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요약준아님은 생각 관찰 방식이 '내용(스토리) 보기'에서 '에너지·느낌(작용) 보기'로 전환되면서, 생각의 시작점을 더 이른 시점에 포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이 변화의 계기는 함양 방문 중 자신이 생각 속에 빠진 채 생각으로 빠져나오려 했다는 사실을 명확히 자각한 것에서 왔습니다.보리님은 앱의 기초 강의를 반복 청취하면서 '자동반응'과 '의도'를 처음으로 의식적으로 경험하게 되었습니다.핵심 결론생각 관찰의 핵심 전환: 생각의 내용(스토리)을 보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 덩어리·느낌으로 작용을 보는 것이 진정한 관찰임시작점 포착 조건: 에너지적으로 느낌에 초점을 맞춰야만 생각의 시작·진행·끝을 감지할 수 있으며, 내용에 집중하면 생각의 미로 속에서 헤매게 됨의도 강화의 조건: 의도는 무작정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답답함 + 돌파할 길이 보일 때 강해짐경험과 매치: 개념을 들어도 귀에 들어오지 않을 때는 '말'일 뿐이며, 실제 경험과 매치될 때 비로소 의식적 이해가 됨주요 인사이트냄비 비유: 냄비 속 내용물을 들여다보는 것(생각 내용 관찰) vs. 냄비 자체가 나타났음을 아는 것(작용 관찰)의 차이마우스 비유: 마우스에 손이 닿는 순간 저절로 아는 것처럼, 생각이 떠오를 때 에너지적으로 느끼면 즉각 알아챌 수 있음의식화 기준: 변화가 일어난 이유를 언어로 설명할 수 있어야 진정으로 의식화된 것임준아의 변화 요인 (두 가지)관찰 의도 강화: 함양에서 생각 속에 갇혀 있었다는 사실을 명확히 자각한 후, 제대로 작용을 보겠다는 의도가 강해짐관찰 방식 전환: 생각의 내용이 아니라 에너지·느낌으로 작용을 보기 시작함으로써 시작점 포착이 가능해짐보리의 경험앱 기초 강의(1~7강)를 반복 청취하며 단어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함개를 산책시키는 사람을 보며 '자동반응'을 처음으로 실생활과 매치함새벽 운동 중 발을 올리는 동작에서 '의도'까지 의식하게 됨'주제를 품고 살아라'는 말의 의미를 반복 실천을 통해 비로소 체감함
(8월) 중론강의가 진행되었습니다
왜 이제(세속적 진실과 불교적 진리)를 분별하지 못하면 불법의 참뜻을 모른다고 하는가? 불법은 두 층위에서 말해진다세속제 : 고통이 있다, 원인이 있다, 수행이 있다, 말과 행동에는 결과가 있다, 상처가 있고 치유가 있다, 병이 있고 치료가 있다, 사람이 있고 관계가 있다.이것은 일상적이고 실제적인 차원의 진리이다제일의제 : 고통은 자성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다, 원인도 자성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다, 수행자도 자성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다, 나와 타인도 고정된 실체가 아니다, 모든 것은 조건 따라 생기고 조건 따라 변한다.이것은 깊이 관찰했을 때 드러나는 진리이다문제 : 둘 중 하나만 붙잡을 때 불법을 오해하게 됩니다. 세속제만 붙잡으면 모든 것을 실체화하게 되고, 제일의제만 잘못 붙잡으면 허무주의나 회피가 되기 쉽습니다.그러므로 불법의 깊은 뜻은, 두가지를 같이 보는 데에 있습니다. 세속적으로는 고통과 원인과 수행과 책임이 있고, 그러나 제일의적으로는 그것들이 자성적으로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통은 생기지만 동시에 실체가 아니기에 고통은 변하며, 그러므로 고통은 소멸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세속제만 붙잡을 때의 문제는 모든 것을 실체화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고통이 단단해지고, 나라는 감각이 단단해지며, 대상과 사건이 절대화됩니다. 그로인해 집착과 두려움이 커집니다.반면 제일의제만 잘못 붙잡을 때는 허무주의나 회피로 가기 쉽습니다. 즉, 현실을 무시하거나, 책임을 회피하고, 수행을 무기력하게 만들거나 공을 허무로 오해하게 됩니다.이제를 분별한다는 것은 현실의 고통과 책임은 세속적으로 정확히 다루되 그 고통과 그 속의 나를 제일의적으로는 자성 없는 조건적 현상으로 보아 실체화하지 않는 것입니다.
(8월) 함양 방문프로그램
자신에게 긴급한 내적 벡터가 생기거나 통찰이 일어났을 때 그것을 더 깊게 하고, 또는 새로운 방향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함양 방문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번달에 준아 님이 함양을 다녀갔습니다.[관련 강좌]- 함양연수원 방문 프로그램- 홀로스평생교육원 [백일학교] 과정- 홀로스평생교육원 [깨어있기] 과정
(7월) 웰빙앱이 비개인모임에 쓰여지고 있습니다
비개인모임은 최근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는 ‘웰빙앱(wellbeing.beherenow.kr)’ 커뮤니티에 일기들이 올라가고 있는데, 그 일기들은 AI 분석과 안내자의 첨언을 통해 현재의 상태를 진단하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미세조정하는데 쓰여지고 있습니다. 웰빙앱이 아직 Beta Test 단계에 있으나, 와서 시험삼아 한번 보시고 여러분도 참여해보시기 바랍니다. 웰빙앱 하단의 ‘더보기’난을 클릭하시면 ‘내 변화 보기’난이 있는데, 일기를 10일 이상 쓴 분들은 이 난을 통해 AI가 분석한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비개인모임’ 커뮤니티는 모임 참여자들만 들어와 각자의 일기를 볼 수있지만, 일반 참여자들도 10일이상 웰빙앱의 ‘깨어있기 기초’ 연습을 하신 분들은 매회 마다 자신의 통찰과 경험을 자세히 기록하면 그것을 기반으로 AI 분석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정성스럽게 기록하면 큰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이 AI 분석은 ‘깨어있기’와 ‘감정의 대해부’, ‘이유없는 정성, 이유없는 기쁨’을 충분히 섭취하고 깨어있기 용어를 잘 알며 훈련받은 AI가 하는 분석이므로 일반분석과는 다를 것입니다. 많이 이용해보시기 바랍니다. 올해 말까지 더 정교하고 치밀한 분석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계속 업그레이드 중입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7월) 백일학교가 진행중입니다
아래 지난주 대담 일부를 소개합니다.백일학교 주제 : 생각에는 다른 상이 없다.월인 : 요즘 비개인적 주체에 대해서는 어떻습니까?다르마 : 비개인적 주체를 발견하려는 강한 의도가 조금 쉬어진 것 같고요. 그냥 편안하게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그냥..월인 :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하는 그 마음도 느껴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있나요?다르마 : 네.월인 : 그런 것 자체가 안달하는 마음, 초조한 마음, 막 어떻게 애써 보려고 하는 마음에서 조금 물러난 거죠. 그것이 도리어 비개인성에 더 가까워진 것일 수 있어요. 포기한 것이 아니라면.다르마 : 포기하지는 않았는데 너무 애쓰고 막 그러지는 않은 것 같아요. 이렇게 100일 학교를 두 번째 하면서 주제 연습을 통해 경험들이 약간 누적이 된 것 같고, 그 다음 며칠 전 ‘생각과 사실을 구분하는 연습’을 할 때 와닿은 것이 있는데, 그 주제를 시작할 때는 ‘생각’이 아닌 뭔가 객관적인 ‘사실’이 따로 있다 라는 전제를 깔고 했었는데, 막상 해보니 그게 아니라는 것을 조금 통찰했던 것 같고요. 그러다 보니, 그동안 “마음이 계속 ‘발견했다, 발견하지 못했다’ 라는 구조 속에 있었다”는 것을 알아챈 것 같아요.월인 : 흑과 백의 구조.다르마 : 네. 그런데, 거기에서 명확한 발견은 못했어도, 그런 발견했다 못했다 관련된 어떤 통찰의 느낌들이 없지는 않아요. 전에는 발견했다 못했다를 굉장히 심각하게 생각을 했었는데 그것이 이제는 ‘발견했다, 못했다’라는 것 역시 여전히 분별 구조 속의 한 양상이었다라는 것을 본 것 같습니다.월인 : 그것이 바로 생각의 세계를 점점 ‘생각의 세계’로 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무이상(思無異相)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생각에는 다른 상이 없다. 생각이라는 것 자체가 모두 다 같은 상이란 말이지, 다 같은 생각의 세계라는 거죠. 그래서 발견했다 못했다라는 것도 생각 속의 일이라는 것을 알아채는 것은 하나의 도약입니다. 다른 모든 생각들에 대해서도 그 알아챔을 적용해보세요.다르마 : 네월인 : 그것을 알게 되면 생각에서 조금씩 벗어나 힘이 빠지는 겁니다.다르마 : 네. 그러다 보니까 다른 일상에서도 어떤 생각이 일어나면,‘아, 이것도 올라온 생각이지’ 하는 것들이 조금 자주 포착이 되는 것 같아요.월인 : 오케이. 이제 그래도 정확히 보아야 하는 것은, 생각을 다 내려놓고 필요없는 것에서 힘 빼고, 필요한 생각만 하는 과정 자체가 생각 이전으로 가게 하는 활동이기도 합니다만, 그러나 추구심이 멈추지는 않도록 해야합니다. 거기서 멈춰버리면 다시 ‘모든 것이 쓸모없네’라고 하며 분별 없는 느낌의 세계로 그냥 ‘떨어지기’ 쉬워요. 그것이 공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분별 없는 느낌의 세계구나’를 ‘아는’ 쪽이 아니라, 분별 없는 느낌의 세계로 ‘떨어지는’ 것이지요.떨어지면, ‘분별해 봐야 소용없네’ 쪽으로 가는 것이고, 느낌의 세계임을 ‘아는 쪽’으로 가는 것은 ‘이것이 다 느낌이구나’라고 하고 그것에서 더 명료해져 자유로워지며, 잘 사용하는 쪽으로 가는 것입니다.다르마 : 네월인 : 똑같이 생각을 떠나는 쪽은 맞는데 떨어지느냐 상승하느냐의 차이, 그것이 명료해지느냐의 여부를 판가름한다는 걸 알고 하시기 바랍니다.다르마 : 네월인 : 좋습니다.월인 : 그래서 오늘의 주제가 뭐라고요?다르마 : 일상이 수행이 되게 한다로 하겠습니다.
(7월) 중론 강의가 진행되었습니다
이번 강의는 불교 최고의 진리인 ‘고집멸도’ 사성제의 비실제성에 대해 나가르주나가 이야기합니다.왜 이제(二諦 : 세속의 진리와 불교제일의 진리)를 분별하지 못하면 불법의 참뜻을 모르는가? 불법은 두 층위에서 말해집니다. “세속제 : 고통이 있다, 원인이 있다, 수행이 있다, 말과 행동에는 결과가 있다, 상처가 있고 치유가 있다, 병이 있고 치료가 있다, 사람이 있고 관계가 있다.”이것은 일상적이고 실제적인 차원의 진리입니다. “제일의제 : 고통은 자성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다, 원인도 자성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다, 수행자도 자성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다, 나와 타인도 고정된 실체가 아니다, 모든 것은 조건 따라 생기고 조건 따라 변한다.”이것은 깊이 관찰했을 때 드러나는 진리입니다. 문제는 둘 중 하나만 붙잡을 때 불법을 오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속제만 붙잡으면 모든 것을 실체화하게 되고, 제일의제만 잘못 붙잡으면 허무주의나 회피가 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불법의 깊은 뜻은, 두 가지를 같이 보는 데에 있습니다. 세속적으로는 고통과 원인과 수행과 책임이 있고, 그러나 제일의적으로는 그것들이 자성적으로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통은 생기지만 동시에 실체가 아니기에 고통은 변하며, 그러므로 고통은 소멸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속제만 붙잡을 때의 문제는 모든 것을 실체화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고통이 단단해지고, 나라는 감각이 단단해지며, 대상과 사건이 절대화됩니다. 그로인해 집착과 두려움이 커집니다. 반면 제일의제만 잘못 붙잡을 때는 허무주의나 회피로 가기 쉽습니다. 즉, 현실을 무시하거나, 책임을 회피하고, 수행을 무기력하게 만들거나 공을 허무로 오해하게 됩니다. 이제를 분별한다는 것은 현실의 고통과 책임은 세속적으로 정확히 다루되 그 고통과 그 속의 나를 제일의적으로는 자성 없는 조건적 현상으로 보아 실체화하지 않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