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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月: 수운의 깨달음의 구조가 보인다



선불교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유명한 화두는 동학의 창시자 수운 최제우의 삶에서도 그대로 재현됩니다. 27년간 방황하며 자연과 분리된 채 고뇌하던 ‘제우’의 시기를 지나, 1860년 용담정에서 하날님을 만나 주객의 경계가 사라지는 대깨달음을 얻은 후 비로소 ‘수운水雲’이 된 극적인 여정이 이 글에 담겨 있습니다. 인간의 의식이 분별의 고통을 거쳐 어떻게 다시 자연과 하나 되는 ‘초분별’의 경지로 나아가는지, 수운의 언어와 동서양 철학의 렌즈를 통해 그 위대한 정신적 도약의 순간을 마주해 보시기 바랍니다. (편집자주)


...수운은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로 돌아와 시대적 문제의 심각성을 진단한다. 그 첫째는 당대의 사람들이 모두 “자기만 위하는 마음을 품고 천리를 따르지 않는다”(各自爲心不順天理)고 했다. 그리고 다시“하날님의 뜻을 돌보지 않는다”고도 했다. 이런 현실 을 보 고 수 운 은 “ 두려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心常悚然莫知所向矣)고 했다. 수운은 동양 문명사에서 인격신을 망각해 온 사실이 두려웠다. 그는 유교와 불교의 특징이 비인격적이기 때문에 인격신을 상실시켰다고 했으며, 이를 두려운 일로 보았다. 그는 하날님과 6개월 동안 대화함으로써 직접 인격신을 체험할 수 있었으며 살아 있다고 확인까지 했다. 그런데 하날님을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는 사실 앞에 두려워 떨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이야말로 위험천만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서양이 이 인격신을 알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잘못 알고 있다는 사실에는 더욱 놀랐다. 그러므로 그의 사회적 성격은 종교적으로 될 수밖에 없었다. 조선이 잃어버린 하날님을 빨리 회복하지 않으면 서양에게 당하고 말 것을 예견했다. 설령 여기서 수운이 ‘군자’니 ‘성인’이니 하는 유교적표현을 빌려서 쓰고 있다 해도 그 의미는 인격신과의 관계 속에서 사용했기 때문에 전혀 다르다. 수운은〈포덕문〉에서 인격신을 망각하고 있는 현실을 두려워하면서 곧바로 서학 또는 서교, 즉 천주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more


미내사소식지 202607.pdf

홀로스 2026-07-06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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