩 이론을 들으면서 이해가 되었고 중간중간 경험실습을 통해 관찰하고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8년 전에 100일 학교에 있었을 때 받았던 깨어있기 심화는 기억도 안 나면서 새로운 강의를 통해 더 집중되고 더 깊게 들어가지는 것 같았습니다.

    하나하나의 경험실습을 통하여 점점 깊게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고 몸은 피곤하지만 정신이 명료한 것을 느끼며 하나씩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깨어있기 3일이 되던 날 했던 대상이 나를 바라보는 실습에서는 나무가 나를 바라보는데 존재가 존재를 바라보는 경험을 했고 내가 있음이 아닌 그저 ‘있음’의 상태인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항상 어디서 오는지 모르는 불안감, 두려움 등으로 몸과 마음이 무거웠던 내가 ‘있음’을 경험하니 마음이 가벼워짐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던 중 이 ‘있음’이 어디서 만들어지거나 어디서 온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벌어지는 모든 일이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내가 나에게 속아왔구나 생각되어졌습니다.

    같이 공부하신 도반남들의 경험 요약과 나눔이 특별하게 느껴지며 3일을 잘 마친 것 같습니다.

    아직은 부족하기에 더 게가 아닌 더 깊게 관찰하고 탐구하여 나로부터의 자유를 느끼도록 정진하겠습니다.





    수얀



    다녀온 후 가벼워짐을 얘기해 본다.



    일단, 한가지 자유로움은 성취되었다. ‘나는 바르게 사는 사람’이라는 나에게서 자유로워졌다. 그 과정은 수강료를 입금하는 데서부터 시작이다. 톡으로 심화과정을 반복하는 것이니 34만원 입금하면 된다는 문자가 왔다. 내 기억으로는 기초를 들은 것으로 아는데, 물어보자니 상대방이 누군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함양 가서 해결하면 되겠지! 생각하고 일단 34만원 입금하였다. 서류에 표시되어 있을테니 그걸 잘못할 리는 없을테고 아니면 심화까지 듣고 마스터가 남았나? 내 행동을 합리화하면서 함양으로 고고 ~~

    역시나 기초만 들은 상태라고 차액 입금 문자 온걸 저녁 무렵 보는 순간, 느껴지지 않는 미미한 분노와 민망함이 있었겠지만 내 감정은 미동하지 않았다.

    집으로 온 후 지금 ‘나라는 사람은 이래야 돼~’ 라는 나의 정체성은 사라지고 ‘해결하려고 달려드는 나로부터 해결되겠지 생각하는 여유로운 나’가 자각되었다.

    참 가볍다. 자유롭다. ‘그 상황이 되면 해결되겠지’라고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걱정도 없다. 가벼우니 행동도 빠르다. 좋아하는 것보다 우선 중요한 것부터 해버리는 게 유익하다는 자각을 한다.. ‘그때 그때 상황에 대처하자’ 이것이 바로 ‘지금 현재’의 의미구나. 감사하다.

    이제 함양에서 느껴졌던 2박3일 과정의 느낌을 얘기하고 싶다.

    과거 깨어있기 수업에서 기억나는 건 항상 사물을 볼 땐 처음 본다고 생각하고 관찰하라는 것이었다. 나의 성향이 섬세한 편인데 더욱 또렷이 더 잘 보인다.

    첫째 날, 둘째날, 셋째날 갈수록 의식적으로 감지하는 나는 약해지고 자각하는 내가 점점 더 커진다. 둘째 날 저녁 수업 “나를 찾아 들어갈 때” 어둑한 푸른 공간에 달인지 해인지 보이면서 우주공간을 날아다니는 느낌이 들었다. 개운하고 선명한 느낌이다. 그러다가 따스한 몸이 느껴지면서 나를 찾다 월인 님 말씀에 눈을 떴다. 참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계속 나를 찾아볼 것이다. 셋째 날, 나무에 주의를 100으로 주니 나는 형체만 보이고 나뭇잎들이 윤기가 있고 선명해지고 날아갈 것 같은 강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주의를 주는 곳에 모두 자각의 내가 됨을 알았다. 그런데 경험요약을 얘기하는데 월인님이 ‘소리 좀 크게 하라’고 하신다. 나무에 주의를 준 상태의 힘없는 나(개인주체)에서 자각의 나로 돌아옴이 유연하지 않아서 그랬을까? 하고 궁금증을 표현해본다. 다음에 월인님 만날 때 여쭈어봐야겠다.

    2박3일 동안 수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먹거리 준비해 주시고 편안함을 주신 바다 님, 꽃마리 님, 자생 님, 그리고 현재 님과의 인연 감사함을 표합니다. 마음으로 아시겠지요!!!

  • HereNow 2023-11-21 16:33:05   답글 | 수정 | 삭제
    83차 깨어있기 심화과정 참가 후기 (2023-11-17~19)



    꽃마리 (산림치유지도사, 백일학교 과정)



    ‘내 진정한 본모습은 느낌과 상관없이 있음을 안다.’

    ‘몸과 동일시된 의식, 분별력은 동일시되지 않고 쓰일 수 있다.’

    ‘내 원천은 우주만상에 가득한 의식이다.’



    수업 시작 전 선생님 말씀을 메모한 것이다. 깨어있기 심화 과정 시작 때 선생님 말씀이 2박3일 짧은 과정을 총망라하신 것임이 약 30% 이해되어 가는 중이다. 기억에 남는 경험 3가지 정도를 요약해 보자면,



    첫 번째로는 느낌이 있으면 느낌을 찾고 경계 짓고 느껴보고 행동하는 것이다. 한 템포 늦춰서 반응하는 것이다. 여기서 ‘나’라는 마음도 습관적으로 인식되는 ‘느낌’임을 경험해 보았다. 그 경험의 의미는 ‘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때 아득함이 떠올랐는데 여기에 해답이 될 수도 있겠다. ‘나라는 느낌’도 느낌일 뿐 구름처럼 바람처럼 사라지는 것이기에 아득하게 느껴진다. 진정한 본모습은 ‘나라는 느낌’과 상관없이 시공간과 사물의 형상에 가득한 의식인 것처럼 정리되어 진다. 하지만 몸소 경험되어졌는가?라는 질문이 떠오른다.



    두 번째는 봄, 앎으로 있기다. 먼저 봄, 앎의 작용을 머리로 이해하려고 단어를 정의 내리는 자신을 발견했다. ‘의식(깨어있는 상태에서 자기 자신이나 사물에 대하여 인식하는 작용)의 측면에서 특정한 보는 무엇이 없다’는 선생님 말씀을 메모해 놓았는데, 여기서 경험된 건 주의를 보내는 것이 느껴지면 주의를 보는 것으로 있는다. 그 ‘봄’으로 있는 경험은 했지만 의식이 무엇일까? 오늘 있음 연습 때 전체주의와 주의제로가 합쳐진 건가? 하는 경험이 떠오른다. 바다는 존재감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던데, 봄을 넘어선 의식상태(!)를 알아차리고 싶다.



    마지막으로 선생님께서 ‘이름표 떼고 내 방을 떼고 다 떼면 뭐가 남니?’라는 질문을 숙제처럼 남겨주셨다. 이 글을 적으면서 스스로 질문해보니, 있음으로 있기 연습 때 느낌이 난다.

    1)깨어있기 완독 2)감지연습 시간활용 3)자기관찰 이라는 계획이 떠오른다. 33일차가 되니 비교적 구체적인 계획이나 방향이 생겨난다. 선생님과 바다에게 고마운 마음이 있음이 보인다.





    바다 (공동체학교 과정)



    두 번째 듣는 깨어있기 심화이지만 마치 처음 듣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모든 연습과정과 선생님의 말씀들이 새로이 다가왔다.

    가장 인상깊었던 연습은 주의의 시작점을 찾는 연습이었다. 주의가 어디서 시작되는지 찾을 때마다 관찰자에서 관찰자로만 전환되었던 기억이 있었다. 그래서 그 기억으로 찾으니 비슷한 현상만 일어났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관찰자에서 관찰자로만 전환되는 것은 깊이 들어가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해주셨다. 그래서 조금 더 주의를 기울여서 주의가 시작되는 지점을 찾으니 주의의 시작점이 점점 뒤로 가면서 확장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관찰자 없이 관찰이 일어나는 상태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 상태에서는 지금까지 나라고 여겨온 생각과 느낌, 감정이 내가 아니라 올라온 것이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상태에서는 목표도, 추구도 없었다. 진정한 나를 발견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저 알아차리고 있을 뿐이었다. 알아차리는 상태를 전에 경험을 했었지만 이번엔 왜인지 다르게 와 닿았다. 그 상태를 과연 ‘내가’ 경험한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그 상태가 ‘바다’라는 이름을 붙인 나로 있을 때보다 더 진실되다고 느껴졌다.

    이후에는 대상을 보면서도 대상의 느낌이 봄이 있기에 느껴진다는 것을 확인했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선생님께서 이와 같이 확인되는 봄을 ‘봄의 그림자’라고 표현하셨다. 알 수 있고 느껴지는 모든 것은 눈이 아닌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 말씀을 들으니 눈은 모든 것을 보지만 자신은 보지 못한다는 화두가 떠올랐다. 그러면서 대상을 찾듯이 눈을 발견하려는 마음이 의식되었다.

    이후에는 있음 연습을 했다. 거울을 보면서 나라는 느낌을 찾으니, 내가 있다에서 있음의 느낌으로 넘어갔다. 그 상태에서 산책을 해 보았다. 그 마음에서 걸으니 특정한 내가 없었다.

    그러다가 내가 정말 존재감을 느끼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들며 존재감을 찾아보려는 의도가 올라왔는데 그러한 의도 또한 있음 위에서 나타난 것이라는 게 의식되었다. 더 나아가서 있음의 느낌도 관찰되고 있었다.

    이러한 경험들을 과연 내가 했는가? 그렇다면 그 나는 이런 경험보다 느낌보다 더 근본적인 것일 텐데, 그렇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나는 무엇일까?

    깨어있기 심화를 들으면서 선생님과 도반과 함께 공부하는 순간이 무척 감사하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항상 열정적으로 가르쳐주시는 월인 선생님과 큰 힘이 되어주는 도반 꽃마리 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 HereNow 2023-05-23 09:59:31   답글 | 수정 | 삭제
    80차 깨어있기 심화(2023-05) 참가 후기



    모든 느낌과 감정과 함께 있는 투명함

    _ 바다 (백일학교 학생)




    처음으로 깨어있기 심화를 듣게 되었다. 참 감사한 시간이었다. 그 중 나에게 가장 인상 깊게 남았던 것은 투명한 주의에 대한 것이었다. 선생님께서 주의란 무의식적으로 작용하는 에너지 기능과 의식적으로 작용하는 투명한 분별기능, 이 두 가지 기능으로 나뉜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을 듣고 보니 탐구에 대해서 다른 시야로 볼 수 있었다. 탐구는 무의식적으로 작용하는 물든 에너지인 신념을 관찰을 통해 분별함으로써 의식적으로 균형을 맞추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사실은 주의가 주의를, 에너지가 에너지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다만 무의식적으로 작용하는 주의는 정보에 물들어있다면 분별로써 작용하는 주의는 투명하고 맑으며 그 안에 정보가 들어있지 않았다. 결국 무거운 감정이나 알아차림과 관찰이나 둘 다 주의이며 다른 관점으로 보면 둘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한 분노와 슬픔 속에 있어도 그 분노와 슬픔 밑에 있는 투명한 주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무거운 감정들의 바탕인 투명한 주의에 초점을 맞추니 투명하고 맑은 주의의 질에 대한 느낌이 일어났다. 그러면서 느끼고 있던 감정들이 더 이상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한 순간에 가벼워졌다.



    나와 다른 참가자 분께 주의를 동등하게 주었을 때도 그 투명한 주의의 질이 느껴졌다. 주의가 나 자신에게만 흐르지 않고 둘에 동등하게 흐르니 주의의 질이 달라졌다. 기억이나 의도에 물들지 않은, 조금 더 투명한 주의가 사용되었다. 그러니 어느 순간 그분을 보며 느껴지는 느낌 속에서도, 그분의 존재에서도 그 투명한 주의의 질이 확인되었다. ‘우리 안에는 원래 이런 투명함이 늘 함께 했구나. 스스로를 작고 쓸모없는 존재로 느낄 때도, 무거운 감정에 물들어 고통스러웠을 때도 그 투명함은 있었겠다. 그것을 느낀다는 것, 경험한다는 것 자체가 투명한 주의의 증명이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존재감을 느끼면서 산책할 때는 보이는 모든 곳에서 투명한 주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투명한 주의 안에서는 하늘과 나무, 풀잎들이 선명하게 보이면서도 그것과 내가 따로 있다는 느낌이 없었다.



    깨어있기 심화과정을 듣기 전에는 ‘내가’ 느낌이라는 여러 대상들을 알아차리고 관찰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관찰과 느낌이, 주체와 대상이 따로 있다고 느꼈다. 그런데 이번 기회를 통해 대상 안에 이미 투명한 주의-관찰-주체가 내재하고 있었다는 것이 조금 더 와 닿았다.

    월인 선생님 그리고 함께한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푸리 (주부)




    이번 깨어있기 심화과정은 가기 전에 마음의 갈등이 있었다.



    깨어있기 기초과정에서 너무 수업이 어려웠고, 기초과정이 끝난 후에도 마음의 고통이 점점 심해지는 중이어서, 수업에 집중하고 제대로 배울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수업 중에 월인 님께 여러 번 말로 얻어맞는 경험을 겪었다(월인 님의 표현). 그럴 때 당황스럽고 난처한 감정이 올라왔는데, 그 감정 아래에서 여러 가지 신념을 발견하는 기회가 되었다. 수많은 신념들이 한꺼번에 무의식적으로 올라와서, 개개의 모든 신념들을 다 찾아내지는 못했다. 다만, 그 순간 그 신념들에 주의를 주고 믿음을 주고, 동일시를 했다는 것을 한 발 늦게 발견해냈다. 그 후 틈나는 대로 감정이 올라올 때, 그 안의 신념을 발견하는 연습을 했다.



    50:50으로 나와 상대에게 주의를 주고 대화를 했을 때, 굉장히 큰 감동을 받았다. 평소 수많은 무의식적 신념들에 동일시하느라 상대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하는 것은 인지하고 있었다. 50:50의 균형을 유지하려는 미세한 노력 속에서 내 신념에 주의를 주지 못하자, 상대의 말과 감정이, 마치 감지 연습을 할 때의 나무를 관찰하듯, 매우 순수하게 들렸다. 상대의 질문에, 평소 한 번도 대답해보지 못한 답을 했는데, 그 답을 한 순간, 내가 한 답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낯설고 신선하고 가슴에 진동이 일어났다. 집에 돌아와 설거지를 하다가 그 낯선 “답”이 왜 낯설었는지 문득 알아차렸다. 신념은, 타인의 말은 물론 내 마음의 소리도 듣지 못하도록 했던 것이다. 또 하나의 알아차림은 50:50의 주의상태에서 주체와 객체의 구분이 흐릿해졌기 때문에, 그 답이 그토록 낯설게 들렸다는 것이다.



    개인 숙제로는,



    1. 매일 계곡물소리를 10분씩 들으면서 주의 0으로 듣는 연습

    2. 둔감력(와타나베 준이치) 책 공부

    3. (이 부분의 기억이 애매한데) 가장 강력하게 믿고 있는 생각 30가지 제출

    4. 깨어있기 연습일지 100일간 홈페이지에 올리기



    공통숙제는

    살아가는 동안 몸은 계속 바뀌고, 서로 다른 타인을 마주할 때마다 서로 다른 신념을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왜 똑같은 “나”라는 느낌이 있는가? 그 다르지 않다고 느끼게 하는 변함없는 요소는 무엇인가?

    라는 과제를 받았다.





    고통달 (작가)




    ‘나’란 느낌이 지속되는 건

    주의를 ‘나’란 것에 잔뜩 쌓아놓은 탓이지만

    아무리 켜켜이 쌓인 주의라 할지라도

    작은 의도와 의지만으로 원하는 곳으로

    이동시킬 수 있음을 배우고 확인한 시간이었습니다.



    월인 님이 선물해 주신 이 ‘주의’란 마법 지팡이로

    내 고통을 어르고 달래며 한세상 재밌게 살아가겠습니다.

    편해져버린 이 자리에 안주해버리지 않고

    다음 단을 오르겠습니다!







  • HereNow 2023-03-25 16:57:51   답글 | 수정 | 삭제


    79차 깨어있기 심화 (2023-03) 참가 후기



    주의의 덩어리인 내가 주의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지는 놀라운 주의의 세계

    _현재(교사)




    첫날 도착하자마자 선생님과 그간의 공부에 대한 질문과 답을 하는 과정에서 선생님께서 스치듯 말씀하시는 ‘이유 없는 정성’에 마음에 꽂히며 나의 모든 주의가 일순간에 내면으로 향하며 충만함과 고요가 느껴졌다. ‘대충 빠르게’였던 일상의 자세가 이유 없는 정성으로 대 전환이 일어났다.



    생각과 함께 깨어있기를 하며 생각이 나를 살고 있는데도 그것이 편안함을 주기 때문에 생각으로 살고 있음을 느끼지 못하고 있던 것이 통찰이 되었다.(섬한 사실이었다.)

    이유 없는 정성으로 모든 것을 통째로 진아에 맡기는 삶, 맡긴다는 생각도 없는 맡기는 삶, 그것으로 살고 싶다. 이것이 또 하나의 생각이 되지 않기를...



    느낌과 함께 깨어있기를 하며 상황에 따라 발생하는 “나”라는 느낌의 덩어리들이 역시 실체가 아님을 확인하며 흙탕물의 흙이 자갈이 되었다 바위가 되었다 할지라도 나는 늘 물이라는 통찰이 올라왔다.



    감정과 함께 깨어있기를 하며 머리는 맑은데 가슴에서 흐느끼는 뭉쳐있는 감정의 덩어리들이 느껴졌다. 그대로 피하지 않고 깊이 느꼈지만 계속 남아 있어서 주의에 주의를 주었다. 많이 편안해졌다.



    대상에게 나의 주의 전체를 주었을 때 나가 사라지며 대상이 내가 되어 나를 보는 경이로운 처음 해보는 체험.

    대상과 나에게 50:50으로 주의를 주었을 때 경계가 사라지며 그저 있을 뿐인 체험.

    선생님 말씀처럼 주의의 덩어리인 내가 주의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지는 놀라운 주의의 세계.ˍˍ()ˍˍ



    깨어있기의 방법으로 “주의에 주의”를 하고 있다.

    후기를 적는 지금 이 순간도 주의에 주의를 주고 있다. 평소와 같은 일을 하고 있는데 가볍고 개운하고 고요하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막연하게 알고 있던 것들을 이렇게 개념화해서 정확하게 알려주시는 선생님의 통찰이 놀랍다.





    한계없는 내적 공간을 경험하다

    _자유(영상의학과 의사)




    기초과정을 흥미진진하게 했던 터라 기대감을 한껏 갖고 왔던 심화과정이었고 그 기대가 충족된 과정이었다.



    첫날, 주체-대상으로 나누어지는 이분열과, 주체-주체감-대상으로 나누어 마음을 알아채는 삼분열에 대해 경험적으로 배웠고, 그 후 주체감 느끼기를 하였다. 처음에는 주체감에 집중하는 것이 힘들었으나 점차 몰입할수록 넓고 깊어져 우주공간을 경험하는 듯한 체험을 하였다. 이 내적 공간은 고요하나 에너지로 꽉찬, 한계없는 공간임을 경험하고 벅찬 감격을 느꼈다.

    ‘주체감’이 이럴진데 그것을 바라보는 본질적인 ‘주체’는 얼마나 더한 찬란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둘째날, 개인적 ‘주체감’을 경험하는 것 자체가 비개인적인 ‘주체’가 있음을 경험하는 것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묵상해보라는 과제를 전날 내어주셨고, 나는 우리가 뇌CT 사진이나 MRI사진을 찍을 때 둘다 뇌의 사진이기는 하나 CT기계나 MRI기계에 따라 영상의 모습이 달라진다는 것을 대비해보니 이 경험 또한 CT사진, MRI사진이라는 깨달음이 왔다. 즉 개인적 ‘주체감’을 경험하는 것이 비개인적인 ‘주체’의 모습이기도 하다는 통찰이 비유적으로 다가온 것이다.



    또 내가 주의를 어디에 두는지, 내 에너지를 어디에 쓰는지에 따라 내 삶의 현상이 달라지고, 삶의 경험이 달라진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주의를 줄수록 사물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경험을 하면서, 사물은 내가 주의를 주어 내 마음에 느껴지는 모습임을, 내 주의의 작용으로 인한 느낌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가 하는 생각 또한 주의에 의해 생생해지는 작용이었고, 감정 또한 그러하였다.

    감정과 함께 깨어있기에서는 이유없이 화를 내는 것이 어려웠으나 그 경험을 통해 감정이 왔다갔다 하더라도 여전히 나의 주체, 본성은 그 자리에 흔들림없이 있다는 것이 경험되었다.



    셋째날, ‘나라는 느낌’도 마음 속의 느낌이고 내가 나라고 생각해온 이미지들의 합이라는 것, 그래서 언제든 그것에서 힘을 빼면 사라지게 할 수 있다는 것, 식물도 동물도 사람도 감지로 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니, 내가 무시해왔거나 미워했던 사람들과의 관계가 달라지고, 그 관계가 한층 성숙해질 수 있을 것 같다.



    정성스레 우리를 이끌어주신 월인님과 함께한 현재님, 으름이님께도 감사드립니다.

  • HereNow 2023-03-24 07:29:26   답글 | 수정 | 삭제
    79차 깨어있기 심화 (2023-03) 참가 후기



    극적인 분노를 비추는 평온한 주의를 맛보다

    으름이(주부)






    나도 모르게 자꾸 힘이 들어가고 호흡이나 기감이 느껴졌다(과거의 습관으로). 자연스럽지가 않았다. 선생님께서는 주의의 강도보다 질이 중요하다고 하셨다.

    아, 그렇구나..

    힘을 뺐다.



    ‘분노와 함께 깨어있기’에서 분노의 감정이 올라왔을 때, 선생님께서 분노에 가는 주의를 느껴보라고 했을 때 순간적으로 분노의 감정이 잦아들면서 분노의 감정을 비추는 주의를 느낄 수 있었다. 분노라는 극적인 느낌과 그것을 비추는 주의의 평온한 느낌이 강렬하게 대비되어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고, 그저 비추는 그 투명한 주의의 존재가 느껴졌다. 감동이었다.



    선생님께 나의 느낌과 상태를 여쭈어보던 중 선생님께서 뭔가를 질문하셨는데 나는 모른다고 답하였다. 그러자 선생님께서 '모른다'는 것을 '경험하는 그놈'이 누구냐고 물어보셨을 순간 순식간에, 정말 찰나지간에 무언가가 일어났다 사라졌다. 아주 순식간이어서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고 느낌도 잘 기억나지 않지만 순간 “어? 이게 뭐지?”

    정말 모르겠다. 뒤죽박죽이고 모르겠다.



    하지만 이 탐구를 계속해야 한다는 것은 안다.

    선생님께서 경험 이전 상태를 알아채야 한다고 하셨는데 그것이 무엇일까?

    내가 무엇을 한다(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느끼고, 심지어 모른다)는 경험을 통째로 보는 그것이 무엇인가?
  • HereNow 2022-02-01 12:39:06   답글 | 수정 | 삭제


    72차 깨어있기 심화 참가자 후기



    의솔(사업)



    내적 감지연습과 주의연습들을 거쳐 사물과 생각과 감정, 그리고 ‘나’라는 존재의 느낌과 함께 깨어있기 훈련을 했습니다. 그런 연습과 훈련들을 통해서 외부의 대상에게서 느껴지는 느낌들이 그 대상이 가진 느낌이 아니며 대상과 관계하는 ‘나라고 여겨지는 존재’의 느낌이라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또한 내부의 나와 외부의 대상 두 가지 모두 ‘비개인적인 나’로 있을 때 드러나지는 느낌의 차원이라는 점에서 같은 외부의 대상이라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런 경험들을 통해 이제껏 일상에서는 ‘나’라는 느낌에 무의식적으로 동일시되어 외부의 대상과 내부의 나로 나누어 살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또한‘존재는 관계다’라는 말이 깊이 와 닿으며 대상과 관계함에 따라 매순간 변하고 나타났다 사라지는 ‘나’라는 존재를 잘 사용하는 것이 어렵지만 가능하다는 것도 깨닫게 됐습니다.

    앞으로 일상을 겪으며 얻는 경험들이 한 순간에 그치지 않고 조그만 경험들로부터 전체를 깊이 있게 통합하는, 구조를 보려고 하는 마음가짐으로 근본에 대한 탐구를 이어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소(일러스트레이터)



    깨어있기 과정에 처음 참석한 후 2년 반 정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깨어있기를 들은 뒤 마스터 과정을 시작했고 깨어있기를 여덟 번 정도 참여하며 의식 작용을 좀 더 세밀하게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미세한 마음 작용을 더 많이 의식화하게 되었고, 나타난 모든 느낌은 내가 아님을 알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요즘은 생활에서도 ‘나’라는 기준에 묶이지 않고 ‘나’로부터 자유로워졌음이 자주 느껴집니다. 삶의 거센 파도가 언제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모르니 마음을 놓을 수는 없지만, 다행스러운 점은 깨어있기 과정을 통해 파도를 잘 탈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마치 히든카드를 가슴에 품고 있는 것처럼 안도감이 느껴집니다. 안도감도 나타난 느낌이지만요. ㅎ

    그동안 많은 질문에 답하며 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주신 월인 선생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저절로(화가)



    주의가 주체와 대상을 결정한다고 단언한다면 단박에 수긍할 수 있는가? 내가 본다는 느낌, 내가 듣는다는 느낌과 같은 주체의 느낌은 주의가 많이 몰린 곳에 느낌이 형성된 것이다. 그리고 주의가 흘러가 닿은 곳에 대상의 느낌이 만들어진다. 주의를 움직인 것이 아니라 마치 고기압과 저기압처럼 그 차이가 주의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대상 없이 주의는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으며 정보가 있어야 드러나는데, 이렇게 주의는 대상과의 관계에서만 존재한다.



    사실, 대상은 주의가 대부분이다. 99%가 주의, 나머지 1%가 대상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구체적 방향성, 즉 정보가 된다. 주의라는 에너지와 정보라는 방향성 중 어느 것 하나라도 없으면 느낌이 드러나지 않는다. 이것은 생각, 느낌, 감정과 같은 내적 대상뿐만 아니라 눈앞의 사물과 같은 외적 대상도 마찬가지다. 사실 모든 현상계가 이렇게 구성되어 있다. 그러므로 대상이 실체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가 실체이고 대상은 관계가 형성한 일시적 모습이자 느낌이다.



    ‘나’란 것도 관계 속에서 나타난다. 대상이 있으면 그 대상을 향하는 주의가 흐르고 주의가 많이 몰린 곳의 에너지와 정보가 쓰여 그 관계의 결과로 느낌이 생겨난다. 그리고 대상이 아닌 쪽을 ‘주체’, 즉 ‘나’라고 부른다. ‘나’란 것은 나란 존재가 타고 다니는 일종의 자동차와 같다. 내 기준, 내 경험과 같은 내용을 총합한 것에 붙인 이름이다. 이렇게 ‘나’는 관계에 의해 존재하는 추상적인 것이지 한결같은 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생각을 통해 주의를 살펴보자면, 한 생각에 주의가 많이 몰리면 그 생각은 사실이 되고, 이렇게 생각에 주의, 즉 에너지가 많이 몰린 것을 그 생각에 대한 믿음이 강하다고 표현할 수 있다. 가상과 실제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믿음의 정도에 따라 가상과 실제로 나눠지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무한의 공간에 생각으로 집을 짓고 ‘나’, ‘세상’이란 틀을 규정하여 살고 있다. 모든 생각, 이름, 개념이 이런 집을 구성하는 벽체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 머릿속 가상의 공간을 실제라고 믿고 아바타처럼 살아간다. 그러므로 ‘이 모든 생각의 틀을 벗어난다면 지금 이 순간의 진정한 나는 무엇인가?’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중요한 의문이 될 것이다.



    이하은(대학생)



    이번 깨어있기는 느낌이 내가 아니라는 것을 이론에서 경험으로 몸소 느끼게된 계기였다. 백일 학교 초반부터 느낌은 내가 만들어낸 것이다, 느낌을 바라봐야 한다, 느낌은 내가 아니다 등의 말들을 많이 들었고 이론적으로는 그게 맞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내가 직접 경험한 부분이 많지 않아서 막연한 부분들이 있었다. 하지만 깨어있기 심화 과정에서 주의에 대해 많이 다루다 보니 느낌이 내가 아님이 좀 더 명확하게 와 닿은 것 같다. 특히 주의에 주의 주기가 가장 도움이 되었다. 내 생각과 감정, 느낌으로 흐르는 주의에 주의를 주면 그 느낌과 나 사이의 거리감이나 틈이 느껴지고 그 사이로 주의가 흘러 그 느낌까지 도달하는 것이 느껴져서 느낌이 내가 아니라는 것이 더 확실하게 느껴졌다.



    또 강아지 사진을 보며 그 사진을 보는 주의가 시작되는 곳과 그 사진을 보는 나에 대한 주의가 시작되는 곳을 찾는 과정을 거치면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냥 여기 있는 나라는 것이 느껴졌던 것 같다. 그런 것 같다고 표현한 이유는 그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수업을 더 듣고 보니 그냥 보고 있는 또 다른 나였을 뿐 진정한 나라고 하는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도 내가 나라고 느끼는 것이 나가 아니라는 것, 그저 나의 강한 주의가 들어간 느낌일 뿐이라는 것은 확실해졌다. '나'라는 느낌이 참 다양하기 때문에 변하지 않는 진정한 나는 따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사실을 알게된것만으로도 나라고 여기는 모습들에 집착하는 마음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이런 사람이기 때문에 이래야 한다는 것들을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 HereNow 2022-02-01 12:37:06   답글 | 수정 | 삭제
    70차 깨어있기 심화 참가후기



    '나'와 '대상'은 따로 존재하지 않으며,

    그 둘의 만남의 결과인 '느낌' 하나만 존재할 뿐이다

    _저절로(화가)



    내가 눈앞의 대상을 본다. 내가 세상을 본다. 이 당연한 전제가 깨어있기 심화과정에서는 흔들린다. 나와 대상이라는 주객관계는 주의의 불균형으로 생겨난 일종의 마음 작용의 결과라는 것이다. 주의가 많이 몰린 곳에서 적은 곳으로 흐름이 생겨나는데, 주의가 많이 몰린 곳이 ‘주’가 되고 적은 곳이 ‘객’이 되는 것이다. 즉 주객관계의 ‘주’에 ‘나’란 이름을 붙인 것이고 이것도 마음의 그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주객관계는 세상을 분별하고 경험하기 위한 마음의 장치이다.



    내가 대상을 본다는 것도 일종의 느낌이다. 내 쪽에서 대상 쪽으로 주의가 흘러가는 느낌이다. 이런 익숙하고도 당연한 흐름을 의식적으로 바꿔볼 수 있다. 대상과 나에게 공평하게 똑같이 주의를 줄 수도 있고, 대상이 나를 바라보도록 주의를 대상에 더 많이 줄 수도 있다. 그 결과로 익숙한 ‘나’의 느낌이 흐려지거나 사라진다.



    이렇게 ‘나’의 포지션은 주의의 흐름에 따라 만들어졌을 뿐이다. ‘나’란 것이 고정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라는 포지션의 느낌을 ‘주체감’이라고 한다면 이 느낌과 함께 대상에 대한 경험기억이 쓰이면서 ‘나’로서 역할하게 된다. 다시 말해, ‘나’는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만나서 주체로서의 느낌(주체감)과 대상에 대한 내 속의 경험기억이 끌어올려져 ‘나’로 작동하게 된다. 결국 대상이 없다면 주체로서의 느낌이나 경험기억이 작동하지 않는, 즉 ‘나’란 것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대상에 대해 느끼는 느낌은 다른 사람과는 다른 내 느낌이다. 똑같이 보고 있는 듯해도 사실 다 다르다. 모두 자신의 경험으로 세상을 보고 있기 때문에 사실의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나’라는 의식적 감각기는 개별적이고 한정적이다. ‘나’와 ‘너’라는 감각기의 종류에 따라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손과 탁자에 비유하자면, 손이 탁자를 만져 생긴 느낌은 손의 느낌도 아니고 탁자의 느낌도 아닌 손과 탁자의 만남에서 비롯된 느낌이다. 우리는 대상을 볼 때 실제 대상을 보고 있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내 기억 속의 경험기억을 불러내 외부 대상이란 자극에 덧씌워 본다. 그러므로 실제 대상을 볼 도리가 없다. 아니 실제 대상의 존재를 증명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결국 탁자는 내 안의 탁자이지 실제 탁자가 아닌 것이다.



    여기서 ‘손’이라는 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손의 경험기억이 ‘나’로서 역할하고, ‘탁자’라는 외부 대상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자극에 의해 내 경험기억 속에서 도출된 ‘느낌’일 뿐이다. 그러므로 ‘손’과 ‘탁자’로 비유된 ‘나’와 ‘대상’이란 것은 개념적 구분일 뿐 각각 따로 존재하지 않으며, 손과 탁자의 만남의 결과인 ‘느낌’ 하나만 존재할 뿐이다.

    HereNow ( 2021-09-25 10:13 ) [삭제] IP Address : 116.35.221.149

    투명한 주의를 발견하다

    _자인(부동산업)



    깨어있기 심화에 대한 기대를 안고 홀로스에 도착하니, 이제는 익숙함과 반가움이 앞선다. 보초 서고 있는 진돗개 태풍이가 짖어대는데 따뜻한 음성으로 맞아주시는 월인님을 다시 뵈니 반가움이 올라온다.

    지난 시간의 핵심인 감지에 대한 아리송한 부분을 복습하면서 확연하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마법 같은 카리스마에 흡수되어 시작부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었다.



    다양한 영상과 함께 생각, 느낌, 감정을 대상으로 한 그 흐름의 중심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 반응에 대한 마음의 작용으로 알게 되는 나와 의식 사이의 간격, 대상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 ‘나’란 주체를 의식하였다. 이때 어디에도 물들지 않은 투명한 주의가 항상 내 곁에서 나의 반응에 따라 나타났다 사라지고 있다는 원리를 알게 되었다.

    대상이 나에게 향하는 주의의 흐름에 연결되어 가늘게 흘러들어오고, 자연의 짙푸른 녹음이 나에게 향하는 깊이를 느끼면서, 대상과 나는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주의를 어느 쪽에 많이 주느냐에 따라 주객이 옮겨 다니고, 보이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고, 잠들어 살아왔던 나에게 이러한 앎이 놀라움으로 다가온다.

    나에게 쏠린 주의를 나라는 것을 제거해 가볍게 하니, 주변의 모든 것이 친화적으로 보이고 더 많이 느껴지게 되니, 내 안에 생긴 작은 공간에서 자유를 맛보았다.

    주의란 생명의 힘이 본질에서 작동하는 것으로 의식으로 표현된 최초의 모습이라는 말씀이 아직도 선명하다. 투명한 주의라는 옷을 입고 또 바라보고 행동할 때 슬픔과 기쁨도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도 새로웠다. 생각에 끌려가지 않고, 투명한 나의 주의를 찾을 수 있는 체험을 하였다. 이런 귀한 체험을 하게 해주신 월인님께 감사드리며 오인회를 통해 다시 뵐 날을 기대해본다.



    도착했을 때와 출발할 때 항상 옆에 같이 계셔주셨던 저절로님 감사합니다.

    메타몽님 아침 감사합니다. 식당 밥도 감사합니다.
  • HereNow 2022-02-01 12:36:08   답글 | 수정 | 삭제
    68차 깨어있기 심화과정 후기



    가원(홀로스공동체학교)



    ‘생각, 느낌, 감정과 함께 깨어있기’라는 큰 틀로 시작한 심화과정은 기초과정을 마쳐서인지 기초 때보다 깊어지고 연습량도 많았으나 어느 정도 따라갈 수 있었다. 일단 느낌을 파악하는 연습으로 사진 수 십장을 빔으로 보면서 화면이 뜨자마자 첫 느낌 잡기를 시작으로 2박 3일 동안 15개 정도의 연습을 체험하였다. 매 연습 후에는 1. 연습한 행동 2. 연습 중 일어난 현상 3. 체험 후 통찰 이렇게 세 가지로 경험요약을 하였다. 요약한 것을 발표하면서 선생님께 점검을 받고 강의를 듣고 다시 경험하기를 반복하였는데 이론으로 배운 것을 실제로 경험을 한다는 것은 쉽지는 않지만 알도록 하는 것에서 살도록 이끌어 주시니 마음과 몸으로 익혀지는 것이었다.



    마음의 작용과 이치를 알고 느낌의 세계가 어떠하며 감정을 어떻게 도구로 써야 하는지 등을 경험하게 되면서 진아, 내 존재인 있음 자체까지도 내려가볼 수 있게 되었다. 생각이나 느낌, 감정 등이 알록달록한 블럭들이라면 그 있음은 그 블럭들을 올려놓은 판과 같아서 변함없이 그냥 있을 뿐이며 생각, 느낌, 감정 등은 그 판 위에 놓였다 사라질 뿐 참 존재가 아니라는 것, 자기 자신이 아니라는 것도 체험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자기 존재는 생각보다 느낌보다 감정보다 크며 그 위의 어떤 상처나 슬픔 등은 왔다갈 뿐 존재에 영향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다.



    동일시에서는 대상의 대상이 되어 내 쪽에서 나가던 주의가 외부에서 들어오는 연습을 하였다. 주와 객이 바뀌니 나라는 것도 하나의 느낌이 되어 분리되면서 대상은 남고 나는 사라지는 경험을 하였다. 동일시가 된다는 것은 거기에 에너지가 실리는 것인데 주의가 많은 곳에서 부족한 곳으로 흐르게 되어 있다고 한다. 즉 에너지가 많은 곳에서 에너지가 부족한 곳으로 흐르는데 짝사랑의 예가 그와 같다고 하셨다. 사랑이 많은 곳에서 부족한 곳으로 주의가 온통 가 있어서 대상만 있고 자기는 없다는 것이다. 둘이 서로 사랑하게 되면 시너지가 나서 둘 다 자기가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는 예는 과거 경험으로도 그 이치를 알 수 있었다.



    주의라는 에너지는 분별하는 에너지인데 이것이 뭉쳐져 있는 것이 동일시이고 이것이 자기신념으로 나타나면 죽음도 불사한다는 것이다.

    우리 안에는 사랑이라는 에너지가 무한하여 네게로 그리고 내게로 서로 흐르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서로를 잊고 사랑만 남을 수 있음을 발견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각각의 연습들이 어찌나 세밀하고 구체적인지 통찰과 함께 간절함이 있다면 삶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겠다 싶었다. 깨어있기 과정에서의 경험들이 마음의 전반적인 구조와 이치와 연결된다는 것을 알고 매번 연습하고 스스로 공부하면서 체험한 것을 계속 논하자는 말씀으로 과정을 마쳤다. 기초와 심화를 합하면 30여 가지가 넘는 연습들이 있었다. 이중 한두 가지라도 제대로 잡고 깊이 들어간다면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겠다 싶었다. 무엇보다 불편한 상황을 느낌으로 느끼고 동일시되어 있다는 걸 깨닫고 생각이나 느낌, 감정 등이 나라는 것과 동일시가 되지 않으면 자유로워질 것이며 빈 마음을 자꾸 습으로 익히면 빠르게 감정 밑의 구조를 바라볼 수 있고 빠져나오기 쉽다는 것과 기준을 넘어가는 것이 자기를 넘어가는 것이란 말씀이 오래 남을 것 같다.



    종교계 어느 어른은 배운 것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기간이 70년 걸리더라고 말씀하셨다. 지식이 지식으로 사용되어 빠져나가는 데 쓰이지 않고 지식이 나도 남도 자유롭게 하는 도구로 쓰이도록 삶으로 사는 것은 이제 각자의 몫이 되었다.

    나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게 어떤 것인지 가르쳐 주시고 보여주신 월인 선생님께 감사를 드린다.





    별빛(사업, 홀로스공동체학교)



    깨어있기 심화라는 강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지난 깨어있기 기초과정의 연속이었다. 기초과정이 주로 사물을 이용한 감지의 기초(접근 방법과 순서에 있어 먼저 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기초라 이름지을 뿐 기초 이상의 과정)를 연습하고 주의에 대한 개념과 주의제로 혹은 전체주의 등을 연습하였다면, 이번 심화과정에서는 주로 내적 감지에 대한 기초과정과 주의 상태의 변화에 따른 감지내용의 변화를 경험하고, 마침내 주의의 본바탕을 알아채는 밑바탕을 구축하는 것까지의 연습 혹은 개론이었다.



    내용의 주제를 잘 체득하고 적용한다면 우선 현실적으로 생각과 감정에 휘둘리며 피동적으로 반응하는 삶에서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대처하는 삶으로 변화하여 살아갈 수 있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본인이 하기에 따라서는 자아를 넘어선 근원의 나를 찾아가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내용 중에서 특히 부모님으로부터 시작하여 이런저런 인간관계, 나를 구성하는 개념, 내 몸, 내 존재에 대한 느낌을 찾고 느낌을 지워나가는 연습을 할 때에는 그동안 이론적으로 들어온 감지의 필요성을 느낌과 동시에 하나씩 지워지며 좁혀져오는 어떤 포위망에 심리적 저항감과 함께 정말 자아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리고 생각에 따라 뇌 속에서 느껴지는 부위를 느끼는 연습도 있었는데 나란 존재가 내 두뇌 속에서 느껴지는 느낌을 느끼고 있음을 느끼며, 나는 뇌가 아니다는 인식에도 이를 수 있었다.



    매번 강의 때마다 느끼지만 월인 선생님께선 이번에도 정장을 갖춰 입고 강의에 들어오셨다. 사실 수강하는 이들이 모두 현재 백일학교나 공동체에서 생활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어 격식을 갖추지 않아도 무방할 터이지만, 옷차림만으로도 수업에 대한 선생님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진지하고도 열정적인 모습으로 진리를 전해주신 월인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HereNow ( 2021-05-20 10:29 ) [삭제] IP Address : 116.35.221.149

    완전히 일상에서 깨어있기를 방해했던 요인을 발견하다

    _이류(약사)



    안다는 생각도, 모른다는 생각도 없는 요즘, 마음공부 특히 선 공부를 오래 한 도반들을 만나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깨어남의 체험 이후 보임을 하는 과정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있었는데 본성의 체험은 했으나 어떻게 그것이 삶이 되고 일상에서 걸림 없는가 하는 것에서 차이점을 보이기도 하였다. 대부분 조사어록을 참고로 하고 화두 1700공안을 계속 타파해나간다는 것이었다. 오래전에 본성을 보고자 하는 절실한 마음으로 한동안 화두를 들고 선을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화두가 해결된 이후에도 삶 속에서 관성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잊고 지낸 터였다.



    이번 깨어있기 심화는 점검의 차원에서 참가하게 되었는데 연습들을 하면서 통찰이 있었고 연습이 어느 정도 잘된다는 것으로 공부가 되었다(?!) 여기고 일상의 습으로 완전히 자리 잡지 못했다는 것이 알아차려졌다. 연습들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예전 화두를 타파하는 방식으로 깨어있기를 해왔었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된 것이다.



    ‘생각, 감정, 느낌과 함께 깨어있기’라는 소제목의 주제와 함께 시작된 주의가 머무는 곳이란 연습에서 시각을 통해서는 대상을 보는 주의의 시작점을 찾으며 결국 전체마저 느껴지는 作者 없는 作用만 있음과 굳이 ‘나’가 드러나지 않아도 대부분의 상황이 조화롭게 되어감이 분명했다. 그러나 선호표상체계가 청각이라 훨씬 예민한 감각인데 청각과 관련하여 소리를 따라가지 않는 주의 중립은 시각만큼 자유롭게 쓸 수 없음이 자각되었는데 특히 오랜 상처를 건드린 사람이나 상황에 처하면 그 순간 ‘나와 대상의 분열’이 일어나는 미세한 감지인 직전직후의 ‘내면의 소리’인 생각의 느낌을 알아채어 잡아낼 수 없었던 것이다.



    또한 오랫동안 심리학을 접하고 심리상담사 자격증을 여러 개 취득하며 그 방식으로 트라우마와 환자를 다루는 것이 습이 되어 문제의 원인을 스토리에서 찾으려고 해왔던 것도 한몫을 했다. 그것이 인간을 이해하는 좋은 방편이면서 동시에 자비심을 갖게 한다는 생각이 굳어져 ‘충분히 경험해야 사라진다’는 신념을 갖게 했고 관련되어 일어나는 생각들을 순간 내가 일으킨다는 착각을 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스토리는 곧 나와 대상, 상황이 만드는 과거를 바탕으로 한 ‘허구 곧 생각의 구조’인 것이다. 그것을 사실로 여기는 마음이 무의식에 있었기 때문에 스토리와 생각에 빠지곤 했던 것이고 깨어있기의 통찰이 완전히 일상에서 자리 잡는 것을 방해했던 것이다.



    그것은 곧 ‘이치는 불변’이라는 사실을 간과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가 ‘비유비무非有非無’이기에 대상과 세계 역시 ‘비유비무非有非無’인 것이다. 통찰이 통찰로서 끝나지 않으려면 이치가 투철해야 하며 일상에서 부단히 구체적인 연습을 통해 익어감이 전제되어야 함과 체계적 점검이 중요함을 이번 깨어있기 심화를 통해 깨닫게 되었으며 귀한 시간이었다. 결국 이치가 강한지 습관이 강한지의 싸움이다. 이치는 불변하며 조화가 전제되어 있고 조화를 추구한다. 아직도 간과하고 있는 이치와 원리는 있는지, 있다면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이번 깨어있기 심화의 경험과 통찰을 정리하고 있다.



    처음 깨어있기 심화를 했을 때 ‘우물이 당나귀를 본다’가 해결되었고 ‘나’에 묶여있던 주의가 풀리면 자연스레 통찰로 연결됨을 확인하였었다. 그러나 그것이 삶 속에서 자유롭게 쓰일 수 없다면 1700공안의 타파가 무슨 득이 될 것인가.

  • HereNow 2022-02-01 12:34:36   답글 | 수정 | 삭제
    66차 깨어있기 심화과정 참가 후기



    조조(회사원)



    몸과 마음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이런 저런 배움을 시작한 지 10여년이 되었는데, 6년 전쯤 부처님 가르침인 불법 쪽으로 방향을 틀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여러 선생님으로부터 ‘무아’ 혹은 ‘나라 할 만한 것이 없다’를 깨달으면 괴로움에서 벗어난다고 들었습니다. 반복해서 설명을 들으면 알 듯도 했지만, ‘나’는 너무나도 있는 것 같은데, ‘무아’라니… 실감이 잘 안되었습니다. 머리로 이해해서 아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고 경험으로만 알 수 있다고도 하는데 그 경험은 또 어떻게 해야 일어 나는지 막연했습니다.



    그러던 중 작년 10월에 깨어있기 기초 과정에 참여하게 되었고, 3달 뒤인 이 달에 심화 과정에 오게 되었습니다. 기초 과정 바로 다음 달에 심화 과정을 듣고 싶었지만, 빠질 수 없는 집안 행사가 있어서 3달 뒤에 오게 되었는데, 그 시간 동안 연습이 된 부분은 연습이 된 대로 도움이 되었고, 까맣게 잊혀졌던 것은 또 다시 신선한 충격이 되어서 또 좋았습니다.



    심화 과정 첫 시간에 ‘앞으로 2박 3일 동안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발견하도록 짜여진 연습을 하는 것’이라고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셨습니다. 끝나고 보니 정말 정교하게 짜여진 연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살면서 경험했던 것들이 어떤 원리로 생겼었는지 정리되었고, 그 동안 명쾌하지 않았던 부분들이 많이 해소되었습니다. ‘나’는 너무나도 있는 것 같은 이 느낌이 왜 생기는지 정리되었고, 비교/동일시/관성 등은 우리를 괴로움에 빠뜨리는 것이어서 나쁜 것인 줄 알았는데, 자연스러운 것,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투명한 에너지 상태인 주의, ‘있음’의 느낌, 어떤 생각에 대해 연관되어 일어나는 뇌의 물리적 느낌을 경험한 것 등이 좋았습니다.



    이 후기는 심화 과정 후 일상으로 돌아온 지 3일된 상태에서 쓰고 있는데, 지금 상태에서는 ‘어떤 생각에 대해 연관되어 일어나는 뇌의 물리적 느낌을 경험’한 것이 가장 유용합니다. 한 번 생각에 빠지면, 지금 필요하지 않은 생각 혹은 이미 했던 생각을 다시 반복하는 것뿐이라는 것을 알아도 중단하지 못해서 생각에 시간을 많이 썼는데 지금은 덜 쓰고 있습니다. ‘음… 내가 지금 이 생각을 왜 하고 있었지?’하고 빠져 나왔다가 바로 다시 아까 그 생각에 빠진 경험이 있으신가요? 생각에서 잠깐 빠져 나왔을 때 그 생각과 연관되어 느껴지는 뇌 부위나 신체 부위에 주의를 돌리면 다시 빠지지 않아 시간을 벌었습니다. 회사에서의 업무 처리 속도도 빨라졌는데, 전에는 ‘아~ 하기 싫다~’라는 생각을 하는 시간이 실제 업무를 하는 시간보다 더 길었었는데 이제는 바로 업무에 진입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깨어있기 심화 과정이 본 게임이었습니다. 마치, 의대에 예과와 본과가 있듯이, 깨어있기 기초 과정은 예비 단계였고, 심화 과정이 본 과정이었습니다. 혹시 기초만 하시고 심화를 아직 안 하신 분이 계시다면 심화 과정을 어서어서 하시기를 강추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HereNow 2022-02-01 12:33:30   답글 | 수정 | 삭제
    금강석과 같은 방편

    - 이류(약사)



    깨어있기 워크숍 이전에 다양한 마음공부를 하며 삼매와 깨어남의 체험을 통해 깊은 평화와 자유를 맛보았었다. 그러나 원리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허무감과 지루함을 시작으로 ‘나’라는 相에 다시 갇혀 몇 년의 세월을 보내며 ‘조주 30년’이라는 막막함 앞에 놓여있었다. 30년을 더 공부해야 ‘나’로부터 완전히 벗어난단 말인가!? ‘나’의 굴레를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화두가 다시 주어진 때였다. 깊은 평화와 자유의 느낌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나 다시 힘든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저 ‘이 자리’에 푹 익숙해져야 한다는 말만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조주어록이나 경전들을 다시 봤고 모든 것이 생각임을 알았지만 타고난 경향성과 그간 쌓아온 습이 끈질겼고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마음에 빈공간이 생긴 것과 지금 이 순간이 다라는 사실, ‘지금 있는 것이 영원한 것이고 영원한 것은 지금 있는 것이다’가 해결된 것으로 공부의 끈을 부여잡고 가고 있는 터였다. 중환자를 보며 약국을 한 지 25년이 지나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쳤고 늘 신경을 많이 쓰며 살았기에 경향성과 습관이 잡히지 않자 더욱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그러나 이때 만난 ‘깨어있기’는 ‘조주30년’이라는 막막하고 답답한 마음을 풀어준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2년 전 깨어있기를 처음 접한 이후로 지금까지 수차례를 하면서 ‘나’라는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있음과 없음을 넘어선 그것이라는 것이 분명해지면서 그간 쌓아온 습과 그렇게 힘들었던 감정들에서 놓여지며 비로소 ‘나로부터’ 자유롭게 되었다.

    이번 깨어있기 심화에서 ‘주의가 머무는 곳’, ‘감정과 함께 깨어있기’ 그 외 주의와 동일시 연습 등을 통해 어릴 때부터 힘들어 했던 트라우마에 선호표상체계인 청각이 깊게 관여하여 힘들어했던 것과 동시에 내면의 깊은 메시지와 자연에 흐르는 생명계, 존재계에서 들려오는 통찰들이 모두 소리로 전달되어 왔음을 자각하게 되었다. 가장 약한 것이 가장 강한 것임을 통찰하면서 각각의 사건 속에 감춰진 커다란 진실이 통째로 다가왔다. 아무리 힘들어도 어떤 것도 버릴 것이 없는 것이다.

    타고난 느낌이 섬세하고 정서적으로 예민하여 감정의 기복이 무척 컸고 감정의 억압과 슬픔이나 두려운 상황에 동일시되기 쉬워 오랫동안 힘들어 했었다. 그간의 깨어있기 연습들을 통해 생각, 감정, 느낌, 그리고 ‘나’와 세계의 실체, 모든 것이 나타난 현상이라는 것이 무의식까지 체득되어 왔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번 깨어있기 심화에서 감정과 함께 깨어있기를 하면서 아무리 힘든 감정이라도 투명한 주의가 가야 감정이 증폭된다는 것, 어떤 것도 ‘나’가 아니라는 통찰이 깊어져 깨어있는 상태에서 어떤 두려운 감정에서도 투명한 주의를 자각하며 직시할 수 있었다.

    ‘깨어있기’는 나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누구에게나 근본적 통찰과 더불어 ‘나’라는 현상과 ‘세계’에 대해 깊이 원리를 터득하게 하므로 자유로 이끄는 혁명적인 방법임에 틀림없다. 근본 통찰이 있다 하더라도 타고난 경향성과 습으로 ‘조주 30년’이라는 보임을 거쳐야 ‘깨어남에서 깨달음까지라는 여정’을 믿고 있는 공부인들에게 금강석과 같은 방편이 되어 더욱 깊이 쉴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그리고 바쁜 현대를 살아가며 끊임없이 분별해야 하는 누구에게나 산 속으로의 도피가 아니라 지금 살아가는 현장에서도 깊은 지혜와 평화를 주는 교과서이자 지팡이가 되어줄 것이다.

    지혜는 끝이 없고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공부임을 알기에 ‘깨어있기’의 지혜와 ‘있음과 없음을 넘어선 나’를 등불로 삼아 끊임없이 정진할 것이다.





    전체에 대한 경험이 구체적으로 표현되다

    -묘솔(백일학교)



    깨어있기 기초를 통과해 나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지만, 일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선생님 말씀대로 ‘모든 파도는 바다지만, 바다는 파도가 아니다.’라는 것은 명징하지만, 바다에서 파도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은 바다가 온전히 겪어내어야 할 삶인 것이다.

    깨어있기 심화 수업은 부처님 손바닥 위에 손오공을 다스릴 수 있는 비기를 전수받는 느낌이었다. 그동안 체험했던 것들의 의미와, 일어난 현상의 구조를 의식화하면서 경험을 재인식할 수 있었다. 전체에 대한 경험은 말로는 제대로 표현할 수 없을 거라고 믿어왔는데 선생님의 말씀을 통해 이론으로, 삶으로 구체화되어 표현되어지니 운동을 멈췄던 위장이 다시 소화 흡수를 시작한 듯 개운했다.

    먹히지 않고, 씹히지 않고, 뜯기지 않고, 제대로 느끼며 먹고, 씹고, 뜯고 맛보는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어 기쁘고, 기쁘다. 감사합니다.





    자동적 주의가 스스로 움직이고 있다

    - 메타몽(백일학교)



    이번 깨어있기 심화 역시 안다는 마음 없이 진실되게 참여하자는 마음으로 강의를 들었습니다.

    강의 구성은, 첫날은 오후에 깨어있기 기초에서 배웠던 감지 복습을 하였고 새로운 감지 연습들을 하였습니다. 그 다음날부터는 사물, 감정과 함께 깨어있는 연습을 했고 마지막 날에는 내가 있음, 동일시 등 나라고 여기는 느낌과 연관된 연습들을 했습니다. 늘 그랬듯이 이번에도 깨어있기의 새로운 측면들을 많이 말씀해주셨습니다.

    첫째 날에 와 닿았던 것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 번째는 자동적 주의가 스스로 움직이고 있음을 알아챈 것이었습니다. 의도적 주의로 어떤 대상을 쳐다보고 있는데 의도적 주의와는 별개로 자동적 주의가 다른 것들을 파악하고 있는 작용이 느껴졌고, 나라는 의도적인 작용은 마음의 작용에서 극히 일부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제가 어떤 것들을 판단할 때 전체를 보지 않고 부분을 가지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었다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특히 얼굴 표정에 대한 느낌을 판단할 때 얼굴 전체의 느낌이 아니라 눈썹의 모양이나 눈동자의 모양 하나만 가지고 그 사람의 전체 느낌이 무엇이라고 판단했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패턴이 어떤 사람의 감정이나 태도를 판단할 때도 쓰이고 있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둘째 날에 와 닿았던 것은 마음속에 상황만 있어서는 감정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기쁨을 느끼려고 했는데 처음에는 커다란 음악 소리 등 주변의 기쁜 상황만 떠올렸습니다. 그때까지는 별 느낌이 없었는데, 그 음악에 다른 사람들과 내가 같이 어깨동무를 하고 춤을 추는 모습을 떠올리니 기쁜 마음이 강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내 안에 일어난 감정은 그 상황과 그 상황 속의 ‘내’가 있어야만 느껴지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셋째 날에 와 닿았던 것은 주의가 닿아서 힘이 실린 곳이 나라는 느낌을 준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도 비슷한 말을 많이 했었지만 이번에는 지금 느껴지는 나의 느낌이 그런 느낌이라는 앎으로 비춰져서 그런지 새롭게 와 닿았습니다.

    이번 깨어있기 심화에서 정말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런 환경을 제공해주신 선생님께 고맙다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와 같이 공부한 도반 분들 덕분에 현상과 함께해도 괜찮다는 것들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인연에 감사하고 앞으로 오실 분들도 원하시는 바 얻고 가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나를 바라보는 연습

    - 도날드(공무원)



    100일학교 과정 중에 깨어있기 심화과정이 두번째이다.

    사실 지난번 이미 학습한 과정인데 새로울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하고 생각하며 임했다.

    과정을 시작하면서 처음들은 것이 ‘행동’, ‘경험’, ‘통찰’로 요약되는 “경험요약절차”이다. 전에도 수없이 많이 들은 내용이지만 이번에는 내가 지금까지 소홀이 한 정말 중요하고 것이라는 것이 와 닿았다. 나는 경험적으로 볼 때 와 닿으면 행동이 바뀌었다. 지난번 100일과정에서 있었던 감지연습의 효과를 경험한 뒤 감지력을 길러야겠다는 결심이 있은 뒤 감지를 하는 마음가짐과 행동이 달라졌다. 그 효과는 의식이 더 미세해져서 더 세밀하고 더 정확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번에도 그럴 것 같다.

    이로서 경험을 동반한 통찰이 가지는 힘을 알게 되었다.

    사진 보면서 감지 느끼기를 하면서 전에 보았던 사진이라 본 기억은 있지만 처음 하는 것처럼 새로웠고 감지가 전보다 더 선명했다.

    그동안 100일학교 과정에서 연습한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표정사진을 보고 나는 다른 참가하신 분들보다 점수가 낮았다. 내가 살아온 방법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물 소리를 물 소리가 아닌 그냥 소리로 듣는 연습에서 소리는 소리대로 들으면서 주의를 나에게 주다가, 주의를 소리에 주다가 또 주의를 주의에 주는 것을 반복하면서 들었다. 참 미묘한 연습이라는 생각을 했다. 또 “빛은 자신의 빛으로 자신의 빛 그림자를 만들어야 하는 것 같은데 가능할까?”라는 느낌이 있었다.

    공포영화를 보면서 “내 마음이 공포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자!”라는 의도를 가지고 보니 몸에서 오는 이런저런 긴장감과 전율은 보였지만 피하고자 하는 경향성은 보이지 않았다. 공포를 보고자 하는 의도를 가진다는 것이 공포에서 벗어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를 체험할 단계가 되기에는 좀 더 사전연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대상을 의식하는 나를 느끼면서 산책하는 과정에서는 나무나 돌 바위 등 경계가 명확한 대상에 대해서는 ‘나’가 느껴졌고 하늘이나 들판 같은 경계가 넓은 들판같은 대상을 느낄 때는 내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산책하는 과정에서 나의 마음상태, 긴장여부, 발걸음의 속도 등이 느껴졌고 이것은 내안에 쌓여있는 그것에 영향을 받는 것 같았다.

    대화하는 상대와 나에게 동등하게 주의를 준 상태에서 대화하는 과정에서는 대화와 질문이 내면에 쌓여있는 것에 의해 자동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거의 확실하게 다가왔다.

    거울에 있는 내가되어 나를 바라보는 연습에서는 설명과정에서 예시를 든 “무엇인가 지켜보는 자가 있다.”는 느낌에 그 무엇인가를 나로 치환하면 된다는 설명이 나를 다가왔다. 이 예시는 생활에서 어떻게 연습을 할 것인지를 알 것 같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번 과정도 ‘깨어있기’라는 모자이크 조각을 맞추는 게임에서 더 많은 빈 부분을 채운 3일이었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이번에도 성심을 다한 대표님의 설명에 감사한다.





    뚜벅 뚜벅 걸어 가려는 마음입니다.

    - 해탈



    2박3일

    많은 것을 했다는 것은 시간이 말해줄 뿐

    남은 것은 없습니다.







    빈병을 발견해가는 과정

    - 저절로(화가)



    깨어있기 심화 수업은 감지연습의 복습으로부터 시작했다. 감지는 대상에 대한 내 마음의 인상을 느끼는 것이다. 외적감지는 외부의 대상에 대해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해서 이름이나 생각이 붙기 직전의, 대상 자체의 느낌을 느끼는 것이라면, 내적 감지는 상대의 눈빛과 같이 마음에 불러일으키는 느낌을 느끼는 것이다. 외적, 내적 감지라고 이름붙이기는 했지만 사실상 내외가 없다. 모두 내 마음 속의 느낌이다. 시각적 대상이 아닌 청각적 대상으로 다시 살펴보자.

    만약, 타인의 ‘지루하네!’라는 소리를 들었다면 밖의 느낌이라 여겨서 남의 느낌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마음속으로 ‘지루하네!’라고 생각했다면 나의 느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사실은 이름표만 다를 뿐 나의 느낌, 남의 느낌 모두 내 느낌이다. 머릿속이냐 귀냐, 소리가 입력된 위치만 다를 뿐 내가 인식하고 내 데이터로 해석해서 느낀 내 느낌이다. 여기서의 나는 개체로서의 자아가 아니라 인식하는 자로서의 나이다. 마찬가지로, 저 사람의 감정과 내가 느끼는 저 사람의 감정은 두 개로 별개의 마음이지만 둘 다 내 마음속의 일이다. 다만 느낌이 나의 느낌이면 동일시된 스토리 속의 나의 느낌이므로 강렬하게 느껴지고, 남의 느낌이면 좀 더 약하게 느껴지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처럼, 내 마음속에 만들어 지는 느낌으로 우리의 세계가 구성되어 있다. 내부의 내 느낌과 외부 대상의 느낌도 하나의 바탕, 배경 속의 느낌이다.

    느낌이라는 것은 검은색, 흰색과 같이 반대 항이 늘 함께 인식된다. 느낌은 대비로 인해 생겨나므로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마음의 세계는 느낌의 세계이며, 느낌은 쌍으로 이루어진 이원성의 세계다. 나라는 것도 느낌이며 마음의 상태일 뿐이다. 주객관계로 인해 내가 생기고, 그래서 내가 주체적으로 무엇을 한다는 착각을 한다. 주의가 나에게 더 많이 몰려서 내가 보고 있다는 주체로서의 느낌을 만들어내고, 이 느낌(주체감)과 대상의 내용(대상에 대한 기억과 경험)이 합해져 이 순간의 나를 형성한다. 그러므로 대상이 있으면 나는 생겨나고 대상이 사라지면 나도 사라진다. 느낌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나를 들여다보면 찾는 마음만 있지 찾는 대상은 없다. 없는데 왜 있다고 느끼고 살까? 순간순간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상들을 보면서 그 대상에 대한 경험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 경험을 나로 여긴다. 삶은 내가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연속이다. 늘 같은 나라고 생각하는 것은 추상적인, 이미지로서, 기억으로서의 나이다. 사실, 대상에 따라 다른 내가 나타난다. 비유하자면, 나라는 일관된 빗줄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빗방울 하나하나가 모여 같은 빗줄기처럼 보일 뿐이다.

    결국, ‘지금’ 경험하고 있는 나만 존재한다. 여러 경험들에서 나라는 가상의 개념을 추출해서 내가 있다고 여긴다. ‘내가 존재한다.’는 허구적 생각이 먼지라고 한다면 그 먼지를 중심으로 수증기가 들러붙어 커진다. 스토리 중에 가장 강력한 것이 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내가 혼돈에 빠지지 않는 건 나(자아)라는 강력한 중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아가 주인 노릇을 하려고 할 때, 자유를 잃는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자아를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한편, 우리는 느낌이 강하면 경험했다고 한다. 느낌은 주의가 가야한다. 사실, 경험은 자극이 아니라 주의에 매였다. 대상에 대한 경험의 99%가 내 주의 때문이다. 대상들의 느낌(정보, 자극)의 차이는 의외로 1%에 불과하다. 외부의 대상뿐만 아니라 의식적 경험의 대상도 마찬가지다. 기억은 청사진일 뿐이고 그 기억에 주의를 쏟아야 생생해진다. 기쁨과 슬픔은 사실 1%의 차이 밖에 안 된다. 거기에 쏠린 주의(에너지)가 99%를 차지한다. 강렬한 감정은 주의의 증거다. 주의가 많이 쏠려서 강한 감정이 일어난 것이다. ‘화’와 같은 감정은 스토리에 기반하고 있고, 그 스토리가 사실이란 믿음 때문이다. 화의 99%가 주의인 것을 알면, 그 1%의 스토리는 즉각 멈출 수 있다. 이처럼, 차이가 아니라 주의, 즉 에너지가 진정한 나다.

    결국, 나와 대상의 만남에서 생겨난 ‘느낌’은 나의 ‘느낌’과 대상의 ‘느낌’이 만나서 만들어낸 느낌이다. 나를 포함한 세상이 실체가 아무것도 없는데 묘하게 느낌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 느낌은 빈병 즉, 배경, 바탕 속에 있고 그 속에선 너나가 없이 동일하게 알아채지고 있다. 빈병은 참되고 나머지는 다 허상이다. 깨어있기는 빈병을 발견해가는 과정이다.
  • HereNow 2022-02-01 12:32:46   답글 | 수정 | 삭제


    63차 깨어있기 심화 참가자 후기



    저절로(화가, 홀로스백일학교)



    나와 나를 둘러싼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은 느낌이다. 심화과정에서는 일단 눈앞의 대상, 생각, 감정 등이 마음에서 일어나는 느낌임을 느껴보기 위해서 여러 가지 연습들을 한다. 대상의 느낌을 마음에서 느껴보기, 생각이 일어나는 느낌을 뇌 속에서 물리적으로 느껴보기, 감정의 느낌에 빠지지 않고 느껴보기 등이다. 이 모든 느낌들은 느껴지는 곳과 아닌 곳의 경계를 지을 수 있고, 그러는 순간 그것은 내 존재 전체가 아니라 하나의 대상, 나의 일부로 위계가 강등된다. 그리고 그 경계 속 느낌을 느끼는 자가 명확해진다. 이처럼,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거부하고 싶은 감정, 생각들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물들지 않는 의식과 함께 깨어있을 수 있는 것이 이 과정의 중요한 지점이다. 다시 말해, 깨어있기는 나와 대상이 함께 깨어있는 것이다.

    또한, 심화과정은 우리의 의식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도구인 ‘주의’를 기초과정보다 심도 깊게 탐구한다. 무언가를 보려는 마음이 주의를 만들고 그 흐름의 방향이 시작점과 도착점 즉, 주체와 객체를 만들어낸다. 우리가 나라고 믿고 있는 것도 일종의 ‘느낌’이며, 그 느낌도 주의의 양과 흐름의 방향에 관계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증명한다.

    나라는 느낌은 주의뿐만 아니라 특정한 방향의 생각 등이 축척되어서도 그 느낌을 공고히 한다. 심화과정은 그런 생각들, 경향성들의 모임이 나라는 것의 실체임을 체감할 수 있도록 돕기 때문에 실생활에서도 나를 묶고 있던 나라는 틀, 생각들이 무엇인지 인지할 수 있다면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자기 내면의 감정들, 생각들을 다 드러내고 거기서 자유로워지기를 함께 고민하는 도반들과 나라는 착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지름길로 이끄는 월인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메타몽(홀로스 공동체학교)

    최근에 마음공부에서 개인적인 변화가 많이 있던 중이라 이번 깨어있기 심화에서는 어떤 통찰들을 하게 될까 기대를 하고 들었습니다.

    강의는 심화라서 그런지 참가자분들과의 대담 후 바로 감지 연습을 시작했고 3일 동안 연습 위주의 과정이 진행되었습니다. 첫째 날은 깨어있기 기초에서 했던 감지를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고 둘째 날은 생각, 감정을 느낌으로 느껴보는 연습을 했습니다. 마지막 날은 있음 연습이 진행되었습니다.

    첫째 날 와 닿았던 것은 느낌이라는 것의 의미를 느낌을 느낄 때 느껴내야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느낌 연습을 많이 하다 보니 그 의미는 흐려지고 기계적으로 느낌만 느끼는 행동이 반복되었었습니다. 느낌이 느껴지는데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가 마음에 없으니 느낌을 느끼는 행동이 집에서 밥 먹고 티비 보는 것과 비슷한 죽어있는 마음이 되었었다는 것을 이번에 의식화하게 되었습니다. 느낌은 사실이 아니라 내 마음의 그림이라는 것, 일시적이고 관계적이라는 것이 이번 심화 과정 중에 다시 리마인드 되었습니다.

    둘째 날 와 닿았던 것은 대상에 주의를 주면 줄수록 주체가 분명해진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이 말은 그냥 이론일 뿐이었는데, 이번 깨어있기 심화 중 어떤 행동을 하면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되는지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경험을 통해 주체를 찾기 위해 주의를 헤매지 않아도 대상에 주의를 주는 힘이 진해질수록 주체가 분명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셋째 날 와 닿았던 것은 제가 그동안 어디서 막혀있었는지를 발견한 것입니다. 여러 연습을 통해서 그동안 왜 연습의 끄트머리에서 항상 나를 놓지 못했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 경우 그것은 나를 온전히 누군가에게 맡기고 의지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연습에서도 나를 완전히 내려놓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 두려움이 주의가 온전히 대상으로 가지 못하고 대상으로 가다가 다시 나에게 돌아오게 만들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온전히 나를 맡기는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번 깨어있기 심화 과정을 통해서 그동안 막혀있던 것들을 해결하기 위해 어느 쪽에 더 마음을 두어야할지 의식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통찰들이 일어날 수 있게 늘 정성을 다해서 강의해주시는 선생님과, 진지하게 연습에 임하는 도반분들이 없었다면 이런 일도 일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런 환경을 제공해주시는 선생님과 성실하게 강의 참여를 해주신 도반 분들께 고맙다는 말씀드리고 싶고 앞으로 오실 분들도 귀중한 경험하고 가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해탈(주부)



    투명함을 보는 것은?

    주의제로에서 공을 느끼는 것은?

    생각의 공간은 항상 변한다.

    나라는 주체도 상태이다.

    과연 도달할 수 있을까하는 아득함을 느낀 토요일이었습니다.

    일요일 주제는 조금 가벼이 지나지 않았나하는 성찰도 해 보며 계단 뛰어넘듯 듬성듬성 걷다 세심하지 못한 성격으로 세밀하게 살필 수 있을까 의아심도 약간 들지만 ‘나’를 아는 일은 무심이면 통할 거라 생각합니다.





    도날드(공무원)



    10년 전에 깨어있기 1회 기초과정과 심화과정의 워크숍에 참석했고 간간이 계절수업에도 참석했다. 시간이 오래되어 많이 잊었지만 깨어있기 과정에서 알게 된 p 가지에 대해서는 그동안 연습은 하지않고 연습하겠다는 마음만 가지고 있었다. 이제 퇴직을 앞둔 사회적응기간을 맞아 시간이 남아 100학교 과정 중의 깨어있기 심화과정에 참여하였다.

    10년 전의 기억이 새롭다.

    어떤 부분은 쉽게 되었지만 어떤 부분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경험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전에 아예 경험이 되지 않아 포기하고 잊었던 “주의제로”가 선생님의 안내대로 따라가다 보니 주의에 대한 경험적 이해가 충분하지 않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주의”에 대한 체험이 있으니, 이제는 주의 조절이 될 것도 같다. 지속적인 연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또 “주체감”의 나타나고 사라짐, “동일시하기”와 “동일시 끊기” 등이 체험연습을 했는데 그때는 되는 것 같았는데 지금은 경험에 대한 기억이 희미하다. 지속적인 안내에 따른 정확한 연습이 필요하다.

    이제 남는 것이 시간뿐이니 깨어있기 교재도 처음부터 소가 되새김질하듯 읽어가며 남은 100일학교 착실하게 공부하고, 이어 “깨어있기 마스터과정”도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워크숍도 참석하고 계절수업도 참석하여 여러번 뵈었다. 뵐 때마다 변함없이 한결같은 모습에 존경의 말씀 같이 올린다.



    주객이란 잠시 만들어지는 마음의 현상

    아소(일러스트레이터)



    요번 심화 과정은 지난 기초에서 배운 감지를 복습하고 생각이 뇌에 일으키는 물리적 느낌 느끼기, 주의는 어디에서 시작되나, 감정, 생각과 함께 깨어있기, 있음으로 있기 그리고 동일시 끊기 등을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요번 과정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거울 속 나가 진짜 나를 보는 상태를 만든 뒤, 밖으로 나가 보이는 대상들에게도 같은 작용이 일어나도록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본 세상은 주의인 에너지를 많이 보낸 곳에서 사물이 생겨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쪽에서 이쪽인 나를 보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어디를 보나 사물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나를 보았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내가 특별히 있는 것이 아니고 주의가 더 많이 모여 있는 곳이 나로 느껴질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현상계는 많은 것에서 적은 것으로 균형을 맞추기 위해 흐르는 것이 기본 원리입니다. 에너지가 많이 모인 곳에서 에너지가 적은 곳으로 흐르며 주와 객이 잠시 만들어질 뿐입니다. 마음은 주체와 대상 그리고 에너지의 흐름밖에 없다고 하신 선생님의 말씀이 다시 한번 체험을 통해 깊게 와 닿았습니다.



    수업하는 동안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신 수디님과 묘솔님, 함께 공부해주신 도널드님, 해탈님, 저절로님, 메타몽님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가르침을 주시려 애쓰시는 월인 선생님께 항상 감사드립니다. 아소, 두 손 모아 _()_
  • HereNow 2022-02-01 12:30:50   답글 | 수정 | 삭제


    62차 깨어있기 심화 후기 2020. 5. 15~17



    평온(전직 교사)

    지난 기초과정과는 다르게 여유를 갖고 한과정 한과정 연습에 임했다. 이번 기회가 월인 선생님과 마지막으로 공부한다는 각오. 다시는 이런 기회가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절박함마저도 있었는데 그 절박함 때문이었을까?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고 다가가려고 했었다. 아직도 통찰이 어렵지만 경험으로 쌓여진 내공을 믿기로 했다.

    그리고 놀라운 발견은, 그동안 내가 ‘투명한 텅빔’, ‘고요한 있음’의 느낌을 본성으로 알고 그것과 동일시 했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는 느낌이 없는 ‘그 있음’과 함께 해보려고 한다. 그리되면 마지막 ‘그것’을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월인 선생님, 감사합니다.



    노래(상담)

    주의를 주는 과정을 느끼기, 그 느끼는 자를 다시 느끼기.

    일어나는 현상은 명료해졌다. 몸안의 어딘가에서부터 모든 것이 점점 명징해졌는데 그것이 깨어있음이었다. 통찰은, ‘나’가 주체이며, ‘대상’도 주체이고 모든 것이 주체이며 동시에 고정적으로 ‘있지 않은’ 작용이었다. 좀더 명징한 경험을 위해 연습하겠다는 것이 큰 소득중 하나이다.



    시온(사업)

    심화과정도 지난 기초과정과 같이 쉴틈없는 시간이었다. 기초때와 같이 여전히 명징하게 경험하고 정리하여 통찰하지는 못했지만 이전보다 익숙해지는 나를 본다. 열강으로 이끌어주시는 월인선생님께 감사드리고 함께 한 선배님들께 감사드리며, 끝까지 함께 햇음에 기쁘게 생각한다. 다시 만날 것을 기대하며.



    저절로(화가)

    이번 심화과정에서는 주의의 방향을 바꿔 나란 느낌을 약화시켜보기도 하고, 주의의 강도를 조절해서 대상의 존재감을 강하게도 약하게도 할 수 있음을 경험했다. 주의라는 것이 방향, 강도, 양상에 따라 다양한 상황과 입장을 연출하는 듯 느껴져서 스스로 좀 더 심도 있는 탐구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우리가 손으로 대상을 만지면 생겨나는 느낌이 대상의 느낌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동시에 손의 느낌이기도 한 것처럼, 의식 또한 사물을 느끼면서 동시에 의식, 즉 스스로를 느끼는 것임을 배웠다. 그래서 감지를 파악하는 일이 중요할 듯싶다. 감지와 같은 마음작용에 대한 통찰은 무언가를 새로이 얻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을 경험적으로 이해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그래서 중성적이고도 집요한 관찰이 중요한 듯하다.

    미지를 향하여 가는 여정에 날카롭고도 자상한 길잡이가 되어주시는 선생님, 함께 동행해 주시는 도반님들께 감사드리고 싶다.
  • HereNow 2022-02-01 08:08:05   답글 | 수정 | 삭제
    61차 깨어있기 심화 후기 2020.03.20 ~ 22



    이류(약사, 깨어있기 마스터과정)

    그간 깨어있기에 여러 번 참석하면서 늘 깨달음의 추구와 강박이 있어 긴장감 속에서 시간을 보냈었다. 마치 시험을 치르는 학생처럼 설렘도 있었지만 부담감도 컸다. 선생님의 안내와 가르침에 몰입하여 임하는 수동적인 측면과 깨달음과 자유를 향한 강렬한 추구가 만나 근본적인 체험과 통찰이 있었으나 오랜 추구하는 습이 무의식에 깊이 쌓여있어 현재를 편안히 누리지 못하고 쫓길 때가 많았다.

    이번 깨어있기 심화는 처음으로 강박적인 추구를 놓고 주어지는 연습들을 느끼고 관찰하며 누린다는 자세로 임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잘해야 한다.’, ‘제대로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려 왔기에 ‘지금 있는 이대로 이미 자유’이며 ‘온전함’에 대한 통찰이 있어도 완전히 풀어지지 못하고 왔었는데 본래의 자연스러움이 회복되어가니 새삼 편안하고 감사하다.

    뇌 속의 물리적 느낌 파악하기와 동일시, 있음·존재감 연습 등을 할 때 결과와 깨달음에 대한 집착 없이 관찰하고 느끼며 하는 것 자체가 ‘나’에 묶여왔던 것이 많이 놓아졌음과 그로 인해 더 편안하고 자유로워졌음이 새삼 알아채졌다.

    ‘이래야 한다.’, ‘해야 한다.’는 생각이 없다면, ‘나’에 주의가 묶이지 않으면, 또한 ‘주의의 움직임과 강도’에 섬세히 깨어있으면 존재는 본래 이미 온전하며 자유로움을, 본래 아무 일 없음을 한 순간의 번쩍이는 통찰이 아니라 연습을 통해 일상의 삶속에서 체득해나가는 것의 중요성이 마음에 다가왔다.

    깨달음의 체험과 통찰이 중요하지만 그 체험이 비로소 ‘공부의 시작’이었음이 일상의 삶 속에서 체화되며 느껴지고 있다.

    ‘나’라는 존재와 다른 모든 각각의 존재들이 독특하고 다양하게 어우러지며 서로에 기대어 하나로 흐르는 흐름임이 담담하고 평온하게 다가온다.

    나, 너, 대상에 고착화된 이름이 없어도 이 모든 것들이 가장 적절하고 자연스럽게 온전히 흘러감을, 그 이후의 이름은 흐름 속에 잘 사용되어질 수 있음을, 그 자유로움을 느끼며 있다.



    아소(일러스트레이터, 깨어있기 마스터과정)

    레벨에 대한 체험적 인식과 용어에 대한 체험적 이해가 아직 확실하지 않아서 수업에서 막히는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나’라는 것이 여러 다른 상태에 있을 때 그리고 ‘나’라는 것이 없을 때 보여지는 세상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나’라는 조건이 달라졌을 때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집니다. 세상은 정말 많은 상태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느낌’이고 ‘느낌’은 둘이 만나 생겨나고 속성은 비어있습니다.

    집에 돌아가 다시 수업 내용을 되짚어 보며 ‘주의에 주의주기’, ‘주의제로’, ‘있음’, ‘감각’ 등등 미묘한 차이로 구별돼 이름 지어진 용어들을 체험을 통해 숙지하고 탐구해 다음 수업엔 선생님의 말씀이 걸림없이 이해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수직적으로도 수평적으로도 연결되고 통합되어 이해가 더 깊어질 것 같습니다.

    함께 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리고 매번 다른 각도의 설명으로 흥미롭게 수업해 주시는 월인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데비

    깨어있기 기초과정에서 했던 감지연습의 복습으로 수업은 시작되었습니다. 감지(느낌)는 복합적인데 한정되게 이름 붙이고 왜곡시키고 삭제시키며 살아왔던 것을 확인하고, 느낌을 물리적인 에너지 느낌으로 느낌으로서 ‘나라는 느낌’도 밖에서 대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느껴지는 내가 있다는 건 내가 전체가 아니라는 것, 느끼는 다른 무엇이 있다는 것을 주의에 주의주기, 있음, 생각 감정과 함께 깨어있기 연습을 통해 체험했고, 앞으로 반복적인 탐구를 통해 확고히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깁니다.

    특히 감정과 함께 깨어있기에서는 감정에 물들지 않는 내가 있음을 발견함과 함께 그 감정들 자체가 없애야 할 것이 아닌 유용하게 사용해야 하는 것이라고 하셨을 때는 왠지 모를 안도감도 느꼈습니다.

    그리고 주체감이 내 쪽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대상에 둘 수 있다는 체험은 내가 보는 이 공간 자체가 내 마음의 세계이며, 이 안에서 얼마든지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 나에게 중심을 주고 살아왔던 것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음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소중한 가르침과 근원을 향해 갈 수 있는 여러 도구를 알려주셨으니, 지속적인 공부를 통해 세상에 좀 더 밝은 영향을 줄 수 있는 개인 존재가 되길 희망해봅니다.

    열정적으로 가르침 주신 월인 선생님과 함께 한 도반 여러분들께 사랑의 마음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은비(다음인간사회연구소)

    한동안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했었다. 이제는 흔들리지 않고 갈 수 있겠지 했는데, 무슨 일을 해야 되고 어떻게 어디서 살아야 하는지 다시 모르겠다 싶었다.

    2년 만에 다시 찾은 깨어있기 심화과정 ‘흔들리고 있다. 저항하고 있다. 비교하고 이다. 아직도 내가 옳다고 생각하고 있다. 틀리면 큰일 난다.’를 들키고 싶지 않아 회피하느라 오래 걸렸을 수 있다. 그럼에도 계속 ‘정리해야 한다. 잘 알아야 한다.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가 있어 참여하게 되었다.

    그동안 주의, 감지, 전체주의의 개념이 생각나기도 하고 연습해본다고는 했으나 명확하지 않았는데 2박 3일간 명쾌한 설명과 연습 과정으로 좀 더 이해가 깊어진 듯하다.

    사람들의 말 행동이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라고 느껴질 때 한편으로는 그 사람의 세계지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바꾸고 싶다 그러면 안 된다 라는 마음이 있어 힘들어졌다.

    내가 보는 세계지. 내 느낌이지 하면서도 그래서 어쩌라고 하며 답답해졌다.

    이번 세미나를 통해서 ‘나’라는 마음, 의식의 구조를 이해하고 경험하면서 ‘이기적, 자기중심적’의 느낌이 달라졌다. ‘그럴 수밖에 없다.’라는 포기나 ‘바꾸어야 한다.’라는 대상이라기보다 나름의 이유가 있는 ‘언어’ ‘표현’에 잘 갇혀버리는 나의 패턴을 확인하면서 ‘표현’이면에 있는 다양함에 주의를 줄 수 있어 경계가 넓어졌다.

    대상이 나를 보는 느낌, 나와 대상의 구별 없는 있음 전에는 이 경험을 하기 전에 그것도 내 생각 내 느낌으로 보는 거야 미리 결론을 지어버려 신선함이 없었는데 ‘개별적인 나’라는 전제를 없애라고 느낌의 세계야 하고 보니 신선하고 새로워졌다.

    공부해야할 테마와 체계 있는 연습도구를 상세히 알려주신 선생님께, 각자의 세계에서 나누어주신 참여자분들의 경험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샛별(간호사)

    이전까지 ‘나라고 생각했던 어떤 것’은 항상 지속되고 변하지 않고 절대 변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하게 믿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심화과정의 여러 가지 훈련들 – 주의의 원천 느끼기, 주의를 내 안에 머물게 하기, 생각과 감정을 느끼고 함께 깨어있기, 동일시 끊기, 주의의 주의를 느끼면서 관찰하기 등 –을 통해서, 내가 나라고 여겼던 것들은 그동안 쌓여진 과거의 경험, 느낌들로 구성되어 있고, 그 느낌들은 다 느끼고 나면 사라지고 또 어느 순간 생겨나고, 주의를 주지 않을 때는 느껴지지도 인식되지도 않는 실체가 없는 것임을 경험하면서 기존의 굳건한 믿음 같은 것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깨어있기 전체과정을 일상에서 꾸준히 연습하고, 일상에서 일어나는 ‘좋다고 생각했던 일에도 나쁘다고 생각했던 일에도’ 적용하고, 충분히 느끼고 겪고, 관찰하고 통찰하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입니다.

    가르침 주신 월인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함께 공부하면서 도움주신 모든 분께도 너무나 고맙습니다.



    매화(홀로스 백일학교 졸업자)

    생각과 감정을 느끼면서 그 느낌과는 상관없는 투명한 주의를 느끼는 것을 중점적으로 연습하고 경험하였습니다. 생각과 감정의 느낌을 알아차리는 투명한 주의가 있고, 그 생각과 감정이 전부가 아님을 확인하였습니다.

    생각이나 감정이 일어났을 때 괴롭고 힘든 것은 그 느낌에 주의가 온통 향해서 그것이 나의 전부가 되어버리기 때문임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 나의 의식이 그것보다 더 넓고 투명하고 큰 존재라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을 때 그 느낌은 전체의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제엽(건축 디자이너)

    두 번째로 참가하는 깨어있기 심화과정이었는데 ‘감정과 함께 깨어있기’를 하면서 감정을 다루는 게 점점 익숙해져간다는 인상을 받았다.

    분노나 슬픔, 두려움 같은 감정이 버겁고 어떻게 다뤄야할지 잘 몰랐었는데 그런 막막함이 많이 해소되었다. 감정들이 느낌이고 신호임이 확실해지니 감정이라는 기능을 ‘사용’하는 방향으로 저절로 바뀌어가고 그것들이 내가 아님이 확실해졌다. 주의에 주의 주기, 거울 보기와 식물을 보며 주의 이동하기, 있음 연습 등을 통해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음이, 소용돌이의 한가운데는 비어있음이, 체험적으로 다양한 각도에서 체감될 수 있었다. 2박 3일 동안 이끌어주신 선생님과 함께 공부한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메타몽(홀로스 공동체학교)

    이번 깨어있기 심화는 의외의 소득이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근래에 마음이 잘 집중이 되지 않고 자유로움이 박탈당한 것 같은 답답함이 있었는데, 그런 와중에도 통찰들이 일어났던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번 깨어있기 심화 역시 첫째 날은 이론 위주, 그 다음부터 연습들을 하는 과정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지난 번 깨어있기 심화를 들었을 때와 달리 이번에 와 닿았던 것은 첫째 날 마음의 세계에 대한 것, 둘째 날 감정과 함께 깨어있기를 한 것과 셋째 날 대상에게 주의를 많이 쏟는 연습을 한 것이었습니다.

    첫째 날 이론 수업을 들었는데 이날따라 외부의 세계라고 느끼는 것은 내 마음의 세계라는 말이 귀에 들어왔습니다. 요즘은 나라는 것이 무엇인지에만 초점이 가 있어서 느끼는 모든 것이 내 마음 안의 세계라는 것에 주의가 많이 가지 않았었는데 모든 것이 내 마음 안의 세계라는 것과 나라는 것이 무엇인가가 서로 연관된 것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나라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마음 안에서 일어나며, 개념들은 실체가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둘째 날 감정과 함께 깨어있기를 하면서는 이번에 처음으로 상대방과 감정을 주고받는다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전까지는 이 연습을 할 때 상대방을 쳐다보지 않고 마음 안에서 혼자 화를 내었었는데 이번에는 상대방과 상황을 공유하고 역할을 맡아서 화를 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화의 강도는 조금 약했지만 좀 더 생생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셋째 날 대상에게 주의를 많이 쏟는 연습을 할 때는 에너지라는 것에 조금 더 의식화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에너지의 중심이 그 순간의 나를 이룬다는 경험이 조금씩 쌓여가고 있었는데 이번 연습을 통해 그런 경험들이 의식적으로 정리되면서 아, 그렇구나. 하는 느낌과 확신, 명확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언제나 정성을 다해 강의해주시는 선생님께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고 싶고, 같이 열정적으로 참여해주신 도반 분들께도 감사하다는 말씀드립니다. 앞으로 깨어있기에 참여하실 분들도 원하시는 바를 얻고 가시길 소망합니다.
  • HereNow 2020-01-20 14:22:52   답글 | 수정 | 삭제


    60차 심화과정 후기 (2020.1.17.-19)



    제엽(홀로스 백일학교 과정)


    백일학교를 시작하고 보름가량 감지연습을 했지만 아직 확실하지 않은 지점들이 있었는데 감지 연습 복습을 하면서 이름 없이 느낌을 잡아내는 것에 점점 익숙해져 갔습니다.

    책으로 볼 때는 주의가 그렇게 중요해보이지 않았는데, 주의를 보내는 연습을 반복하면서 주의에 힘이 있다는 게 점점 느껴졌고 주의의 느낌도 강해졌습니다.

    주의를 느낄 수 있게 되자 생각과 함께 깨어있기, 감정과 함께 깨어있기, 사물과 함께 깨어있기, 오감과 함께 깨어있기가 가능해진 것이 놀라웠습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있음을 느끼는 연습이었습니다.

    완전히 있는 연습이 되지는 않았지만, 몸의 경계가 흐려지고 확장되기도 했고 빨려 들어가는 느낌 후 내가 있음에 대한 것이 체험되어 놀라웠습니다.

    전체적으로 깨어있기 과정이 경험과 이론이 적절히 섞여있어서 체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단단하지 않다는 느낌이 체험마다 점점 많이 느껴졌습니다.

    3일간 수업을 이끌어주신 선생님과 함께 해준 도반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장자(사업)

    그 상황과 조건에 나를 맞추는 것이 자유로움이라고 하셨다.

    2박 3일 동안 주의를 느끼고 여러 가지 공부를 하면서 때론 답답하고 때론 아, 이것이구나 하면서 느끼고 하면서 유익한 시간이 흘렀다. 자유로움을 찾고 싶어서 온 수련.

    감정과 함께 깨어있기에서 마음속에서 가지고 있던 슬픔이 속 시원히 해소된 느낌이다. 마음이 가벼워졌다.

    마음이 가벼워지니 전보다 훨씬 자유로운 느낌이다.

    상황과 조건에 맞추어서 자기를 쓸 수 있어야 한다는 선생님 말씀처럼 이번에 배운 방법대로 열심히 연습해서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 감사합니다.



    자공(교사)

    이번 과정을 신청하고 내려오면서 깊은 의문이 들었다.

    나는 왜 이 과정을 신청했나? 신청 안하면 3일 동안 놀 수 있는데 뭐 하러 이 힘든 걸 하러 오는 걸까

    하지만 과정을 하며, 그 이유는 삶에 대한 깊은 사랑과, 이 생에 주어진 탐구의 기회를 충분히 감사하고 누리기 위함임을 알았다.

    이번 과정에서 가장 와 닿았던 연습은 생각을 느낌으로 감지하는 것이었다.

    평소 생각을 지켜보려는 의도가 있어도 많이 휩쓸리는 편인데, 그 이유가 생각을 느낌으로 느끼지 못하고, 같은 차원에서 다루었기 때문임을 경험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이 공부의 과정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같은 자리를 맴돌던 이유가 파악되니, 앞으로의 탐구의 길이 명료해지며, 시야가 밝아진 느낌이다.

    치밀한 연습 과정을 통해, 마음의 실체를 탐구할 수 있는 길을 안내해주신 월인님과, 함께 탐구의 과정을 경험했던 도반님들께 감사한다.



    저절로(화가)

    2박 3일 동안 밀도 있게 진행된 깨어있기 심화과정은 생각, 느낌, 감정 등 생활에서 늘 경험하지만 휘둘리고 다루기 힘들었던 것들이 내가 아니라 대상일 뿐이란 것을 증명하고, 그것들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함께 깨어있을 수 있도록 연습을 통해 체득할 수 있도록 한다.

    나라는 것 또한 단지, 생각, 감정과 같은 불연속적인 느낌일 뿐이라는 사실을 실험적으로 증명하므로 수용하기가 수월하다.

    심화과정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실험들은 그동안 일상에서 흘려보낸 사소한 경험들을 다시 진지하게 경험해보고 의식의 미세한 조건 변화로도 큰 통찰을 이끌어 낼 수 있음이 흥미롭고 놀라웠다.

    통찰의 힌트들은 일상에 늘 드러나 있었는데 관성적 태도로 삶의 진리들을 놓쳐버리고 살고 있었다.

    늘 외부로 향해있던 의식의 주의를 내면으로 향하도록 이끌어주고, 이제 내면을 탐험해 보려고 마음을 낸 이들에게 친절하고도 세심한 지침들을 제시해주는 강의 내용이 반갑고도 고맙게 느껴진다.



    수디(승려)

    깨어있기 심화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관찰은 ‘사물과 함께 깨어있기’였어요.

    그 전에도 사물을 보면서 그 사물이 느껴지기 위해서는 주의가 쓰여야 하고 그것의 도드라짐이나 특별함은 그 자체가 아닌 주의의 투명한 힘 때문이라는 통찰은 있었는데 이번 경우는 좀 더 면밀한 관찰이 일어났어요.

    의자에 앉아 내가 사용하는 방을 떠올리고 방안의 사물하나를 떠올린 뒤 그 사물에 주의를 주어보았어요. 그러자 방과 스탠드라는 관계 속에서는 스탠드가 뚜렷하게 떠올랐는데 스탠드 하나만을 떠올릴 때는 점점 희미해지면서 그것이 명확히 규정되지 않았어요. 이 연습을 통해 우리가 사물이나 마음에 떠올린 감정 생각은 그것 자체만을 보거나 느끼는 게 아닌 다른 것과의 관계성이나 경험을 통한 차이에 의해 느껴지는 상대적인 느낌의 세계라는 것이 와 닿았습니다.

    흰색/검은색이 다르다고 인식하고 나와 세계가 대립되어있다는 인식은 감각기관으로 인해 경험되는 느낌이라는 것. ‘나’도 그런 관계성 속에서 나타난 현상, 경험되어지는 것이라는 것, 분리된 실체라는 것은 애당초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된 시간이었어요.



    메타몽(홀로스 공동체학교 과정)


    이번 심화는 오랜만에 듣는 것이라 그런지 기대가 되었습니다. 특히 최근에 있었던 경험들이 심화와 만나 어떤 모습으로 드러날지 궁금증이 있었습니다.

    3일간의 연습 중에 첫날 가장 와 닿았던 것은 표정을 보고 느낌을 느끼는 연습을 했던 것이었습니다. 표정을 보았는데 감정이 느껴지기 이전의 표정과 이후의 표정이 구별이 되어서 느껴졌습니다. 이번 경험을 통해서 감정을 드러내는 표정도 감정의 느낌 이전에 감지적인 표정의 느낌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둘째 날은 신념 느끼는 연습과 감정 느끼는 연습 등을 했는데 감정 느끼는 연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깨어있기 심화를 시작하기 얼마 전부터 계속 감정들이 올라와서 감정이란 주제에 대한 관심이 있었는데, 이번 연습을 통해서 내가 감정의 기반이 되는 상황들을 실재라고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감정들이 힘을 발휘했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셋째 날은 산책하면서 주의를 연습했던 것이 가장 와 닿았습니다. 산책을 하면서 커다란 나무를 보았는데 그 느낌이 굉장히 크게 느껴졌고 그동안 내가 마음의 크기를 나 주변으로만 아주 작게 느끼면서 살아왔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살아가는 공간에 대한 마음의 크기는 제한 없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깨어있기 3일 동안 전반적으로 새롭게 와 닿은 부분이 있었습니다. 둘째 날부터 나처럼 느껴지는 것과 아닌 것의 차이를 만드는 환경이 무엇일까에 대한 관심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 날 마음에 일어나는 것들을 바라보는 연습을 하다가, 바라보는 의도도 일어난 현상이며, 그런 의도들이 비쳐지는 상태 역시 일어났다가 사라짐이 반복되는 동적인 모습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어떤 상태라고 하면 고정적인 어떤 행동이나 상황이라고 여기고 있었는데 실상은 그게 아니라, 늘 변화하는 연속에서 모든 상태들이 나타나는 것이라는 것과 그런 변화들의 느껴짐 자체가 이미 변화와 관계없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번 깨어있기 심화를 통해 많은 것들을 새롭게 통찰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귀중한 기회를 조건 없이 제공해주시는 선생님께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같이 참여하셨던 도반 분들 덕분에 함께하는 의식의 장 속에서 소중한 통찰들이 일어났던 것 같아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앞으로 오시는 분들도 의미 있는 통찰들을 얻고 가셔서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여실 수 있게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 HereNow 2020-01-20 11:00:40   답글 | 수정 | 삭제
    58차 심화과정





    메타몽(홀로스 공동체학교)

    깨어있기 기초보다 상대적으로 적게 들었던 심화 강의여서 그런지 기대가 되었습니다. 특히 뭔가 그동안 내적인 변화들이 많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이번 심화 강의에서는 어떤 점이 또 새롭게 와 닿을지 궁금했습니다.

    첫째 날 인상적이었던 것은 사람의 표정을 보고 그 사람의 감정을 맞추는 연습이었습니다. 사람의 표정을 먼저 보고 그 느낌을 떠올리면서 감정을 떠올렸을 때와, 감정 단어를 먼저 보고 사람의 표정을 보고 그 사람의 감정이 뭔지 생각했을 때 느낌이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예를 들어 표정의 느낌으로만 먼저 보고 이 사람이 화났겠구나라고 생각한 후 감정 단어를 보았을 때는 그 사람의 얼굴이 계속 화나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두려움이란 단어를 보고 사람의 표정을 보면 그 사람의 표정이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표정의 어떤 느낌에, 내가 특정한 감정의 느낌을 덧씌워서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의식적으로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편견을 가지고 상대방을 보면 정말 상대방이 그렇게 느껴질 수밖에 없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확장하면 내가 보는 모든 것들이 실제 모습이 아니라, 내가 가진 일종의 편견에 의해 보이는 것들이겠다는 것이 와닿았습니다.

    둘째 날 인상적이었던 것은 대상과 함께하는 주의를 느낀 것이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주의를 어떤 투명한 이미지로 이미지화해서 느꼈던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연습을 통해 내가 보고 있는 그 느낌 자체가 이미 주의의 느낌임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대상과 함께하는 주의가 사물, 생각, 감정을 느끼게 해주고 대상의 내용과 관계없이 주의 자체의 속성은 늘 변함없이 존재한다는 것이 와 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경험을 좀 더 체화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셋째 날 인상적이었던 것은 주의를 대상 쪽에 더 쏟는 연습이었습니다. 그 연습 후 산책을 했는데, 바깥에 보이는 것들의 느낌들이 가슴에 내려 꽂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또 대상에 주의를 주면 줄수록 나라는 느낌이 흐릿해진다는 것을 의식적으로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나라는 느낌에 몰린 에너지 중심이 대상들로 퍼져나갔을 때의 상태를 경험했고, 나라는 느낌에 에너지 중심이 몰린 것도 역시 하나의 상태일 뿐 절대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번 심화 과정 덕분에 앞으로 어떤 부분을 좀 더 연습해야할지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참 감사한 시간이 되었고 이러한 과정을 늘 새롭게 전달해주시는 선생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또 같이 프로그램을 참여했던 분들 덕분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연습과 강의를 들을 수 있어서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아직 심화에 오지 않으신 분들도 기회가 되신다면 참여하시어 원하시는 결과 얻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이 글을 보시는 모든 분들이 행복하시길 소망합니다.



    매화(백일학교

    두 번째 깨어있기 심화를 들었다.

    이번 심화에서 배우고 경험하고 알게 된 것들이 많았는데 가장 인상 깊었던 통찰은 내가, 개인이 아니라 전체라는 것, 나의 세계가 전체라는 것, 주의의 작용으로 인해 주체와 대상의 분리가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주의에 대한 갖가지 연습을 통하여 특히, 주의가 시작되는 곳을 할 때 주의의 시작점이 어떤 부분이 아니라 전체에 있음을 경험한 것이 놀라웠고, 주의 50:50, 거울을 보며 있음 연습, 주의의 변화를 통해 대상이 주체가 되고 내가 대상이 되는 경험을 통하여 주의의 모습에 따라 주체와 대상의 분리감이 생기고, 에너지(주의)가 많은 곳이 주체가 된다는 것, 그리고 저 멀리까지 주의가 가고, 대상들이 느껴지는 것이 주의가 가기 때문이고, 이 세상이 나의 세계 속임을 느끼게 해주었다. 생각, 감정 또한 주의가 향하면서, 주의가 향하면 향할수록 진하게 느껴지는 것이 확인되면서 그 느낌들 속에 그것을 느끼는 바탕, 투명하고 물들지 않고 어떤 내용도 없음이 함께한다는 것을 경험하였다. 내 안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말이 이런 것일까. 그리고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지고 있다. 일어나는 경험과 느낌에 의해 삶을 느낌대로, 흐름대로, 만남에 의해 살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미 자연의 섭리 속에 살아가고 있음을 통하여, 내 삶이 아니라 이미 자연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주의 50대 50으로 사람과 대화를 하자, 상대방이 ‘나’ 같고 나와 너가 없는 상태가 됨을 경험하면서 ‘나’와 ‘너’는 만들어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지(대학생)

    이번 과정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주의에 관한 것이었다.

    사물과 함께 있는 투명한 주의를 느끼기 연습과, 투명한 주의가 있음을 확인하는 연습이었다. 그리고 주의 50:50이나 주의를 대상에 쏟기 등의 주의 연습이었다.

    먼저 사물과 함께, 사물에 가고 있는 주의를 느끼는 연습에서는, 대상의 선명함이 결국 주의의 강도, 양의 차이일 뿐, 이 대상과 저 대상에 가는 주의의 질적인 차이는 없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것의 모든 의미를 다 알진 못했지만 새롭게 다가왔고, 여러 의문들을 남겨주었다. 이 연습을 해 보면 대상 간의 다름은 거의 느껴지지 않고 다 비슷한데, 다만 주의의 양적인 차이만 느껴져서 왠지 주의가 이미 많이 갔던 대상과 오늘 처음 의식적으로 확인하여 주의가 덜 가는 느낌, 낯선 느낌이 드는 대상이 구별된다. 이를 통해 주의의 양에 따라 자연스러움과 낯섦이 느껴진다는 것을 조금 느꼈다.

    다음으로 투명한 주의가 있음을 확인하는 연습은 말을 하든 움직임을 하든, 생각이든 느낌, 감정이든 모든 느낌들과 함께 투명한 주의가 확인됨을 알 수 있었다. 쉽게 말해 그 느낌이 전부가 아니고, 이미 계속 나오고 있는 투명한 주의가 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위의 연습과 마찬가지로 충분히 더 연습해야겠다. 마지막으로 여러 주의 연습을 통해서는 존재란 무엇인가? 나 또는 존재라는 것과 주의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정리하면 이번 과정을 통해서 “주의”라는 것에 대해 여러 의문과 질문들이 생겼다. 그간 감지 연습에만 정성을 들였고 느낌에만 포커스 맞췄는데, 이젠 주의라는 것에도 주의를 기울여 탐구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는 것에 대해선 좀 더 세밀하게 느꼈고, 아직 모르는 것에 있어서는 새로운 질문이 생겨 좋았다.



    수연

    과정에 참여하기 전엔 항상 잘 못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과 새로움을 접하는 설렘을 함께 느끼며 긴장을 하다가 막상 수업에 참여하면 자신을 잊을 만큼 몰두하면서 혼자만의 황홀함을 맛보곤 합니다.

    깨어있기 기초 과정보다는 더 수월하다는 느낌이었고 사물과 함께 깨어있기, 사물 보며 깨어있기 등을 통해 투명한 주의가 나와 늘 함께 있었음을 알고는 감동이 밀려왔다. 투명한 주의와 함께 감정에 빠지지 않고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생각과 함께 깨어있기에서는 생각에 물들지 않은 투명한 주의를 느끼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자유를 향해 한걸음 더 가까이 내딛음에 감사드리며 다음 번에 성실한 연습 후에 참여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여나(교수)

    주의에 주의를 보내는 연습을 통해서 시각/청각에서 대상에서 떨어져서 투명한 주의가 가는 것을 느낌.

    감정의 1%는 색깔이며 나머지 99%는 주의 에너지이므로 주의를 조절함으로써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감정을 느낌을 알 수 있었다. 대상(사물)에 대해서는 투명한 주의가 쉽게 느껴졌으나 감정에 대해서는 투명한 주의를 보내기 힘들었다. 특히 소리로 오는 두려움과 갑작스러운 영상이 주는 두려움에는 투명한 주의가 안 되고 쉽게 빠져들었다. 투명한 주의 연습이 필요함을 느꼈다.

    생각 느끼기를 통해서 내가 생각이 많고 복잡함을 느꼈고 그래서 물리적으로 느끼는 것이 쉽지 않았다. 나중에 다시 훈련해야겠다.

    거울보기를 통해서 이미지가 변함을 관찰했고 이미지와 내가 분리된 경험과, 보고 있음이 독립적으로 존재함을 느꼈다. 거울 안 거울 밖 모두의 모습이 허상임을 알고 오직 보고 있음만 있었다.



    수디Suddh(승려)

    오랜 시간 ‘나’라는 견고한 구조물을 만들고 그것에 동일시하는 만큼 알 수 없는 고통이 생겨났습니다. 고통에 직면하여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 속에서 많은 영적 과정을 거쳤는데 그것의 기본 구조가 바로 주/객의 대립구조였고, 깨어있기를 통해 주/객이 어떻게 일어나고 바뀔 수 있고 또 소멸될 수 있는지를 경험하고 그 경험의 의미를 통찰하는 과정 속에 ‘나’라는 견고한 틀이 흔들리고 그 흔들리는 틈새 속에서 ‘나’에서 벗어난, 불균형의 세계 속에서 조화와 균형이라는 큰 그림 속에서 존재가 흔들려도, 불안해도 괜찮은 절대성과 상대성이 함께하는 조화로운 세계의 맛을 언뜻언뜻 경험되는 벅찬 시간들이었습니다.



    아소(일러스트레이터)

    느낌은 마음속에 만들어진 에너지 배열이고 ‘나‘라는 느낌도 미묘한 패턴이 생겨있는 에너지 배열이라는 말씀을 듣고 ‘나’라는 느낌에 경계를 그리니 더 확실하게 느껴졌습니다. ‘나는 없다.’라고 알면서도 항상 나란 것이 있게 느껴졌는데 그것이 느낌에 불과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주의에 대한 탐구, 주의의 나툼, 주의가 쓰이고 있는 것, 주의는 하나의 생명이 발현된 것, 개별적이라고 생각되지만 한꺼번에 주의가 발현되고 있는 것, 주의에 주의를 기울이고, 주의가 뭔지 알고, 주의를 느끼고, 주의를 경험하고, 주의를 맛보고, 주의를 탐구하고... 라는 말씀을 하실 때는 주의가 얼마나 다양하게 쓰이고 있는지 호기심이 생기면서 보이지 않는 주의를 연구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물과 함께 있는 투명한 주의를 보았고 주의를 더 많이 보낼수록 선명해지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대화를 할 때도 나와 상대에게 주의를 얼마나 두느냐에 따라 대화의 내용이 나의 관념 속 드라마로 느껴지는지 객관적으로 느껴지는지 정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생각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의식하지 않으면 끌려 들어가기 쉬운데 생각이 있을 때 주의가 가서 머리의 물리적 느낌을 느끼면 지금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생각은 다양하게 보이지만 주의의 표현일 뿐이다.’란 말씀에 생각과 함께 있는 주의를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양한 감정과 함께하는 주의 느끼기에서도 항상 있었지만 의식하지 못했던 변함없는 투명한 주의를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연습은 ‘있음’을 연습할 때였습니다. 거울을 보며 나라는 느낌을 주의제로 하고 나라는 느낌이 없는 있음을 느끼며 모든 것을 바라봤을 때 사람과 물건들, 보여지는 모든 것이 모두 평등하게 보였습니다. 그리고 매 순간이 새로 만들어지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예전에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는데 어떻게 그 상태가 되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연습을 하며 깨어있는 의식 자체가 되었을 때, 주의에 주의를 두었을 때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유익했던 체험은 나에게 느껴지는 모든 것에 경계 짓고 ‘주의제로’ 했을 때였습니다. 명상을 통해 빈 마음으로 있을 때의 편안함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저도 모르게 생기는 것이 바로바로 내려놔졌었는데 하나하나 느끼며 ‘주의제로’하다 보니 필요한 것에만 주의를 줘서 만들고 잘 쓸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나에게 느껴지는 것은 필요한 것을 찾으라는 신호이기 때문에 어떻게 해결할지 방법을 찾아야겠구나 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공부하는 기간 동안 아침마다 맛난 커피를 만들어주신 수디님, 그리고 함께 공부해주신 분들 고맙습니다. 그리고 제 공부에 부족했던 의식화하는 과정을 강의와 연습을 통해 알게 해주신 월인 선생님께는 어떤 말로도 감사의 마음을 전할 길이 없네요. 정말 많이 감사드립니다.

    두 손 모아 _()_





    물방울

    여러 번의 깨어있기 심화 과정을 반복하면서 늘 새롭게 와닿는다는 사실에 요번에도 참여하며 참 신기하고 재미있는 현상들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번 과정에서는 경이로운 체험까지 하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 주의에 대해 다양한 각도에서 해주시는 월인 선생님의 말씀과 실습을 통해서 의식이 작용하는 선명한 주의를 느끼게 되었으며

    *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나 '라는 주인공을 만들어 놓고 동일시되어서 내 틀의 내 세상 속에서 나를 지키려고 희로애락을 겪어내지 못하고 힘들어했던 모습들이 영화필름처럼 스쳐가는 것을 보며 애처로웠으며

    * 주의가 머무는 곳을 찾고 시작점을 찾아서 돌아오는 회광 관조( 나간 빛이 빛을 향해 돌아오는 것)를 느꼈으며 발원지로 돌아와 하나 됨을 느끼고 주의가 가는 곳이 에너지가 많이 가서 주체( 나)가 되는 것도 느끼고

    * 현상이 내가 주는 주의에 따라서 생겨나는 것을 알게 되고 주위라는 것이 눈에서만 이 아니라 온몸으로 나가는 것도 느끼고 주의가 어디에나 똑같이 가며 끌려가는 것에 따라 달라짐도 느꼈으며

    * 감정은 1%이고 주의 ( 에너지)가 99% 감을 알고 감정에 에너지를 빼면 감정에 쉽게 휩쓸려가지 않을 것 같아서 기쁘게 되었으며

    * 주의가 가는 곳을 찾고 주의제로 하니 몸도 마음도 릴랙스 되고 편안해졌으며 빈 마음으로 가서 너무 좋았습니다.

    * 투명한 주의를 바탕으로 불안. 두려움. 기쁨. 환희 등 모든 감정들이 오르내리는 것을 느꼈으며

    * 기쁨 환희를 몸 전체 집안 가득 함양 남한 지구 우주로 확장시켜보니 더욱 확장되어 커지며 진동이 강하게 울려서 개인적인 차원에서 보다 우주 전체로 갔을 때 더욱 강해지고 커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 대화로 주의를 주는 것에 따라서 너와 내가 없이 하나가 되어서 말 없어도 통하는 것 같았으며

    *거울 보기를 하며 내 얼굴을 보니 친숙함과 감사가 올라왔으나 주의 제로를 하니 몸은 안 느껴지고 낯선 얼굴만이 있고 '있음'으로 소나무 숲으로 다녀오는 데 있는 그대로 바람 비 자연과 하나이므로 같이 했으며 태풍을 겪어내며 묵묵히 서있는 자연 속에 함께 있으며 우산을 쓰고도 비바람이 온몸을 통과해서 가는 것을 느꼈으며 나목이 되어 그 속에서 살고 싶었습니다.

    * 거울 속에 내가 거울 밖에 나를 보는 것을 느꼈으며 내가 흐려지고 없어지는 것을 느꼈으며 나무들에게 주의를 100% 주니 내가 없었다... '있음'일 줄 알았는데... 내가 대나무가 되고 목련이 되고 돌이 되고 매화가 되었다. 그것을 보며 ' 고정된 나는 없구나'를 느끼게 되고 주의가 강하게 가는 모든 것이 내가 됨을 느꼈으며

    * 내가 주의를 어디에 두고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내가 만들어지며 내 틀의 내 세상 안에서 살아가며 현상에서 모든 일들이 일어남을 알게 되었으며

    * 현상에 모든 일들이 내가 만든 일장춘몽이라면 아름답게 모든 것들이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모두가 행복한 꿈속 세상에서 함께 하고 싶다.

    * 2박 3일 동안 밤 11시 30분까지 열정적으로 직접 체험하며 느끼고 통찰로 닿아지도록 도와주신 월인 선생님께 깊은 감사드립니다! 함께 공부하며 서로를 성장시켜준 소중한 인연 도반들과 느낌과 통찰이 일어나도록 도와준 모든 존재들에게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HereNow 2019-08-03 08:01:25   답글 | 수정 | 삭제
    56차 심화과정



    이다(깨어있기 마스터과정)

    새롭다. 매번 새롭다.

    수업을 통해 다양한 경험들이 일어난다.

    주의가 머무는 곳.. 주의의 시작점을 연습하였다. 두달 전에 이 연습을 할 때는, 그 자리를 아는 것과 그 자리에 있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 경험되어졌다.

    이번에는 “주의가 시작되는 점을 느끼세요. 주의의 느낌에 빠지세요.”라는 멘트를 따라가면서 어느 순간 풍덩하였고 파앙~!! 하면서 이 몸도, 주변의 공간도 주의였다. 선생님이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이 몸과 시선을 마주칠 때 오인회를 하면서 경험되었던 관조상태와 비슷했다. 나의 눈이라는 감각기관을 통해 선생님을 비추고 있었다.

    이번 수업에서 돌을 대상으로 했을 때의 나의 느낌과 커튼을 대상으로 했을 때의 나의 느낌은 분명히 달랐고, 명확한 사물을 대상으로 했을 때 나라는 느낌에 경계 짓기가 수월했다. 잠자기 전에 누워서 ‘느낌을 지켜보는 나라는 느낌’에 경계 짓기를 하려고 하면 할수록 ‘주체의 느낌’은 사라지면서 잠들어버리곤 했다. 대상이 희미했던 것이었지 간절함 부족이 아니었다. 대상과 주체 사이의 관계를 의식하는 것으로 초점을 옮기기로 했다.



    매화(백일학교)

    깨어있기 심화과정의 핵심 목표는 생각, 느낌, 감정과 깨어있기였다. 기초 과정에서 의식의 구조와 함께 주의, 감지, 감각 연습을 했었는데 이번에는 주의, 감지, 감각을 익히고 연습한 것을 토대로 생각, 감정을 느끼고 그것을 느끼면서도 생각, 감정에 빠져들지 않고 깨어있는 것을 연습했다. 첫 모임 때 각자가 생각하고 경험한 감지의 정의를 말했고, 그 시간에서 참가자별로 경험한 다양한 감지의 차원을 알게 되었다. 그 감지의 정의를 들으면서 ‘마음으로 구분되는 것은 다 감지다.’ , ‘마음에서 잡히는 모든 것이 감지다.’, ‘2분열, 3분열도 감지다.’라는 표현들이 인상깊게 느껴졌다. 기초과정을 듣고 감지연습을 할 때 물건이나 자연의 외부대상을 가지고만 연습을 했었는데 이제는 생각과 감정, 마음에서 느껴지는 모든 것이 감지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하니 놀라웠다.

    심화과정을 듣기 전까지 나의 상태는 감지를 할 때 대상을 보고 느껴지는 내 마음에 느낌이라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는 단계였고, 마음에 대상이 잡힐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는데 심화 때 감지연습을 복습하면서 대상이 마음에 느낌으로 느껴지는 것이 더 명확해졌다. 대상이 외부에 있는 것 같지만 결국 내 마음 안에서 하나하나 분별이 이루어져 이미 보는 순간 느껴지고 있다는 그 대상마다 느껴지는 느낌이 다르다는 것을 앎으로써 감지를 마음의 느낌으로 잡아낼 수 있게 된 것이 첫 번째로 얻은 큰 소득이었다.

    감지연습 후, ‘생각과 함께 깨어있기’와 ‘감정과 함께 깨어있기’, ‘있음’을 느끼기, ‘나를 주장하지 않는 대화’ 순으로 진행되었다.

    ‘생각과 함께 깨어있기’에서는 생각이 떠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새로웠다. 생각이라는 것이 뇌에서 주로 일어나는 현상인데 그것이 뇌의 전두엽, 후두엽, 측두엽, 신피질, 뇌간 등의 뇌 부분 어느 곳에서 느껴지는지를 체험하였다. 정수리나 두피 같은 피부는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두피의 속까지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와닿지 않았는데 설명을 들으면서 우리가 손등을 때리면 겉뿐만이 아니라 피부 속까지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뇌의 표면이 아니라 안쪽 부분까지도 느낌이 있다는 것을 일차적으로 알았고, 여러 가지 지시어를 통해 생각을 떠올리면서 생각이 머릿속에서 느껴지는 것이 정말 새로웠다. 그리고 지시어마다 느껴지는 머리의 부위가 다른 것을 통해 생각이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생각이 많아서 고민이었는데 생각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희망적인 발견이었다. 생각의 느낌에 깨어있는 훈련을 지속적으로 한다면 생각에 휘둘리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느낌으로 알아차리고 그 생각에 끌려다니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감정과 함께 깨어있기’에서는 화, 슬픔, 기쁨과 같은 감정들을 일부로 일으켜서 그 안에서 감정을 느끼고, 감정이 일어나도 그 영향을 받지 않는 주의를 느끼면서 감정 안에서 깨어있는 연습을 했다. 기초과정과는 다르게 심화에서 주의가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생각과 감정들을 느낄 때 그 감정에 물들지 않는 ‘투명한 주의’, 항상 변함없는 주의를 의식함으로써 내 안에 일어난 감정이 전부가 아님을 그것은 일어났다 사라지는 존재임을 인식하는 훈련을 하였다. 화를 내는 훈련을 했는데 화를 내니까 몸에 타는듯한 느낌이 일어나면서 나도 모르게 ‘아, 이것이 화라는 느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 화를 느끼게 되었다. 화의 느낌이 느껴지니 화에 매몰되지 않고, 화가 안 나는데 화를 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연습이 끝나자 그 감정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가 있었다. 이것을 보면서 연기를 하는 배우들이 연기상태에 들어갔다가 그것이 느낌임을 안다면 쉽게 빠져나올 수 있겠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감정을 내는 연습을 하면서 낯선 사람들 앞에서 화를 내고, 슬픔을 깊이 느끼고, 기쁨을 느낀다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있음’을 느끼는 연습은 내가 잘 되지 않았던 연습이라 ‘있음’을 느끼고 그 느낀 상태로 산책을 하고 오는 것이 미션이었는데 ‘있음’에 대한 느낌이 유지되지 않으니까 산책을 가지 못하고 그 상태만 계속 느끼려고 했었다. 완벽하게 되지는 않더라도 스스로를 믿고 이렇게든 저렇게든 시도해보았다면 다시 될 수도 있고, 다른 경험을 하게 될 수도 있는 건데 너무 처음부터 확실한 것을 추구하다보니 연습을 폭넓게 못한 것 같아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이 연습을 하고 온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서 ‘있음’의 상태로 갔을 때 ‘나라는 느낌’이 사라지는데 그 상태가 사라졌다가도 생겨나고 또 다시 사라졌다는 얘기를 통해 ‘나라는 느낌’은 항상 있는 불변의 느낌이 아니라, 있었다가도 사라질 수 있고, 사라졌다가도 있을 수 있는 하나의 느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연습이 처음에는 잘 안될 수 있지만 계속 연습하면 근본으로의 도약이 가능한 중요한 연습이라고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셨던 것이 기억난다.

    마지막으로 ‘나를 주장하지 않는 대화법’은 처음에 주의를 상대에 50, 나에게 50으로 주고 자유롭게 대화를 하는 것이었는데 평소 사람들과 대화할 때 잘 듣지 못하는 게 나의 단점인데 이 연습을 하면서는 상대방의 말을 평소보다 잘 들을 수 있어서 도움이 되었다. 주의를 50대 50으로 주는 것이 이해가 잘 안 돼서 좀 어렵게 느껴지긴 했지만 설명을 들으면서 상대방과 나의 구별감이 얕아지고 상대방의 얼굴을 보지만 그것보다 상대방의 말에 더 집중해서 듣게 되었다. 아직 처음이라 주의를 의식하면서 대화하는 것이 편안하지는 않았으나 상대방의 말을 들었을 때 그 말을 왜곡하지 않고 순수하게 듣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이 좋았다. 일상을 살다보면 상대방과 자기 식대로 받아들여 상대방의 말을 왜곡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은데 주의를 50대 50으로 주면 그럴 일이 줄어드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규칙으로 ‘그 말을 듣고 떠오른 것은~’ 하며 시작하는 대화법을 통해 상대방의 말을 수용하면서 그 의견에 또 다른 새로운 생각들을 덧붙여서 나를 주장함으로써 분열되는 대화가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대화에 초점이 맞춰진다는 점이 새로웠다. 그리고 상대방의 말을 들을 때 마치 ‘내가 말을 하는 것’처럼 들으라고 했는데 그 표현도 인상 깊었던 것 같다. 상대방이 말을 하고 있지만, 그 말도 내가 하는 것처럼 나와 너의 구분이 없는 상태로 들을 수 있다는 점이 따뜻하고 사랑이 느껴졌다.

    사실 나라는 존재가 생각하는 것은 살면서 자신이 경험한 것들이 분별을 통해 재구성되면서 내 안에 집약된 것들인데 그 생각이 과연 ‘나의 것’라고 말할 수 있는가?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생각이라는 것은 계속 재구성될 것이다. 생각은 ‘나’가 아니다. 살면서 경험하고 만들어진 것을 ‘나의 것’이라 소유함으로써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나를 주장하지 않는 대화법’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대화에서 중요한 것은 ‘누구의 생각이 더 옳고 좋은가?’가 아니라 ‘너와 내가 구분없이 존재로써 깊이 만날 수 있는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지(대학생)

    가장 인상적이었던 경험은 첫날 했던 연습을 통해 느낀 근본의 그림자로 있기, 즉 주의가 모든 곳에 있는 상태였다. 일상에서도 드문 드문 경험했었지만, 이곳 함양연수원에 와서 집중적으로 시간을 보내다보니 주의의 시작점을 찾는 과정에서 의식적으로 경험하게 되었고, 그렇게 됨으로써 언제든지 이 상태로 돌아올 수 있음을 확인했다. 따라서 일상에서도 언제든지 이 상태로 돌아오는 연습을 할 수 있고, 의식적으로 이것이 가능해지니 더 깊이 있게 연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의식의 여러 상태에 대해 서울에서 이렇게 저렇게 해보고 경험하여 이 상태와 저 상태의 느낌이 다른 건 뭔가 알겠지만 의식적으로 제대로 되지 않아서 답답했는데, 이곳에 와서 분명하게 연습하고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현재로서의 경험은 내가 사는 것도 아니고 내가 말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움직이는 것도, 내가 행동하는 것도 아닌, 내가 하는 것이 없는 다만 살아지는 것임이 분명해졌다. 서울에 있을 땐 이것이 모호하고 믿음이 50%를 넘지 못해서 내가 산다는 믿음이 더 강했는데, 2박3일간의 과정을 통해 그 50%를 자연스럽게 넘게 된 것 같다. 따라서 현재 나로서의 관점보다는 전체로서의 관점이 보이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나를 중심으로 형성해놓은 기준들과 전체를 기준으로 했을 때 새롭게 더 나은 것이라고 여겨지는 기준들이 떠오르기 시작해서 살짝 혼란스럽기도 하고 어느 기준을 더 따라야할지 여러 고민과 의문들도 들지만, 어쨌거나 이를 연습하는 것은 하면 할수록 새로운 경험들과 생각 통찰들을 일으켜 앞으로도 당분간 계속 연습해볼 것이다.

    그 밖에도 주의 50대 50연습을 하는 것도 과거에 했을 때보다 또 새롭게 되었고, 다양한 것들을 느꼈다. 구체적으로는 처음엔 상대의 몸과 내 몸에만 50대 50으로 주었다면, 나중에는 그냥 이쪽과 저쪽에 주의를 적당히 반 반 주고 해도 되었고, 더 나중에는 그런 의도 없이 위에서 언급한 연습, 근본의 그림자로 있기 연습만 가지고도 내 마음의 느낌을 느끼면서 상대방의 말에도 주의를 기울여 균형감 있는 대화가 되었다.

    그 다음으로는 통찰력 대화를 했는데 주의 50대 50보다 더 나아가, 내 경험이 충분히 쓰이면서도 나를 강하게 주장하지 않고 전체의 관점에서 이 사람(나)와 저 사람(상대)가 함께 대화를 하는데 이것이 자연스럽게 말이 일어나게 되고 듣게 되는 흐름 속에서 펼쳐진다. 그러니까 중간 중간 내가 말하기도 하지만 말이 일어나고, 내가 듣기도 하지만 저절로 듣게 되는, 들리는 상태가 된다. 내가 말하지 않고 내가 듣지 않고 말이 일어나고 듣게 되고 들리는 상태에서의 대화는 좀 더 흐르고 자연스러운 대화의 장이 펼쳐지고, 이 시간이 끝난 후 선생님의 강의에 주의를 돌리면 새로운 장이 펼쳐진다. 1:1의 에너지 장 속에 있다가 1:다 의 에너지 장 속에 펼쳐있는 듯한, 1:1의 영화를 보다가 1:10의 영화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

    통찰력 대화의 이점은 ‘떠오른 것’에 집중하고, ‘새롭게’ 떠오른 것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이고, 나를 주장하지 않는 것- 가르치려 하지 않고 주의의 불균형 느끼면 돌아오기-와 같은 기준, 틀을 의식적으로 세움으로써 더 나은 대화의 기준을 배울 수 있는 것이었다. 그 동안의 대화의 기준보다 통찰력 대화의 기준들을 통해 일상에서 새롭게 대화를 해볼 수 있을 것 같아 좋았다.

    서울 올라가서는 통찰력 대화와 근본의 그림자로 있기 또는 주의가 특정한 곳에 가 있는 것이 아닌 전체로 주의가 가는 상태로 있기 연습을 좀 더 깊이 있게 해야겠다.



    메타몽(공동체학교 과정)

    이번 깨어있기 심화 과정을 시작하기 며칠 전부터 내가 하는 행동 등이 내가 한다는 느낌이 없이 일어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이번 심화 과정에서 이런 류의 경험들이 더 진해지면서 인상 깊게 와 닿았습니다.

    첫번째로 인상 깊었던 것은, 감지에 대한 이해도를 말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감지를 어떻게 말할지 생각하기 위해서 감지 연습을 해보았습니다. 그때 주의가 가서 대상과 닿은 현상들이 느껴졌는데 대상의 모습이 내 경험에 의해서 드러나듯이, 나라는 느낌도 대상의 경험이나 가지고 있는 어떤 성질들에 의해서 드러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치 내가 코끼리인데 밤에 후레쉬를 코끼리 코에 비추거나 다리를 비추면 코나 다리의 모습만 보이듯이 나라는 느낌도 그렇게 전체가 아닌 부분적인 느낌을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대상과 다르게 주체적인 느낌이 섞여있다는 것이지, 내용에서는 대상이나 나나 만남에 의해 드러난다는 면에서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나의 본모습을 있다고 할 수 없고 알 수 없는 어떤 나의 모습 중 드러난 모습을 통해서만 나를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 와 닿았습니다.

    두번째로 인상 깊었던 것은, 감정을 끌어내서 느끼고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연습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때 슬픔을 느끼려고 숨을 참으면서 슬플 때의 몸의 상태를 만든 후 슬픈 감정을 느껴보려고 했습니다. 몸의 상태가 슬픈 상태 때와 같아졌지만 슬프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는데, 슬픈 상황을 떠올릴 때 갑자기 슬픈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그 상황을 떠올리면 슬픈 감정이 올라오고 떠올리지 않으면 슬픈 감정이 없는 상황을 왔다갔다 반복했습니다. 악셀 페달을 밟았다가 뗐다가를 반복한 느낌이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서 일어난 에너지에, 감정이 떠오르는 상황의 인식이 있어야만 감정이 떠오른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상 깊었던 것은, 주의의 시작을 찾는 연습을 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때 주의의 시작을 찾다보니 시작점이 뒤로 밀려나다가 흩어져버린 상태가 되었는데 그 상태에서 제 몸의 움직임이 저절로 일어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말 역시 내가 말한다는 느낌 없이 일어났습니다. 내가 말한다는 느낌이 없으려는 상황을 만들려고 하지 않았는데, 그런 현상이 일어나니 더 신선하게 와 닿았습니다.

    이번 심화과정을 통해서 나라는 존재의 현상들이, 내 의도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발생하고 나는 그 현상들을 바라보는 존재라는 것이 더 진하게 와 닿았습니다. 이런 귀한 과정을 만들어주신 선생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같이 프로그램을 함께 하셨던 분들 덕분에 제가 보지 못했던 현상들의 모습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깨어있기 심화를 하실 분들도 좋은 경험들 체험하시고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HereNow ( 2019-05-27 01:25 ) [삭제] IP Address : 106.243.154.70

    나무(깨어있기 마스터과정)

    고정되고 변함없는 실재라 믿고 있던 ‘나’는 언제나 변하고, 변할 수밖에 없는 마음의 내용일 뿐이지만, 늘 한결같은 변함없음으로 모든 경험을 가능하게 하고 모든 느낌을 느낄 수 있게 해주고 있는 숨은 주역, 투명한 주의는,

    ‘행위의 주체는 나이기에 내가 무엇을 경험한다’ ‘내가 있다’는 착각마저도 가능하게 해주고 있기에 그것에 의해 ‘나’조차 경험되고 있다는 사실은 당연하리라.

    그 무엇에도 물들지 않고 영향받지 않는 투명한 주의는

    나와 나아닌 것들을 포함해 모든 ‘분별’을 만들어내고 있음이 확인된 뒤,

    주의에 의해 분별이 되어진다는 건, 그 분별이 항상하고 고정된 것이 아니라

    지금의 조건에 따라 나타나진 임시적인 현상으로써의 분별이란 사실로 이어진다.

    깨어있기 심화에서 다루어지는 다양한 주의연습들은(주의에 주의기울이기 주의가 시작되는 곳 찾기. 주의50:50. ‘있음’등) 주의를 도구로 ‘내’가 없음이, 내가 실체가 아님이 내가 없이도 감각되고 소통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음이 직접적으로 쉽게 경험되어지는데.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다.

    그렇기에 일상에서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자기를 되돌아보는 자기성찰이란 것이, 나를 구성하는 내가 했다 여기는 경험의 내용들만을 되돌아보며 잘잘못을 가려보고 분별해보고는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다시 의도를 내서 내가 할 것과 안할 것들을 답으로 내고는 실행을 다짐하지만, 주의를 도구로 마음의 작용을 경험해볼 수 있는 깨어있기의 몇 가지 연습과 체험을 통한 원리의 이해는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는 것임이 경험으로써 드러난다

    돈이란 것에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는데, 가치를 부여한 돈으로 사는게 궁극적으로 뭘까? 결국은 느낌을(행복감 자유감) 공간의 비어있음을 사는 게 아닐까. 차 한 잔을 마시는데도, 주거를 위한 집을 마련하는데도, 휴식을 취하려 할 때도, 넓고 확 트인 복잡하지 않은 그 외적인 여유로운 공간을 그 비어있음의 느낌을 사는 게 아닐까...

    나란 존재는, 무의식적으로 ‘내적인 비어있음’이 얼마나 가치있는지를 이미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기에 ‘내’가 나타난 그 자리로 돌아가려는 내적인 끌림은, 텅 빔에 대한 존재의 무의식적 끌림이자 무의식의 신호이며 귀소본능이라 여겨지며 이와함께, ‘이 또한 지나가리라... 아무것도 없는 것 속에 무진장하게 들어있는 것이 우주이다’라는 화엄경의 글귀가 마음에서 올라온다.

  • HereNow 2019-08-03 08:00:38   답글 | 수정 | 삭제
    55차 심화과정



    이류(약사)

    깨어있기를 거듭할수록 잘 되지 않는 연습은 왜 안 되는지 직면하면서 좀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되고 점점 더 섬세해지고 작지만 의미있는 통찰이 일어난다.

    체험과 깨달음보다 마음의 원리와 법칙을 통찰하는 것, 탐구의 즐거움이 조금씩 커져가는 맛을 알게 되었다.

    괴로움에서 벗어나고자 했기에 체험과 깨달음을 추구했지만 단지 거기에서 끝났기에 괴로움을 반복했던 점이 있었다. 즐거움, 괴로움, 온갖 감정, 느낌, 현상들은 세밀히 맛보고 탐구하고 원리를 터득한다는 것은 힘이 있다는 것이고 그 힘이 선순환을 일으켜 지혜가 되는 것이다.

    내 느낌의 세계에서 주의를 주는 것이 매순간 새로운 세계를 참조하는 것인 고로 지금 내가 어디에 주의를 줄 것인가는 매순간 살아있는 자로서의 숙제이자 즐거움이다. 주의를 주는 것 자체가 ‘창조’이기 때문이다.

    경험의 두 가지 중 동일시보다 겪으며 느끼고 존재하는 것, 그 맛을 점점 알아가니 기쁘고 즐겁다.



    이다

    나라는 느낌을 느끼고 힘 빼는 것에 대해_ 지난 수업을 하고 이번 수업 때까지 지내면서 큰 문제가 없다보니... 그리고 MP3 본질로 들어가는 연습을 할 때 나라는 느낌에 힘을 빼라는 멘트에 ‘무사히 잘 지내고 있는 나’와 ‘나라는 느낌’이 대치하며 수업을 받으러 왔다. 탐구도 안하고 근원에 닿는 것이 내게 필요한가? (사는 데 지장 없는데...) 탐구, 연습도 잘 안 하는데 과연 근원에 닿을 수 있겠어? 못할 바에 하지 말까? 등등.. 여러가지 생각들에 에너지가 실려서 주체가 되어 있었다. 수업 내내 주의가 고민에 분산되고 있었다. 이걸 어떻게 다뤄야 할지 고민하며 수업에 참석했다.

    마지막 날 투명한 주의와 사물을 대상으로 설명해주시고 마음에 적용한 경우를 설명해주시는데 내가 사물을 볼 때 더 또렷이 보이는 건 투명한 주의 때문이고 사물에 적용했던 이치를 마음세계에 적용하게 되었다.

    내 생각의 내용에 주의가 많이 갔다는 것, 그래서 그 생각이 사실처럼 느껴졌음을.. 투명한 주의를 의식하고 나니 크게 고민되었던 생각의 내용이 힘을 잃고 작은 점이 되었다.

    이번 수업을 계기로 사물, 물리세계에서 연습했던 것을 마음세계에 적용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매우 기쁘다.



    나무(프리랜서)

    고정됐다고 여겨지는 대상의 느낌은(나라는 느낌 또한) 내 마음의 스토리가 달라짐에 따라 같은 대상이지만 전혀 다른 느낌으로 느껴진다.

    주의의 초점을 전경에 두느냐 배경에 두느냐에 따라 주의가 확장되거나 응축되는(모아지는) 주의의 양태가 달라지니, 내 마음속 주의가 그려낸 그림이 달라지면서 느낌 또한 전혀 달라진다.

    느낌의 구성 요소들 간의 관계에 의해 성립되고 있는 느낌의 의존성 관계성에서 느낌의 공성(空性), 비어있음이 확인된다.

    무엇이 ‘있다’ 하나, 고정된 무엇으로의 있음이 아닌, 움직임 속 변화 속에서의 있음이기에 있되 있다 할 수 없음이...



    위수디(승려)

    깨어있기 심화는 깨어있기란 무엇인가, 내적 감지 깨어있는 의식 느끼기, 주의에 주의 기울이기, 사물과 함께 깨어있기라는 소주제로 이박삼일간 진행되었다. 같이 참석한 사람들, 나의 조건, 선생님의 조건에 따라 다양한 경험들이 일어나고 그것이 통찰로 연결되게 구성되었다.

    언제나 탐구의 대상은 ‘나’와 ‘대상’이고 그것을 푸는 매개체는 ‘주의’, ‘감지’, ‘감각’이라는 도구다. 내적 감지를 통해 여러 인물의 사진 속 눈빛이나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사진을 통해 자동적으로 일어났던 무거운 느낌들을 다루면서 그 강렬한 느낌이 일어날 때마다 반복되는 괴로움의 길 뒤로 그것의 배경인 규정짓지 않는 감지를 느껴보고 내가 느낌 속에 있고 느낌은 가변적이라는 것, 더불어 이 ‘나’도 느낌임을, 그래서 있는 것이 아니라 조건에 따라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이라는 통찰로 이어졌다.

    깨어있는 의식 느끼기를 통해서는 현실에서 ‘나’에 주의가 쏠려 주의를 분산 확산시키고 사물을 경험하니 모든 것에 열려있고 깨어있으면서 수용되어지고 이완된 상태, 어떤 것과도 동일시가 일어나지 않음이 경험되어 나와 대상이라는 구조물은 주의가 발현된 것이고 주의가 만드는 느낌의 세계로구나 하는 것이 더 명확해졌다.

    주의에 주의 보내기를 통해서는 투명한 주의에 주의를 두니 그것을 통해 일어나는 ‘나’도 투명해져 주의의 특성인 앎은 일어나지만 기억과 습관에 물든 나로서 투사된 세계와 그것이 작용하지 않을 때의 구별이 확실히 경험되었다. 사물과 함께 깨어있기를 통해 사물의 생생함, 강렬한 느낌은 내 주의가 투사되어 그런 것이라는 이해가 바탕이 되니, 사물의 호오를 충분히 느끼면서도 느끼지 않음도 경험되었다. 늘 보던 친근한 까미와 목희(함양연수원에 있는 개들)를 바라보며 주의에 주의를 두어보니, 보는 내가 물든 주의를 쓰지 않으니 동물들도 순간 ‘나’라는 대상이 없는 듯 조용해지면서 그것을 보는 ‘나’는 있는 그대로의 동물들이 관찰이 되어 지금 이순간의 경험들이 섬세하고 생생하게 지각되어졌다. 주의를 주면 그 순간 새로운 대상이 일어난다는 것, 그것을 보는 나도 지금 이 순간 새롭게 생겨난 연기된 현상이라는 것, 있는 게 아니고 영속하는 것이 아닌, 언제나 시간과 공간을 점위한 영원한 ‘나’가 아니라는 것, 나는 주의가 쓰여져 드러나는 가변적 느낌이라는 통찰을 다지는 시간이었습니다. 함께한 귀한 도반들, 선생님, 함양의 아름다운 자연, 동물들에게도 감사한 마음 전합니다.
  • HereNow 2019-08-03 07:58:46   답글 | 수정 | 삭제
    54차 심화과정



    반여 님의 심화과정 체험담



    느끼지 않으면 전도중생에서 벗어날 수 없다.

    기초에 이어 감지 복습, 전체의식 느끼기, 물소리 듣기, 감각하기, 생생하게 느끼기, 주의에 주의,다시 주의에 주의를 통한 내 몸 느끼기, 거울 통한 ‘있음’ 연습, 대상이 나를 보기 연습 등 일련의 주옥 같은 강의가 빡빡한 일정으로 진행되었다. 강의의 목적이 처음에 분별하기에서 시작해 분별없음으로, 마지막에는 분별 자체가 분별없는 전체의식이 발현된 것 뿐임을 알아채게 함으로서 이 보는 모든 분별의 세상이 사실은 내가 보는 것이 아니라 분별없음의 화신일 뿐임을 일깨워 주려는 월인 선생님의 치밀한 의도가 내 머리 속에 잘 정리되어 자리한다. 책으로만 보고, 혼자 공부하며 정리한 것들에 생명을 불어 넣어 주셨다. 잊지 못할 정리가 되었다.

    참가 전 읽은 많은 사람들의 경험담이 모두 체험 된 것은 아니지만, 이론을 충분히 믿을 체험들이 있었기에 만족의 시간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전체 의식 후 물소리 듣기에서 그토록 한번 체험해 보고 싶었던 ‘대상과 하나됨’을 온 몸으로 체험하면서 황홀감을 느꼈다. 그동안의 오랜 공부에도 이렇게 강력한 체험은 해 본 적이 없었기에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흘러나오면서 가슴이 뛰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일까? 선생님이 주의를 대상으로 보내지 말고, 스스로 진동판이 되어 오는 소리에 그냥 반응하라고 하셨고, 말씀하신 대로 했을 뿐이었다. 그때 통찰이 제대로 되진 않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전체 의식이 대상과 온전히 하나가 되고, 내가 곧 그 전체의식임을 본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날 ‘대상이 나를 보기’ 연습에서 일상에서 한번씩 느꼈던 이 현상을 의도적으로 다시 체험하면서 오롯이 주의에너지의 높낮이에 따라 주객이 형성됨을 보면서 대상이 거울 속의 나처럼 허상이며, 또한 곧 나로 체험될 수 있음을 통찰했다.

    생생하기 보기 연습에서도 전체 의식(투명한 의식)으로부터 대상으로 주의가 흐르면서 대상이 생생하게 분별됨을 경험하면서, 내가 아닌 전체 의식의 주의로 인해 분별이 이루어짐을 보게되었다. 내 눈앞에 보이는 모든 사물이 내가 보는 것이 아니라 투명한 의식(순수의식)이 보는 것임을 체험하면서 얼마나 내가 전도중생인지를 체험했다.

    그러나 자동적 주의에 조금만 따라가버리면 여지없지 ‘나’가 생기는데, 그것이 너무나 빨라 순간 포착이 힘들다는 것을 보고 우리가 얼마나 일상생활에서 자동적 주의에 끌려 다니는지 또다시 실감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 ‘그 나를 너무 터부시 하지 말라’는 말씀을 듣고, 내가 너무 오랫동안 맹목적으로 이것을 없애려고만 한 것을 느꼈다. 결국 그 ‘나’라는 것도 전체 의식과 다르지 않은 물과 파도의 관계인데, 그 ‘나’가 없으면 차도 운전할 수 없고, 직장에서 일도 하기 힘든데, 방해꾼으로만 생각했음을 알았다. 분명 이런 생각을 과거에도 많이 했지만 크게 와닿지 않았다면 이번에는 어떤 느낌이 있었다. 그것이 혼자 공부하는 것의 한계이기도 한 것 같다. 선생님이 평소 강조하신, 생각으로 아는 것은 힘이 없고 느낌으로 알아채야 힘이 생긴다는 말씀을 절감했다.

    또한 ‘나’라는 느낌을 잘 느끼기 위해서 감지연습의 중요성을 제대로 배운 심화과정이었다. 선생님께서 많은 사진을 준비하시어 각 사진에서 나오는 미묘한 느낌을 감지하게 하는 연습에서 잘 되는 것과 잘 되지 않는 것을 보면서, 아 이 느낌들을 감지로 볼 수 있어야 일상에서 너무나 빨리 올라오는 ‘나’라는 느낌을 잘 느낄 수 있겠다는 절심함이 왔고, 감지의 중요성을 제대로 안 것 같았다.



    너무나 많은 것을 짧은 시간에 받아서 벅차지만 머리가 스스로 정리함을 느끼면서 일상으로 돌아가 한 가지만이라도 잘 하면 멀지 않아 본질을 알 것이라는 말씀에 힘을 얻는다.

    그리고 선생님 못지 않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준, 같이 한 혜량스님, 이류, 나무, 호요, 자공, 여몽, 상조, 이다 등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다음에는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HereNow 2018-11-20 12:05:14   답글 | 수정 | 삭제
    2018년 11월 16일~18일 53차 깨어있기 심화과정 후기



    메타몽(백일학교)

    요즘에는 뭔가 새로운 통찰이 필요하다기보다는, 주의력과 감지가 좀 더 일상생활 속에서 체화되어야 한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깨어있기 심화에서 새로운 어떤 통찰을 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는 않은 상태에서 프로그램이 시작되었습니다.

    첫째 날, 연습을 하면서 외부라고 느껴졌던 소리나 눈에 보이는 것들이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체험하게 되었고, 주의의 중요성에 대해 느꼈습니다. 첫날부터 깊이 있는 내용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낸 것 같아 좋았습니다.

    둘째 날, 주의에 대해서 더 깊이 있는 연습을 했습니다. 전체주의 상태에서 일어난 현상들을 느끼는 것과 현상과 주의가 함께하는 것을 느끼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동안 전체주의를 통해서 일어난 현상을 보려는 습관이 생기고 있었는데, 감정이 커지거나 생각에 빠질 때마다 전체주의 유지가 되지 않았었습니다. 그래서 보완책이 필요하던 시점이었고, 귀중한 통찰을 한 것 같아 의미 있었습니다. 그리고 생각과 감정을 느끼는 연습을 하다 보니, 생각도 물리적으로 잡을 수 있는 느낌이라는 것이 경험으로 더 와 닿았습니다. 또 지난 번 깨어있기 심화 연습 때는 화를 제대로 못 내서 답답했었는데, 이번에는 제대로 화를 풀어낸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화를 다루지 못하니까 화에 끌려가는 것 같다는 느낌을 계속 받았었기 때문입니다.

    셋째 날, 주의를 절반씩 주거나 대상에 더 쏟는 연습을 하다가, 주의가 일어나는 공간과 있는 주의와, 대상과 있는 주의가 구별되었습니다. 이 날의 연습들은 지난 번 깨어있기 심화를 했었을 때 제대로 하지 못해서 답답했던 연습들이었는데, 이번에는 조금 감을 잡은 것 같아서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이번 프로그램 전반적으로 주의에 대한 분별이 조금 더 세밀해짐을 느낄 수 있었고, 앞으로 어떤 부분에 초점을 맞춰서 연습해야 더 효율적일지를 느껴서 좋았습니다. 더불어 아직 모자란 점들이 느껴지니, 겸손한 마음을 가지게 되어서 의미가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깨어있기 심화는 지금까지 했던 것들이 어디까지 왔고, 무엇이 모자라고, 어떤 것을 더 해야 할지 중간 점검을 할 수 있었던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자칫하면 알고 있는 내용이라고 대충 넘어갈 수 있었지만 참여자 분들의 열정 덕분에 저도 덩달아서 진지한 자세로 프로그램을 대할 수 있었습니다. 참여자 분들께 고마운 마음을 전해드리고 싶고, 늘 지금 상황에 안주하지 않고 모름의 자세로 배워 깊이가 더 깊어질 수 있게 도와주시는 선생님께도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깨어있기 심화를 하시게 될 분들도, 어떤 경험을 하시던 거기서 좋은 점을 발견하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시길 염원합니다.



    이다(깨어있기 마스터과정)

    내면 탐구를 위해 필요한 도구가 무엇이고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직.접.적.으로 경험하고 배울 수 있다는 점이 이 수업이 강점인 것 같습니다.

    수업장소에서만 경험되는 것이 아닌 일상생활에 돌아가서도 수업 때와 동일한 상태를 경험할 수 있고 더 깊은 탐구를 위해 마음의 도구를 쓰는 법을 쉽게 쉽게 가르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번 주업에서 ‘주의’의 대해 새삼 느끼고 갑니다. 심화과정 두번째 날만 되면 갸우뚱이 있었는데 이번에 와서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확인하였고 해결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함께 참여한 분들과 경험을 공유하면서 내 안의 의식/무의식들이 건드려지고, 선생님께서 학생들에게 질문을 툭 던질 때마다 안을 들여다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질문을 툭 던지시는데, 질문방식이 저에겐 직/간접경험이 되고, 부족한 탐구력을 보충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깨어있기 심화과정은 참으로 재미있고 흥미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커리큘럼인 듯합니다. 다른 분들도 내면 탐구를 위한 ‘도구의 사용법’을 얻어가시면 좋겠습니다. 함께 경험을 나눔해주신 메타몽님, 이류님, 나무님, 이안님~ 감사드립니다. 또 봬요~
  • HereNow 2018-09-18 13:21:51   답글 | 수정 | 삭제
    52차 깨어있기 심화 후기





    이다(마스터과정)

    2박 3일 간의 깨어있기 심화가 마무리되었다. 인상 깊었던 것 위주로 후기 남깁니다.

    첫째 날은 실체라는 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고, 우리가 믿고 있는 실체에 대해 아님을 하나씩 예를 들어주셨다. 이것을 시작으로 대상과 주체, 관계성, 현상계, 마음의 구조에 대해 다가갈 수 있었다.

    둘째 날은 주의에 주의를 기울이는 상태에서 대화하기였다. 월인 선생님과 주의에 주의를 기울이는 상태에서 대화를 하는데 주의에 주의를 기울이려 애를 쓰다 보니 땀이 흐를 지경이었다. 선생님께 제 상태를 말씀드리니 주의의 특색만 속성만 남겨놓고 해보라는데, 주의에 기울이던 힘을 2 or 1로 줄이려고 하는 것보다 훨씬 수월하게 주의에 주의 기울이기 특성만 남겨놓고 대화를 할 수 있었다.

    마지막 날엔 일시적인 나를 느끼고, 몸에서 느낌을 찾아 경계 짓고, 그것의 부분임을 알기를 하였다. 그동안 느낌을 대상으로 느끼긴 했지만 대상을 바라보는 나의 느낌은 안정된 부분적인 나라는 것이 나타나는 것임을 분명히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동일시 끊기 수업도 인상 깊었다. 나라는 것이 가변적일 수 있고 느낌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감사합니다.

    추가로, 함양에 내려올 때는 에고의 아우성을 들으며 내려온다. 투명하게 그대로 드러나는 것에 대한 자그마한 반항, 두려움, 긴장감 등이 있긴 하다. 하지만 반대로 이끌림도 있다. 그 이끌림과 끌어당김에 나를 맡겨본다. 사실 맡겨지지는 않는다, 그 감정들은. 그 느낌들을 보면서 앵두관으로 들어갈 뿐이다.

    짧지만 긴 2박3일의 수업을 마치게 되면 안도감과 긴장감 등등 또 다른 가변적인 나가 생겨나서 올라온다. 오늘은 그 느낌에 동일시되기보다는 일시적인 나, 느낌을 느끼고 놓아본다.





    물방울(백일학교)

    이번 심화과정을 거치며 우리는 느낌의 세계에 살고 있으며 나만의 경험이 쌓인 내 상의 세계 속에 살고 있음을 강렬하게 깨달았다. 외부세계와의 부닥침으로 힘들었던 과거들이 내 안의 기준과 강한 신념 때문에 힘든 삶이었다는 것을 느꼈다.

    ‘사물 감각하기’에서 형태와 질감을 빼놓고 보니 어떤 것은 선명하게 보이다가 평면으로 변하더니 허물어져서 사라져버리는 것을 보며 놀랐기도 하고 신기한 체험이었다.

    ‘주의가 머무는 곳’에서는 계곡 물소리를 빼고 들으니 그냥 소리가 들려옴에 이상하다 싶으면서 ‘아! 아는 것(상)을 떼고 들으니 이것 또한 내가 경험하며 만든 상의 세계였구나.’라고 느껴졌고, 그렇다면 모두가 상인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하는 의문이 올라왔다.

    주의는 의도를 가진 에너지이며 의도를 가지고 주의를 주는 곳만 의식되고 느껴졌다. ‘주의에 주의 느끼기’에서는 의도를 가진 주의를 알아채는 순간 사라졌으며 그것으로 보아 어떤 주의도 느낌도 우리가 컨트롤할 수 있다고 느꼈다.

    ‘사물과 함께 깨어있기’는 늘 투명한 주의가 가고 있었으나 의도를 가지고 보지 않는 한 보지 못한다는 것과, 투명한 주의가 가면 감정이 없어지고 내가 만든 상이 없어진다고 느꼈다.

    ‘있음’의 상태에서 대화나누기를 통해 감정도 느낌도 없는 끄달리지 않는 ‘머물지 않는 마음’이 떠올랐다. 대화는 하고 있으나 바람, 물소리처럼 자연스럽게 소리가 저절로 나왔으며 환희심이 나고 에너지가 솟아났다.

    있음과 투명함에 호기심이 생겨, ‘있음’ 안으로 에너지가 모이는 내가 있음을 느꼈고 투명함은 햇살처럼 사방으로 뻗어나가서 그냥 하나가 되어 머물기가 되었다(내가 없는 투명함).

    ‘기억으로서의 나를 넘어가기’에서는 나란 느낌이 몸에 여기저기에서 느껴져서 ‘아! 고정된 나는 없고,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나타나는 것이구나.’라고 느꼈다.

    ’동일시 끊기‘에서는 거울 속의 나가 거울 밖의 나를 보는 것을 하며 섬뜩하고 관찰당하는 느낌을 느끼다 하나가 된 듯했다.

    사물, 동식물과의 주체감 옮기기를 통해서는 주체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서 주체감이 달라진다는 것, 특정한 나가 없고 주체감이 있는 게 나라는 것, 내가 가변적일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동일시 끊기’를 통해서 나를 찾고 나에게 주의제로를 할 때, 나를 찾을 때는 응축돼서 에너지가 확 응축되었다가 주의제로를 하며 힘이 풀리고 자유롭고 평화로워짐을 느꼈다. 이 과정을 통해 어떤 감정이나 느낌에서도 주의제로나 내려놓기를 통해서 자유로워질 수 있겠구나 싶어서 편안해졌습니다.

    끊임없이 통찰이 올라오도록 이끌어주신 월인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함께 공부한 도반들의 소중한 인연에도 깊은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류(백일학교)

    의식의 구조 작동을 이해하고 체험하며 통찰하는 과정 하나하나가 구체적으로 와 닿았다. 일상에서 계속되어진다면 ‘나’에 대한 깊은 이해뿐 아니라 타인에 대한 이해를 모두 넘어 ‘진짜 나’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신의 유희’라는 말이 생각나는 과정이었다. 신기하면서도 진지하고 또 무척 재밌다는 생각을 했다. 그간 재주 많지만 고통 받는 손오공에서 부처님의 손바닥이 되어본 느낌?! 통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는 자’가 사라질 때까지 지금 여기에서 이어가기로 마음먹는다. 불퇴전의 지위까지, 그 너머까지 갈 수 있는 도구를 얻은 것 같아 무척 기쁘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체험과 통찰로 이끌어주신 선생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메타몽(백일학교)

    100일학교 40일 정도를 지내던 중 깨어있기 심화가 시작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다른 분들에 비해 느낌이나 주의 같은 것들의 내재화와 깊이가 낮고 얕은 것 같아서, 깨어있기 심화를 하기 전에 감지와 주의 연습을 많이 하려고 하였습니다. 외적인 감지가 어느 정도 의식되니 내적인 감지 연습을 들어갔는데 하다 보니 주의 연습의 필요성이 와 닿아서 주의 연습을 하다가 의식화가 완전히 되지 않은 상태로 심화 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의식화가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깨어있기 심화를 듣는지라 이해를 다 못할 것 같은 불안과 걱정이 조금 있었습니다.

    깨어있기 심화를 하면서 주의 연습이 정말 중요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심화과정이 진행될수록 주의의 중요성이 더욱 더 체감되니, 연습을 아예 안 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는 느낌과 그 동안 연습했던 것들이 그래도 빛을 발한다고 느꼈습니다.

    감정을 불러내는 것과 있음을 연습하면서 화, 있음을 불러내는 것이 잘 안되었습니다.

    답답했지만 갈 길 잃은 에너지의 방향성이 다시 방향을 찾은 것 같아서 당분간 또 연습거리가 생겼다는 기쁨을 느꼈습니다.

    주의를 통한 깨달음이 많아서 깨어있기 심화를 듣게 될 사람이 있다면 주의 연습을 많이 해서 주의력을 자유롭게 의식화할 수 있게 되면 좋을 것이라는 추천을 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이것은 이미 감지 연습을 많이 한 후 주의를 연습하다보니 초두효과처럼 처음과 마지막에 있던 기억이 강하게 남아서 그런 것일 것 같습니다.

    깨어있기 심화가 끝나니 앞으로 해야 할 연습들이 많고 그 연습들이 모두 철저히 내재화되어 자유롭게 의식될 때서야 최종적인 지향점인 나로부터의 자유가 찾아올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인생을 아낌없이 베풀어주신 선생님의 헤아릴 수 없는 마음이 너무 커서 작아질 뿐입니다. 후기를 보실 모든 분들도 저와 같은 경험을 하여 원하는 바를 이루셨으면 좋겠습니다.



    대운(농부, 지역활동가)

    2박 3일간의 과정이 다 소화되지 않는 느낌이다. 다양한 요리를 살짝 맛만 본 느낌이랄까... 그렇지만 어떤 면에서는 ‘나’라고 감지하는 것이 허상이고, 느낌이라는 것을 다양한 형태로 연습한 것 같기도 하다.

    이번에 해보면서 ‘나’라고 하는 것이 느낌이구나 하는 지점이 더 다가왔다. 전에는 ‘나’라고 할 것이 없는데 일상에서 ‘나’라고 느끼는 지점에 대해서 ‘나’라는 느낌 자체를 없애려고 한 것 같다. 이번에 하면서는 ‘나’라는 것을 느끼되 그게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부분이고, 사라지는 것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일상에서 그럴 때 느껴지는 것을 부정하지도 않으면서 실재에 맞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여러 연습을 통해 ‘나’라는 것이 어떻게 일어나고 사라지는지 살펴볼 수 있었다. ‘주의’ 연습이나 느낌의 특성을 살펴보고, 그 과정에서 ‘나’가 발생하는 순서를 살펴본 것이 돌아가 일상을 살아가는 데도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 어떤 느낌이나 감정이 올라올 때 ‘아, 무의식 중에 나를 발생시키고 있구나.’ 알아차리고, 투명한 주의나 ‘있음’을 느끼는 것을 통해 ‘나’와의 동일시에서 떨어질 수 있겠구나.

    연습 중에 사물에서 내 눈을 본다거나, 주의를 외부 대상에서 나에게로 보내는 것을 통해 내가 보고 있는 세계가 내가 만들어 낸 세계 속에 살고 있구나라는 것이 크게 느껴졌다. 이론으로 알고 있던 것이 체감으로 다가온 느낌이다. 앞의 월인 선생님도, 이 공간도, 주변 사람들도 지금의 내가 만들고 있는 모습이구나. 나의 상 속에서 살고 있구나.

    2박 3일에 하기에는 내용이 많다는 느낌도 들고, 스스로 찬찬히 느껴보고 살펴보고 싶다는 생각이다. 지금은 꾸역꾸역 억지로 떠 먹여준 느낌. 자기 것으로 만드는 체득 과정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다.

    앞으로의 일상에서 어떻게 반응하고 알아갈지 궁금하고, 그것을 소재삼아 계속 공부해가고 싶다.
  • HereNow 2018-07-25 11:56:45   답글 | 수정 | 삭제
    2018년 7월 20일~ 22일 51차 깨어있기 심화과정 후기



    다르마(승려)



    2시 10분 도착 예정이라는 내비게이션의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먼 길이라서 나름대로는 서둘러 출발했는데도 가다보니 함양수련원 ‘깨어있기 심화과정’ 강좌 시작시간에 10여 분 정도 지각하게 되었다. 월인 선생님께 기다리지 마시고 강좌 진행하시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드렸다. 죄송한 마음이 들면서도 지난 달 ‘깨어있기 기초과정’ 때를 회상하니 강좌 시작하고 처음 10여 분 가량은 참석자들의 자기소개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10분 정도 지각이라면 본 강의에는 지장이 없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지난달 방문 시에는 초행이라서 수련원 근처에서 조금 헤매었는데 이번에는 두 번째라서 수련원 입구를 보자마자 곧바로 알아보고는 주저하지 않고 핸들을 돌려 좌회전해 들어가서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곧장 강의장으로 달려갔다. 출입문에 낡은 슬리퍼 두 개가 보였다. 방문자 신발이 아니고 상주하시는 스텝 분의 신발 같은데 이번 강좌에는 나만 강좌신청을 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문을 여니 강의실이 텅 비어있었다. 이번 강좌는 다른 강의실에서 진행하시나 하여 선생님께 급하게 전화를 했는데 통화중이라는 신호가 들려왔다. 잠시 머뭇거리는데 불현 듯 오늘이 19일인데 강좌는 20일이 아니었나하는 생각이 들었고, 급하게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검색을 하여 미내사 클럽을 들어가 확인해 보니 10분 늦은 것이 아니고 하루 먼저 도착한 것이 아닌가...

    수련원 마당에 승용차는 세 대 있는데 건물마다 인기척이 없어 보여, 선생님께 다시 문자를 보내어 죄송하다는 말씀 전하고, 날씨가 너무 더워서 시원한 곳을 찾아 나섰다. 선생님과 스텝 분들이 자취를 하는 곳이라 하룻밤 먼저 신세지기가 좀 부담이 돼서 근처 모텔에 여장을 풀었다. 곰곰이 되돌아보니 아침부터 내내 착각 속에서 보냈다는 생각에 허탈감이 밀려왔다. 3시 30분 쯤 월인 선생님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저녁 때 찾아뵙기로 하고 선생님의 저서인 “깨어있기⮕의식의 대해부”를 여기저기 손가는 대로 다시 읽어보았다. 벌써 두 번을 읽어보았는데도 처음 보는 내용들이 너무 많이 눈에 띄어 깜짝 놀랐다.

    7시 30분에 선생님을 찾아뵙고 평소에 의문이 들었던 것들에 대해서 이것저것 여쭤보았다. 나는 생각이 무척 많은 편이며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은 대충 넘길 수가 없는 성격이라서 질문을 시작하면 좀처럼 멈추질 못한다. 그런데 선생님의 답변은 또 다른 의문을 일으키지 않게 명쾌하시다. 월인 선생님의 성향이 지적이고 분석적이시기 때문에 지성이 발달된 구도자들은 인연이 되면 구도의 여정을 수월하게 단축시킬 수 있을 듯하다. 하루 먼저 도착한 탓에 선생님과 대담하는 이런 행운이 생겼나 싶어 착각으로 인했던 허탈감이 사라졌다. 밤늦게까지 나의 질문공세에 진지하게 답변해주신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내일을 기약하며 수련원을 나섰다.

    다음날부터 2박3일 진행된 ‘깨어있기 심화과정’은 구도 여정에 마지막이 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던 유익한 시간들이었다. 이번에도 커다란 변화가 있지는 않았지만 지난달 ‘깨어있기 기초과정’에서 이해되지 않았던 가르침들이 와 닿았다. 사실 지난달에는 ‘감지’라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혼란스러워서 선생님 강의와 연습 도중에 좌절감이 심했었다. 이번 강좌를 통해 전체적인 맥락과 얼개가 납득이 되어서 희망의 빛을 보게 된 듯해서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무척 가벼웠다. 물론 이번 강좌에서도 ‘생각을 떠올리고 그 생각이 일어나는 두되의 특정 부분을 느끼고, 그 부분을 경계 짓고 떨쳐내는 연습 과정’에서 위기가 왔었다. 생각이 일어나는 듯한 두뇌 부위를 나는 전혀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루한 공방 끝에 결국 월인 선생님께서 항복하시고 다른 연습으로 진행되었는데, 선생님의 요구가 나로서는 무척 당황스러웠다. 내가 CT나 MRI처럼 할 수는 없지 않겠나 싶은 저항감이 올라와서 중도에 하차 할 뻔하였다. 여러 가지 연습 중에서도 마음의 주의를 ‘대상과 나’ 사이에 ‘중립상태’로 놓는 연습이 특히 유익했고, 마음의 구조에 대한 이론적인 설명도 마음의 구조에 대한 그동안의 나의 혼란을 잠재워 주었다. 물론 아직은 마음의 구조에 대한 통찰이 일어난 것은 아니나 지적인 호기심이 무척 강한 나로서는 이론적인 탐색의 욕구가 시들어졌고, 실질적인 탐구로 구도의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몇 명 안되는 인원인데도 불구하고 이번 강좌를 다음으로 미루지 않고 개설해 주시고, 강좌 도중 많은 자비심으로 지도해주신 월인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아울러 동참해주신 도반 분과 뒤에서 후원해주신 스텝 분, 그리고 맛있는 요리를 해주신 식당 주인장님께도 감사드린다. 앞으로도 다른 강좌에 동참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깨어있기 과정’에 많은 분들도 인연되기를 추천해 드린다. 특히 지적인 성향의 구도자들에게 좋은 인연되시길 _()_
  • HereNow 2018-01-25 09:49:08   답글 | 수정 | 삭제
    나의 전부를 버리다 _ 해인(고등학교 한문 교사)

    내면의 공간 전체를 의식하다가 얼마 후 갑자기 내 몸이 빅뱅처럼 폭발하면서 산산이 흩어져 빛이 됨을 체험했다. 내 몸에 있는 원자들이 순식간에 우주 무한공간으로 사방으로 흩어져 사라지면서 엄청난 빛만 있었다. 얼마 후 월인 선생님께 말씀드리니 근원으로 더 들어가 보라고 말씀하시기에 눈을 감고 다시 주의집중 하니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빛이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있었다. 그리고 조용히 눈을 떴다.

    마음공부(도 공부)한 지 30년 동안 빛 체험은 난생처음 겪은 일이다. 체험은 체험일 뿐 이것은 도道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통찰이라는 것은 마음의 원리와 구조를 아는 것이다. 이번 체험이 하나의 좋은 경험이 되었다. 통찰을 일으키는 데 한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거울을 보면서 나의 얼굴과 몸의 경계가 사라짐을 느끼고 밖으로 나가서 산책하다가 껍질이 벗겨진 나무를 보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상처 난 곳에 약을 발라주고 싶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이 나무가 바로 나구나.”라는 생각과 동시에 산도 새들도 나라는 생각, ‘나는 도 닦는 자아가 너무 강했구나. 내가 너무 교만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아! 내가 자연 그 자체이구나. 내가 곧 자연이고 자연이 곧 나다”라는 통찰이 일어났다.

    평소에 주의를 나에게 90%, 남(대상)에게 10% 보냈는데 반대로 주의를 나에게 10%, 남(대상)에게 90% 보내고 여러 사물(파, 아카시아 땔나무, 대나무, 소나무, 잡초 기타)들을 바라보니 너무나도 마음이 편안했다. 몸도 이완됨을 느꼈다. 얼마 후 내가 본 여러 사물들 모두가 나를 측은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가까운 가족을 비롯하여 주위 동료들도 나를 그렇게 불쌍하게 바라보았겠구나.”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월인 선생님께서 “교만한 자도 내가 아니고, 불쌍한 자도 내가 아니다. 그럼 그 원인은 무엇인가?” 물어보셨다.

    나는 다짐했다. ‘도를 닦는 자아’를 버려야겠다. 한평생 공부한 도(도 닦는 자아)를 지금 이 순간부터 버린다. 3일내내 목 놓아 울고 싶다. 이것은 나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모른다.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되새겼다.

    3일 동안 월인 선생님의 성심을 다한 개인지도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저희 식사와 잠자리를 신경써주신 온비 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존재한다는 느낌 _ 옴살(전직 과학교사)

    깨어있기 심화 과정에 참여하기 전, 나름의 목적은 기초과정에서 가져왔던 한 동료와의 관계 문제이다. 그러나 이번 심화과정에서 감지 훈련을 하는 도중에는 그 문제를 잊고 있었다. 그냥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갔다. 처음에는 잘 되지 않았다. 어려웠다. 그래서 그냥 쉬었다 가자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행복하였기 때문이다.

    마지막 날 오전, 주의를 나와 대상에 50:50으로 나눠보는 연습을 했다. 이 연습을 통해 비로소 ‘주의’와 ‘마음’의 문제가 어렴풋이 연결되어 새롭게 느껴졌다. 이 연습에서 느꼈던 느낌의 변화, 느낌의 차이에 주의를 더 기울여 재차 연습하였다. 반복할수록 분별이 뚜렷해짐을 느꼈다. 이후 연습은 재밌었다. 하지만 ‘재미있다’를 느끼는 순간 또 느낌이 흐릿해졌다. 생활 속에서 반복하는 연습의 필요성을 느꼈다.

    이번 깨어있기 심화과정에서 ‘나’라고 생각했던 ‘나’와, 그것이 나가 아니었다는 관점, 그리고 ‘나’가 존재한다는 강력한 느낌이 새롭게 발견되었다. 이후 문제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으로 느낌을 위한 지속적인 탐구가 이뤄져야겠다는 인식이다. 문제로 여겨지던 ‘관계’는 마음의 상이 또렷해지면서 툭 떨어지며 그저 바람처럼 사라졌다.





    전체의식으로 살기 _ 진허(창원대 교수)

    검은 글자가 보이는 것은 배경이 되는 스크린이 흰색이기 때문이다. 자아가 있다는 것은 그 배경에 무아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아는 노력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있음과 없음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을 아는 순간 알게 되었다. 이번 깨어있기 심화 과정은 앞으로 있을 실제 생활에서 전체의식으로 살기 위한 좋은 계기가 되었다. 깨어나는 것이 아니라 깨어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지금 이 순간의 의식으로 살고 싶다. 심화과정을 통해 배운 감지 연습을 앞으로 삶 속에서 적용해 보고 싶다.
  • HereNow 2017-09-21 12:45:34   답글 | 수정 | 삭제
    느티(회사원)

    대상은 보는 ‘나’, ‘나’가 느끼는 대상은 대상 자체일 수 없고 ‘나’에 의해 감지된 경험일 뿐임을 깊이 느꼈습니다. 감지로 구성된 ‘나’ 안의 세계에는 ‘나’가 있고 대상이 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나’의 경험이며 사랑하는 사람들은 아닙니다. 그들과 하나가 될 순 있어도 그들의 실재를 경험할 수 없다는 사실에 슬픔을 느꼈습니다.

    지금까지 ‘나’는 ‘나’의 허무성을 인정하면서도 허구이기에 허구 스스로가 스스로를 지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허구가 허구라면 지울 수도 있고 생겨날 수도 있기에 새롭고 지혜로운 ‘나’를 만들어 가기로 하였습니다. 지혜로운 ‘나’는 본질이 신성한 아름다움을 드러낼 때 좀 더 기쁘게 무릎을 꿇고 사라짐을 받아들일 수 있을 테니까요.



    한생각(중고차판매)

    산책을 하며 전체주의를 해본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바람의 느낌은 바람대로, 새소리 물소리는 소리대로 흙냄새, 풀냄새는 냄새대로, 입 안의 느낌, 몸의 느낌은 느낌대로, 생각의 느낌은 느낌대로 그대로 주어진 대로 일어나고 있다. 전체주의 안에 내가 있음에도 전체의식과 교감할 수 없다. 그 어떤 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애를 쓰면 쓸수록 점점 더 희미해져가고, 주의가 한곳에 몰려 동일시될 때는 그마저도 아예 사라져버린다. 강력한 느낌의 나조차도 사로잡힘 앞에서는 따로이 있지 못한다.

    찾으려 하는 것도 잘못된 것일까?

    애쓰는 것도 안쓰럽다. 주의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의식하며 열린주의를 유지하기로, 주의가 항상 열려있도록 해본다. 무엇이 와도, 있는 그대로 흘려보내보기로 한다.

    일상에서 느낌을 분별하지 않고 붙잡지 않기로 해본다. 지도하신 월인 선생님과 성지 님께 깊이 감사드리며 같이 하신 느티 님과 호요 님께도 큰 깨달음 있으시길 기원드린다.



    호요(문화재 보수 기술자)

    무심히 내가 본다고 느꼈던 모든 것(사물, 생각, 감정)이, 심지어 나라고 여겼던 것까지도 실은 나의 느낌이라는 경험이 놀랍다. 나는 느낌을 살고 있고 그 느낌은 텅 비어 있는 것이라는 자각이 결국 실체라고 여긴 현상의 모든 것들에 대한 인식을 바꾸게 되었다.

    또한, 그 느낌들이 드러날 때 나는 나의 주의를 주거나 주지 않음으로써 더 이상 거기에 끌려다니지 않을 수 있고 그 무게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자유롭게 한다.

    삶에서 동일시하던 모든 것들이 이제는 객관적 대상으로 감지되고 더 이상 삶 속에서 끌려다니지 않을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나의 믿음과 기준도 머무르는 것이 아니고 인연따라 흘러가게 한다면 모든 것이 보다 원활해질 수 있고 다가오는 모든 인연들에 대해서도 그것이 일이든 감정이든 사람이든 ‘예스’ 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매 순간 바탕의 비어있음을 더 깊이 살펴보고, 일어나는 느낌들의 관계를 확인하고 느끼고 끌려가지 않는 것을 실천해보겠다.

    진심으로 지도해주신 월인 선생님, 성지님께 감사드리고 말없이 그림자처럼 모든 편의를 제공해주신 도건 님, 온비 님, 통무 님 고맙습니다!!!
  • HereNow 2017-03-20 13:45:33   답글 | 수정 | 삭제
    한생각(중고차 판매)

    기초과정에 이어 한달 만에 다시 심화과정을 한다. 다시 시작된 감지 과정. 이제야 이해되기 시작한다. 조금씩 자리 잡혀가는 느낌이다. 이어지는 주의와, 주의에 주의 기울이기에 이은, 전체주의!

    전체주의에서 새로운 경험이 시작된다. 전체에 주의를 주며 나라는 마음이 사라질 때 이 모든 것을 포섭하는 더 큰 의식이 느껴진다. 이 의식은 어떤 것에 영향 받지도, 영향주지도 않는다. 항상 모든 허공처럼 여여히 함께한다. 이 속에 만물이 함께 있음에 대한 어떤 의심도 없다. 그리고 다시 있음으로 머물며, 있음으로 있는 고요함과 평안함에 흠뻑 젖어본다.

    이제 돌아가 다시 감지와 주의 현현에 쓸 수 있는 큰 도구를 얻어간다. 미내사 모든 관계자와 백일학교 도반들에게 감사드린다.





    무지(백일학교 학생)

    가장 인상깊었던 연습은 중심이 없는 상태로 있는 연습이었다. 다가오는 모든 느낌을 수동적으로 느끼게 되었고, 지금 이 순간의 느낌들이 끊임없이 변화함을 의식적으로 느꼈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느낌이 먼저 일어난다는 것을 느꼈고, 글을 쓰거나 말을 하기 전에도 느낌이 먼저 일어난다는 것을 느꼈다. 계속 순간을 최대한 느끼려 하니 내가 무의식적 습관으로 자동반응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다 문득, 지금 이 순간의 느낌들이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을 의식적으로 느끼려 하는 이 의도가 일어났고, 뭔가 내가 느낀다. 관찰자도 끊임없이 변한다는 게 와 닿았다. 투명한 관찰자도 대상되는 느낌과 함께 변화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앞으로 이런 지점에 대해 조금 더 살펴보려 한다.

    특정 느낌에 머무를 수 없음을, 머무르는 느낌이 느껴져도 이미 끊임없이 지나가고, 일어났다 사라진다는 것을 느꼈다. 마지막 경험 나눔 시간에 머무르지 않는 마음이 핵심이라는 선생님의 말씀도 인상적이었다.





    위수디(승려)

    감지훈련을 하며 마음에서 일어나는 상에 주의제로 하는 연습을 하다가, 사과밭에 가서 사과나무의 시각적 이미지를 보며, 이것이 마음이 잡아낸 상인 줄 알고 그것에 주의제로를 했다. ‘현상은 있다’라는 그 마음에 주의제로를 하니, 지금까지 마음이 잡아낸 마음에 취착하여 이름과 명분을 만들어 스토리를 지어내는 조작적 행위를 해왔다는 것이 알아차려졌다. 그러자 대상에 욕망을 불러 일으켜 그 대상에 구속되는 패턴이 쉬어졌다.

    감정과 함께 깨어있기 연습에서, 공포 영화를 보며 몸에 긴장, 옭죄는 느낌의 긴장, 열감이 느껴졌다. 분노와 함께 깨어있기에서도 몸의 느낌에 집중해봤다. 화가 나졌다. 발생된 화를 원인으로 신체적 느낌이 좀 더 뚜렷해지면서, 열감, 폭발적인 내부의 느낌으로 인해 그동안 느슨해진 몸, 마음, 감정이 뒤집혀진 느낌이었다. 온몸에 침을 맞고 회복된 느낌. 그동안 억지로 생생해지려, 깨어나려는 의도적 노력을 넘어 자연적으로 몸이 회복된 느낌. 몸이 건강했을 때는 부정적으로 여겨졌던 이런 감정이, 아프거나 침체해 있을 때는 오히려 긍정적 효과로 다가오는 것을 보며, 모든 감정이 귀한 선물이라는 통찰이 왔다.

    그리고 다채로운 감정이 일어나는 현상과 함께, 그것의 배경이 함께 인식되어짐이 더욱 선명해졌다.





    통무(백일학교 학생)

    이 세상이라고 언어적으로 표현한 공간은 모두, 있음으로 느끼면 있음이고 없음으로 느끼면 없는 것이다. 있음과 없음은 가치가 없어지고, 글을 쓰는 것도 말을 토대로 이뤄지기 때문에 매우 거칠며, 정교하지 못하다.

    우리는 감각으로 생겨난 차이를 구별하고, 기억으로 저장하고, 생각으로 만든다. 거기에다 이름을 붙이고 표현을 하게 되며 말로 소통을 하게 된다. 모든 것이 현상에 불과하고 실제는 아니지만, 믿음이라는 작용으로 인해, 실제처럼 여기고 실제라고 부른다. 하지만 보여지는 것은 느낌이고 만져지는 것도 느낌이다. '만진다'란 없다. 왜냐하면 대상이 이미 있지도 없지도 않기 때문이다.

    느낌으로 서서히 다가오면 허망함과 슬픔, 황홀함 등등 다양한 것들이 요동치고 받아주고 느끼고 하나가 되자고 애원하듯 한다. 하지만 보여지고 느껴진다. 모든 게 느낌이라는 것을. 그래서 아무렇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없는 것도 아니다. 그냥 이 순간 이것 이곳, 말로 표현되면 표현되는 것이다.

    함께한 분들의 존재만으로도 내 마음에서 변해가는 과정이 많이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모두에게 감사합니다.
  • HereNow 2017-03-16 12:14:01   답글 | 수정 | 삭제
    42차 깨어있기 심화과정 후기 (2017. 1. 27~29)



    양지(경찰)



    1. 가장 인상 깊었던 연습. 경험?

    - 소리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감지 연습을 하다가 고요함이 동시에 느껴진 경험.

    - 공포 영화를 보면서 배경이 되는 고요를 동시에 느껴보니 공포심이 하나의 현상으로 보임

    - 산책을 할 때 사물이 튀어나와 보이면서 ‘어? 이건 나의 느낌을 보는 거네!’라는 생각이 떠오름. ‘세상이란 건 없구나’라는 말이 와닿음

    - 성지님과 선물님의 문답 (선물님의 강한 에너지 중심을 흔드는 작업)을 보면서 ‘화’가 사용되어질 때 그 엄청난 에너지가 유용하다는 걸 알 수 있었음

    - 이유 없이 화내기 하면서 ‘나는 화낼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경계가 흔들리는 것 같았음. 화는 에너지라는 게 와닿음. 그 속에서도 고요할 수 있음



    2. 그러한 연습과 경험이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순간 순간 빠져드는 느낌과 기분에서 의외로 쉽게 빠져나올 수 있음 → 전체주의와 감지연습을 통해서 물들지 않는 배경을 경험하니 ‘나’와 느낌도 하나의 현상임을 알 수 있었으므로



    3. 그러한 경험과 통찰이 나의 어떤 믿음과 기준을 변하시켰는지.

    -“나는 고정되어 있다는 느낌”은 착각이란 걸 알 수 있었다.



    4. 이제 더 깊이 살펴보려고 하는 마음의 주제가 무엇인지

    일상에서 나를 힘들게 했던 상황과 내면의 기준, 자아상들이 나타날 때 “이게 과연 진실인지??” 탐구하고 싶다.



    5. 일상에서 그것을 살펴보고 실천할 방법?

    - 감정과 ‘부정적인 생각’이 올라올 때 배경과 함께 느껴보기

    - 질문 던지기 “ 이 현상이 진실인지”

    - 주의가 “나를 방어하는 데” 집중되어 있는지 살펴보고 전체주의, 50:50 연습,

    - 문제 상황, 고민상황에서도 배경과 함께 느끼기.

    - “나”를 위해 무언가(성공) 추구하기 보다 “해야 할 일”이 되게 하는 데에 초점 두기





    태허(의사)



    1. 가장 인상 깊었던 연습과 경험을 떠오르는 대로 기록합니다.

    비와 천둥소리를 들으며 감지 연습한 것과 전체에 주의를 기울이는 연습을 통해 나를 통하지 않고 대상을 바라 볼 수 있는 경험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2. 그러한 연습과 경험이 나에게 어떤 의미였나요?

    그동안 내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나의 경험과 판단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3. 그런 경험과 통찰이 나의 어떤 믿음과 기준을 변화시켰나요?

    대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줄 알았던 나의 믿음이 바뀌게 되었고 내 중심으로 외부세상을 판단하고 있던 기준이 변화되었습니다.



    4.이제 더 깊이 살펴보려고 하는 마음의 주제는 무엇인가요?

    산책하며 감지 연습과 나무에 말걸기,

    혼자만의 시간이 있을 때 나를 뺀 나를 느껴보기,

    말하고 행동하며 전체에 주의를 기울여 보기,

    관계에서 무게 중심 이동해 보기



    5. 마지막으로 깨어있기 심화과정을 이끌어 주신 월인님, 성지님, 그리고 백일학교에 계신 여러분들의 도움에도 감사드립니다. 심화 과정에서 함께 한 여러 선생님들 고맙습니다.





    선물(상담교사)



    깨어있기 심화과정 속에서 가장 크게 다가온 것은 내용(story)으로부터 대상 자체로 그리고 순수주의로 무게 중심이 실리는 경험이었다. 또한 나를 동일시된 내적 대상들이 아니라 있음, 존재로 존재한 경험이 무의식적 구심점을 흔들어서 불균형성을 조화롭게 만들어주었다.

    나의 삶을 관통했던 에너지들의 대부분이 결국 셀 수 없이 많은 나를 유지하고, 나를 보호하기 위해 사용되었다는 것을 직면할 수 있었고, 그 힘들이 빠지면서 마치 길을 잃어버린 것 같은 막막함도 찾아들었다.

    그러면서도 무수한 현상들을 섬세하게 알아차리고 그것들을 현상으로서 바라볼 수 있는 자유의 삶이 이제 막 시작되고 있기도 하다. 항상 시작의 막막함을 새로움을 열어주었는데. 이렇게 선뜻 발이 옮겨지지 않는 것은 현상을 주인으로 삼는 역동적이고 극락을 넘나든 삶에 익숙해져 있어서인가 보다.



    처음 영성 공부를 시작했을 때 그렸던 그림과는 전혀 다른,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길들이 열리면서 조금 멍하고 주저된다. 내가 진정 자유를 원했던 걸까, 아니면 그저 고통을 피하고 싶었던 것일까 헷갈린다.

    이제 방향성이 흐려지니 의욕과 열정도 느낄 수가 없다. ‘아름다운 나’, ‘파워풀한 나’를 위한 여정 중에 그 모든 것이 그저 현상이라는 통찰 대목을 만나게 되어 허탈하다. 허탈도 마음이지만.

    그저 지금 여기에서 오가는 마음의 실루엣을 바라보는 것이 마치 시골 동네 어귀에 앉아서 오가는 행인들을 할 일 없이 지켜보는 노인네가 된 것 같다. 이러한 마음과의 동일시 속에 있다. 바로 지금, 그 노인네 마음과의 동일시를 바라보고, 그 마음을 감지해본다.



    나는 누구인가? 집에 가서 감지, 있음, 순수주의 연습을 해보고 싶은데, 사실 지금은 무엇이 뚜렷히 잡히지 않는다. 감지를 하고 있어도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순수주의로 본다는 게 무엇인지.. 안개 속에 있는 듯하다. 아무튼 일단 이 흐름으로 현장에 가서 살아봐야겠다.





    니케(컨설던트, 겸임교수)



    가장 인상 깊은 연습과 경험

    - 모든 경험이 의미 있고 소중했지만, 퍼뜩이는 영감을 주었던 것은 ‘모든 것은 사라진다’는 것을 알게 했던 '사물과 함께 깨어있기', '감정과 함께 깨어있기'였습니다. '사물과 함께 깨어있기'를 하면서 전체주의 속에 내가 그저 사물이고 배경이었음을, '감정과 함께 깨어있기'를 하면서 감정은 사라지고, 그 감정의 폭풍의 눈은 배경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 특별히 소리를 감지하면서 부양을 체험하게 되었을 때는 “모든 것의 상이 마음으로 만들어지고, 그 마음은 사라지는데, 더하여 마음을 일으킬 수도 있음”을 감지하고 벅찬 느낌을 가졌습니다.



    그러한 연습과 경험은 나에게 어떤 의미였나요?

    - 환경과 상황 속에서 괴로워하고 아파하고 슬퍼하였습니다. 그 본질은 이미 아무것도 없는 것인데, 모든 것이 상이었는데, 그것이 진실인 것처럼 믿고 의지하였던 나의 본질을 바라보게 되면서, 모든 것은 있고·없고·사라짐을 알게 되고 모든 대상은 나에게 더 이상 대상이 아닌 나와의 일체감이며, 무엇이 무엇을 바라보느냐는 그저 하나의 현상일 뿐임을 통하여 환경에 지배되지도 말고, 그것에 대한 욕구를 발휘하는 나라는 거짓된 자아에도 지배되지 말고, 모든 것은 사라지는 것처럼 환경에 나를 맞추고 내가 환경에 맞추고, 모든 것이 없음으로 인지하게 되면서 마음은 편해지고 더욱 큰 의식의 장에서 활보할 수 있게 됨으로서, 더 이상 실체하는 것들로부터 내가 주인이라고 하지 않고, 나조차도 하나의 현상임을 봅니다.

    - 의식이 확장되면 의식의 눈에 감추어져있던, 경험의 느낌으로부터 자유하지 못했던, 무의식의 거대한 탁월함으로 살아 갈 수 있게 됨을 인지하면서 나의 잠재력의 발현과 가능성의 광대함이 기대되고, 그 기대는 현실이 될 것입니다. 그 기대가 실체가 되어 이 우주에 의미 있는 존재로서 어떤 의미를 남기기를 소망합니다. 모든 것은 내가 생각하거나 느끼거나 하는 것이 아니며, 그것에 대하여 ‘내’가 자유하는 것이 아니라 ‘나로부터’의 자유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나의 주변이 편안하고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이조차도 상이지만.



    그런 경험과 통찰이 나의 어떤 믿음과 기준을 변화시켰나요?

    - 나를 나라고 주장했던 신념과 가치 그리고 믿음들이 많이 변화되었습니다. ‘내가 해야된다’라는 주장. ‘내가 할 수 있다’라는 주장,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주장, ‘나는 할 수 있어’라는 주장, ‘사람들은 어떠 어떠 해야해’라는 가치, 심지어는 ‘사람들은 서로 준중하고 사랑해야하고 신뢰를 가져야한다’ 는 주장조차도 이제 모두 허상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살아야 해’, ‘빨리빨리 해야 해’, ‘늦으면 안 돼’, ‘완벽해야 해’, ‘행복해야 해’ 라는 모든 기준이 무너지고. 그저 여여하게 존재하여야 할 것들이 존재하고, 있어야 할 것들이 있고, 없어야 할 것들이 없다 라는 기준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이러한 의미들은 나의 삶에 풍요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나는 더 이상 없으므로 우주의 무한한 배경 속에서 충분히 풍요합니다.



    이제 더 깊이 살펴보려고 하는 마음의 주제는 무엇인가요?

    - ‘그저 바라보기’입니다. 의도를 가지지 않고 욕구를 가지지 않고 판단하지 않고 망상에 젖지 않고 그저 여여 하게 대상과 나를 바라보고, 나의 마음의 움직임을 바라보고,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그저 바라보기’입니다. 이로 인하여 나무가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이 흔들림을 보게 되고, 모든 것은 상이라는 것에 ‘그저 바라보기’입니다.



    일상에서 그것을 살펴보고 실천할 방법을 기록해 봅니다.

    - 일상에서 나의 하는 일을 모두 내려놓지는 않습니다. 다만 억지로 무엇인가를 만들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억지로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고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억지로 외부의 자원에 의지하지 않을 것입니다.

    - 그것을 위하여 저녁에 잠들기 전 20분간 ‘있음’을 경험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통찰 경험요약’을 기록하고자 합니다.



    결어

    - 이번 과정에서 일어난 나의 통찰에 감사드리며 무한한 우주의 기운 앞에 작은 기준과 집착에서 벗어나 배경 속에 머무르며 순수의식으로 존재하기를 열망합니다.

    - 오늘, 지금을 통하여 배우게 된 많은 통찰이 나의 실체가 존재하는 곳에 의미 있는 모습이기를 열망합니다.

    - 나는 지금 여기에서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 HereNow 2016-12-01 17:48:39   답글 | 수정 | 삭제
    2016년 11월 18일-20일 41차 깨어있기 심화과정 후기



    온비(청년 백일학교 학생)



    <깨어있기(심화) 경험요약>



    1. 가장 인상 깊었던 연습. 경험?

    [슬픔과 함께 깨어있기]

    슬픔의 느낌을 의식적으로 경계를 잡고 느끼니 그 느낌을 증폭시킬 수 있었다. 아무런 이유 없이. 그냥... 느낌은 어느 때보다 강렬하고 진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새로웠던 발견은 그 강렬한 슬픔이 강하게 느껴지는 동시에 그 슬픔에 전혀 영향받지 않음도 함께 있었다는 것이다. 너무나 슬펐지만 그 슬픔에 빠지지는 않았다.



    2. 그러한 연습과 경험흔 나에게 어떤 의미?

    느낌을 명확히 잡고 느끼는 것은, 그 느낌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이미 그 느낌보다 더 커져있다는 것. 느낌에 빠져있는 것과 그 느낌이 전부가 되지 않는 것의 차이를 통해 중심이 어디 있나에 따라 정말 진짜 같은 느낌 또한 그게 진짜이기도 하고, 그냥 그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것의 의미가 무엇일까.. 진짜 지금 있는 이 ‘나’라는 것, 이 진짜 같은 느낌 또한 그저 일시적으로 일어난 현상이라는 것?

    - 물들지 않는 깨어있는 의식을 느끼는데 focus

    - 깨어있기에서 배운 도구를 활용하여 느낌 느끼고 있는 ‘나’의 느낌을 명확하게 느껴본다.



    3. 앞으로 어떻게 연습. 실천할건지?

    일상 생활 속에서 느껴지는 느낌에 초점



    3. 앞으로 어떻게 연습. 실천할 건지?

    일상생활 속에서 느껴지는 느낌에 초점 맞추기보다 그 느낌을 느끼는 깨어있는 의식에 기준을 놓는다. 지금까지 생활은 거의 대부분 내 몸의 기준으로 판단해 왔던 것 같다. 이제는 내 몸이 기준이 아닌 그보다 더 큰 마음. 깨어있는 의식에 기준높고 탐구를 하려고 한다. 어떤 느낌이라도 그것이 전부가 되지 않는 것을 중심으로 잡으며.



    4. 지금 느낌은?

    마음을 기준으로 느낌을 살펴보며 산책했을 때, 그저 있음만 있다가 앞에서 차가 달려오자 그 순간 나의 에너지 중심이 뭉쳐지고 자동차라는 대상이 생겼다. 나, 내 몸을 기준으로 그 경험을 하고 깨어있기 각성 부분을 읽었는데 ‘제자리로 간다’라는 부분을 보자마자 소름 비스무리한 느낌과 익숙하지 않은, 낮선 이치의 느낌이 펴졌고 싫다. 꺼려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로 조금 복잡하고 혼란스러웠다. ‘나’에 중심이 있는 것을 편안해하고 좋아하는 놈이 있나보다.



    무지(청년 백일학교 학생)



    가장 인상 깊은 경험과 연습은 느낌이 일어나는 배경에 초점을 맞춰보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빔프로젝트 소리 라는 대상에 초점을 맞추기보단 그 소리를 가능케하는 공간의 느낌. 그 공간에 초점을 맞춰보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지금 느껴지는 대상의 내용을 보다는 대상 그 자체를 느낄 수 있게 해주었고, 그리고 그 대상 자체가 어떤 다른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 함께 일어나고 있음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빔프로젝트의 소리와 침묵이 함께 느껴지고 종이의 느낌과 종이 아닌 것의 느낌이 함께 느껴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것을 내 마음 자체에 적용해보면 이 모든게 내 마음 안에서 이어나고 있다는 것을. 마음을 가능케 하는 공간 혹은 배경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 부분이 와 닿았는데 아직 불명확한 느낌이 있어 앞으로 이러한 부분에 대해 더 탐구를 해보고 주제를 가져볼 예정입니다.

    끝으로 즐거운 깨어있기 심화기간동안 진정으로 참여해주신 온비님 님께 감사드리고, 조금 다른 구성으로 열심히 진행해주신 성지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깜상



    지난 8월말 기초과정에서 배웠던 주의. 감지에 대한 희미해졌던 기억을 되살리는 기회가 되었으며 심화과정에서 새롭게 배웠던 느낌. 생각. 감정에 깨어있기 그리고 주의에 주의 보내기. 투명한 의식에 주의 보내기등이 있었다.

    이번 과정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주의에 주의 보내기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대상에 주의가 많이 가면 그 대상에 나도 모르게 끌려가는 경향이 있는데 대상에 많이 가 있는 주의를 주의로 일부 보내면 대상의 힘이 줄어들어 이끌리는 힘이 감소함을 알 수 있었다. 이런 경우 대상에 대한 나의 반응을 관찰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겨 나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동안 여러 책으로 알고 이해하던 것들을 봄으로 직접 느끼고 깨달음을 얻고자 이 과정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느낌이라는 것이 섬세하기 때문에 원리와 이론에 따른 확실한 결과에 익숙한 나로서는 다소 답답함에 남아 있다.

    앞으로 일상에서 어떤 답답함을 해결하기 위하여 꾸준한 감지 연습을 통하여 느낌을 능력을 키우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이번 과정에 함께 하신 성지님, 무지님, 온비님께 감사드리고 다음 기회에 더 낳은 상태에서 뵙길 바랍니다.
  • HereNow 2016-09-27 09:20:25   답글 | 수정 | 삭제
    2016년 9월 16일-18일 40차 깨어있기 심화과정 후기



    온비(청년 백일학교 학생)



    <깨어있기(심화) 경험요약>



    1. 시작할 때 주제: 느낌을 느끼고 있는 ‘나’ 느끼기

    - 느낌의 내용은 이제 중요치 않다는 것을 알았다.

    - 물들지 않는 깨어있는 의식을 느끼는데 focus

    - 깨어있기에서 배운 도구를 활용하여 느낌 느끼고 있는 ‘나’의 느낌을 명확하게 느껴본다.



    2. 주제는 어떻게 되었나요?

    change. 느낌이 어디서 느껴지는가?

    느낌. 외부/내부의 느낌이 모두 내쪽에서 느껴진다고 생각하고 탐구해왔다. 그런데 오늘 집안의 공간 느낌과 그 안에 있는 내 느낌을 느껴보라고 했을 때 느끼는 나를 살펴봤더니 집안 공간의 느낌만큼? 확장되어 있는 느낌을 느꼈다. 새로운 느낌이었다. 그리고는 질문이 올라왔다. ‘내 안에서 모두 느껴지는 게 아니었어?’

    이 부분에 대해 궁금해졌다. 앞에 있는 컵이 느껴진다 어디서? 저기서



    3. 구체적으로 어떻게 탐구할 건가요?

    우선 생각이 아닌 느낌으로 탐구할거다. 주의에 주의 기울이기와 사물을 볼 때 주의 자체를 느끼는 것을 초점 맞춰 살펴볼거다. 생각으로 하면 정말 답이 없다는 걸 느끼고 있다. 내용이 아닌 그 내용을 알아차리게 하는 주의 자체를 느끼는 연습을 하겠다. 그리고 느낌을 느끼는 ‘나’를 느끼는 것과 주의 자체를 느끼는 것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 의미는 무엇인지 여쭤보며 탐구하고 싶다.



    4. 나눔 및 소감 한마디.

    다양한 질문을 통해 탐구의 방향을 잡아가고 통찰하는 모습을 보면서 열정을 느꼈습니다. 함께 참여하고 그 경험과 통찰을 공유할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앞으로 ‘지금;을 탐구하며 ’지금‘을 사시기 바라며-. 저는 이만 인사드리겠습니다. 조심히 가세요:)



    한나님



    시작할 때 주제는 늘상 깨어있기로 존재하기와 감각- 감지-생각의 알아차림을 일상에도 느껴질 수 있도록 집중적인 실습과정이 필요

    여기에 대한 이론을 2박3일간 심화과정을 통해 파악

    인상 깊었던 경험은 눈을 감고 배경 느끼기를 하였을 때 모든 소리를 인지하는 즉 모든 것을 비추는 마음이 있기에 만상이 드러남을 느낌

    우리가 느끼는 경험들은 주로 경계를 따라가는 데에 급급한 나머지 그 모든 것을 비추는 (드러나는) 침묵의 장(배경)을 놓치고 있음.

    늘상 깨어있기 과정은 결국 최후의 주시자 아니 주시자도 없는 텅 빈 ‘허공 그 자체’ 나아가 만상을 일으키는 ‘진공묘유’임을 체득하는 과정임을 새삼 느낌

    무엇보다 깨어있기 과정은 그 기초과정으로서 ‘감지’ 느끼기 훈련이 바탕이 되어야 함. 그러지 않고서는 ‘사상누각’임을 절감. 일상에서 감지 훈련으로 새롭게 태어날 필요를 느낌







    무주



    <통찰> 경험 요약



    2박 3일간 경험 정리

    시작할 때 주제는 무엇?

    가장 인상 깊은 연습과 경험을 떠오르는 대로 기록

    그런 경험과 통찰이 나의 어떤 믿음과 기준을 변화시켰나요?

    이제 더 깊이 살펴보려고 하는 마음의 주제는?

    일상에서 그것을 살펴보고 실천할 방법을 기록

    함께 한 분들과 이 시간에 대한 감사의 나눔과 소감



    더 깊이 살펴볼 마음의 주제는?

    쉼없이 이 주제를 계속 심층있게 가보고 싶다

    일상에서 마음 감지 연습을 통으로 감지연습, 주의 연습을.



    <통찰 2박3일 경험요약>



    시작주제: 있음의 미세한 구조 해부

    가장 인상 깊었던 연습과 경험은 마지막날, 주의를 보내며 대상을 보는 것이 평소에 보는 것과 달랐다. 보는 것이 아니고 포착했다고가 가까운 표현인데 ‘대상을 본다’ 라고 하는 시점부터 대상에 주의가 가고 형태감이 경계 지어지고 이름붙이는 그 짧은 시간에 이러한 단계를 경험했다.

    한 번도 잡아본 적이 없는 이런 주의를 경험하지 않았다. 대상을 보고 안다가 다였는데 내가 대상을 보는 것이 아니고 대상이 나타나서 경험되는 것임은. 그동안 이 미세한 단계를 간과하고 ‘안다’라는 병에 빠져 있음을 느꼈다. 돌아가 [감지] 연습을 통해 이 경험이 일상다반사가 되도록 풍성한 수행을 실천 하고 싶다.

    (기준과 어떤 믿음과 기준의 변화?) ‘안다’라는 믿음이 점차 약해져 뿌리를 뽑게 될 것이고 기준이랄 것도 딱히 없을것으로 기대한다.



    무지(청년 백일학교 학생)



    <통찰> 경험 요약



    시작할 때 주제는 이 모든 느낌을 느끼는 나는 누구인가 였는데 그 질문을 던지는 그 내가 일어났다 사라지는 자임을 느꼈다. 인상 깊었던 연습은 이유 없이 화 내기 연습과 있음 연습이었다. 이유 없이 화 내기를 통해 내가 감정이 아님을 느꼈고, 감정이란 것이 이유와 믿음, 기준을 통해 일어나기도 하지만 그런 것과 상관없이 ‘의도’에 따라 일으키기도 사라질 수도 있는 명백한 현상이자 느낌임을. 강한 에너지의 흐름 임을 느꼈다. 그리고 그 감정이 일어나는 순간에도 함께 하는 어떤 투명한 느낌을 느낄 수 있었고, 그 느낌이 늘 전부가 아님을 알아챌 수 있었다. 있음 연습은 시각과 촉각 등 감각적 상을 하나둘씩 내려놓고, 있는 느낌만 남도록 했을 때 ‘나’라는 느낌이 어떻게 바뀌는지 느껴보았는데 느낌과 느낌 아님이. 나와 대상이 둘이 아님을 느꼈다. ‘깨어있기’ 심화과정을 함께 한 모든 분들과 서로 진지하고도 진솔하게 탐구를 같이 할 수 있어 기쁘고 즐거운 시간이었고 경험을 함게 하고, 각자 그 경험을 나누는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혜량스님



    처음 시작할 때의 주제는 ‘외부의 대상이 마음의 느낌’이라는 것을 확실히 경험하고 싶었습니다. 깨어있기 기초과정을 통해 일상생활에서 ‘감지’가 느낌이라는 것이 명확하지 않았기에 기초과정 후 생활 속에서 나름대로 감지 훈련을 했으나 여전히 모호한 것 같았는데 심화과정에서의 예시된 프로그램이 진행될수록 나름대로 한 감지훈련도 다 유용했음이 증명되었습니다. 심화과정때는 좀더 세밀하게 대상과 대상을 보는 자에 한층 더 접근하는 프로그램들로 이루어졌다고 생각되는데 특히 사물을 통해 감각상태로 들어가기. 깨어있는 의식 느끼기. 대상에 주의 50%주기와 나에 대한 주의 50% 유지하기를 통해 주의를 줌에 따라 대상이 일어나고 주의를 어디에 주는지에 따라 나와 대상이 흐려지거나 없어지는 현상이 드러는 경험도 생겼습니다.

    특히 몸에 대한 주의 50%와 관찰하려는 마음에 50% 주의를 주자 지금 이순간 들려오는 소리감각이나 몸에서 느껴지는 느낌들이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일어나는 것을 평등하게, 에너지가 어느 쪽에 편향되어 일어나지 않음을 알게 되고 깨어있는 의식 느끼기를 통해 ‘자신의 중심이 없음’이 확인되어 그 상태를 유지하는 과정에 모든 움직임(일어나고 사라지고)은 감지되나 그것과 관련된 스토리가 만들어지지 않고, 생활속에서 관계에 따라 감정이나 생각이 일어나고 사라져도 투명한 본성은 물들지 않음이 경험되었습니다.

    마지막날 느낌의 핵심은 비어있다. 내가 알고 있다고 느끼는 모든 것이 과거의 기억임을 확인한다 라는 타이틀 아래 수없이 진행되는데 성지님이 컵을 흔드는데 갑자기 안과 밖의 경계라고 믿었던 것이 무너지면서 컵도 느낌이구나. ‘나’도 느낌이구나!
  • HereNow 2016-07-19 15:46:21   답글 | 수정 | 삭제
    2016년 7월 15일-17일 39차 깨어있기 심화과정 후기



    현재(청년 백일학교 학생)



    깨어있기 심화를 하면서 가장 인상 깊은 순간이 몇몇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정중동 속에 있었던 순간입니다. 그 때는 연습의 느낌을 지니고 돌아다녀 보기를 하던중 잠자리가 날아다니는 것이 보이는 순간. 잠자리의 움직임과 움직이지 않음이 함께 있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그 순간 정중동속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있음과 없음. 극과 극이 항상 함께 한다는 것이 느껴졌을 때입니다. 이때 깨어있기 수업이 끝나고 자기전에 잠이 오지 않아서 미움. 고요 등등으로 불리는 이것에 대하여 생각하던 중 이 고요를 느껴 보려하다가 고요한 것은 고요 그 자체만으로는 느낄 수 있고 항상 어떤 느낌의 배경으로서만 느껴진다는 통찰이 왔습니다. 그래서 항상 어떤 느낌이든지 그 느낌이 있다 없다 하는 현상이 있다면 그 배경에는 그 느낌이 없음이 자리 잡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어떤 느낌이 느껴질 때에 항상 이 두 극이 분열하는 것이 느껴지고, 있음과 없음 또한 있음의 극이고 있음으로 인해 없음이 생기고 없음으로 인해 순수한 있음 즉 없음이 없는 있음은 없고 없음이나 있음 그 둘 중 하나가 없다면 더 이상 그것은 있고 없고의 개념이 아니고 진정, 없음도 없는 그러한 상태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두 경험이 이번 깨어있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입니다. 이번 깨어있기를 하며 또 깨달은 것이 있는데 이러한 통찰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해는 내가 대상을 아는 것인데 통찰은 내가 그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버리고 그것이 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즉 현 상태에서 어떤 것을 이루려고 하는 개념이 아니고 지금까지의 관점이 바뀌는 느낌인 것입니다. 이렇게 되니 알려는 의도도 없이 그저 그러한 상태로 있게 됩니다. 깨어있기 심화를 통해 관점의 변화가 생겨서 더 이런 것이 흥미가 생기고 앞으로도 계속 해나갈 마음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깨어있기를 지도해주신 성지님과 같이 깨어있기를 하신 햇살님께 감사합니다.
  • HereNow 2016-05-23 17:20:03   답글 | 수정 | 삭제
    2016년 5월 20일-22일 38차 깨어있기 심화과정 후기



    무유(전직 회계사)



    기초과정을 마치고 2개월이라는 숙성과정을 거치고 참여하였다. 첫 시간에 월인선생님으로부터 6식의 내용을 들었는데 참 정리가 잘 되었다. 이번 과정을 통해서 얻은 경험과 통찰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내가 배우고 경험하여 얻은 모든 마음의 내용이 일시적인 현상이고 믿을 것이 못되고 알아차리고 주의를 조절하면 어렵잖게 내려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나의 관념, 가치관을 기준으로 상황/사건. 사람을 접하다보니 걸림과 막힘이 생기면서 감정적으로 과부하가 걸린 적이 많았기에 이번 과정을 통하여 그런 믿음들이 정말로 믿을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앞으로의 펼쳐지는 상황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힘이 생긴 것이다.



    둘째로 삶의 모든 내용의 배경이 되는 투명하고/ 물들지 않고/ 변하지 않는 그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어설프지만 맛을 보았다는 것이다. 현상적으로 펼쳐지는 모든 존재/상황에 대하여 그 본질의 입장에서 보면 그냥 무게감 없이 함께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경험했다. 진실로 문제될 것은 아무것도 없고 그때 그 장소에 최선의 답을 본질은 이미 제시하고 있기에 그 본질을 따라가면 된다는 것을....



    셋째로 “감지를 잘 하는 것의 중요성을 절절하게 느끼게 되었다. 어떤 생각 감정을 그 생각차원에서는 다루어질 수 없고, 그보다 본질에 가까운 감지차원으로 가야만 알아차리고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말로 감지를 잘 하도록 노력해야겠다.



    끝으로 심화과정을 세심하고 절도 있게 이끌어 주신 성지님, 그리고 같이 참여해서 경험과 통찰을 나눠주시고 힘이 되주신 거위.가온.무원.정원님과 함양에서 본질을 찾아 정진하시는 자형.온비님께도 감사함을 드립니다. 더욱이 옆에 계시면서 그냥 도와주신 월인 선생님께도 큰 감사함을 표합니다.







    거위(의사)



    1) 일상과 공부가 둘이 아니다 라는 가르침, 견해를 앎으로 전환시켜 주셨습니다. 좀더 미묘한 믿음과 기준까지도 이제는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필요에 따라 내키는 대로 믿음과 기준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 사용한다. 알아차린다 한들 어느 누구도 행위주체는 아닌데. 수없이 많은 것들이 안팎으로 일어났다 사라진다. 누구도 하는자는 아니라고 할 수 밖에 없지만, 움직임 속에서 움직이지 않고, 떠오름 속에서 떠오르지 않는 그것이 도대체 뭘까? 24시간에 도전해 보겠습니다.



    3) 성지 선생님. 월인 선생님 고맙습니다. 함께 애써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함께하신 모든 분들이 다 뭔가 달라져 돌아가시는 것 같습니다.



    온비()



    1. 통찰: ‘나’라는 느낌. 진짜 같은 느낌 또한 일어났다 사라지는구나. (몸. 긴장되는 느낌 등...) 아무리 진짜 같은 느낌이 오더라도 변함없는 그것에 중심두고 함께 있다보면 그것 또한 사라지는거구나.



    2. 내가 뭔가 애쓰고 노력해서 해야만 할 것 같은, 그러고 있는 느낌 또한 하나의 일어난 믿음이구나.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일어나는구나. 나는 물을 마시지 않는다. 이게 어떤 느낌인지 OK



    3. 변하지 않는 것. 그것에 대해 깊이 살펴보려고 한다. 느낌이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그 앎의 느낌 또한 계속 살펴볼 예정이다.



    4. 감지 연습. 있음 느끼기 연습(바로바로 일어나는 순간 알아차리기)



    5. 연결되고 통하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각자 다른 주제, 탐구방향을 갖고 있지만 서로서로 말. 느낌에 의해 영향 주고 받고 하는 그런 모습이 인상깊었습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함양 또 오세요.

    ※ 대상이 생긴다는 것은 ‘믿음’ 또한 생긴것이구나. 대상에 주의가 가면 ‘나’라는 느낌이 동시에 생기는 구나!

    내가 뭔가 하려고 할 때 그 나 같은 진짜 같은 느낌이 커진다. 계속 머문다. 이것을 알아차리면 그것을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냥그냥 지금의 상태로 ing-

    주의로 잡아낼 수 없는 그것을 향하여------.

    있음, 변함없는 그것, 이것 또한 투명한 주의 상태라는 것. 주의가 갈 수 있기에 잡힐 수 있게 된다.



    무원(번역가)

    ● ‘내’가 하는 알아차림에서 ‘나’를 알아차리는 것으로의 전환

    ● ‘지금’ 그것이 확인이 되는가?알아차리는 의식의 ‘상태’나 알아차려지는 깊이. 이를 유지하려는 노력에 초점을 두던 것이 전환됨. ‘지금’ 상에 빠져 있는가? 아니면 깨어있는가?

    ● 단계적인 발전과 알아감. 완성의 과정이라는 수행의 틀이 전환됨 그것으로 서서히 다가가는 과정이 아니라 ‘지금’ 그것으로 중심이 이동하는 것

    ● 살펴볼 주제: 알아지는 것이 모두 마음의 느낌임이 확연히 알아지도록 연습. 오감을 중심으로 감지 연습. 우울한 감정 직면하여 탐구하기

    ● 에너지를 아낌 없이 나눠주시고 열의를 갖고 임해주신 도반들과 이를 힘 있게 이끌어주신 선생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정원(상담가)



    여러 가지가 경험되었지만 나도 경험되어지는 느낌이라는 것이 알아졌고 생각 속의 세상과 감지 차원의 세상의 느낌이 이해됐다. 감지를 중요시하는 것이 왜 그러는지가 통찰이 오면서 빠져나오는 point를 알게 된 거 같다. 앞으로의 나의 주제는 느낌인줄 알고 동일시에서 벗어나는 걸 삼고 싶으며 “지금”이라는 말을 문자로가 아니라 상태로 만드는 맥도 알았다. 귀한 걸 아낌없이 나눠준 성지님과 시너지 효과에 동참하게 해준 거위님. 가온님. 온비님. 무유님. 무원님께 고맙고 이런 공부의 틀을 만드시고 하게 해주시는 월인님께도 인사올립니다.



    가온(초등학교 교사)



    매순간순간이 소중하였다. 늦게 왔지만 매순 간 그 순간에 존재했기에 아쉬움이 없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수피댄스다. 몸으로 한 것은 오래 기억에 남는 것 같다. 정말 (돌아보) 변하지 않는 그것에 중심을 두고 돌아보니 내가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상대가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얼마나 시시각각 변하는 내 생각과 감정과 느낌을 나라고 여기고 살아왔는지 깊이 느낄 수 있었다.

    또 이유 없이 분노하기도 해보았다. 하기 전에는 정말 될까 싶었다. 화라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안 좋은지 알기에 안 낼려고 노력하고 내게 되면 화 낸 나 자신에 실망하고 자책하기도 하였는데 이유 없이 분노하라니 당황스러웠지만 분노하는 내가 ‘나’가 아니라고 알았기에 다 같이 분노하고 분노하지 못하는 이를 분노하게 만들어 보았다. 그러기에 바로 변함없는 그것에 주의를 기울이며 멈춤할 수도 있었다. 일상에서 이유가 있기에 분노를 화를 멈추지 못 한다 여겼던 것들을 다시 한 번 살펴보며 멈출 수 있을 것 같다. 변함없는 그것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가장 큰 통찰은 마지막에 하였던 ‘있음으로 존재하기’에서 느꼈다. 거울을 통해 ‘나’를 보니 ‘나’있음이 느껴지고, 느껴지는 느낌을 내려놓으니 내가 있고 거기에서 ‘나’를 내려놓으니 있음을 경험하였다. 그 상태로 산책을 하였다. 한걸음 뗄때마다 많은 생각과 느낌이 올라오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그럴 때마다 생각 알아차리고 내려놓고 느낌이 올라오면 알아차리고 내려놓으니 분별없이 있음의 상태에서 사물을 관찰할 수 있었다. 충만하고 시간의 흐름도 잊고 그냥 있었다. 이 연습을 일상생활에서도 많이 해보아야겠다. 내 생각과 감정과 느낌이 일어나는 것을 더 잘 관찰하고 내려놓을 수 있겠다. 그걸 내려놓고 있음 상태로 중심이동하다보면 나에 대한 동일시에서 벗어나게 된다면 삶을 더 충만하게 살 수 있겠다. 열과 성을 다해 지도해준 성지님. 월인선생님 함께 해준 도반들이 있었기에 기쁘게 배울 수 있었음에 감사드립니다.
  • HereNow 2016-03-22 15:49:34   답글 | 수정 | 삭제
    2016년 3월 18일-20 일 37차 깨어있기 심화과정 후기



    노래



    남은 내용: 깨어있기는 ‘나’와 기준을 동시에 보는 것, ‘나’로 알고 있는 것이 ‘과거 기억’이다. >> 충격. 호흡이 멈추다.

    한것: 전체주의를 했을 때 나와 밖이 경계 없어지며 ‘해체’ 경험.

    안것: 본디 나랄게 없음을 실감

    의미: ‘본디’의 모습에 대한 확신, 나아가고자 하는 욕구>

    방법: 이곳에서 익힌 것을 반복 연습



    한 것:

    주의에 주의 기울이기

    주의가 가고 있음을 거의 줄곧 느낄 수 있었다.

    ‘투명한 주의만 있음’

    ‘투명함 조차 붙일 필요없는 주의만 있음’

    ‘주의만이 이동할 뿐, 나아가 ‘있음’만 있음...

    이것들을 실감한 찰라들을 통해서 있음만이 있음을 확인했고, 있음 이외의 상태가 99%인것도 확인했다. 위경험으로 믿음과 기준이 변화했다기 보다는 ‘엶어지기로 작정?’

    또는 믿음과 기준을 믿지 않을 수 있다는, 평소 ‘나’라고 여기는 것에서 조금 떨어질 수 있다는 ‘각성’이 생김.

    더 살필 것: 위에 적은 것들이 방향이다.

    방법: 오인회 나가겠습니다. 화요일로 바꿀 계획이라 말씀하셔서 무척 기쁩니다.

    진선미를 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것이 실행되는 인큐베이터



    자공



    가장 중요한 통찰은 소리, 촉감, 시각, 생각과 감정에 물들지 않는 그 무언가를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없던 것이 생겨난 것이 아니고 원래부터 늘 있던 것이다. 첫날 저녁에 했던 연습에서 이것을 분명히 경험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 이후로 했던 다양한 연습들을 통해 이것이 명료해졌다. 3일차 오전에 감지 연습을 한 후 ‘있음’의 느낌으로 산책을 했다. 그때 내가 있음과 시냇물 흐르는 소리가 있음이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심지어 생각이 떠올랐는데 그 생각이 있음과 저 너머 큰 산이 있음이 다르지 않음이 느껴졌다.

    이 두 가지 경험은 이제 앞서간 사람들의 ‘말과 글’을 통해 하는 공부가 아닌 직접적인 탐구로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공부가 아닌 그저 실제를 보고자 하는 공부로 방향성을 옮겨 놓았다. 안내해주신 성지님. 함께 탐구한 모든 분들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혜정(온비)



    가장 중요한 통찰이라..

    우주가 떠올랐다. 우주에는 중력이 없으며 그저 하나됨 그 자체의 상태다. 지구는 우중[ 속해있지만 중력이라는게 있으며 사람이 분별하며 개별적으로 구분지어 산다. 중심 되어지는 나 또한 중력의 힘처럼 당연하다고. 진리라고 믿고 삶을 살아가는 것 같다. 깨어있기 과정을 통해 이게 마음으로 조금 비춰진 것 같다. 아직은 그 원리를, 모든 것이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의미를 가슴으로 느끼지는 못했지만. 점점 깊어지고 조금씩 조금씩 다가가고 있는 것 같다.

    2박3일 동안 진지한 태도를 갖고 임하기도. 퍼 자기도. 생각에 빠져 괴로워 하다가도 잘 되는 상황 속에서는 즐겁고 기뻤다. 전 보다는 조금 더 깊어지고 느껴지는게 많은 것 같다. 궁금하고 관심의 범위가 확장된 느낌? 경험들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시간이었다. 이제는 질문을 던질 때라는 생각이 든다. 깨어있기를 통해 배운 다양한 도구들을 왜 배운 다양한 도구들을 왜 배운 것이며, 마음의 원리 (모든 것은 일어나는 현상)와 어떤 연결이 되어질까. 스스로 탐구하기 초읽기에 들어가기 직전 상태인 것 같다.

    마지막 시간을 통해 아직 나는 생각이 많으며 나도 모르게 참 잘 빠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의식적으로 전체주의와 주의에 주의 기울이기. 주의 50:50....을 실시간으로 적용하며 그 힘을 키워야겠다는 느낌이 가득하다.

    ‘있음’의 느낌 연습을 통해 ‘나’가 슉 올라오고 느끼려고 하고 느끼고 있는 그 모습도 살짝 맛본 것 같다. 칠판의 있음과 나의 있음에서 칠판과 나를 내려놓고 오로지 있음만을 느끼다보면? 뭔가 하나로 접속된 느낌? 비스무리한 느낌을 딱 받았다. 이게 뭐지? 깨어있기 과정 동안 맛보기를 많이한 느낌이. 이제 그 맛을 보았으니 더 깊이 탐구하여 통찰할수록 순수한 마음 안고 행동해야지. 주의 살핌이. 주의 밀당 의식하며 파이팅! * 경험치 더 쌓자!
  • HereNow 2016-01-19 11:45:13   답글 | 수정 | 삭제
    2016년 1월 15일-17일 36차 깨어있기 심화과정 후기



    시명



    새롭지 않지만 항상 할 때마다 새로움을 느낀다. 관성에 의한 주의의 흐름들을 느끼고 어디에 주의가 가느냐에 따라 나 또한 나 갖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체험하였다. 따로 주의가 시작되는 곳도 끝나는 곳도 없지만 관성적 흐름에 의해 관성이 없어도 끝없이 흘러나옴을 느낀다. 화두의 주제로 잡은 전적으로 수용하기,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의한 반응에도 그 기준이 전적으로 수용하고, 스스로의 끊임없이 올라오는 그 느낌들이 전적수용(내려놓다) 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생각이 아닌 느낌으로 계속 의식적으로 할 수 있게끔 좀 더 살펴보고자 한다.



    메타



    1. 경험요약

    감지에 대해 좀 더 분명히 알고 경험해서 이제는 훈련에 어려움이 없을 것 같다. 주의에 주의를 기울이는 연습을 통해 내가 나를 괴롭히는 생각. 감정으로부터 좀 더 자유스러울 수 있겠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전체 주의를 통해서도 생각과 감정을 흘려 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아울러 ‘있음’의 경험은 매우 소중했다. 분리된 상태의 ‘나’가 본래의 상태로 돌아가 ‘있음’을 느끼게 되며 강화된 ‘나’에 대한 믿음을 약화시킬 수 있겠다 느꼈다. 이 연습을 귀가 후에도 정성을 기울여 할 작정이다. 늘 무언가를, 아니 해야 할 것에 시달려보는 삶을 살아왔고 이 자리에도 그래서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 상태에서 벗어나 ‘그냥있음’. 이란 말을 들었을 땐 코끝이 찡했었다. 왜 그렇게 평생을 시달릴 수밖에 없었나? ......



    2. 통찰

    감지와 감각, 다시 감지로 돌아오기를 하면서 대상이란 내 의식, 내속의 것이란걸 미약하게나마 ‘아’하고 느꼈었다. 소중히 추적하며 온 통찰로 내겐 인식 시켜야 할 부분이라 대상은 나의 외부에 내가 보기 전, 보는 것과 무관하게 있어오고 있다란 생각을 허무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아울러 이 ‘나’도 허물어질 것이라....



    3. 살펴 본 마음의 주제

    1) 불안이다.

    현재 생활에 있어서 문제를 가장 크게 유발하고 있어 놓여질때까지 살펴볼 것이다.

    2) 나에게 쏠린 주의 떼어내기



    4. 연구할 방법

    주로 주의를 통해

    1). 불안에 대한 주의 제로

    2). 50대 50으로 주의를 주기 연습

    3). 주의에 주의를 주는 연습을 통해 불안 감정에 가있는 주의를 걷어들이겠다.



    5. 감사의 마음

    함께 공부를 해주심에 이곳에서 처음 만났지만 격려가 되었다. 공부를 하는 것이 기준일뿐 나이가 기타의 것들은 문제가 아닐 것이다. 공부의 지도를 해주시는 100일학교후 남아계신 분들의 노고가 아니었으면 불편했을 것임에 감사드립니다. 더욱 성심성의껏 지도해 주신 선생님의 헌신적인 모습이 정말 고마웠습니다.



    자연



    - 가장 중요한 통찰은 무엇인가요?

    주의 이동에 따라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나에 대한 생각도 주의에 따라 달라진다는게 놀라웠다.

    - 그러한 통찰이 나의 어떤 믿음과 기준을 변화시켰나요?

    내가 믿고 있었던 확고한 신념이 주의제로로 사라지는걸 보고 100% 믿는 신념 또한 나의 생각일 뿐이라는 걸 느꼈다.

    - 이제 더 깊이 살펴보려고 하는 마음의 주제는 무엇인지?

    나의 생각과 감지를 살펴보고 싶다. 순간순간 생각되어 지는 믿음, 사람들과의 관계 (타인의 감지들) 내가 확고하게 믿고 있는 신념들을 살펴보고 싶다.

    - 그것을 연습한 방법을 기록해봅니다. 감지와 주의 연습을 날마다 기록해가면서 해 보고 싶다. 2박3일간 함께 해주신 도반님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3년만에 2박3일 심화과정을 다시 해보았다. 그 당시에도 열심히 연습하고 배웠지만 적용이 되지 않았고 다시 나로부터 묶여서 살아오고 있었다. 배움은 자기에게 체득되어 살아가는데 적용되고 변화되어야 진짜 배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심화과정으로 주의와 감지 연습을 실생활에 적용해보고 탐구해보고 싶다.





    주예(심리상담사)



    깨어있기 심화과정을 시작하기에 앞서 떠올랐던 질문들은 죽음에 대한 것과 아직도 대상이 존재하고 나라고 존재하는것도 느껴지니 뭐든지 나안의 현상임을 자각했지만 그것을 명확하고 절절하게 느끼고 싶었다. 주의에 주의 기울이기, 전체주의, 주의제로 연습을 하면서 나를 대상으로 느끼는 느낌들이 명확해진다는 것을 느꼈고, 내적인 감지를 찾는 연습을 통해 끊임없이 내 몸의 느낌과 마음의 느낌과 생각들이 왔다가 사라지는 것을 느꼈고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순수의식 또한 느낄 수 있었다.

    대상과 나, 보이는것과 보는자, 들리는 것과 듣는자에 대한 경계가 점점 허물어져 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이튿날 잠자기 전에도 잠을 자면서도, 일어나서도 ‘주의’라는 것이 어떤 주의를 기울이냐에 따라 주의를 쏟는 대상이 실제한다는 느낌일 뿐이라는 생각이 여러 가지로 정리가 되었었는데 이튿날 주의를 가지고 다양한 활동들을 하면서 주의제로와 감지를 왔닥갔다 하는 느낌을 통해 체험적으로 통찰되었고 기분과 대상에 따라 매순간 변화하는 현상이라는 것이 점점 더 명확해져갔다. 그리고 생각을 느낀 건 생각의 느낌을 잡는 것. 오감을 통한 느낌을 느끼는 것, 있음의 상태로 있는 것, 주의를 50:50으로 보내는 것등을 해보며 진짜가 아니라 그러한 작용이 있을 뿐 진짜라는 믿음이 있을 뿐이다. 즉 진짜라는 작용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명확히 알게 되었다.

    주의의 연습등을 통해 주의는 모든 것을 살아있게 만드는 자원이다. 집으로 가서 생활속에서도 나에게 진짜 믿게 만드는 믿음들이 있다면 그것에 많은 주의가 가고 있음을 느껴보며 주의제로나 주의를 50대 50으로 보내는 적이나 감지나 있음상태로 있는 활동들을 해보며 진짜 ‘나’라고 믿는 믿음들이 사라지는 활동들을 해보고 싶다.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들이쉬고 내쉬는 들숨 날숨처럼 나라는 존재도 나의 상태와 기준에 따라 그리고 그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 매순간 변화되어지는 현상임을 느끼며 나라고 주장할 것도 내것이라 집착할 것도 선과 악도 삶과 죽음도 그저 매순간 왔다 사라지는 현상이라는 것을 느꼈다. 내가 스스로 안다고 믿는 나라고 믿는 주체의식과 행위자로서의 나의 인식을 벗어나 오로지 매순간 변화하는 역동적이고 순수한 나라는 것에 대해서 실생활에서도 그저 흘러가는 구름과 흩날리는 바람과 쏟아지는 빗물과 밀려오고 왔다 사라지는 파도의 움직임처럼 어느 것 하나 머무르는 것 없이 어떤 근사해보이는 대상도 나라는 모습의 집착 없이 존재함으로의 순수한 현상으로 살아가고자 한다.
  • HereNow 2016-01-19 11:44:22   답글 | 수정 | 삭제
    2015년 9월 18일-20일 34차 깨어있기 심화과정 후기



    시명



    느껴지고 보여지고 들리는 모든 것들이 내가 아닌 대상이라는 것을 느끼고는 있었지만 과거라는 이미지에 빠져 지금에 있는 것들을 보지 못했다. 생각도 느낌으로 깨달으며 순간순간 실시간으로 내가 빠져 있다는 것을 자각하며 행동을 하고 느끼기 보다 느끼면서 행동을 하며 실시간(지금 이 순간)으로 탐구를 한다. 빠졌다는 것도 통찰을 일으킨 것도 한 순간 지나고 나면 과거. 그랬다는 느낌만 있을 뿐, 그것에 사로 잡히지 않고 지금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내가 없는, 분리되어 있지 않은 세계에 살기 위해 좀 더 세밀하고 명확하게 구분을 한다. 구분이 명확히 되어야 내가 아님을 안다. 생각-감지-감각의 스펙트럼이 좀 더 분명해졌다. 감지는 항상 되고 있다 ! 바깥 대상이 있다라고 전부 구분되고 그 구분하는 나도 구분되며 결국 구분이라는 이름만 있을 뿐 전부 같다.



    미석



    - 생각의 틀에서 주의>주의. 감지하기 진행

    쏟아지는 졸음과 피로속에서 정신을 못 차림



    - 말에 빠져, 당연한 것을 몰랐음을 알아챔

    느낌은 그냥 느낌이다. 그 안의 정보와 이유들을 빼고 느낌을 알게 됨



    - 단어부터 상황까지 모두 생각적인 느낌임을 알고

    그저 느낌으로 느끼는 훈련



    - “나”라는 주체가 존재하는 모든 순간이

    동일시라는 것을 알게 됨



    - 지금 이야기 하는 내 자신이 동일시라는 것을 이해하였으나

    최종 모든 느낌과 배움을 습득하였다는 진짜 동일시 된 “나”를 느낌 (발끈함)



    -얘가 부정당할 때면 항상 기분이 좋지 않고 싸울 일이 많았음



    - 근데 얘가 “나”는 아님

    걸렸음. 잘 숨어있었는데...



    - 시무룩... (끝날 때 어퍼컷!)처럼 따로, 나 따로가 아님

    이 모든 걸 느끼고 경험했다고 생각하는 지금 느낌은?

    가장 큰 “내 자신”이 내 안에 존재 함을 느낌



    - 충격! 시무룩... 순간 시무룩한 내가 내가 되어버렸다! 동일시! stop

    감사합니다.





    선혜



    고통스러운 마음을 피하기 위해 마음 탐구를 시작했습니다. 제 삶 전반에 걸쳐 저를 힘들고 괴롭게 했기 때문에 마음 탐구에 대한 열망이 컷던 것 같습니다. 그러한 탐구의 일환으로 깨어있기 기초반을 들었습니다. 그 때 제 주제는 내가 무엇이고 세상은 무엇인가? 였습니다. 세상속에서 내가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 두 가지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주제를 품고 2박3일 동안의 수업을 들으면서 ‘모든 것들이 내 마음에서 느껴진다’는 것이 다가왔고 무언가를 알게 되었다는 기쁨에 뿌듯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루 하루 살아가면서 커다란 문제들과 부딧히게 되었고 그 결과 다시 마음이 아팠고 에너지가 떨어져갔습니다. 그러한 과정 중에 깨어있기 심화수업을 듣게 되었습니다.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원리를 살피고 꼼꼼히 정성을 다해서 마음을 탐구하였습니다. 내가 지금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어딘가에 또 빠져있는 것은 아닌지를 바라보면서 탐구에 임하였습니다.

    이번 깨어있기 심화수업 때 제가 품은 주제는 ‘진짜는 진짜인가?’ 였습니다. 그동안 제가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마음에 상처를 입은 것은 모든 것들이 제게는 진짜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수업을 들으면서 제가 품은 주제를 살폈고 2일째 밤 마음 속에서 느낌이 일어나는 원리를 조금이나마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3일째가 되면서 이전에는 잘 되지 않던 감각 상태에 갈 수 있게 되었는데 이것이 느낌에 대한 탐구를 하는데 좋은 도구가 될 것 같습니다. 수업을 마무리하는 지금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마음 탐구를 시작하게 된 것 같습니다. 빠지지 않고 겸손하게 마음을 바라보겠습니다.

    이혜정(은비)



    ‘나’란 놈 겁나 쎄다.

    2박3일 깨어있기 수업 동안 가장 많이 느낀 것이다. 하지만 계속 ‘진짜’ 같다. 이 동일시를 느끼고 알아차림에 조금은 섬세해졌던 알아차리는 힘에 근육이 붙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알아차린 것에서 끝나는 것. 그 진짜같은 ‘나’의 뿌리를 계속 흔들어여 한다. 어떻게?

    있음을 느끼기의 상태를 의식하며 집중하여 탐구하자.

    동일시 될 때, 동일시 되고 있는 ‘나’에 주의(힘)을 쓰지 말고 있음 상태를 느끼고 유지하는 데에 주의 up 하자. (위의 과정을 일상에 적용, 실시간 내가 진짜라고 믿는 믿음을 바라봅시다.)

    앞으로 더 탐구해야 할 것 : 모든 것은 마음의 현상. 있다가도 없어지는 고정되지 않는 반응이라는 것 통찰로 와당기를 !!
  • HereNow 2015-08-06 10:17:08   답글 | 수정 | 삭제
    2015년 7월 17일-19일 33차 깨어있기 심화과정 후기



    바다나무



    느낌을 토대로 내면으로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내면탐구와 문제 해속에 도움이 되는지 경험적으로 확인했다. 여느 프로그램과 다른 점은 세밀한 구조와 깊은 경험으로의 안내와 동시에 우월성, 독단성이 없다는 점이다. 경험해보고 효과성을 알았으면 자발적으로 선택하고 자기 훈련도구로 취할 수 있는 여유가 좋았다. 프로그램이 끝난 후 더 깊은 무한함을 가지고 더 용기 있게 들여다 보고자 한다.



    황극



    제 33회 깨어있기 심화반 후기

    열과 성을 다하신 월인 선생님께 감사합니다. 교묘한 방법들로 ‘나’를 쫓아 버리시고 그리하여 수고로운 짐을 내려놓았습니다. 이제 깨어있는 마음으로 ‘있음’으로 살아가보렵니다. 말과 언어로된 통찰이 아닌 느낌과 경험을 통한 통찰을 가르쳐주는 유일한 깨어있기 가르침이 진리에 목말라 헤매는 이들에게 감로수가 되어지기를 기원합니다.



    선혜



    나라는 느낌, 그것이 느낌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나라는 것이 느낌일 뿐이라는 것을 느꼈을 때, 그때 존재의 가벼움이란 깨어있기 기초. 심화 과정을 통해 깨어있을 수 있는 방법과 도구를 얻었으니 이제는 스스로 연습하고 탐구하는 일이 남았다. 지식과 앎에서 끝나지 않고 실제 행함으로써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됨에 감사한다.



    군자



    매 순간의 울림으로 영화 내용을 쓴 어느 스님의 글이 문득 생각난다.

    ‘관계와 관계 속에 맺어진 허깨비들 뿐이다.’

    그리고 지금은 이 생각 뿐이다.

    야 ! 신난다. 끝났다. 감각의 세계로 경험의 모드로 돌아가자



    라마



    모든 의식할 수 있는 모든 것이 현상이라는 것이 더욱 더 분명해졌다. ‘나’라고 하는 것도 하나의 현상에 불과하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고, 단지 마음의 습관으로 인해 ‘고착화’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개



    드디어 근원의식이 깨어났다. ‘나’의 정체도 분명하게 밝혀졌다. 의식의 발생과정을 거슬러 올라가 비로소 더이상 끝이 없는 곳까지 가 닿았다. 20여년 수행프로그램마다 목표로 삼았던 진리의 실상인 근원에 닿고자 얼마나 애를 쓰고 좌절했던가! 수없는 기대와 좌절의 반복 속에 특별한 사람만이 갈 수 있는 나라다 싶어 그 특별한 사람 옆에라도 있어 보려고 또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렀던가!



    목표지에 정확히 갈 수 있는 지도인가 아닌가에 따라 우리의 여행은 경험의 차원이 달라진다. 자칫하면 맴맴 돌다 영원한 떠돌이가 될 수도 있다. 깨어있기 과정은 과학적인 체계를 바탕으로 직접적으로 의식의 흐름들을 체험하게 하고 존재의 본질에 대한 통찰에 이르게 하였다. 어떠한 정답도 가르쳐 주지 않는 ‘인연을 넘어서’ 있는 진행자의 안내대로 그대로 따라가 보니 망각되었던 나의 바탕의 근원이 드러났다. 나를 죽이거나 버리거나, 나와 싸우는 지난함 없이 오히려 나를 사용하여 그냥 자세히 정성을 들여서 보고 느끼고 알아차리면 되었다. 그러면 무의식적이었던 것들이 저절로 의식되어지면서 우리가 목숨 걸고 지켜오던 믿음들이 환상임이 깨달아졌다. 죽어서야 사라질 것 같은 나의 존재감도 꿈꿀 때만 필요로 되어진다는 것도. ‘나’에 중심을 두고 이루어 낸 찬란한 업적들은 근원의식이 드러나면서 한순간에 나의 사라짐과 동시에 사라지는 것들이었다.



    깨어있기 연습으로 근원의식이 깨어나고 모든 존재현상이 근원에 뿌리내리고 있으며, 내가 있어 일어나는 분별감마저도 근원의 분별없는 드러남이란 것이 통찰되었다. 이 세상이 텅 빔 속에 근원의 투명한 생명에너지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그 생명에너지의 균형을 향한 불균형으로 변화들이 일어났다. ‘나의 삶’이라고 하는 것도 그런 의식작용의 현상들이었다. 느낌 생각 감정과 함께 깨어있기 연습에서 내 느낌, 내 생각, 내감정이란 착각이며 내가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조건에 따라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임이 알아차려 졌다. ‘나’라는 고정불변의 실체는 존재하지 않았다. 대상과 함께 일어났다 사라지는 느낌이라는 의식현상에 불과했다. 내가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나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임을 체험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 이미 자유 자체라는 통찰이 일어났다.



    보통 수행프로그램을 마치고 돌아오면 수련회에서 체험했던 고요한 기쁨의 상태가 서서히 사라져 가고 다시 그 맛을 보기 위해 수련회를 찾아 떠나는 ‘수련회 중독’이란 기억이 남아있어서 별 기대 없이 참가한 ‘깨어있기’ 과정은 정말 대박이었다. 집에 돌아와 2주가 지났는데도 근원의식으로 깨어있는 가운데 새로운 통찰들이 일어나고 있다. 마치 일상생활이 깨어있기 과정의 연속편 같은 느낌이다. 제일 크게 드러나는 현상은 늘 자리 잡고 있던 뭔가 해야 한다는 조바심과 불안감이 사라졌다. 그리고 판단평가의 도돌이표 악보가 그려지지 않는다. ‘깨어있기’로 에너지 균형이 잡혀져 있어서인지 힘들다고 짜증 내는 모습도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드러나도 순간 알아차려 지면서 괞찮아졌다. 그리고 인간관계에서도 상대방 이야기가 내용에 물들지 않으면서 들려지고 헤어진 후에도 미진함이 남지 않는다.



    대화의 주도권을 내가 잡고 상대방을 변화시키고자 모든 에너지를 총동원하는 선천적 장애로까지 여겨지던 습성 때문에 사람들을 만날 때 긴장감이 있어서 만남 자체를 힘들어했는데 그냥 만나지면 만나고 애쓰는 일이 없다.



    통찰력게임 마스터 교육에서 진행자가 참가자들을 비춰주는 투명한 거울이 되어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 내겐 불가능으로 느껴졌는데 깨어있기로 가능하다는 자신감이 생겨났다. 인연을 넘어서 투명한 거울로 진행해 주신 월인 선생님의 모습에서 이 자신감은 진실로 확인되었다. 어떤 권위도, 어떤 가르침도, 어떤 의도도 앞세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비춰주기만 하는 그분 앞에서 진실해지지 않을 재주가 없었다. ‘나’라는 한 조각의 느낌에 고착되어 드러나는 우리의 저항들을 ‘깨어있음’으로 인도하는데 정성을 다하는 그분의 열려있음에 스스로 해체되어 깨어났다. 그의 평화가 곧 나의 평화였다. 준 바도 받은 바도 없는 사랑으로 드러나는 그분의 모습은 신선하고 아름다웠다.



    곧 근원으로 살아가기 적용에 관련된 프로그램이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기대된다. 세상에서 근원으로 거슬러 올라왔다가 다시 세상과 새로운 관계 맺기가 필요한 것이다. 자유와 신비와 기쁨을 누리는 삶, 사랑과 평화가 물결치는 삶, 본질과 현상이 둘이 아닌 근원으로 삶이 늘 이루어짐을 발견하게 될 설레임에 잠시 젖어든다.



    살신성인의 모습으로 33차 깨어있기 과정에 함께 해주신 월인선생님, 황극님, 군자님, 청인님, 하늘나무님, 연주님, 자생님, 라마님, 선혜님께 감사드립니다.
  • HereNow 2015-05-29 09:23:15   답글 | 수정 | 삭제
    2015년 5월 22일-24일 32차 깨어있기 심화과정 후기



    자생



    2박 3일간의 깨어있기 심화과정을 경험하며 감지에 대한 풍성한 느낌과 주의에 대한 성찰이 있었습니다. 여러 연습을 통해서 내면에 대한 나의 문제와 상황들을 정리할 수 있었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거울 속의 대상과 내 눈에 보여지는 대상들과의 관계로 통찰로 다가오는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이러한 연습들이 저의 이곳 생활에 중심이 되어 더 많은 통찰로 이루어지리라 생각됩니다.



    제이슨



    심화과정을 통해 마음의 구조를 좀 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나’기 없다는 깨달음까지는 어렵다 하더라도, 마음이 나라는 생각을 조금 더 내려놓음으로써 그간의 갈등과 고통을 경감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나’ 라는 의식은 근원 회로의 저장이며 전구이고 근원은 회로를 흐르는 전기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전압차는 현상계와 살아가는 동안 피할 수 없는 현실이며 지혜롭게 이러한 마음과 의식의 적용을 이해하고 사용함으로써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감을 느낍니다. 전구라는 의식을 잘 사용해서 필요한 상황에, 알맞은 색깔을 비추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이런 바람 또한 ‘나’를 의식하는 것 일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이 순간 들지만, 전류의 저항으로 힘겨워하기보다 세상에 필요한 빛을 밝힌다는 기분 좋은 느낌으로 과정을 마치고 돌아갑니다.

    감사합니다 ! 월인선생님. 밥하느라 고생하신 연주님, 감지를 잘 설명해주신 성지님. 그리고 두 번씩 모범으로 함께한 자생님 ! 모두 건강하세요 ! 태풍이도 까미도 !
  • HereNow 2015-01-19 17:14:34   답글 | 수정 | 삭제
    2015년 1월 16일-18일 <30차 깨어있기 심화과정> 후기



    kal 님



    깨어있기 기초 과정에서 배우고 연습했던 감각, 감지, 주의를 바탕으로 ‘깨어있기’가 무엇인지를 경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동안 ‘나’라고 여겨왔던 ‘나’가 반복된 주의의 흐름으로 형성된 습관이라는 사실을 논리적인 설명과 이를 뒷받침하는 체험적인 연습을 통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자유롭게 사용되어 질 수 있는 ‘나’가 자기동일시라는 단단한 껍질에 갇혀있게 되면, ‘나’를 주장하고 나의 생각과 느낌을 맹목적으로 우선시하여 전체의 조화와 균형이 무너지고, 이로 인해 ‘나’가 고통을 받게 됩니다.

    이번 깨어있기 심화과정에서 이러한 통찰을 더욱 깊이 체험하였고, 나는 ‘나라고 여겨왔던 나’ 가 아니라 모든 현상의 바탕인 “본질”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였습니다. 함께 공부한 분들과 따뜻한 밥상 차려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한결같이 깊은 애정과 지혜를 나누어 주시는 이원규 선생님께 두 손 모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나로부터의 자유로워지는 여정’에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해바님



    기초에서 배웠던 감각, 감지, 주의에 대하여 이론적 습득에서 하나하나 되새기면서 사물, 생각, 감정 등에서 신비로움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아! 나를 잡아놓고, 얽매여 놓았던 것들이 과거의 경험, 익숙한 것들에 더욱 익숙해지려는, 지키려는 주의의 쏠림일 뿐이라는 것을 분별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아름다운 풍경, 음악 소리, 향기, 맛. 통증의 오감도 또한 과거에 경험했던, 알았던, 익숙해 했던 것들에 온통 주의가 쏠려서 강렬했음을 느꼈습니다. 앞의 것들도 느낌과 주의의 쏠림을 분별할 수 있는 전지자의 경험은 아주 신비로운 경험이었습니다.

    거울 속에 비친 상이 거울 밖을 본다는 장에서는 주의의 초점이 이동됨에 따라 그에 따른 내가 간다라는 것에서 온다는 것으로 경험함은 신비함 그 자체였습니다. 어떤 상황이라도 주의의 초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고 그 해석은 변화한다고 볼 수 있었습니다. 주의의 초점을 다양화함으로써 초점에 따른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도건님



    저에게는 두 번째 심화 과정이었는데 같은 내용을 듣는 다기보다는 새로운 수업을 듣는 것과 같은 신선함이 많이 느껴졌습니다. 처음 심화과정에서는 지금 이 순간의 느낌을 알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거기에 맞는 내용만 선택 집중해서 들었던 것 같은데, 이번 수업을 들으면서 선생님이 말하는 내용을 다시 한 번 들어보면서 이전에 놓쳤던 내용을 알아챌 수 있었고, 지금 경험과 상태에 따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특히 모든 것이 마음의 작용이라는 것, 외부/내부와 상관없이 모든 것이 마음의 상이라는 것을, 예전보다 훨씬 더 체험적으로 알아챌 수 있었습니다. 마음이라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주의의 흐름 즉 에너지가 여러 패턴으로 표현되면서 다양한 현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 이번 강의를 들으면서 와 닿았습니다. ‘모든 존재가 하나의 파동’ 이라는 것을 다시 상기시켜 주었으며 ‘표현되는 현상들을 에너지로서 보게 되는 계기로 작용할 것 같습니다. 여러 번 더 들어야 할 것 같아요. 아직 경험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많이 느낍니다.



    현이님



    주의에 주의를 기울이며 뒷걸음질을 치다가 투명하고 거대한 출렁이는 주의의 대양을 순간 일별하기도 하였으나, 온갖 감정과 오감들이 나타날 때마다 그것들이 밝혀주는 투명한 주의의 바다가 언뜻언뜻 보이기도 하였으나, 수련 막바지에 이르러 안팎의 모든 현상들이 뒤틀리기 시작하자마자 나는 겁을 먹고 태풍이(개)에게로 달려가 함께 놀았다. 월인 님은 이게 (자아를) 죽이는 공부라고 말씀하였으나, 자아는 개랑 놀면서 흔들리고 뒤틀리는 현상계를 등 돌린 채 펄펄 살아있었다

  • HereNow 2014-11-26 11:26:47   답글 | 수정 | 삭제
    2014년 11월 14일-16일

    <29차 깨어있기 심화과정> 후기



    안의 박*원



    깨어있기 심화과정은 기본과정을 수강했다면 꼭 들어야 할 수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기본 과정 수업 때 배웠던 내용을 심화시킨 수업이어서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일상생활에서 적용할 수 있는 것들을 알려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배운 내용들을 이론에서만 끝내는 것이 아니라 이론을 토대로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을 소개하자면, 저의 개똥 시식 경험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개똥을 먹는다 생각하니 개똥이 눈앞에 있지도 않았는데 생각만으로 구역질이 날 것 같고 피하고 싶고 하기 싫고 오만가지 잡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하지만 생각을 멈추고 개똥의 느낌에만 초점을 맞추어 냄새 맡아 보니 내가 생각하던 역한 냄새가 아니었고 만져보니 생각과 달리 말랑말랑한 찰흙과 같은 느낌이었고 맛보니 약간 시큼하고 한약 같은 맛이 느껴졌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저는 저 자신을 머뭇거리게 만들었던 것이 생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실제로 부딪혀보니 제 생각과 달리 별것 아니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단순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 통찰이 앞으로 제가 일상생활에서 피하고 싶고 하기 싫어하는 일들에 맞서 직접 부딪힐 수 있는 힘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일상생활에서 실질적인 적용을 하고 싶은 분들께 깨어있기 심화를 진심으로 추천합니다.





    자명 김*영



    깨어있기 심화과정에 참하고 나서 감지가 무엇인지 약간 알게 되었습니다. 심화과정 전에 수강하였던 지난 기초 과정 때에는 감지라는 것이 전혀 감이 안 와서 답답했었는데, 주의에 주의를 기울이는 투명한 주의를 인지하게 되면서 감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어 그것이 큰 성과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집에서 혼자 연습할 때는 전혀 감이 없었는데 도반과 선생님의 지도로 ‘응 그것이 투명한 주의구나!’ 라는 것이 인지되어서 기뻤습니다. 또 하나의 성과는 ‘있음’을 인지한 것입니다. 월인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맨날 헤매다가 끝났을 것입니다. 이제 깨어있기 공부는 시작이니까 감지 연습도 하고 월인 선생님이 주신 과제도 열심히 해야겠습니다. 월인 선생님, 성지님, 시우님 , 안의님 ,연우님 모두 너무 감사했습니다.



    시우 최*웅



    이번 심화과정을 하면서 ‘나’ 라는 것의 주체와 대상 간의 관계를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기초과정으로는 ‘나’에게 빠짐을 제대로 알아채지 못하고 헤매는 부분이 많았다면 주의에 주의 기울이기나 있음을 느끼기를 통해서, ‘나’라는 것의 작용을 알아채고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진행이 되니, ‘나’라는 것이 있다가 사라지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내용을 더듬는 것마저도 하나의 작용임을 통찰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기초과정과 오인회를 통해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이 사라졌다면, 이번 심화과정을 경험하면서 ‘주체/대상’ 간의 의타성. ‘미지’라는 것 ‘본질’이라는 것을 알 수도, 확인할 수도, 모를 수도 없다는 것 단지 그 구조를 통해서 미지가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제 연습과 더 많은 생활의 적용을 통해서 더욱 의식적으로 길게 뿌리박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연우 김*덕



    깨어있기 기초 심화 과정을 마치고 나서 깨어있기가 무엇이라고 언어로 정의를 내린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기초와 심화과정에서 수도 없이 생각 속에 빠지지 말고 그 생각을 알아차리라는 선생님의 설명을 수도 없이 들으면서 어떤 것을 무엇이라고 정의하고 규정하고 이름 붙이는 것 자체가 이미 분리라는 환상 속에 빠져 있다는 것을 수도 없이 들었지만、 기초와 심화과정의 내용을 정리하면서 체험을 나누려고 글쓰기를 시도하다 보니 이런 상황이야말로 ‘나’라고 믿고 있는 생각을 사용할 적기라 판단이 듭니다. 그래서 먼저 깨어있기에 대해 제가 생각하는 정의가 무엇인지 밝히고 나서 글을 이어가고자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경험하는 바깥 세계가 따로 존재하고, 그것을 경험하는 감각적 느낌으로서의 주체인 ‘자기 자신’이 따로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나’와 ‘나 아닌 것’으로 구별되고 분리되는 이원성의 드라마 속에 빠져서 살아가는 삶이 이 시대를 살아가고 보편적인 의식상태일 것입니다. 그러나 무한수열처럼 끊임없이 분화되는 주객분열의 드라마 속에 빠지지 않고 그 드라마를 일으켜내는 전체적인 구조를 파악해내어 그 드라마 속에 물들지 않으며 오히려 그 모든 것을 조망해내는 근원의 세계로부터의 통찰을 통해 살아가는 상태가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현실에서 ‘김아무개’ ‘이아무개’ ‘박아무개’라는 남과 구별된 이름표를 붙이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연습이고 그것을 바로 저는 ‘깨어있기’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내’가 아닌 ‘나’를 넘어선 ‘나’라는 것조차 그저 하나의 투명한 있음이고 그 있음마저 본체와 다르지 않음을 깨달아 살아가는 것이지요.



    그것을 위해서 2번의 깨어 있기 기초와 심화과정에서 참 많은 연습을 해보고 그 연습이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에 대한 통찰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인고의 시간을 가져야 했습니다. 저 역시 실질적인 체험을 통한 통찰과 그것을 통한 나를 넘어가는 연습을 해보지 않고 내면 세계에 대한 다양한 지식들만을 도서관의 서재를 빼곡히 쌓은 것처럼 살아왔기에 체험 그 자체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오히려 그 체험에 대해 내 안에서 가지고 있는 각종 데이터들을 끄집어내어 하나의 철학과 이론을 정립시키려는 시도를 많이 하는 바람에 그동안의 깨어있기 연습에 별다른 진전이 없이 오히려 이런 것이 과연 나에게 어떤 쓸모가 있는지에 대한 회의와 불신만 눈덩이처럼 커졌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오인회 수업을 거듭 참여하고 수업에서 배운 내용들을 하나 둘 씩 삶에 적용해보면서 그 모든 세계를 인지하고 경험하는 ‘나’에 대한 관찰을 하면서 깨어있기의 개념들을 현학적으로 파악하고 생각으로 머물려고 하는 것을 넘어서서 체험을 통해 깨어있기의 원리들을 체득하고 체화해가는 저 자신을 서서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심화과정의 여러 가지 연습을 통해서 비로소 깨어있기가 무엇인지 그리고 감지와 감각연습을 비롯한 깨어있기의 연습들이 우리 삶 속에서 왜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 분명하게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심화과정은 말 그대로 기초과정에 배운 기본 개념들을 토대로 다양한 상황에서의 실전연습이 이루어졌습니다. 기억나는 것들을 몇 가지 적어보겠습니다. 희로애락의 감정이 분명히 느껴지는 사진을 보면서 그 사진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지우고 느껴지는 원초적 상태로 보는 감지연습, 그리고 거기서 형태감과 질감도 제외한 분열 이전의 순수한 상태로 들어가는 감각연습, 주의라는 것을 하나의 대상으로 삼아 거기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상대방과 대화하기, 그 주의를 사물과 자연에 고스란히 적용하면서 그것을 보고 있는 주의를 느끼면서 행동해보기, 희로애락을 유발하는 상황에서 그 감정을 밀쳐내려고 하지 않고 그 감정을 그대로 느끼면서 거기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주의를 확인하기 연습, 동식물과 무생물이라는 대상에 더 많은 주의를 주어 그 대상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느끼는 주체전환 연습,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서 바라보고 있는 그 대상이 주체가 되고 내가 객체가 된 것처럼 느끼는 연습, ‘나’라는 것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그저 하나의 ‘느낌’으로만 존재하는 그냥 ‘있음’의 상태에 머무르는 연습 등을 해 보았습니다.



    지난 6월에 기초과정을 수강한 이후 너무 오래간만에 심화과정에 참석을 해서 그런 것인지 첫날 시도했던 연습들에 대해서는 연습에 집중하기 보다는 저의 여러 가지 생각들과 감정들이 마치 각개전투를 하듯이 이리저리 움직였었고 솔직히 말해서 이렇다 할 통찰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연습을 하면서 내가 과연 이것을 왜 하고 있는 것인지 이 지루한 연습이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들이 깨어있기 심화과정에 참석하는 내내 계속 엄습해왔습니다. 그러나 첫날의 부적응과 걱정은 둘째 날이 되면서 거짓말처럼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제대로 된 감지연습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곧바로 감각상태에 들어가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게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불과 며칠 전 만 해도 감지는 감각은 이런 것이라는 지식을 대뇌피질 속에 입력해두고 실제로 연습을 할 때는 병든 소처럼 눈만 껌뻑껌뻑 거렸었는데 심화과정에서의 연습을 거치면서 감지와 감각의 실질적인 체험이 다가오기 시작하였고 그 차이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었습니다.



    대관절 왜 이런 차이가 며칠 사이에 발생한 것인지 저 자신의 내면에 질문을 던져 보니 대답은 단 한 가지, 그동안은 내면에서 투영되어 외부로 비추어지는 사물과 대상 전체에 주의를 흠뻑 주면서 감지와 감각이라는 분리된 의식 상태에서 근본의 의식 상태에 근접한 것으로 들어가려고 했으니 그 노력 자체가 이미 헛수고였음을 이내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번 심화과정에서 진행되었던 연습에서는 눈으로는 사물과 대상을 분명히 보고 있지만, 주의의 방향을 저 자신의 내면으로 더 들어갔던 것입니다. 월인선생님께서는 주의의 방향을 내 안으로 돌리는 것을 도교 용어인 회광반조 라는 용어를 예시로 들어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回:돌아올 회 光:빛 광 返:돌이킬 반 照:비칠 조



    외부로 향하던 빛을 내면으로 되돌린다는 뜻으로서, 주체와 대상의 분열 상태로 향하던 주의의 방향을 내면으로 돌려 그 모든 것들을 알아채는 관찰자로 그 관찰자도 넘어선 본질로 향한다는 뜻이라고 저는 이해했습니다. 확실히 감지상태에서는 모든 것이 낯설고 그러므로 모든 것이 순수한 호기심 그 자체였고 감각으로 들어갔을 때는 모든 것이 인식되지만 느낌이 그것을 보고 있는 나 자신이 있음이라는 그리고 그 있음이 전체와 하나 되어 살아 숨 쉬는 단일한 한 가지 느낌만이 지속되었습니다. 그리고 분열된 의식 상태를 벗어나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열쇠가 되는 투명한 주의와 함께 있으니 시각적인 자극을 심하게 주는 사진과 영상에도 코를 자극하는 어떤 향기로운 냄새이던 역한 냄새이던 귓가를 스치는 자연 소리 음악 소리에도,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각종 두려운 상황 속에서도 분노를 유발하는 감정적으로 격양된 상태에서도, 지독한 슬픔과 우울함속에서도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기쁨 속에서도 늘 그 투명한 주의는 변함없이 존재하고 사라지지 않으며 그 주의를 어떻게 이동시키느냐에 따라서 때론 내가 객체도 될 수 있음을 그리고 그렇게 주객이 전도된 상황 속에서도 지금과 다름 없이 일상생활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특히 마지막 날 투명한 주의를 느끼면서 내가 하나의 객체가 되어, 하늘에서 어떤 누군가가 그 객체인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서 사물을 관찰하면서 산책을 하는 연습을 해 보았을 때는 끝없이 푸르게 펼쳐진 이 하늘에서는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그 어떤 일에도 결코 일희일비하지 않음을 이 세상에서의 모든 일이 구름이 사라졌다 나타나는 것 보다 더 의미 없이 그저 지나감이라는 느낌이 들게 되면서 세상을 살아가면서 만들게 되는 대부분의 걱정과 불안은 그저 일어났다가 사라지고 다시 일어나는 자연적인 현상임에도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그 현상이 전부인 줄 믿고 살아가니 늘 언제나 그 상황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그런 상황을 만들어낸다고 믿는 ‘나 자신’이라는 껍데기에 갇혀 사는 삶이었구나! 실제로 하늘에서 나를 본다고 느끼니 높음도 낮음도 없고 누가 더 우월함도 열등함도 없이 그저 모든 것이 평등한 세계인 것을 사람들은 그런 하늘을 바라보고 살면서도 늘 대상이 있어야만 형성되는 자기 자신이라고 하는 존재를 부여잡고 고통과 번뇌 속에 허우적대는구나! 그런 통찰이 물밀 듯이 밀려왔습니다. 그 체험을 나누면서 지긋한 미소를 지으면서 항상 그렇게 하늘이 되어서 살라는 월인 선생님의 말씀을 가슴에 계속 간직하면서, 김00 이라는 하는 주체가 살아있는 상태에서 살아가는 삶이 아닌 늘 투명한 있음의 상태에서 그 모든 것들을 알아차리면서 김00 이라는 대상을 사용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굳은 다짐을 했습니다.



    요새 오인회 수업에서는 고려시대의 고승이었던 보조국사의 진심직설을 주제로 공부를 합니다. 진심직설을 공부하다 보면 주객을 나누는 망심을 벗어나 무심에 이르는 10가지 공부법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중 일곱 번째 방법인 내외전체라는 방법을 통해 안팎이 모두 본체라는 사실을 자각함으로 인해 망심을 없애고 무심에 이를 수 있다고 합니다. 작게는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키보드에서부터 전 우주에서 내가 경험되고 지각하는 모든 경험적 세계와 그것을 감각적 느낌으로 느끼는 ‘나’라고 하는 주체가 늘 그렇게 분리되어 존재한다고 믿고 있는 상태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험하는 기본적인 의식의 분열상태라고 한다면, 깨어있기 연습을 통해서 그 모든 것이 ‘나’ 라고 하는 주체가 경험되고 감지된 내면의 투영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깨닫게 되고 ‘나’라는 현상 역시 그렇게 경험되는 외부의 대상과 늘 동떨어져서 존재할 수 없음을 깨달을 때 내외전체가 모두 하나의 본체이며 그렇기에, 천지와 나와 같은 뿌리이고 만물이 나와 같은 몸 일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되어 그 어떤 망심이 일어나지 않고 진심이 표현되는 여러 가지 모습들을 올바르게 사용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고 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이렇게 깨어나 살아갈 수 있는 삶이 이렇다 저렇다 할 개인의 개별성이 없으면서도 개인의 생명력과 창조력은 최대한 발현할 수 있으면서 전체의 조화와 균형을 아름답게 유지할 수 있는 세계로 변화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29차 깨어있기 심화과정을 열정적으로 헌신적으로 지도해주신 월인 선생님과 2박 3일의 여정을 함께 한 자명님, 시우님, 안의님, 성지님 그리고 함양의 마스코트인 늘 졸린 고양이 얌얌 이랑 함양 수련원의 충실한 문지기인 태풍이와 까미 그리고 묵묵히 언제나 성실히 최선을 다해주시는 연주님 이하 모든 함양 식구들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 HereNow 2014-09-22 10:24:48   답글 | 수정 | 삭제
    2014년 9월 19일-21일

    <28차 깨어있기 심화과정> 후기



    니케 김*희



    학교 강의가 끝나고 광주에서 함양까지 1시간 10 여분 만에 달려왔다.

    기초과정에서 일어난 나의 변화는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키는 놀라운 사건이었다.

    그렇게.

    가슴속에서의 벅참으로 살았던 한 달여의 시간속에서 감지연습은,

    나의 모든 일상의 갈등과 상처들을 씻기에 충분하였다.

    그렇게 또 다른 에너지장에서의 삶의 선택에 더하여 이번 심화과정의 기대는

    모든 것들을 뒤로하고, 우선순위가 되기에 충분하였다.

    나의 삶의 모든 것들에 대한 해결이 이곳에 있으리라는 기대감.

    찾아 헤매던 진리의 끝을 이곳에서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

    그렇다. 그런 간절함은 나를 이곳으로 이끌기에 충분한 이유였다.



    지금

    후기를 쓰고 있는 이 순간, 나의 이성과 감성은 온통 아우성친다.

    그것을 이룬 듯한 흥분의 도가니이다.



    살아있다.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암시의 2박 3일간의 시간이었다.



    이렇게 마무리를 하고, 나는 또 다른 세계에 발을 들이고서 떠나려 한다.

    그러나, 어쩜 이것이 시작인지 모른다.



    진정한 진리의 추구. 진리의 탐색. 그것에 대한 간절함.



    일어났다 사라진다는 진리.



    모든 것은 ‘나’가 아니라는 진리.



    오직 우주에 공명하는 에너지만이 자리할 뿐이다.



    나의 또 다른 ‘자아’ 안에서.

    살아있음을 간직한 채.

    무한 감사를 드린다.



    월인 선생님께. 그리고 성지님께. 그리고 이곳에 함께한 모든 사람들께.



    미내사를 통하여 발견한 나의 모습을 통하여 이 세상에 무한 영향력을 펼쳐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

    다만 그렇게 하려고 하는 ‘나’가 아니라. 그저 바람이 일어나 듯 그러한 일이 일어난다면.

    오인회를 통한 지속적인 나의 성장과 해탈을 기대한다.

    모든 것 일어날 것이 일어났고 일어나지 않을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리라는 믿음으로.



    이제 나는 집으로 간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 HereNow 2014-03-28 15:07:14   답글 | 수정 | 삭제
    25차 깨어있기 심화과정 참가후기 (2014년 3월 21~23일)



    괜찮아(심리학 교수)



    그림자는 주인공을 잡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 말 그대로 2박 3일의 깨어있기 심화과정이라는 여정을 통해서 그동안 그림자로 살아왔던 지난 삶에서 벗어나 진짜 주인공의 입장에서 지나온 삶을 통찰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때론 격한 감정을 느끼면서도, 그 자체로 느끼는 나 자신을 깨어 있으면서도 감정에 빠지지 않는 모습을 확인 할 수 있게 되어 즐거웠습니다. 또한 즐거울 것도 없는데 즐거움을 찾아 기뻐할 수 있고, 기뻐 할 수 있는 도구를 찾아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2박 3일 간의 강좌를 통해서 항시 주객관계에서 수동적인 역할을 하는 객에 빠지지 말고 주인공으로 살아가기를 가슴 깊이 굳게 다짐하면서, 이런 다짐을 하는 나 역시 주인공이 아닌 객체임을 깨달아 정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본 강좌를 통해서 주의제로 상태로 온전히 있는 연습을 50대 50의 절묘한 비율로 균등하게 분배할 수 있게 될 수 있는 수단들이 생기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그것만으로도 큰 힘이 생깁니다. 그러나 이 힘 또한 힘을 뺀 무저항으로 쓰여야 한다는 것 또한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좋은 도구와 방법을 통찰하고 자각할 수 있도록 지도해주신 월인 선생님! 그리고 이 과정에 함께 참여한 깨어 있기 25차 심화과정 도반님들! 그 모든 분들에게 머리 숙여 깊숙이 감사드립니다.





    우광(코치)



    깨어있기 기초과정 수료 후 일상 속에서 ‘깨어있기’ 연습을 계속하리라 다짐했지만 실제 생각처럼 성실하게 수행해 오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집사람과 두 딸과의 관계가 눈에 띄게 비약적으로 개선되어 가족 간의 대화도 많아지고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돈독해진 것을 체험하였습니다. ‘깨어있기’ 기초과정 수강만으로 이루어진 실생활의 변화의 체감은 이 과정이 정말 대단히 실용적이라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달이 지나 <깨어 있기>심화과정에 참여 할 것인가? 참여 안 할 것인가? 잠시 망설였던 이유는 감지훈련이 충분하게 되지 못했다는 나름의 판단으로 인해 잠시 시간을 갖고 감지훈련에 더 주의를 기울이려고 시간을 갖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간을 더 늘인다고 해서 기본기가 더 충실해질 것만은 아니라 생각하고 나니 바로 <깨어 있기>심화 과정에 참여해야겠다는 판단이 들었고 주저 없이 바로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감지 심화 연습, 주의 기울이기, 2분열과 3분열, 내적인 감지 찾기, 동일시에서 벗어나기, 자아개념의 재정립, 이와 같은 것들을 비롯하여 심화과정은 기본개념에 대한 깊은 경험과 정리를 명료화하기에 적당한 방편들이 사용되어 제 개인적으로는 앞으로의 삶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교재로 활용되었던 ‘깨어있기’의 부제처럼 “나로 부터의 자유”를 실천해가는 방편을 얻은 느낌입니다. 자연과의 만남에 더 충실해지고 만인과 조화를 이루는데 절대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확신이 듭니다. 이 또한 느낌일 수 있겠지만 말이지요. 섬세하고 친절하게 세부적인 단계를 밞아가며 깨닫게 해주신 월인 선생님에게 다시 한 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 HereNow 2014-01-13 15:16:26   답글 | 수정 | 삭제
    24차 깨어있기 심화과정 참가후기 (2014년 1월 10~12일)



    일님 (심리상담)



    ‘내가 없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모든 것이 일어나고 형형색색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임을 ‘나’라고 믿는 것 또한 그 중 하나라는 것. 현상은 ‘없음’을 나타낸다는 것. ‘없음’은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현상을 통해 ‘나타나기’ 때문에 있지도 없지도 않다는 것. 그러기에 ‘있음’과 ‘없음’이 동시적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안다고 하는 ‘내’가 없지만 살아가기 위해 주어진 생명의 힘으로 쓰이기 위해 말을 붙입니다. 월인 선생님께서는 이제 시작이라고 하십니다.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관성에 휩쓸리지 않고 현상에 매이지 않기 위해 한걸음, 한걸음 확인하며 갑니다. 조화로운 세상에 쓰임이 되도록.



  • HereNow 2013-11-13 11:07:36   답글 | 수정 | 삭제
    * 23차 깨어있기 심화 참가후기 (2013.11.8~10)



    무연님



    무엇보다 <깨어있기> 심화과정을 통하여 지난 기초과정에서 막연히 신체적인 느낌으로만 이해하고 있었던 ‘감지’에 대해 좀 더 많은 이해를 할 수 있었습니다. 책에서만 막연히 읽어왔던 ‘깨어있기’에 대한 다양한 방법의 실습들은 짧은 시간 안에 지금까지 체험하지 못했던 것을 체험하게 해주었던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깨어있기>는 일상에서 생각, 느낌, 감정과 함께 하면서도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초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감정, 생각, 느낌도 하나의 현상으로 파악함으로써 필요시 감정과 생각에 빠지지 않고 멈출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신 선생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해연님



    기초연습을 지난달에 하고, 뭔가 많이 부족한 느낌을 알고 참여했습니다. 기초 때에는 모든 내·외의 현상이라는 것이 사실은 ‘나’라는 임시적 주체 안에서 느낌으로 드러난다는 것을 알았다면 심화연습에서는 ‘나’라는 주체마저도 ‘느낌’으로 존재하고 대상과의 관계속에서 생겨나는 가변적인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습관적인 주체감, 즉 몸을 중심으로한 ‘느낌의 세계’에 계속 끌려가지만 이 구조를 벗어날 수 있고 그 벗어난 상태 또한 매우 자연스러울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심화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생각, 감정, 사물과 함께 깨어있기’였습니다. 한정된 ‘나’라는 느낌을 벗어나 느낌은 느낌대로 있지만 투명한 주의와 함께 커다란 고요와 평온함이 늘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위안이었습니다. 기초/심화 연습을 통해 관념으로만 이해하던 것들을 실제적인 느낌으로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미약하고 과거의 습관과 기억이 나를 덮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실과 상관없이 그냥 나아가면 될 것 같습니다. 월인 선생님을 비롯하여 함께 공부하신 모든 참여자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 HereNow 2013-11-13 11:04:22   답글 | 수정 | 삭제
    아름드리 (프로그래머)



    깨어있기 기초과정을 듣고 돌아가면서 뭔가 할 수 있겠구나, 먼 나라 이야기처럼 그저 좋은 이야기들로만 느껴지던 마음의 작용들에 대해 이제는 나도 뭔가 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생겼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온 후, 시간이 지나면서 교육 때 받은 기운이 점차 사라지고 ‘뭔가 할 수 있을 거라, 아니, 교육 때 배운 걸 열심히 해보리라’ 다짐했던 마음도 게으름의 소치로 점차 희미해지기만 하고, 뭔가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은 바닥을 기었다. 답답한 마음에 깨어있기 기초과정을 다시 신청해서 들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을 때 월인 선생님과 통화를 하게 되었는데 이런 나의 마음을 전하였더니 그냥 심화를 들어도 잘 따라와만 주면 오히려 감지가 더 잘 잡힌다며 용기를 주셨다. 강행군의 교육일정을 잘 따라갈 수 있을지 내심 걱정도 되었지만 월인 선생님을 믿기에 부랴부랴 신청하여 심화과정에 합류하게 되었다. 교육 첫날은 기초과정에서 연습한 감지연습을 다시 되짚어주셨다. 감지를 조절하고 주의를 보내는 연습을 확실하게 다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 참으로 놀라운 시간이었다. 느끼고 연습하는 것들이 제대로 되고 있는 건지 아닌지 긴가민가하며 혼란스러웠는데, 내가 느끼는 느낌과 현상들을 대조하고 질문하여 확인하는 과정에서 이 작업들이 잘 되어가고 있는지 다시 확인할 수 있어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느낌에서 생각이 빠지고, 감지상태에서 주의의 강도를 조절할 수 있게 되고 더 나아가 주의제로에서 감각상태로까지 나아갈 수 있게 되면서 선생님의 말씀이 더 잘 이해되었고 다음에는 또 어떤 체험을 시켜주실까? 하는 기대감까지 생겼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간단하게 체험시켜주시는 선생님의 교수법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주의에 주의 기울이기 연습을 하면서 나에 대한 느낌이 사라지는 체험을 했고, 선생님께서 여러 번 말씀하시던 “나란 것도 결국은 느낌이다”는 말씀이 이해되었다. ‘나’라는 것이 이렇게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월인 선생님께서 통찰이 없으면 체험은 하나의 체험일 뿐이라는 말씀을 여러 번 하셨기에 하나의 체험에서 어떤 통찰을 얻을 수 있을지 면밀히 살피려고 노력하지만 통찰이 쉽지는 않은 듯하다. 그러나 이번 체험을 하면서 느낀 것은 확고부동한 ‘나’라고 여겨온 존재가 다른 모든 대상들과 마찬가지로 느낌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실생활에 돌아와 동일시에 끌려 다니며 생활하다 보면 그 느낌은 다시 온전한 나가 되어버리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마음 저 밑바닥에는 ‘그래, 그래도 넌 느낌이야. 난 그 느낌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어.’라는 당찬 희망이 생긴다.



    기초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또 이렇게 당차고 큰 희망을 선물 받았다. 참으로 큰 선물을 받게 되어 감개가 무량하고 감사하다. 함께 공부한 이한, 영채, 햇살, 한마음, 선우 님, 도반이 되어주셔서 감사하고, 그리고 매끼 건강하고 조화로운 식단으로 나를 길러주신 연이 님께도 참 감사하다. 빛이 된 자와 빛이 될 자와 빛이 되고자 하는 자. 선생님 말씀을 종합해서 내린 나의 결론은, 이들이 모두 같은 자라는 것이다. 다만 알지 못할 뿐. 나의 결론에 책임질 수는 없지만, 지금 나의 결론은 나도 빛이다. 다만 알지 못할 뿐.



  • 동행 2013-06-03 12:33:42   답글 | 수정 | 삭제
    동행(중학교 교사)



    기초과정이 감정, 생각, 감지, 감각의 개념과 차이를 이해하는 과정이었다면 심화과정은 ‘나’를 깊이 느껴보고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다.

    기초과정에서 가장 좋았던 건 감지(感知)연습이다. 사물에 붙어있는 이름을 떼어내고 주의를 기울이다보면 이름과 생각에 갇혔던 세계가 확장되면서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교감이 이루어졌다. 동일시란 걸 나중에 알았지만 순수하게 주의를 쏟을수록 애정도 이해도 깊어짐을 알게 된 좋은 경험이었다. 그 후 사람이나 사물을 볼 때 이름을 빼고 그 자체를 세밀히 느끼는 연습을 가끔 했고 그 때마다 존재 자체에 감동이 일면서 충만함 속에 머무를 수 있었다.

    심화에서는 그 감지마저도 내려놓고 전체주의를 통해 감각(感覺)상태에 머무르는 연습을 많이 했는데, 감지와는 또 다른 매력 평온함, 열림, 자유로움, 소통의 편안함이 있었다. 소나무 숲을 오고가며 사방으로 열린 나를 느끼며 자유로움을 맛보았다. 모든 소리, 움직임이 걸림없이 들어오고 나갔다. 그 순간은 ‘나’라는 사람의 경계가 없었다. 모든 게 일체인 듯한 평온함. 자연에 있을 때 더 많은 통찰과 발견이 있고 문제에 답이 보였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느낌은 참으로 다양하며 그것들은 살아 꿈틀대는 무엇이었다. 평소에는 전혀 주의를 두지 않았던 미세한 느낌들을 관찰하며 내가 지금껏 나라고 생각한 것은 바로 이 느낌들이었구나 싶었다. 잔잔한 물결처럼 미세하게 일었다 사라지는, 때로는 폭풍 같은 자극에 거친 파도를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결국 모든 파도는 물이 본질임을, 수없이 올라와서 나를 흔들어놓고 사라지는 그것이 나의 본질이 아니었음을 이제는 안다.

    안의를 향하면서 그리운 얼굴들이 있었다. 함께 기초과정을 했던 참마음님, 캘리님, 무소뿔님, 그리고 백일학교 선호님, 자연식으로 매끼니 기쁨을 선물하신 연이님, 첫걸음을 뗀 우리의 긴 여행을 인도해주실 월인님, 그리고 태풍이 깜이 웅미 얌얌이...그들을 향한 그리움이 잔잔한 파도가 되어 내 감성을 풍요케하고 난 이제 그 파도를 즐길 줄 안다. 파도 역시 변함없는 물임을 알고 가벼이 다루지 않으며 감사함으로 바라본다.

    나의 본질은 무엇일까? 내가 살아온 경험, 이름, 역할, 생김새 등을 빼버리거나 바꾸어도 여전히 남는 나는 누구인가? 그 본래의 바탕으로 살고 싶어하는 나로부터 벗어날수록 바탕에 가까워지겠지. 2박3일의 깨어있기 여정은 내가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나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즐거운 여행이었다.
  • HereNow 2013-03-19 11:50:55   답글 | 수정 | 삭제
    19차 심화과정 후기(2013.3.8~10)



    장인(기업체 임원)



    내면의 깊은 탐구없이 살아왔기에 기초과정에서는 그저 일상적인 언어로 사용하던 감각, 감지, 주의, 동일시란 단어들이 낮설게 다가와서 혼란스러웠습니다. 하지만 하나하나 체험을 통해 익혀가면서 내가 이제까지 바라보던 세계가 아닌 전혀 다른 바라봄이 언뜻언뜻 이어지는 신비한 체험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상으로 돌아와서는 오히려 생각도 많아지고 심지어는 머리의 끝부분이 테두리가 쳐진듯 조여오는 느낌이 한동안 이어졌습니다. 다행이 그런 상황에 부딪히면 그 상황에서 빠져나와 바라보면서 관계를 하게 되었고 스스로 폭이 넓어진 모습을 간간이 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모두 분별이 없고 그저 나타나고 사라지는 체험을 했던 당시로 들어가고자 하면 과거의 경험이 이미지로 연상되면서 느낌은 사라졌습니다. 주체와 대상으로 분별되기가 2주 정도 반복 되다가 어느 순간 심호흡 한번에 답답함이 사라지면서 모든 것이 하나임을 다시 느꼈고 그 이후론 의식적으로 ‘주의제로’를 하면 짧은 시간이지만 이미지가 아닌 다시 느낌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궁금하고 알고 싶은 것들이 더 많아져 심화 과정에 참여를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수많은 느낌들인 감각, 감지, 형태감, 질감, 존재감, 오감, 주체감 등을 알아가면서 나 자신도 느낌으로 되어져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느낌이 된 나와 느낌으로 가득한 세상과 만나서 전체주의, 순수한 주의, 투명한 에너지, 감지들과 어울리고 넘나들면서 표현하고 공감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의에 주의를 주는 연습을 하며 바람부는 언덕을 올라갈 때 바라보는 자가 사라지는 체험을 하였습니다. 나는 아무리 찾아도 어디에도 없고 이전과 똑같은 풍경이지만 단지 구분되는 바위와 소나무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마저도 구별되지 않고 통째로 하나인 미세한 느낌 속에 ‘나’ 없이 있어 보았습니다. 생각 하나만 빼면 되는 그 자리에서 지금 나타난 바람도 되어 보고, 소나무도 되어 보았습니다.

    '안다'는 것에 빠지지 않으면서 감정, 생각, 두려움 등 떠오르는 어떤 것이든 함께 하고, 일어나고 사라지는 그것들을 기쁘게 껴안으며 맞이하고, 내 안에 있는 풍성한 느낌들과 함께 지금 이 순간을 춤추며 가겠습니다.





    바쁜 벌(기업체 임원)



    즐거운 마음으로 다시 찾은 함양수련원은 이미 봄의 햇살을 듬뿍 먹어 생기와 평화로움이 가득한 어릴적 뒷동산이었다. 기초과정을 마치고 한 달 만에 다시 접한 심화과정은 기대와 흥분으로 그렇게 시작되었다.

    생각으로 보는 것과 느낌으로 보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우리가 살면서 맞이하는 매 순간은 현상에 불과한데 나는 그동안 그것들을 느낌이 아니라 사실로 왜곡하여 보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도 필요한 일에 쓸 수 있는 도구이다. 물론 가급적 느낌의 차원에서, 생각이 강하게 붙지 않고 단지 느껴서 아는 감지상태에서의 사용이 바탕이 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내 앞에 많은 문제와 일들이 얽혀 있다고 믿고 그것들 때문에 고민하고 힘들어 하곤 했지만 그것이 단지 느낌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것을 느낌으로 관찰하고 잘 사용하면 삶에 많은 변화가 올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또한 ‘나’라는 느낌도 강한 에너지로 묶여있고 가변적 환경에 의한 주의작용을 통해 생긴 것이기 때문에 이런 심화과정을 통해 누구와도 통할 수 있고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나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라는 월인님의 말씀에 깊은 감명을 받으며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 칼라 2013-01-07 17:43:08   답글 | 수정 | 삭제
    감지와 감각에 대해 좀더 알게 되었습니다.

    또 '느낌'을 느끼는 것과 그 '이미지'를 잡고 있는 것에 대한 차이를 '주의에 주의주기'를 통해 체험하였다.

    3일이 어떻게 지나갔는데 모르게, 빨리 지나갔고 매일매일이 흥미로웠습니다. 이제 돌아가 무엇을 연습하고 어떻게 탐구해야 하는지를 안것 같아 아주 기대됩니다.

    감사합니다.

  • 가이아 2013-01-07 17:42:43   답글 | 수정 | 삭제
    처음에는 감지를 왜 햐야 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약간 혼란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감지가 자리잡혔다고 느꼈을 때 감각상태를 알게 되었고, 감각과 감지를 분명히 구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감각상태가 자유롭게 되는 순간 놀랍게도 생각이 없어졌습니다. 생각을 없앤다는 것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가능하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이제는 누구를 보아도 선입견 없이 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 또 놀라운 어떤 일이 생기게 될지 정말 기대됩니다.

  • 디테 2012-07-18 15:52:45   답글 | 수정 | 삭제
    15차(7/13~15)

    작년 기초과정에서 감지를 발견하고 돌아와 일상생활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감지 속에 머무르면서 감지를 의식하고 나와 대상과의 관계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심화과정에서 나라는 이 불편한 의식을 깨고 자꾸 점령당하는 두려움들이 실체가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고 다룰 수 있는 힘을 얻고 싶었습니다. 더 근본적인 열망은 근원의식에 합일되는 평화를 경험해보고 싶었는데, 욕심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기초과정 때만큼의 풍성한 경험은 찾아오지 않았지만, 전체주의 및 감각 찾기 등에서 어렴풋하게 방법을 찾았고 그것을 일상에서 좀 더 탐구하고 훈련하겠습니다.

    무슨 깨달음을 얻었는지 워크샵 끝날 무렵 실실 웃던 선무 님, 투명함을 발견한 달빛 님 등 다른 분들은 많은 것들을 얻어가는 것 같아 살짝 부럽기도 하고...

    2박 3일을 돌아보니 처음 도착했을 때의 나의 낯선 모습이 떠오릅니다. 지금은 내가 나를 느끼기에 많이 편안해지고 여유로워진 것 같습니다. 일상 속에서 또 어떤 모습으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지 돌아갔을 때가 기대됩니다.

  • 에고 2012-07-18 15:52:14   답글 | 수정 | 삭제
    15차(7/13~15)

    기초과정에서 했던 주의연습과 감지, 감각하기는 오랫동안 잊고 있어서 심화과정 처음에는 조금 답답하고 부담스러운 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과정이 진행되어 가면서 모든 것이 내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이기에 애써서 노력하지 않아도(물론 힘들지 않았다는 말은 아님) 주의와 감지를 통해 나타나는 양상들을 발견하고 바라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과정에서의 핵심이라면, 나는 감정을 바라보는 자로 있을 수 있다는 것이 개인적으로 큰 수확입니다. 내 감정을 나는 바라보고 조절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내가 조절하기보단 그 감정에 빠지고 후회하고의 반복이었던 것 같습니다. 월인 님의 수련을 하려면 탐욕으로 하지도 말고, 저항으로도 하지 말라는 말씀을 상기해보면 나는 감정을 탐욕으로, 때로는 저항으로 받아들여 해결하려 하였기 때문에 원만한 현재 대응에 실패했던 것 같습니다.

    바라보는 투명한 의식만 느끼면 참을 필요 없이, 같이 감정을 끌고 가면서도 겪을 수 있다는 것을 이번 과정을 통해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이번 과정에 여러 가지 연습이 있었지만, 이 모든 것이 자작하며 지금을 살아가는 자신이 될 수 있도록 초석을 다진 자리가 된 것 같습니다. 국선도 수련을 하며 자기를 닦는다고 하지만 정확히 나를 이해하지 않고 하는 수련은 잘못된 오류를 범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던 뜻 깊은 자리였습니다.



  • 선무 2012-07-18 15:51:44   답글 | 수정 | 삭제
    15차(7/13~15)

    3개월 전에 참가했던 깨어있기 기초과정에서 여러 가지 교육을 받은 후 생활하면서 연습을 제대로 하지 않아 내심 걱정을 하고 심화과정에 오게 되었습니다.

    감지연습 복습부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잘 안 되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계속하다보니 주의가 가는 곳에 대상이 생기고 주체감이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상에 대한 느낌에서 자유롭게 되었고, 나에 대한 주의를 하는 주에 느끼는 나 자신의 느낌도 대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라는 대상도 순수의식에서 만들어진 대상이며, 느끼는 느낌/감각에 대한 대상이라는 것이 확연해졌습니다. 전체주의하고 그 주의에 주의하는 것 또한 순수의식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순수의식에서부터 나온 것이고, 나도, 나의 느낌도, 대상도 결국은 하나이며 구분할 필요도 없고, 나와 본성도 구분할 필요 없으며, 그냥 그렇게 존재하고 있는 현상일 뿐이라는 통찰이 오니 모든 것에서 자유롭게 해방됨을 느낄 수 있었으며, 월인 님의 질문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내가 경험했던 것에 대한 명확한 이치를 알게 되었고, 전체인 나, 현상으로서의 나로서도 그대로 머무를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이 길을 가게 해준 그분께 감사드리며, 지도해주신 월인 님께 진심으로 감사와 경의를 표합니다. 같이 수련한 도반님들 모두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 감사드리며, 그냥 그대로 존재하는 그것에 모든 감사를 드립니다.

  • 천강 2012-07-18 15:51:07   답글 | 수정 | 삭제
    15차(7/13~15)

    주의 발견을 통해 주의를 대상으로 느껴보았습니다. 주의 상태에 머무르면 모든 것이 전체로 연결되어 있고 그 전체 중에 부분으로 내가 있음을 알아차렸습니다. 부분이라고 느낀 나는 자극이 들어와 구조가 깨질 때 느껴집니다.

    모든 것이 마음이 만들어낸 상이란 것이 분명히 이해는 되는데, 마음의 상이 없어진 상태로 대상을 바라보는 경험은 느껴보지 못했습니다.

    향후는 주의상태로 평상시 생활을 유지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 HereNow 2012-07-11 09:54:56   답글 | 수정 | 삭제
    15차 심화 현재

    최은숙, 이차연, 박인선, 강호규, 최용무 님 신청되셨습니다.
  • 한승호 2012-03-24 08:37:52   답글 | 수정 | 삭제


    한오년을 이쪽 정신세계 책들을 나름 열심히 보았습니다

    어느 순간 모두 같은 이야기를 이렇게도 저렇게도 하고 있구나 라는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오쇼는 너희들은 모두 비지니스다 이것을 금강경에서 의무소주 이생기심이이라고도 하고 조건없는 삶을 살라고 하듯 모두 그것은 언어이전의 내가 알수 없는 세계를 표현해주는 말들 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래야 할까에 대한 깊은 고민이 뒤따르지 않다보니 당연히 그런거 아니냐는 관성과 경험없이 책으로만 접한 것이기에 막연히 그럴거라는 추측차원의 알음알이를 가지고 있었던 거였습니다



    그랬던것을 이번 과정에서 경험으로 다양하게 풀어보면서 한발 더 근원으로 다가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특히 주의가 어디에 있는가에 따라서 달라지는 거울속의 내가 나를 바라보는 모습과 식물을 대상으로 주의를 옮겼을때 마치 살아 숨쉬며 움직이는 듯한 모습은 나라는 것에 대한 허상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많은 과정들이 그렇게 경험과 통찰로 진행되었고 모든 과정은 존재와 근원에 한걸음 더 다가설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잘 이해를 못하고 헤멜때도 끊임없이 체험으로 느낄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월인선생님과 같이 참여하신 두분께도 감사드립니다

  • 자연 2012-01-21 01:07:46   답글 | 수정 | 삭제


    11차

    정신없이 집안일을 마치고 함양을 향해 떠났다. 이번 심화과정은 단촐한 인원이었지만 재미있었고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다.

    기초과정에서 이런저런 경험을 하면서 전체를 볼 수 있는 매커니즘이 중요하다고 알고는 있었지만 그 매커니즘이 무엇인지는 제대로 인지되지 않았다.

    이번 심화과정에서 월인님꼐 처음으로 했던 질문은 왜 깨어있기 과정에서 감각과 감지를 중요하게 다루는지 궁금하다는 것이었다. 그때까지는 감지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는 있었지만 무슨 의미인지 선명하지가 않았다. 내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알게 된 지식, 기억, 경험 등이 프로그램화되어서 무의식 중에 자동으로 나타나는 것이 감지였다. 이 감지라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역할도 있지만, 어떤 상황이나 자극에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자동으로 나타나서 우리를 한정시키고 왜곡시켰다. 우리가 순수한 본성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없었던 것도 자동화되어 있는 감지 때문이었다. 이번 심화과정에서 감지 연습을 많이 하면서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어떤 누군가의 이미지를 떠올리면 감지가 한정되어지고 감지를 주의제로하면 그 이미지가 사라져버렸다. 나라는 이미지 또한 감지였었다. 나에 대한 상을 떠올리고 감지를 주의제로하면 내가 없었다. 그저 감각만이 있을 뿐....

    그리고 너무 놀라운 경험은, 느낌의 핵심은 비어있다는 것이었다. 월인 님의 안내로 상처받은 상황을 떠올리면서 핵심 느낌을 찾아들어가 들여다보았을 때 텅 비어있었다. 순간 너무 당황스럽고 이게 무언가 싶었다. 괴롭고 힘든 상황의 느낌을 있는 그대로 느껴주는 걸 두려워하고 저항하면서 회피했었는데 정작 그 느낌은 비어있었던 것이다. 나에게 이 경험은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느낌을 제대로 느낄 수 있도록 용기를 주었다. 큰 경험이었다.

    투명한 의식을 느겨볼 수 있었던 경험 또한 너무 소중하다. 교육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와 생활하면서 느껴지는 변화는 느낌과 감정에 큰 흔들림이 없다는 것이다.

    심화과정 때 경험했던 투명한 의식에서 우리의 감정, 느낌, 생각 등이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는 신호이며 현상이라는 것이 명백해졌기 때문이다. 연습 때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보면서 '흔들리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흔들리지 않는 바탕이 있어서가 아닌가' 하는 통찰이 오면서, 나의 슬픔을 바라보았을 때 그 바탕에는 투명한 의식이 자리하고 있었다. 전혀 감정에 물들어 있지 않는 투명한 의식이 느껴졌다. 감정은 단지 투명한 의식 위에서 떠오르는 현상일 뿐...

    이런저런 연습을 하면서 느껴지는 것은 깨어있는 의식으로 감각, 감지, 주의, 동일시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고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부러 화내는 연습을 할 떄 너무 몰아붙인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을 유수 님께 전하며 월인 님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 우심 2012-01-21 01:06:51   답글 | 수정 | 삭제
    (건축감리)



    9차- 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4시간, 엄청난 폭우를 뚫고 운전하면서도 마음과 몸은 내내 행복했습니다. 도착 후에도 전혀 피로함 없이 생생했구요.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아니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었을까?가 더 옳은 의문이겠네요. 변화된 몇 가지와 일어난 통찰은, 보고 듣고 하는 대상들이 보다 뚜렷하고 명료해지는 게 모든 감각기관들이 업그레이드된 느낌, 주의 이동이 한결 쉬어지고 집중도가 높아진 느낌입니다.



    마지막 정리에서 당부한 연습 3가지

    일상생활 속에서 "전체주의 느끼기"

    사람과 관계하며 "동일시 전환해보기"

    의식의 근본을 찾기 위한 "있음 느끼기"



    대상의 외적감지로 인하여 일어나는 내적감지에서 주의 빼기로 주의 제로가 되고,

    주의는 에너지, 즉 힘임을 이완과 더불어 체득하고, 지적 한마디 "무엇이든 정성을 다하면 열정은 따라 옵니다"

    내가 열정을 기울일 대상이 뭔지 매료될 만한 가치를 찾아 헤매느라 어디에도 집중해보지 못하고 있는 나에겐 신선한 충격과 깨달음이었습니다. 늘 뭔가 대단한 파랑새가 있다고 찾아 애쓰며 답답해하는 나의 모습이 떠오르며 실소케 하였습니다.

    일상생활이 무의미하고 시시하다며 불만상태의 심드렁함이 희노애락의 기본 에너지마저 시들케 하며 거꾸로 매사 무기력함에 빠져 자기에게 짜증내고, 뭔가 신나게 만드는 것이 없을까 궁리만하고 이것저것 기웃거리는 시간이 참 많았던 것 같습니다.

    과거 기억에 지배되지 말고 그 기억을 자유자재로 쓸 줄 아는 어린애 "같은" 사람이 되자고 한 말씀에 큰 공감을 했고, 결국 깨어있기의 핵심 목적이 자신이 알고 느끼는 것과의 동일시에서 끊기와 사용하기를 자유롭게 하기 위한 것임이라는 통찰이 참으로 고마웠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통찰이 공유되어지기를 바라며, 감사드립니다.
  • 변낭자 2012-01-21 01:06:18   답글 | 수정 | 삭제
    (약사)



    '나'라는 생각 극뽀옥~ 느낌충만 띵똥~

    (9차 심화과정 다녀왔어요)



    - 8차 깨어있기 기초과정 이후 생활속에서 ‘감지’가 살아 숨쉬고 느낄 수 있어서 그닥 연습없이 만족해하며 지내다가...역시나 하늘도 나의 게으름을 칼같이 접수하셔서 다시 뻣뻣한 사고속에서 헤매였었다. 그러다가 몰아치기 복습을 하고 함양수련원으로 GoGo!!

    안의터미널에 내리는데 왠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도 된것처럼 발걸음이 ‘새로움’으로 가득하다. 길한 징조라며 설레발을 치며 휴대폰의 오늘의 운수에서 ‘뜻을 크게 가져라’는 문구에 걱정을 접어두고 기대를 펼치고...



    - 감지에서 감각으로 넘어갈 때 내안에 ‘상’이 맺히는 걸 보았다. 내 마음이 짓는 것이라고 머리로 알면서 실은 그 ‘상’과 매일 사투도 벌이고 무시도 해보고 용을 써왓는데 이제는 ‘생각놓기’가 쉬워질 것 같다. 보면 사라지니까~ 지금까지는 ‘이거 나 아는건데’ ‘전에는 이랬는데’ 하며 어떤 상을 쥐고 놓지 않는 ‘욕심’을 발견했다. 실은 욕심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나의 의식의 미묘한 무엇... 그것도 역시 ‘욕심’이었다는 것~ 이제 극복 가능하겠지!!

    의식 한단계 성장이요~ 허나 실천을 통해서만 변화된 의식의 흐릿함이 선명해질 수 있다. 띵똥~



    - 함양으로 향하기 며칠전 명상수업에서 내가 ‘이미지’에 묶이는 경향이 짙은걸 조금씩 풀어놓는 작업?!을 했는데 심화과정의 전과정에서 내려놓기=내버려두기=보태지도 빼지도 않기에 자유로와지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좋지도 않은 머리 굴리지 말고 느낌 충만하게 숨쉬고 걷고 살아가고...처음처럼 대상과 마주하고 새로움속에 살아 갈수 있는 ‘key' 를 의식의 포켓안에 넣고 돌아간다. 언제든 꺼내 열수 있도록...하지만 녹슬지 않게 잘 자주자주 사용해야지. 띵똥~



    - 몸에 어딘가 느끼지는 생각이나 감정을 처리하는 과정은 더욱 새로웠다. 생각으로 처리할때와는 진도가 확 달라지겠는걸~ 느낌은 마구마구 이상한 소설은 써대지 않으니까~ 그동안 막힌 부분이 시원해진다. 감동이다. 감사함이다. 에너지이며 사랑이다.



    - 둘째날은 하루종일 ‘깨어있는 의식’을 느끼는 과정이었다. ‘의식의 장’에서 놀고 있는 부분으로서의 ‘나’를 느끼고 그 나조차 그냥 ‘있음’이요 나를 둘러싸고 있는 ‘전체의식’을 느끼는 시간들로 물들었다. 나를 따뜻하게 그러나 관여하지 않고 지켜보고 있는 ‘거기’를 느끼니 온몸이 감사함으로 물들어간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그 느낌이 다시 차오른다.



    - 생각과 깨어있기, 감정과 깨어있기, 오감과 깨어있기 연습을 통해 ‘전체의식’에 대한 느낌은 좀 더 내 몸과 의식에 새겨지고 있다. 특히 감정을 일으키는 부분에서 좀 걱정했는데 감정폭발 부분은 미흡했지만 느낌은 있었고 이것저것 ‘습’이 청소되어지는 느낌이다. ‘감지’ ‘감각’ 연습을 통해서 ‘느낌’ 가득한 일상속에서 올라오는 ‘감정’을 누르지않고 ‘전체의식’을 느끼는 작업을 하면 ‘느낌’ 충만한 일상속에서도 끌려다니지 않는 지조?!있는 여인이 되리라^^ 여지껏은 내가 전체의식이라고 느꼈던 것이 단지 생각에 물든, 기억에 물든 또다른 ‘나’였다는 걸 배우는 시간이었다.



    - 느껴지는 것에 ‘주의 제로’하는 연습을 했는데 그것이 느낌이든 생각이든 기억이든 그냥 ‘주의제로’ 하면 ‘있음’속에서 고요한 가운데에서도 생동감이 넘친다. 평소 명상시간에 스님이 하신 말씀이 머리로만 알겠어서 몸이 자꾸 걸리고 걸렸었는데(몸은 참 재미난 성적표이다) 이제 ‘느낌’이라는 옷을 입고 그 길을 가면 명상시간도 더 재밌어지겠구나 라는 생각에 기대만빵이다. ㅋ



    - 의식마져도 거두는 과정은 깊은 명상으로 가는 길인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 단지 그 속에서 기분좋은 느낌... 큰 것의 일부이기도 하고 전체이기도 한 느낌이 좋았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예단하거나 끌어안고 있지 않기로 한다. 이것 역시 가는 것이 아니라 가지는 것이라고 하면 너무 수동적인가?! 의문이 든다. 전에는 호흡, 마음, 몸을 ‘觀’하는 놀이였다면 이제는 ‘의식’을 가지고 놀아봐야지 하면 넘 가벼울까?! 의문하나더 추가~



    - 마지막 날은 동일시와 동일시 끊기를 내용으로 앞으로 일상에서 그 무엇에 끌려다니지 않고 전체의식 속에 살아있음을 풍성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라는 걸 놓으면 ‘대상’도 없고 ‘대상’에서 빠져 나오면 보는 ‘주체’도 없다. ‘주의’를 ‘나’에 두었다 ‘대상’에 두었다 자유롭게 다루다 보면 ‘너’와 ‘내’가 없는 ‘사랑’을 더 펼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를 내세우면 ‘사랑’은 희미해져 간다. 자꾸 ‘나’가 일어나서 ‘내가 옳아’가 잃어나서 속시끄러웠는데... 의식을 ‘대상’으로 옮기니 재미난 현상과 내안에 퍼지는 따스함이 느껴진다. 아 시끄러운거 이제 그만~~~~~~~



    - 주옥같은(표현력의 한계) 과정의 프로그램을 알려주시고 이끌어주신 ‘월인님’ 감사드립니다. 길동무가 되어주신 ‘우심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모두 평안하고 일상자체가 사랑이고 기쁨이 되길... 아울러 미내사의 ‘깨어있기 과정’을 통해 효과적이면서 깊은 공부와 체험을 많은 이들이 함께하기를...
  • 허유 2011-06-06 12:30:05   답글 | 수정 | 삭제
    ‘나, 나의 것’ 등으로부터 해방

    (변호사)



    ․ 감지의 의미가 명확해 짐

    기초과정 때에는 감지에 대해서 막연히 감만 잡았으나, 이번 심화과정에서는 감지에 대하여 보다 명확하게 감지하였습니다. 화분 하나, 의자 하나에서 감지를 확인하다가 내가 보는 사물 전체, 나를 둘러싼 주변 상황 전체가 감지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눈을 감고 수련원 앞마당을 걸어 다니다가 눈을 뜨고 방으로 들어오는 계단을 오를 때 감지로 걷고 있음이 확연히 느껴졌습니다.

    ․ ‘나’, ‘나의 것’ 등으로부터 해방

    그 동안에는 ‘나’ 밖의 대상을 열심히 탐구하면, 진실을 밝힐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수련을 해왔었고 ‘나’ 속에서 일어나는 심리상태를 분석하는 방법을 통하여 자유를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심화과정을 통하여 그런 ‘나’라는 주체나 ‘나’라는 느낌은 하나의 현상(대상)임을 보게 되었고, ‘나’가 툭 놓이는 순간에는 탐구할 대상도 업고 탐구의 주체도 없다는 사실이 명확해졌습니다. ‘나’는 더 이상 극복해야할 골칫덩어리가 아니고, 탐구해야 할 대상이 더 이상 아니게 되었습니다.

    전체의식(주의)을 계속 연습하다보니 조금 낯설기는 하지만 편안한 느낌이 들고 눈에 보이는 사물과 사람이 나와 다르지 않고 종국에는 눈에 보이고 들리는 감각 등이 존재할 뿐 ‘나’라고 할 만한 것은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 고을 2011-06-06 12:29:42   답글 | 수정 | 삭제
    다 같이 다투지 않고 즐겁게...

    (의사)



    깨어있기 기초과정을 끝내고 나서 2~3일 내에 안 되던 운동동작인 가부좌틀기와 물구나무 서기 등이 전혀 거리낌 없이 착착 되고 간단한 통찰력 등을 경험하고 나서 이게 아주 효과 있다고 느끼고 심화과정을 신청하였다. 심화과정에서 존재감 느끼기, 순수의식, 근본의식을 느끼고 생각, 감정, 느낌에 휘둘리는 것이 아닌 그것을 다룰 줄 아는, 사용할 줄 아는 법을 배우고 나니 마음이 훨씬 안정되고 중심이 잡혔다. 이제 살아가는 동안 크게 감정이나 주위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순간순간에 열심히 살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 집에서도 열심히 연습할 예정이며 많은 사람들이 배워 다 같이 다투지 않고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다.

  • 구름 2011-05-23 09:37:12   답글 | 수정 | 삭제
    (설계 사무소 운영)



    감지․감각에 대한 이해와 실습이 좀 더 자연스럽게 이해되고 실습되었습니다. 1차 기초․심화과정을 하면서도 이해와 체험이 있었으나 미진한 느낌이 있어 기초․심화 재수강을 하였는데 감지․감각의 이해가 더 깊어지고 실습에 있어서도 첫 번째할 때의 (과정) 애씀과 노력이 그다지 없이 자연스럽게 이해와 연습이 와닿았으며 그에 따라 느낌․실습 체험의 깊이도 더했음을 느낍니다.

    깨어있기 공부과정 중 중요한 부분이 감지․감각인 만큼 그것의 이해와 되기의 깊이에 따라 공부효과가 다름을 체험하고 재수강의 보람을 느꼈습니다.

    마지막 날 ‘감각으로 산책하기’에서 이야기가 없는 세계의 평화스러움 속에 그대로 머물고 싶은 깊은 편안함을 느꼈으며 동일시 끊기 실습의 대상이 나를 본다고 느끼며 산책하기에서는 나와 대상이 에너지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 후 주의를 대상으로 옮기니 대상이 나를 보는 느낌이 일어나고 이어서 모든 만물, 모든 나무, 꽃, 풀, 생물이 나와 연결되어 그대로 하나인 느낌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면서 내 몸과 마음의 긴장감이 없어지듯 편안한 휴식이 찾아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보람 있던 재수강 과정이었습니다.

  • 쎄이 2011-05-23 09:36:12   답글 | 수정 | 삭제
    (한의사)



    깨어있기 심화과정의 생각과 감정 다루기, 깨어있기, 전체주의, ‘있음’ 느끼기, 동일시 끊기… 의 전 과정은 내가 지난 3년간 해왔던 공부의 밀도 높은 결정판이었다는 느낌이 든다. 이전에 했었던 연습이 이해에 도움이 되는 측면도 있었지만 미리 결론을 내어놓고 연습에 임하는 경우는 오히려 깊이 있는 진행에 방해가 되었다. 다른 공부들을 해오지 않았던 분들이라면 깨어있기 기초과정에 이은 심화과정이 짧은 시간 내에 공부의 방향을 잡을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 생각하며, 여러 공부를 이미 해온 분이라면 그동안 스스로 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2박3일의 과정을 겪으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또한 나에게는 명료하지 않았던 인식들이 조금 더 세밀하게 구분되고 인식되어지는 귀중한 시간이 되었다) 기억에 남는 과정 중의 하나는 ‘생각 느끼기’로서, 생각의 내용에 대한 씨앗생각을 찾거나 생각이 일어나고 있음을 인식하고 자각함으로서 생각으로부터 벗어나는 기존의 나의 연습방법에 비해 생각 자체의 느낌을 몸에서 (머리에서) 느끼는 이 방법이 훨씬 더 효과적이었다.

    이 과정을 공부하게 될 여러분들도 ‘있음’의 텅빈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고 공부에 더 정진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나를 찾아가는 여정에 귀중한 인연이 되어주신 월인 님께 감사드립니다.
  • 조우 2011-05-23 09:34:53   답글 | 수정 | 삭제
    (공무원)



    한마디로 보람 있었다. 적어도 나 같은 경우에는...

    수십 년 공직생활 정년을 얼마 앞두고 그동안 인생의 지나온 것을 반추하고 여생을 어떻게 살아가야하나 하고 고민하던 중 K의 책을 접하기도 하고 기타 인생 지침서를 읽었는데 남의 경험에 따른 이야기만 즐비하고 나한테만 맞는 이야기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나 여러 가지 자신의 의문을 풀기에는 모자람을 느껴 명상, 마음수련 등을 관심을 가지고 인터넷을 뒤지던 차에 우연히 ‘미내사 클럽’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 과정을 거치게 되면서 여러 가지 많은 것을 느꼈지만 3가지 정도 요약하면

    첫째, 삶을 살아오면서 부딪쳤던 많은 문제와 의문 중 풀리지 않았던 것을 해소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 같다. 예를 들면 ‘모든 것은 마음이 짓는다.’라는 명제를 철저하게 이해할 수 있는 도구를 얻었다고나 할까. 타인의 행동으로 괴로워했거나 미움을 가지고 있었던 경우 이를 타인이 아니라 내 스스로의 힘으로 해소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더 많은 시간을 생활 속에서 부딪히며 배운 것을 바탕으로 단련해야 한다는 단서와 함께...

    둘째, 앞으로의 삶에 많은 활력소가 될 것 같은 기대를 하게 되었다. 이것은 노년의 삶은 자칫 무기력해질 수 있는 신체적 한계를 정신으로 극복해나가며 인생의 후반기를 활기차게 보낼 수 있음을 의미한다.

    셋째,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갈등 없이 원만하게 이루어낼 단초를 마련할 수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깨어있기가 제대로 어느 수준까지 이룩되었을 때는 적어도 나로부터 연관되는 어려움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기대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많은 노력을 기울여주신 월인님의 열성에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토힘 2010-11-08 10:25:40   답글 | 수정 | 삭제
    (주부)



    늘 내가 가는 것에 대해 자신이 없었습니다.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열망 같은 것은 항상 끊임이 없었는데도 뭔가 잘못 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지적인 욕구가 많은 사람이야, 지적인 욕구로 가면 내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뿐이야, 그래서 지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을 절대로 해서는 안돼’ 그렇게 생각하면서 늘 왔다 갔다 했는데, 아엠 댓을 보면서 나 자신이 온전히 서있지 못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무언가 확실한 어떤 것 없이 책을 통해서만 개념 정리를 하는 것뿐이고, 또 어떤 지적인 것으로 빠지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여기 와서도 이해가 안되고, 월인님께서 질문을 하실 때는 ‘거봐, 마찬가지잖아. 내가 두려워했던 일이 일어나잖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그런 것들이 명료해졌습니다. 뭔가 확실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해도 괜찮아. 설령 잘못 가더라도 괜찮아.’ 이런 느낌들이요. 지금도 확실히 붙잡지는 못했지만, 근원에 대한 확실한 느낌이 옵니다. 이해로는 기초 때도 조금 왔었는데, 이번 심화에서 ‘있음’ 연습하러 나갔을 때 그때보다 확실하게 뭔가 와 닿았습니다. 기초 때는 표현할 수 없는 확실한 느낌이 오더군요. 처음 ‘있음’ 연습을 할 때는 어떤 순간에 됐다 안됐다 했었는데, 나중에는 그것이 확실히 왔습니다. 전에는 나름대로 집중명상 같은 것을 하면서 의식을 잃고 쓰러지거나 하는 경험이 더러 있었는데, 그런 경험이 왔다 간다 해도 여전히 뭔가 찝찝함이 남아있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경험이 와도 그 찜찜함이 없고 경험에 좌지우지되지 않고, 경험이 오거나 안 오거나 상관없는 명확함이 생깁니다. 아까 느꼈던 눈물은 무아 상태에서 느끼는 그런 눈물이 아니고 어떤 발견, 통찰의 기쁨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내 것이 되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연꽃 2010-11-08 10:25:15   답글 | 수정 | 삭제
    (주부)



    기초 때는 이런 것은 도 닦는 경지에 있는 그런 사람들이나 해야 하는 공부가 아닌가? 정말 좋은 프로그램이긴 하지만 도달하기 힘들 것이다, 솔직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심화는 몇 년 후에나 와야지 했었는데, 깨달음이 이렇게 체계적으로 쉽게 학습으로 되는구나, 가능하구나, 나도 체험할 수 있구나라는 것을 이번 심화를 통해 느꼈습니다. 그리고 일어난 통찰들이 근원에 가까운 그 있음의 상태, ‘모든 것들이 바탕에 띄워진 대상이다’라는 그런 인식들이 정말 놀라웠습니다. 내 안에서 그 느낌을 찾아보라고 했을 때, 어떤 열쇠를 잡는 기분이었습니다. 내 안에 있는 대상의 상(像)을 잡으면서부터 다 이해가 됐습니다. 그동안은 대상을 보면서 주의를 없앴다 말았다 되게 애쓰면서 하니까 이것이 아닌 것 같고 불안한 마음과 여러 가지 감정들이 있어서 아직 때가 아닌가 보다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방향을 돌려 마음에서 찾아보니 바로 상이 잡히고, 그것이 감지이고, 대상이고, 상이 띄워져 있기 때문에 그것은 당연히 바탕이 있는 것이었고 등등 모든 것들이 아주 쉽게 습득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삶에 굉장히 초연해질 것 같습니다. 이런 상태를 통찰한 것 자체가 너무 놀랍습니다. 그러면 일상 속에서는 수없이 많은 일이 일어날 텐데 그런 것들이 나에게 폭풍처럼 와 닿는다고 해도 이 상태가 유지될 것인가? 상관없을 것 같습니다. 폭풍처럼 와 닿으면 와 닿는 대로, 이런 통찰들로 쉽게 해소될 것입니다. 폭풍처럼 일어나는 것들이 밖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은 폭풍이 아니라 폭풍이라고 느끼는 것일 뿐인 거죠. 감사합니다.
  • 오월햇살 2010-11-08 10:24:45   답글 | 수정 | 삭제
    (코치)



    먼저 월인님과 이번 ‘깨어있기’ 워크샵에 함께 참여하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저는 지난 2월 ‘깨어있기 기초과정’에 참석을 하였는데, 그 이후로 시간이 맞지 않다가 이제야 ‘심화과정’에 참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2월에 자신이 많이 바뀔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 제 자신이 굉장히 무한하다는 느낌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 후로 굉장히 삶에 휘둘렸습니다. 저는 사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보다는 ‘나는 왜 살까?’라는 물음을 갖고 삶을 살았던 것 같고, 그 의미를 많이 찾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물음에 대해 항상 외부에서 찾으려고만 했었는데, 이번을 계기로 외부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어떤 괴로운 감정을 느끼면서도 그에 상관없는 다른 무언가 있다는 것을 잠깐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 ‘무한함’이 ‘있음’이었던 것 같아요. 그동안 만들었던 괴로움도 저의 내면에서 만들었던 다채로운 드라마였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면서, 앞으로는 휘둘리지 않을 것 같고, 자동반응도 굉장히 줄어들 것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중간 연습에서 ‘자연물’이 저 자신을 바라보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사실 제 안에서 ‘사랑’이나 ‘자신의 존재감’이나 가치를 느끼지 못해서 굉장히 힘들었거든요. 그런데 이번 경험에서 그것을 느꼈습니다. 자연이 ‘사랑한다고’ 이야기 해주고, ‘괜찮다고’ 이야기 해주고…, 그것들이 이번 워크샵을 통해 다 채워져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 이길로 2010-08-24 14:06:52   답글 | 수정 | 삭제
    (사업)



    지난 4월에 기초과정을 하고 심화과정을 거쳐 기초 오인회 수요모임에도 나가고 있다. 그러나 감지와 감각도 잘 구별되지 않아 이번에 참가하면서도 가슴이 답답했었다. 첫날 감지연습으로 물건을 보고 경계 짓고 이름이나 생각이 떠오르기 전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생각이나 이름이 얼마나 빨리 달라붙는지 경계도 다 그리기 전에 콘센트, TV, 마우스 하고 이름이 먼저 떠올랐다.

    이름과 생각이 떨어져 나간 감지가 도대체 무엇인가? 하고 답답해하는 마음을 달래며 연습에만 열중하다 보니 훨씬 편해지고 드디어 사물들의 다양한 첫 느낌이 가슴에 와 꽂혔다. 바람에 날리는 대나무를 보면 흔들리는 느낌이 느껴지고 관목인 주목은 흔들리지 않으니 안정된 느낌을 주었다. 한동안 주목에 푹 빠져 일체감을 느끼기도 했다.

    사물에서 이름을 빼면 감지가 느껴지는데 그 감지마저 내려놓는 연습이 감각연습이다. 처음에는 잘되지 않았다. 흔히 내려놓으라고 하나 그 방법이 과거의 기억을 불러오지 않는 것이고, 그쪽에 에너지를 보내지 않는 것이라는 설명을 듣고 나니 좀더 나아가게 되었다. 주의를 먼 방향으로 보내면서 의식하기는 비교적 쉽게 이해되고 연습을 해도 잘 되었다. 주의를 사방으로 보내니 나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방에 편만하게 널려있는 것 같았다. 오후가 되어서 감지와 감각에 대해 좀더 명확한 체험을 하고 이번 수련에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 날은 아침부터 기분이 좋았다. 내 생일을 산자수명한 함양수련원에서 맞이하니 젊음이 용솟음치는 것 같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목욕하고 결가부좌로 앉아 명상을 했다. 창밖의 빗 소리를 들으며 금방 선정에 든 것 같아 끝나고도 개운했다.

    감지와 감각, 느낌과 생각, 전체의식에 대한 슬라이드 강의를 듣고 야외훈련을 하러 나오니 비가 그치고 태양이 빛났다. 사실 그동안 감지와 감각이 구별되지 않아 마음이 답답했다. 두 번째 수련에 참석하고 수요모임에도 빠지지 않고 나가면서 감지와 감각을 알려고 해도 제대로 안다고, 경험했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오늘은 월인님의 지도로 감지를 명확히 알게 되고 감각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아무리 설명으로 ‘감지라는 것은 알던 것, 익숙한 것이고, 대상이 전경이 되고, 주변이 배경이 된다고 해도 구별이 안되고, 추론해서 아는 감지를 경험하면 우리 삶을 힘들게 하는 동일시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말을 들어도 어떻게 벗어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제야 확연히 구분되는 것이었다.

    ‘감각’도 낯설게 보고 자세히 보는 것, 보는 나가 없는 상태로 주변과 구별이 잘 안되고 시각적, 촉각적 느낌이 없는 상태로 주의 제로와 비슷한 것이라고 하나 잘 안되었다. 사물을 보고 있는데 어떻게 입체로 보여 지지 않고 의미가 잊혀질까하는 의문만이 나를 가로막고 있었다. 감각상태로 가면 ‘나라고 믿는 것이 허상임’을 아는 첫 단계를 지난 것이라고 하나 꼭 감지와 감각을 알아야 공부가 되는가 하고 사춘기 청소년처럼 반발하는 마음만 가득했다. 그러나 오늘은 꼭 알아야겠다는 욕심도, 모르겠다고 발버둥치는 유아적 떼쓰기도 그만두고 연습에만 충실하기로 마음을 정하니 한결 편해져 그렇게 명확하게 구별되는 일이 생긴 것 같다.

    5살 때 돌아가신 아버님과 오래전에 먼저 간 친구의 심상 이미지를 떠올리니 감지가 과거임이 너무 또렷해졌다. 점심을 먹고 농월정 근처 냇가에 가서 야외수련도 하고 성하의 더위를 식히며 훈련으로 경직된 마음을 풀었다. 오후 내내 월인님의 지도에 막힘없이 따라가게 되고 머뭇거림과 제대로 아는 건가 하는 의심이 사라졌다. 사랑할 때나, 에너지가 충만했을 때, 웃음을 참지 못했을 때, 화났을 때, 모든 느낌을 불러내어 재경험을 해도 막힘이 없었다. 그 모든 느낌과 함께 있는 어디에도 물들지 않는 순수의식을 함께 느끼니 격했던 감정들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보면 사라진다”는 것이 또렷이 느껴졌다.

    저녁에는 한약재를 잔뜩 넣은 삼계탕으로 도반들과 생일을 자축했다. 밤 11시가 넘도록 월인님의 열정으로 화를 의도적으로 내서 경험하고 순수의식에 주의를 주어 화를 처리하면서 아무리 큰 분노도 금방 사라짐을 알았다. 슬픔과 함께 하기 위해 통곡하며 눈물도 흘리고, 행복했던 기억과 함께 하기 위해 서로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하면서 어떤 감정도 과거임을 알고, 보면 사라지는 신기한 경험을 나누었다. 매일 매일을 오늘 같이 살고 싶었다. 12시가 넘어서까지 오늘의 공부를 정리해보면서 그 감동을 반추하였다.

  • 성암 2010-08-24 14:06:14   답글 | 수정 | 삭제
    (국선도사범)



    지난 기초과정에서 관념적으로만 이해되고 느낌으로 와 닿지 않아 답답했던 부분들이 상당부분 해소되는 성과가 있었다. 감지도 개념적으로만 이해하고 실제로 체험이 되는지 확신할 수 없었으나 이번에는 좀더 구체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다. 역시 느낌이 생각보다 중요하고 생각이 추상적이라면 느낌은 훨씬 구체적이라는 말이 실감이 되었다.

    특히 생각이 어디로부터 오는지를 알아차리는 과정에서 그 생각이 텅 비고 내가 있음만 남는 홀가분함이 체험되었으며 거울을 보고 하는 연습에서는 처음으로 자신이 대상이 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연습에서 사물을 대상으로 내가 사물의 대상이 되는 연습을 통해 지금까지 뚜렷한 실체도 없는 과거의 흔적 덩어리인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대상이라고만 생각해왔던 사물중심으로의 시각의 변화를 체험한 것은 귀중한 통찰이었다. 그것으로 불교의 연기관이나 ‘그대가 있음으로 내가 있다’는 말도 느낌으로 이해되었으며 뚜렷한 실체도 없고 보편, 객관적이지도 못한 ‘나라는 생각’에만 매여 살 필요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 바람 2010-08-24 14:05:43   답글 | 수정 | 삭제
    (교사)



    시각도 느낌이라는 것을 인지하게 되어 시각적 감지를 할 수 있었고, 감지의 느낌이 확연해지면서 다른 감각을 이용한 감지도 가능했다. 감지와 달리 감각연습은 잘 되지 않았으나 감각이 되었을 때의 사물의 상태에 대한 이해는 확실히 되어 향후 감각연습에 도움이 될 것 같다.

    둘째 날 계곡에서 풀잎을 보며 한순간 대상과 내가 없어지는 체험을 딱 한 번했다. 그 느낌을 확연히 해보려 다시 한 번 시도했으니 잘되지 않았다. 그런 저런 의도를 내려놓고 기본에 충실해야 할 듯하다. 느낌, 주의의 사용 등으로 무척 피곤할 것 같았는데 머리와 눈은 선명하고 명료한 느낌이었다.

    셋째 날(둘째 날 저녁부터 시작) “~와 함께 깨어있기”에서는 어느 것에도 물들지 않는 투명한 의식(감지를 파악하고 있는 앎)을 느꼈다. 그동안 많은 감정의 풍랑에서 괴로웠는데 투명한 의식 느끼기 연습은 나에게 큰 보배가 될 것 같다.

    마지막으로 연습한, 사물에 주의를 옮겨 ‘사물이 나를 보는’ 연습을 하며 사물과 마주하고 있으려니 나라는 생각이 올라오지 않았다. 항상 나라고 생각했던 것이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새로운 체험이었다. 나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길에 첫 걸음을 내디딘 기분이었다.

  • 심재 2010-08-24 14:05:05   답글 | 수정 | 삭제
    (변리사)



    1차 깨어있기 심화과정에 참여한 후에도 무언가 연습이 미진한 점이 있다고 느껴져서 이번 심화과정을 다시 참여하였다. 수업이 시작되자마자 나의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시각적’인 느낌에 주의를 기울여보라는 월인님의 말씀이 있었다. 그동안 감지-감각 연습을 할 때 눈으로 들어오는 사물의 ‘첫 인상’ 또는 ‘맨 느낌’을 명확히 구분하지 못하고 단지 주의를 거둬들이는 식으로 잘못 연습하고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이 점이 명확해지니 이후의 연습도 이전에 해보았던 것이지만 모두 색다르게 느껴졌다. 그중에서도 ‘깨어있는 의식 느끼기’와 ‘있음’을 느끼는 연습이 좀더 깊이 있게 다가왔다. 마지막으로 나와 대상이 동시에 나타나는 것을 알아채는 연습, 특히 주의를 사물 쪽으로 더 보내어 사물이 나를 보는 것처럼 느껴보는 연습은 큰 통찰을 가져다주었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많이 내 몸을 나로 여기고 나 위주로 생각하면서 살아왔던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미진했던 부분을 일깨울 수 있어서 이번 심화과정에 매우 만족한다. 특히 지속적으로 가르침을 주시는데 애쓰시고 계시는 월인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 사랑나눔 2010-06-29 14:21:18   답글 | 수정 | 삭제
    절대와 상대는 늘 같이 있다



    저는 일단 제가 그동안 공부해온 것에 대한 확인을 많이 받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절대와 상대가 늘 같이 있으며, 의식의 감각상태보다 더 깊이 들어간 상태에서도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이 크게 다가왔습니다. 그동안은 고요에 머물며 어떻게 해야될지를 몰랐는데 이제는 이곳과 저곳에 막힘이 없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성암 2010-06-29 14:20:36   답글 | 수정 | 삭제
    통찰을 동반한 경험

    (국선도 사범)



    막연하게 머리로만 알고 있던 것을 이 과정을 통해 체계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는 것이 커다란 성과였습니다. 함께 참여한 분들에 비해 저의 체험이 약함을 알 수 있었는데 그것은 아마도 저에게 찾고자 하는 간절함이 그동안 부족했던 것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저도 어릴 때부터 나를 찾는데 관심이 많아 찾아다녔지만 오늘 참석한 분들에 비하면 그저 호기심의 차원이었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곳의 훈련이 호기심을 넘은 엄청난 재미와 성과로 이어지게 할 것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즉, 나 자신의 입장에서는 수시로 올라오는 화를 다스리는 데도 도움이 되겠고, 주위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특히 저는 나름대로 운이 좋아 많은 것을 성취하면서 살아왔지만 아이들 교육에서는 많이 미진하고 아쉬움이 남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과정을 일찍 알았더라면 우리 아이들을 좀더 잘 키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결혼할 당시에 오늘과 같은 이정도로만 열렸어도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 주지 않고 우리 아이들도 잘 키울 수 있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나 연습들 중에 크게 와닿은 것은 촉감연습이었는데, 이 연습을 통해 내가 감각기관을 통해 받아들이는 불완전하다는 것을 명확히 보았습니다. 우리의 생각이라는 것이 지금 이 순간의 것이 아니고 과거의 축적된 네트웍에서 결합되어 나온 ‘과거’라는 것을 분명히 느꼈습니다. 또 선생님이 말씀하신 ‘경험이라는 것은 통찰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일회성으로 끝난다’, ‘아는 것은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느낌이 중요하다’는 말이 와닿았고 생활 속에서 구현해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 2010-06-29 14:19:43   답글 | 수정 | 삭제
    존재감에 다가가다

    (학원장)



    깨어있기 책을 봤을 때 표지의 ‘내가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나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라는 말이 크게 와닿아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그동안 나는 ‘내가 보는 나의 세계 속에서 살아왔구나’ 하는 것을 명확히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상대의 이야기에 끌려들어가지 않고 그의 이야기가 다 실제도 아니고 내가 말하는 것도 모두 옳은 것이 아님을 알아챌 것입니다. 또 내가 보는 대로 세상이 달리 보이게 될 것으로 여겨집니다.

    책을 읽어가는 중에는 ‘감지’라는 말이 잘 와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을 통해 연습을 하면서 ‘아, 감지가 형태와 질감을 갖춘 이것이었구나’ 하는 것을 알았고, 그 모든 것을 내려놓은 감각도 알아채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안다는 것과 체험하는 것의 차이도 크게 느꼈습니다.

    또 체험만 있어서는 안되고 그 체험을 통한 통찰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저에게는 중요한 깨우침이었습니다. 이제는 존재감에 좀더 다가간 것 같으며 거기에 대한 감동이 있습니다.

    집에 돌아가면 생활이 좀더 편안하고 즐거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화가 올라오는 것을 잘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 HereNow 2010-05-06 12:59:28   답글 | 수정 | 삭제
    김지현 님, 3차에 신청해주셨습니다.
  • 재무설계사 2010-05-04 16:41:34   답글 | 수정 | 삭제
    오오~이럴수가! 나는 어디 있는 거지?

    (재무설계사)



    벌써 네번째 간 미내사 수련원은 이제는 친척집처럼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또 기초 과정에 참여하셨던 분들이 대부분 오셔서(당연한 거지만) 1차 기초 과정을 끝낸지 하루만에 다시 만난 것 같았습니다. 벌써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제 인생에도 꽤 큰 변화가 있었는데도 말이죠. (새로운 직업에 도전함) 참가자 분들은 이제는 오래 전부터 알던 분들 같습니다.

    <첫째날>

    참가자분들이 속속 도착하고 마음을 감지하기 위한 개념 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맨 앞에 앉았건만 쏟아지는 잠을 이겨내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월인님은 분노, 슬픔 등 온갖 감정이 올라오는 것은 그 감정을 건드리는 요인이 몸 안에 내장되어 있기 때문이며 이것들은 과거의 경험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요인들의 과거성을 알고 이 감정이 어느 부분에서 일어나는지 구체적으로 경계 지은 뒤 바라보는 작업이 이어졌습니다. 생각이 머릿속 어느 부분에서 올라오는지 경계 짓는 순간에는 저절로 다른 생각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그 생각을 경계 짓고 그 안에서 가장 강렬한 감정을 찾아내는 일은 집중도 잘 안 되고 졸음이 쏟아졌습니다. 강렬한 감정 자체가 남아있지 않았던 것입니다.(억지로 불러내려니 힘듬..;)

    <둘째날>

    인생 통틀어 참으로 충격적인(?) 경험을 한 날이었습니다. 분노를 이용하는 방법을 배우는 시간이었는데, 월인님이 이 시간에는 서로 화나게 할 거라고 말씀하셨을 때부터 긴장이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남들이 비난을 하면 제대로 대응도 못하고 눈물부터 나곤 했습니다. 이와 비슷한 시간이 ‘각성 인텐시브’에도 있었는데 처음엔 서로 어색하니 웃으며 시작하다가 나중엔 정말 험악하게 분위기가 바뀌더라고요.

    월인님이 시범을 보여주신다면서 가장 먼저 저를 지목했습니다. 으으~그야말로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그냥 앉아서 버티고 싶어하는 '나'를 가야만 한다고 달래서 억지로 일으켜세웠습니다.

    월인 님이 갑자기 버럭 화를 내시는데 얼어붙은 듯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화를 내긴 내야겠는데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더라고요. 저는 욕설을 들으면 충격을 받을 뿐 화가 나지는 않습니다. 동생들이랑 한 방 쓰면서 화를 낸 적이 분명 많은데 공개적으로 멍석을 펴주니 있던 화조차 꼭꼭 숨어버린 것 같았습니다. 어쩔 줄 모르고 있는 저한테 갑자기 월인님이 미소지으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유 없이 화를 낼 줄 알아야 이유 없이 화를 멈출 수 있다고. 화를 '내지' 못하는 사람은 화가 '날' 뿐, 화에 잡아먹힌다고.

    이어 다른 참가자분들과 짝을 지어 화내는 연습을 했는데 결과는 뭐 비슷했습니다.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 "왜 한 마디도 못해? 너 바보야?"였는데 마음 속으로는 '그래, 나 바보 맞아.' 이랬으니까요. 그나마 심재님과 여몽님 덕에 아, 나는 누가 살살 속을 긁을 때 화가 나는구나~이 정도 알 수 있었던 게 소득이었습니다. 가상이긴 했지만 계속되는 공격에 팔다리에 힘이 빠지고 온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기분이었습니다.

    평소 욕은 커녕 '기분 나쁘다'는 말도 남에게 잘 못하는 성격입니다. (이 말 자체가 제겐 엄청 심한 말임) 누가 이유없이 욕을 한다면 마음에 멍이 들거나 황당하거나 충격을 받거나 눈물이 핑 돌 뿐입니다. 평소, 나도 같이 욕하는 것은 상대방 때문에 내 입을 더럽히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욕을 해보라는 지시도 쉽사리 따르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나는 내 틀을 버리려고 여기까지 온 게 아닌가? 싶어 어렵사리 입을 열었습니다. 욕하고 여러 사람 앞에서 박수 받기는 처음인듯~더구나 제게 화를 내시는 분들(월인님, 조르바님, 심재님, 여몽님)로부터 저를 생각해주시는 마음이 느껴지니 화가 나기보다는 이렇게 저를 위해 애써주시는 게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나는 화가 나기만 할 뿐, 화를 낼 줄 모른다"는 사실을 새롭게 자각한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동안은 화를 멈추고 싶어도 화에 달린 가속 장치는 쉬이 멈추어주지 않았습니다. 이젠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이어진 슬픔 느끼기기는 당황스러웠습니다. 슬픈 음악을 듣고 조용히 슬픔을 느끼면 되는 줄만 알았는데 음악이 시작되자마자 월인님이 갑자기 엉엉 우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슬퍼야 할텐데 슬픔 대신 온갖 잡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이거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자주 나오는 음악인데...또 여럿이 운다고 해서 같이 우는 것은 제겐 좀 부자연스러웠습니다. 장례식 가면 많이들 우는데 왜 나는 슬프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슬퍼지지? 온갖 생각을 하는 동안 여기 저기서 울음이 터지고 울며 다가오시는데 저는 그만 외면하고 말았습니다.(-_-;; 너무 죄송했어요.) 아무 이유도 없는데 같이 얼싸안고 우는 모습이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니 여러 사람 앞에서 분노와 슬픔을 내보이는 걸 스스로 수치스러워 한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감정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월인님이 참 대단해보입니다.

    사랑 느끼기도 잘 안 되는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최근에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작년 옛 남자친구와 수목원에 놀러갔을 때였습니다. 그러나 행복감도 잠시 급 우울해졌습니다. 먼저 헤어지자고 한 사람이니까요. 정말 행복했던 순간을 찾느라 시간이 다 가버렸습니다. 첫째날 둘째날 연속으로 죽 쑨 것 같아 걱정스러웠습니다.

    이 세 가지에서 가장 중요한 건 분노, 슬픔, 사랑 등 어떤 감정이 올라오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명한 채로 남아 물들지 않고 있는 순수의식을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야 감정에 빠지지 않고 넘어갈 수 있으니까요.

    저녁에는 감각 상태에서 오감 느끼기를 한 것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그토록 향긋하던 체리잎 차도, 지피 가루도 감각 상태에서는 무향 무취 무미라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그토록 아름다운 경치도 감각 상태에서는 무감해졌습니다. 시각적 즐거움을 순수 의식 상태에서 분리해내는 것은 힘들었으나 시각적 불쾌감을 분리해내기는 쉬웠습니다. 제가 평소에도 시각적 즐거움을 퍽 중시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월인님께서 우리가 보고 있는 것들은 전부다 과거라고 하신 말씀에 선뜻 동의하지 못한 것은 실감하지 못해서이기도 하지만, '시각적 쾌감'이라는 자잘한 즐거움이 사라져버리는 것에 아쉬움을 느껴서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작은 것들을 붙들고 있다보면 정말 큰 보물인 근원의식을 놓치겠지요. 좋아하는 감정이든 싫어하는 감정이든 감정이란 것에 계속 끌려다닐테고요.

    <셋째날>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있음'을 느끼는 연습이었습니다. 눈을 감고 월인 님의 말씀에 귀기울입니다. '나'는 사라지고 '있음'만 남아있다는 말씀...과연 될까? 스멀스멀 올라오는 의구심을 잠시 내려놓고 한 번 나 자신을 맡겨 봅니다. 저 자신에게 최면을 걸어보자고 생각했지요. 그랬더니 뜨거운 에너지가 올라오는 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1분간 내 몸, 나 자신이라는 것들이 사라졌습니다. 오오~이럴수가! 나는 어디 있는 거지?

    월인님 말씀대로 이 상태를 유지하며 산책을 해 봅니다. ‘나’라는 의식이 금방 돌아오긴 했지만 지금 사탕을 먹고 싶다는 것은 내 몸의 생각이요, 의심이나 잡념은 마음의 생각이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즉 몸은 더 큰 ‘나’가 머물다 가는 장소고 생각은 마음의 혼잣말일 뿐 그것 자체가 ‘나’가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던 거죠. 생각이 올라오는 것을 희미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전엔 생각에 곧장 휩쓸려 들어가곤 했는데 말이죠.

    식물을 대상화하여 식물이 나를 바라보는 것처럼 느끼는 연습이 있었습니다. 식물과 일체감까진 아니더라도 아. 얘들이 날 반갑게 맞아주는구나~하는 건 알 수 있었습니다.

    감각과 감지의 세계에 대해 좀 더 분명하게 배운 시간이었습니다. 감각이 잘 되면 정말 사물에 집착할 일도 없어질 것 같고, 감정을 순수의식에서 더 수월하게 분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투명한 의식 상태에 있기 위해 주위에 깨어있기를 하면 그다음엔 진짜로 ‘나’가 끼어들 틈이 없더라고요.

    또 체험에 안주하지 말고 그 체험이 왜 일어났는지, 그 체험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강조하시는 부분도 참 좋았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체험이 있기 전의 상태로 되돌아가 또 답을 찾아야 하니까요. 답을 스스로 찾게 도와주시는 것~그것이 이 코스가 특별한 이유인 듯 합니다. 두 과정 동안 함께 한 벗님들, 앞장 서서 감정을 이끌어내주시고 벗님들 한 분 한 분을 세심하게 배려해주신 우리의 사부님, 월인님께 감사드립니다.

  • 도날드 2010-05-04 16:40:50   답글 | 수정 | 삭제
    ‘앎으로부터의 자유’의 진정한 의미

    (경기도청 공무원)



    「깨어있기 기초과정」을 마친 후 심화과정을 많이 기다렸습니다. 기초과정을 마치고 한 달만에 또 “교육을 간다.”고 애기엄마에게 이야기 하니 또 취미가 바뀌었냐? 라며, 무슨 취미인지 모르겠지만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뒤로 하고 「깨어있기 심화과정」에 입과 하였습니다.

    자기 전에 스스로에게 질문하기, 궁금증을 가지고 자신을 살피다가 잠자리에 들라는 팁을 주는 것으로 1일차 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깨어있기 기초과정」에서 다루었던 감지와 감각에 대한 복습과정에서 알 것 같았던 감지가 또 무엇인지 감감했습니다. 하지만 과정을 계속하다보면 알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에 수업을 계속 들었습니다. 1일차 과정이 끝날 때까지 감지에 관해 아무런 것이 없었습니다.

    잠자리에 들면서 과정 시작 전에 주신 팁을 사용하여 감지가 무엇인지 깊이 질문하며 잠이 들었습니다. 누군가 “이게 바로 그것이야” 라고 나에게 주는 것을 받으면서 잠을 깨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몰랐습니다. 야채 샤브샤브로 아침을 마치고 2일차과정을 시작하였습니다. 2일차 과정에도 눈동자 마주보기, 거울보기, 의도적 화내기, 의도적 슬퍼하기, 두려움 느끼기 등 과정을 체험하면서 나 자신을 많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깨어있는 의식 느끼기 중 색깔을 통한 감지의 과거성 느끼기에서 감지란 것이 무엇인지 확연해졌습니다. 감지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꿈속에서 받았던 것이 바로 감지에 대한 앎인 것 같았습니다. 다른 분들은 기초과정에서 알았던 감지를 심화과정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어찌되었건 감지가 무엇인지 알았으니 나로서는 큰 소득이었고 감지를 알았다는 기쁨으로 2일차를 마치고 잠이 들었습니다.

    3일차 아침을 일어나니 감지가 더욱 선명했습니다. 보는 물체마다 내면에서 감지가 올라 왔고 그래서 올라 온 감지의 성격과 종류 등을 분석했습니다. 그때 분석한 것을 잠깐 열거하자면 감지되는 모든 것은 과거의 이미지라는 과거성, 같은 사물도 개인에 따라 다른 주관성, 하나의 사물에 중첩해서 나타는 중첩성을 느꼈습니다. 감지는 대상에 따라 상황에 대한 감지, 사물에 대한 감지, 사람에 대한 감지, 생각에 대한 감지로 구분할 수 있고, 감각기관에 따라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에 대한 감지로 구분되는 것 같습니다. 또 감지를 알기 위해서는 감지가 무엇인지 이해를 해야 하는 지식과 그것을 체험하여야 하는 경험이 모두 구비되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감지에 관하여 세밀하게 분류로 하고 분류에 따라 특징을 정리하면 감지를 인식하거나 감지를 내려놓는 과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을 하였습니다.

    3일차 과정을 시작하면서도 감지를 알았다는 기쁨은 계속되었습니다. 3일차과정에서 연습한 “의식에 주의 주기”가 제대로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또 나라는 느낌 내려놓기, 동일시하기, 동일시 끊기 등 어떤 것인지는 머리로 이해하지만 체험으로는 되지 않았습니다.  “깨어있기 과정”은  “수십년을 거쳐 고민하신 결과물”인데 그것이 그렇게 쉽게 경험되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경험되지 않은 것에 대해 초조하지는 않았습니다. 경험되지는 않았지만 머리로는 어느 정도 이해하였습니다. 계속 꾸준하게 연습하면 경험되리란 생각이며 과정을 마친 분들에 대한 사후관리 과정으로 정기적인 모임을 만드실 것이라는 월인님의 말씀에 그날이 기다려집니다. 그때 겸연쩍지 않으려고 지금도 계속 연습중입니다. “깨어있기 연습”이 제 취미가 되었나 봅니다.

    전에 읽은 에크하르트 톨레의 “지금 이순간을 살아라”는 책을 과거도 잊어 버리고, 미래도 걱정하지 말고 현재에 충실하라는 뜻으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내용이 그런 뜻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습니다. 또 그리슈나무르티의 “앎으로부터의 자유”를 읽고 거기서 말하는 앎과 자유가 전에 생각하던 그것이 아니란 것도 알았습니다. 지금은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이 무엇인지, 앎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이 무엇인지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깨어있기 과정”에서의 여러 가지 체험이 있은 후에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계기를 만들어 주신 월인님께 감사드립니다.  



  • 심재 2010-05-04 16:40:15   답글 | 수정 | 삭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힘

    (불교대학원대학교)



    지난 깨어있기 기초과정을 마치고 난 후, 책에서 읽었던 감지와 감각이 어떤 것인지 체험할 수 있었고, 감지와 감각 연습을 왜 하는지에 대해서도 이해하게 되었기에, 이번 심화과정에서는 무엇을 배우게 될지 기대가 되었습니다. 특히, 심화 과정에서는 외부의 사물을 감각으로 보는 것에서 더 나아가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바라보는 것을 연습한다고 들었기에, 책에서 읽기는 하였으나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무척 궁금했고, 그래서 더욱 이번 심화과정이 기다려졌습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그동안 기초과정에서 배운 것을 나름 연습한다고는 하였는데, 항상 잘 되는 것은 아니어서 이번 심화과정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싶어 조금 걱정이 되었습니다.

    드디어 심화과정이 열리는 날이 되었고, 월인님을 비롯해 지난번에 뵈었던 도반님들을 다시 보니 새록새록 반가움이 밀려들었습니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지난 기초과정에서 배운 것을 간단히 복습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책에 소개된 연습을 중심으로 그밖에 여러 가지 연습이 차근차근 진행되었습니다. 연습한 것들 중에서 우선 생각나는 것은 생각과 함께 깨어있기입니다. 이 연습은 생각의 물리적인 느낌을 확인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생각의 물리적인 느낌은 생각이 일어날 때 뇌의 활동을 민감하게 인식함으로써 알 수 있었고, 생각이 일어날 때마다 뇌의 다른 부분으로 에너지가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점을 인식하고 어떤 생각이 일어 날 때 그것을 없애려 하는 대신 그 생각이 수반하는 느낌을 바라보니, 그 생각이 무엇인지는 알 수 있었지만 생각 속으로 더 이상 빠져들지는 않을 수 있었습니다. 즉, 생각이 꼬리를 물고 계속되기 전에 내 의지로 중단하는 것이 가능함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요즘도 일상생활에서 이 연습을 하면 머리가 가벼워지고 머리 전체는 물론 온 몸으로 에너지가 골고루 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의 경우 특히 어떤 생각에 빠지면 머리 앞쪽(전두엽 부분)이 묵직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요즘은 의식적으로 머리의 다른 부분으로도 주의를 보내는 습관을 들이니 불필요한 생각에 빠져서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경우가 줄어든 것 같습니다.

    두 번째로 생각나는 것은 감정과 함께 깨어있기입니다.  나를 화나게 하거나 슬프게 하는 직접적인 원인이 없는데도 화나 슬픔을 일으키고 이를 바라보는 연습을 하다 보니, 이러한 감정들을 인식할 수 있는 바탕이 되는 더 큰 의식이 있다는 것과, 감정들이 특별한 원인 없이 그저 일어났다가 사라질 수 있는 것들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일상생활에서는 감정이 일어나면 그것에 푹 빠져서 아예 다른 생각을 못하거나, 조금 감정에서 빠져나오면 그 감정의 원인을 되새기다보니, 생각과 감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서로를 지속시키고 증폭시켰던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이 연습을 통해, 감정이 일어나는 것을 인식하되 그것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심화과정을 다녀온 후 일상생활에서 가장 큰 변화를 느끼는 것이 이 부분입니다.  여전히 여러 일들로 인해 언짢고 초조하며 화나는 감정들이 일어났지만, 신기하게도 그러한 감정들이 전처럼 오래, 강하게 지속되지 않았고, 조금 지나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은 상태가 될 때가 많았습니다.  아마도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힘이 어느 정도 생긴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인상 깊었던 연습은 주의에 주의를 기울이는 연습입니다.  이 연습은 외부의 모든 것을 향하여 내 주의가 가고 있음을 수동적으로 인식하는 연습이라고 나름 정리해 봅니다. 이 연습을 통해, 평상시에는 어떤 관심 가는 것으로 주의가 항상 옮겨 다니느라 바쁜 나머지, 내 주의가 사실은 외부의 모든 것에 뻗쳐 있어 모든 것을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또한, 연습을 반복하다보니 점점 어느 한 곳에 주의가 머무르려고 하는 경향이 줄어들면서 외부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연습을 하는 동안 주변의 사물이나 생각, 감정 등에 빠지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은 어느 정도 할 수 있었던 반면, 내 몸에 대해서는 연습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내 몸에 대한 느낌 역시 대상으로서 인식되는 것이므로 본질적인 내가 아니라는 것이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만, 내 마음대로 몸을 움직일 수 있고 내 몸의 감각이 너무 생생하게 와 닿으며 내 몸이 항상 제일 가까이에 있는 것이기에, 이것을 그저 주의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여전히 낯설었습니다. 이런 점을 월인님께 말씀드렸더니, '나'라는 느낌이 내 몸의 어느 부분에서 느껴지는지 잘 찾아보고 이것 역시 일종의 기억이라는 점을 자각해 보라고 대답해 주셨습니다. 월인님의 말씀에 따라, 내 몸에 대한 느낌이 옮겨 다니는 것을 찬찬히 바라보고 그것을 대상으로서 인식하는 연습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내 몸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나와 가까이 있기는 하지만 그저 대상으로서 느껴졌고, 내 몸을 움직이게 하는 의도 역시 외부로부터 오는 것 같이 인식되어서 신기했습니다. 그렇지만 이후에 연습하는 동안에는 이것이 생각대로 잘 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보다 많은 연습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처럼 내가 내 몸의 감각과 동일시되는 경향이 컸기 때문에, 동일시 끊기 연습은 저에게 좀 어렵게 다가왔습니다. 특히 주변 사물(식물 등)로부터 자신에게 오는 주의를 느끼는 연습은, 자신이 인식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나'에 대한 동일시로부터 벗어나 외부로부터도 나를 인식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우치는 연습인 것 같았는데, 제 경우에는 이것이 좀 어려웠습니다. 이 연습을 식물을 바라보면서 하는 동안에 몇 번쯤 내 몸에 대한 느낌이 사라지는 상태가 됐다가 갑자기 식물로부터의 주의가 느껴지면서 내 몸에 대한 느낌이 다시 살아나는 경험을 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외부로부터의 주의를 통해 나를 인식한다는 것이 완벽하게 와 닿지는 않습니다.  앞으로 '나라는 느낌'을 내려놓는 연습을 더욱 착실히 해야 될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이번 심화과정을 통해 내가 주변 사물은 물론 내 생각이나 감정, 내 몸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 보다 잘 알게 되었고, 앞으로 어떤 점을 더 연습해야 할지도 어느 정도 알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그동안 책을 읽으면서 머리로만 이해하였던 것들을 이렇게 체험으로 연결시키는 기회를 주신 월인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같이 참여하여 자신의 경험을 가감 없이 진솔하게 들려주신 도반 여러분들께도 역시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 여몽 2010-05-04 16:39:31   답글 | 수정 | 삭제
    슬픔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을 그냥 보고 있다

    (숲해설가, 충북대 박사과정)



    수련 중 밖으로 나가니 내 주위가 전체를 향해 열려 있다. 오직 전체만이 존재하고 있다.

    나무가 평소와 다르게 색깔이 물로 씻은 듯 깨끗하고 멀리 있는 잎도 잎맥이 선명하다.

    예전에는 주위에 주위를 두면 나의 에너지가 쓰인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저절로 되는 것이 편안하다. 가까이 핀 꽃을 바라보니 평소 확대경으로 보는 것처럼 선명하고 투명해 꽃잎 아래에 있는 꽃받침까지 보인다. 꽃 한 송이 한 송이의 암술 수술의 색깔, 표정이 다르다. 지나가는 소리들, 들려오는 소리들이 소리로 들린다. 걸음을 옮기는데도 나의 몸은 안 느껴지고 하늘, 돌, 바람, 나무, 풀등 전체 속에 내가 있다.

    공포영화를 보았다. 공포영화라는 월인님 소리만 들었는데도 미리 가슴이 두근거렸다. 효과음악이 더욱 가슴을 뛰게 하였다. 가슴이 뛰어 손을 들었다. 월인님의 멘트따라 경계표시하고 집중하고 경계표시하고 집중하니 무서움이 사라졌다. 5분지나 또 다시 무서운 장면 때문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다시 월인님의 멘트대로 반복을 두 번 더 하니 가슴이 진정되었다. 다시 화면이 나타났다 사라지는데 주의에 주의를 주고 보면서 ‘보고 있는 영상이 감지이다’ 라고 알아채니 공포감이 사라진다. 마지막 화면에 평소는 꿈에도 생각 못한 공포스런 장면이 나타났으나 가슴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너무 신기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50년 넘게 무서움을 잘타는 습관이 잠깐 10분사이에 완전히 공포나 무서움에서 해방되었다. 스크린은 항상 그대로 있었는데 스크린 위에 감지들이 나타났다 사라진다는 감지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어 슬픔을 느끼는 장면이 떠올랐는데 슬픔 속에 파묻혀있지 않고 투명의식이라는 스크린 위에서 슬픔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을 그냥 보고 있었다.

    평소 나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프로그램 끝나고 마지막 나눔에서는 내 차례가 돌아오기 전까지 가슴의 두근거림과 발표할 이야기로 머릿속이 복잡해지다 가슴 두근거림에 묻혀 할 말을 못하고 돌아서서 후회하는 성격이었다. 이것을 극복하느라 프로그램 몇 군데를 참여하였으나 극복을 못하였는데 2차 깨어있기 나눔에서 가슴은 두근거렸으나 투명의식에서 이틀 동안을 돌아보는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두근거림 속에 빠져있지 않고 약간의 두근거림을 그냥 느끼면서 어느새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머리 속에 정리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눔하고 돌아서서 후회 안했음은 물론이다. 참으로 기쁘고 감사하다.

    본래부터 있었던 투명의식을 되찾게 해준 월인님께 감사드리며 함께 하신 선생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 하노 2010-05-04 16:38:54   답글 | 수정 | 삭제
    생각으로 생각을 잡겠다고 애쓴 시간을 넘어

    (삼성에너지니어링, Phd)



    깨어있기 심화과정이 끝난 지도 벌써 1주일이 지났네요.

    지난 1주일간 여러 가지 감지가 느껴졌고 이때마다 투명한 의식이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를 통하여 알게 된 점은, 뭔가가 감지되면 웬만하면 감지 단계에서 알아차려지고 이때 감각으로 이동하면 감지가 사라짐을 보게 됩니다. 또는 감지가 감정으로 감정이 생각으로 매우 빠르게 연결되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때에도 감지로 가서 감각으로 이동하면 감지가 쉽게 사라짐을 보게 됩니다.

    이러다 보니 살아있다는 것은 감지에서 시작되어 감정과 생각으로 그리고 말이나 행동으로 연결되는데 불행히도 이 감지에는 미리 프로그램된 긍정적 혹은 부정적 해석이 setting 되어 있어서 뭔가가 감지되면 로봇처럼 자동으로 반응하는 것이 사람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사람은 매우 복잡한 것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매우 단순한 메커니즘으로 움직이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러면서 느껴지는 건 감지나 감각 그리고 투명한 의식을 알고 살아가는 삶이 이들을 알기전의 삶이나 혹은 이들을 모르는 다른 사람들의 삶과 달라질 것 같아서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가 궁금하지만 이도 감지되고 그냥 사라집니다. 그리고 그동안 혼자서 나름대로 진행해 온 마음공부들이 감각단계에서 진행되지 않고 감지 위의 단계, 즉 생각으로 생각을 때려잡겠다고 애쓴 기간이 아니었나 하는 감지도 됩니다.

    예전에는 모임에 다녀오면 경험한 것을 과장하고 싶어 참가후기를 글로 쓸 때면 약간 과장했었는데 이번에는 후기를 쓰는데 뭔가를 과장하려는 감지와 이를 알아차리고 과장하지 않으려는 감지가 동시에 느껴집니다.

    이번주부터 진행될 오인회 기초모임이 기다려집니다.

    감사합니다.



  • HereNow 2010-05-04 16:04:11   답글 | 수정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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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ereNow 2010-04-24 13:48:45   답글 | 수정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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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ereNow 2010-04-24 13:48:21   답글 | 수정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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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ereNow 2010-04-21 11:42:45   답글 | 수정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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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ereNow 2010-04-20 16:28:08   답글 | 수정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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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ereNow 2010-04-20 16:27:54   답글 | 수정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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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ereNow 2010-04-20 16:27:36   답글 | 수정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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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ereNow 2010-04-20 15:52:15   답글 | 수정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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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ereNow 2010-04-20 15:52:01   답글 | 수정 | 삭제
    김소연 님, 2차과정 신청해주셨습니다.
  • HereNow 2010-03-31 16:59:04   답글 | 수정 | 삭제
    제1차 과정을 잘 마쳤습니다. 이후부터는 2차 과정에 신청되니 참고하세요.
  • HereNow 2010-03-22 12:06:40   답글 | 수정 | 삭제
    김명희 님 신청해주셨습니다.
  • HereNow 2010-02-27 15:58:31   답글 | 수정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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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ereNow 2010-02-24 10:33:24   답글 | 수정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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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ereNow 2010-02-24 10:32:56   답글 | 수정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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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ereNow 2010-02-24 10:32:42   답글 | 수정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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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ereNow 2010-02-24 10:32:27   답글 | 수정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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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ereNow 2010-02-24 10:32:15   답글 | 수정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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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ereNow 2010-02-24 10:31:52   답글 | 수정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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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ereNow 2010-02-24 10:31:37   답글 | 수정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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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ereNow 2010-02-22 19:19:19   답글 | 수정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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