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사항 : 매월 첫주, 둘째주에 감각차단탱크 체험을 진행합니다. [참가대상] 오인회원(과 그 지인), 미내사회원
오인회원 대상 감각차단탱크 체험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탱크 체험은 3박4일 정도를 기본 체험시간으로 하도록 하려합니다. 1번 정도 체험은 큰 의미를 느끼지 못할 것이고, 또 함양까지 와서 1회만 체험하고 가기에는 시간과 에너지가 들기에 그렇습니다. 3월 첫주부터 신청을 받고 일단 후원자 우선으로 받으려 합니다. 주말을 주로 정한 것은 일을 하시는 분들을 고려해서입니다. 그러나 꼭 1일체험이 필요하신 분들을 위해 첫주와 둘째주 화수목을 열어두었습니다. 1년 계획을 미리 세워 신청을 받으려 하니 미리 신청해주세요 (좌측 세로메뉴에서 강좌일정표를 보시고 매월 첫째, 둘째주 비어있는 날짜에 신청해주세요). 자세한 신청은 보내드린 오인회 소식지 표를 참고하세요. ● 탱크 내 프로그램: 집중, 명상, 몸은 자고 마음은 깨어있기, 본질로 가는 감지연습 (탱크 내에서 수중 이어폰으로 음성 안내 또는 바이놀 비트 음을 통해 깊숙이 들어감)
● 탱크 외에서의 측정 : 탱크 이용 전후로 ①뇌파 ②HRV ③인체에너지장을 측정을 통해 심신에 일어나는 변화를 측정하고 적용할 프로그램을 수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오인회원은 사무실로 연락주세요. 1년간 예약을 받아 진행하므로 미리 신청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좌측 세로메뉴에서 강좌일정표를 보시면 비어있는 시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탱크 체험과 본성을 깨닫기
본성을 향한 길에서 가장 큰 장애물은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본성이란 나누어지지 않은 것인데 생각은 거기에 분열을 일으키고 분별하고 나 누기 때문입니다. 의식은 기본적으로 ‘나눔’을 통해 일어납니다. 아무 리 깊은 명상을 하고 요가를 한다고 해도 생각이 끼어든다면 거기 어 떤 합일은 없습니다. 합일에 대한 생각은 합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생각은 무엇인가? 그것은 내적인 시뮬레이션을 위한 도구입니다. 즉 내적인 환영을 만들기 위한 장치이며, 그 장치를 통해 우리는 외부라 부르는 세계를 탐험하고 이름과 생각으로 할당하여 그와 유사한 내적인 환영의 세계를 구성합니다.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각각 의 길에는 여러 층의 단계가 있습니다. 그 세세한 과정을 의식하지 못 하는 사람은 그냥 툭- 하고 깊은 상태로 들어갔다고 여기지만 세세히 바라보면 일련의 과정을 거칩니다. 그리고 가장 기본적인 과정은 생 각과 느낌이 만들어내는 환영을 멈추고 그것을 넘어가는 것입니다. 감각차단탱크 속에 들어가 누우면 감각적 느낌은 점차 사라지고 의식적 느낌만 남는 상태가 됩니다. 그래도 여전히 감각과 의식 적 느낌은 일어나고 기억과 미래 예측으로 부터 많은 생각이 일어납니다. 그것들이 일 어나도록 허용하면 충분히 드러나고 경험된 후 서서히 사라지며, 이때 주제를 품으면 마음은 주제에 집중되며 깊은 층으로 들어 가게 됩니다. 거기서 통찰을 위한 기본 토대가 형성됩니다. 그러므로 집중이 잘 안되는 분들은 탱크 체험에 많은 관심을 두기를 바랍니다.
감각차단탱크 경험 팁
외부를 향한 주의를 가지고 감각차단탱크에 들어가면, 그저 텅 비고 아무것도 느낄 것이 없는 상태를 경험할 뿐입니다. 그러나 주의가 내부로 향할 때는 다릅니다. 내부로 향한 주의를 가지고, 또 주제 의식이 있을 때는 감각차단탱크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그 주제에 몰입할 수 있는 최대의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마디탱크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감각차단탱크의 경험은 외부로 향하던 주의가 자연스럽게 내부로 옮겨올 때 최대의 효과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내부로 향한 주의로 돌렸을 때 주의는 어디를 향해, 무엇을 향해야 하는가? 바로 이때부터 주의는 내적인 주제를 향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제를 품고 들어가도록 하십시오. 그 주제라는 것은 ; 1. ‘의식의 본성이 무엇인가’ 또 는 ‘지금 이 순간에 나는 무엇인가’라는 주제가 됩니다. 그것은 이 순간에 존재하는 나를 찾으려는 것에 주의가 가는 것입니다. 2. 또 다른 하나는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해결해야 될 문제를 가지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표면의식이 가라앉으면 방대한 무의식적 아이디어가 드러날 수 있습니다. 3. 뭔가 이루고자 하는 욕구에 초점을 가지고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목표를 가지면 거기에 해당하는 해결책이 떠오릅니다. 4. 또는 부수적으로 몸이 만성 통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게 하는 조건이 되기도 합니다. 거의 무중력에 가까운 탱크 속에서는 긴장속에 있던 1기압의 대기압에서 벗어나 깊은 이완을 이루기 때문에 숨겨진 통증이 드러나고, 풀려서 만성통증이 약해지거나 해소될 수 있습니다. 이런 네 가지가 탱크 체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결과이고, 또한 주제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의 명상의 삶, 건강한 삶에 도움되기를 기원합니다.
지난 3월부터(2024년) 감각차단탱크, 일명 사마디탱크 체험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 들어갔을 때의 체험은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감각이 약해지거나 사라지나 생각이 많아지거나 텅 빈 느낌을 느끼거나 졸고 잔 것 같은 느낌이라는 후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런 주제를 갖지 않고 들어가 그저 체험했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주제가 없는 일상은 그저 흘러가는 날들이지만, 주제를 가지면 통찰이 일어나고 원하는 일이 이루어짐을 통해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후에는 주제를 품게 하였습니다. 아래 몇분의 후기를 공유하니 체험을 예약하신 분들은 참고하시고, 오인회 여러분 도 많은 참여 바랍니다. 아래 몇분의 탱크 체험 후기를 공유합니다.
사마디탱크에 들어가기 전에 주제를 떠올린다.
나는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어떤 일이 해결되기를 원하는가, 중심에 붙들고 탐구하고 싶은 것이 있는가, 또는 면밀하게 보고자, 알고자 하는 게 있는가 등등 스쳐가는 주제들 중에 잡아지는 것은 딱 하나 ‘나는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를 종종 떠올리던 어느 때에 ‘나는 누구인가를 묻지않는 사람이다’가 툭 떠오르고 나서 십여 년, 그동안 묻지 않던 질문이 ‘나는 무엇인가’로 돌아왔구나.
찬찬히 준비하고 탱크 뚜껑을 열었다. 푸른빛이 파리하니 흐릿하게 보인다. 지난봄 첫 경험 때 찬란할 만큼 경쾌하게 보이던 느낌과 다르다. 이것은 실제 물리적 변화인 건지, 오래된 연인 같은 상습에서 오는 건 아닌지? 그렇다면 단지 몇차례 접한 것만으로 첫 감각과 다른 빛깔로 만나는 게 우리의 일상이 되는 것이겠구나.
날마다, 매순간 새롭게 보라는 그 의미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주문이면서, 이 또한 지속적으로 찰나찰나 정신을 가다듬으라는 메시지로구나.
그래서 <오직 그것만을 주의집중!>하는 방법을 배우고 익히고 훈습해 나가는 필요가 있는 것이네. 안 그러면 우리는 늘상 찬란함이 빠져있는 흐릿한 실상만을 접촉하며 사는 것일 테니까.
물의 온도는, 접촉할 때는 몸보다 찬 듯 경계가 그려지지만, 담가지면 따뜻하여 안정감으로 이어진다. 자리를 잡고 다시 한 번 공간을 느낀다.
하얀, 푸른, 따뜻한, 아늑한, 그리고 양 옆의 검고 동그란 스위치, 그동안 내가 눌러본 어떤 스위치보다 크다.
스위치를 누른다는 것은 원하는 것이 있고 그 원함을 작동시키고자 하는 명령을 신호로 보내는 것이다.
그 명령을 보낼 수 있는 창구가 크고 선명하니, 이 안에서 숨쉬기 힘들거나 두려울까 염려하는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그 선명하고 큰 단추 하나가 안심하시라 당신을 지키기 위해 나 여기에 있다, 나를 또렷이 기억하시라 얘기하는 것만 같아서, 염려를 표현하는 분들과 그 염려에 응답하는 양편의 사람들이 같이 호흡하는 것 같아, 편안하고 흐뭇한 안정감이 되었다.
그 누구도 이 안에서 위험을 겪지 않으리라.
숨 한 번, 물결 한 번 주고받으며 자신의 내면에 투명해지리.
그 경험이 막연한 불안을 실체없음으로 명확하게 알아지는 기회가 될 수도 있겠지.
습관을 알아차리고 본질의 질문을 듣고~~
나는 무엇인고?
오늘은 우리 공부 친구들 여럿을 인솔하여 온 사람이고, 어제는 배고파하는 정하에게 먹일 밥을 구하기에 마음이 쓰였던 사람이다.
이런 것은 내가 한 행동, 내가 경험한 심정일 뿐, 나는 아니다.
두루 앞으로 결정해야 할 일에 대해서 떠오르다가 지나간다.
그리고 어느 순간, 꽃대 하나 스르륵 올라와 흰꽃 두송이 화들짝 피어나다가 이내 누런 갈색으로 후두둑 꺽여 떨어지는 것이 보인다. 봄날 비온 뒤 꽃밭에 상사화 분홍꽃이 하루아침에 피어나 놀라웠는데, 이건 훨씬 더 빠르고 압축적이다.
앞으로 삶을 어떻게 살까? 거처는? 관계는? 늙음과 죽음을 과제로 안으려는 나에게, 스르륵 피고지는 꽃의 일생을 찰나지간에 마주침으로서, 천지간의 이치를 보여준 것 같았다.
숙고가 지나치면 허송이 되고, 염려가 지나치면 고심이 되리. 한송이 꽃이 피듯이 우리는 피어났고, 두송이 꽃이 지듯이 소리 없이 변태를 한다. 네송이, 다섯 송이, 수없이 피고지는 과정들~
생멸하는 모든 것. 우리 삶의 문양은 물결을 만날 때 선명하게 드러나기도 하고, 그 찰랑임에 씻기워져 흔적은 사라지기도 하고~
나는 무엇인가를 질문했던가.
‘나’라는 실체를 잡을 수가 없는데 그것을 무엇이냐고 어찌 물을 수 있겠는가.
한사람 한사람 경험을 나누고 말씀 듣는 모습이 진지하다.
햇살이 좋은 초겨울 함양에서 질문 하나를 내려놓다.
박정하 님
여러 선생님들과 함께 홀로스평생교육원에 가는 과정부터, 그곳에서 보낸 3박 4일은 전반적으로 참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첫날의 저는 그냥 들떠 있었어요. 사마디탱크가 어디에 있을지, 어떤 모습일지, 들어가면 어떤 느낌일지 온통 궁금했고, 그렇게 도착한 다음 날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체험 첫째 날
탱크가 있는 공간은 아주 조용했고, 물빛의 예쁜 조명이 켜진 탱크에 몸을 맡긴 채 1시간 동안 제 안의 느낌과 생각을 모두 만나보겠다는 마음으로, 그리고 제가 품고 있던 ‘원망’이라는 감정을 들여다보겠다는 다짐을 하고 들어갔어요.
자리를 잡고 뚜껑을 완전히 닫으려는 순간, 느껴보지 못했던 두려움과 거부감이 확 올라왔고 결국 1cm 정도 틈을 둔 채 누웠습니다.
물이 담긴 욕조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익숙할 수 있어 달래보았지만, 그 위를 스스로 완전히 덮는 감각 앞에서는 떠올린 생각이 금세 힘을 잃었어요..
물 위에 힘을 빼고 떠 있었는데, 체감상 5분쯤 지났을 무렵 뒷목부터 통증이 올라오기 시작했어요.
평소에도 목과 어깨 통증이 있긴 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떠 있기만 해도 이 정도로 괴로울 수 있다는 건 처음 느껴봤습니다.
통증은 어깨 라인과 승모근, 목과 연결된 머리 아래쪽으로 번졌고, 시간이 지날수록 머리 전체와 등까지 찢어질 듯 아파왔어요.
분명 힘을 빼고 가만히 있는데도 통증은 점점 심해져 이 상태로는 더 버티기 어렵겠다는 판단이 들어 결국 나오게 됐고, 밖으로 나와 보니 35분이 지나 있었어요.
그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월인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제가 평소 얼마나 목과 어깨를 강하게 긴장시킨 채 살아왔는지를 처음으로 자각하게 됐어요.
제가 생각한 ‘힘을 뺀 상태’는 진짜 힘을 뺀 게 아니더라고요. 잠시나마 ‘힘을 빼는 법’을 조금 연습했고, 다음 날의 목표는 단순해졌습니다.
내일은 꼭 1시간을 채워보자.
체험 둘째 날
둘째 날에는 폐쇄된 공간에 대한 두려움은 거의 없었고, 다만 “오늘도 목이 아프면 어쩌지” 하는 걱정을 안고 들어갔어요.
역시 5분쯤 지나자 슬슬 통증이 올라왔지만, 전날 배운 대로 아주 미세하게, 조금씩 힘을 더 빼는 연습을 해봤습니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통증이 점점 옅어졌고, 시간이 지나도 참을 만한 수준으로 유지되더라고요.
몸이 편해지니까 기분이 좋아져서 팔다리를 조금 움직이게 됐고, 그 움직임은 점점 커져버렸습니다.
그러다 귀에 물이 들어오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반드시 가만히 있어야지’ 하고 멈췄는데, 잠깐 평온해졌다가 자각하지 못한 채 또 움직이고 있더라고요.
그러다 귀에서 공기가 빠져나가는 소리와 함께 미세한 압력이 느껴졌고, 그때는 이건 안 되겠다는 판단이 들어 나왔습니다. 둘째 날의 기록은 40분이었어요.
중간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이전에 체험했던 선생님 두 분이 뚜껑이 열려버렸다는 이야기가 스쳤는데, 그 순간부터 너무 춥게 느껴지는 거예요.
어차피 밀폐된 공간이니 참아보자 했지만 찬 공기가 저를 덮쳐서 도저히 안 되겠어서 ‘뚜껑을 닫아야겠다’ 하고 탱크 안에 불을 켰습니다.
그런데 뚜껑은 아주 잘 닫혀 있더라고요.
그걸 확인하는 순간 몸의 감각이 바로 달라졌어요.
아까까지 그렇게 차갑게 느껴졌던 공기가 전혀 춥지 않게 느껴졌고, 그냥 괜찮아졌어요. 뭐지 싶어서 그때 뻘쭘한 옅은 웃음이 나왔어요.
생각 하나로 몸의 감각이 이렇게까지 바뀔 수 있다는 것과 그걸 경험한 자체가 정말 신기했어요.
몸의 감각이 상황보다 ‘생각’에 훨씬 크게 반응하고 있다니..
탱크에서 나온 후,
아쉬움을 안고 씻으려는데 순간 어릴 적 저를 한 번도 혼낸 적 없던 할머니가 “지독하게 말 안 듣는다”고 하시던 말씀이 불현듯 떠올랐고, 그 기억에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어요.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전제를 알고 있으면서도, 몸은 계속 먼저 움직이고 있었고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어기고 있었습니다.
시작부터 뚜껑을 완전히 닫지 못했고, 끝내 가만히 있지도 못했지만 그런 저를 비난하지 않고 바라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 경험은 제게 아주 값졌습니다.
제 몸의 긴장, 제 성향, 제 무의식적인 행동 패턴을 이토록 선명하게 마주한 시간은 흔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가서 선생님들 얼굴도 다시 뵙고, 다음에는 탱크 안에서 1시간을 온전히 채우며 나에 대해 더 깊이 보고 싶습니다.
오경애 님
1. 차단의 두려움
감각을 차단한다?
감각을 차단하면 느낌과 욕구, 감정 상태가 없는 숨만 쉬는 상태인가? 그야말로 깊은 생각과 더불어 내가 없는 상태도 될 수 있겠구나. 그렇다면 무아? 그러나 기대감이 있는 동시에 물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했다. ‘일단 해 보자’는 나의 삶의 모토인 행동으로 들어갔다.
발을 담그니 따뜻해 내 몸에 큰 반응은 없다. 누워야할 텐데 누워지기는커녕 양팔을 벌린 채로 앉아 어딘가를 잡고 있다가 서서히 누웠다. 어깨, 양팔, 손목, 열손가락은 힘을 빼지 못하고 죽을힘으로 계속 잡고 있다. 무서움에 눈도 못 뜨고 그러고 보니 눈에도 힘을 주고 있다. 어찌해야 할까? 평화가 아닌 고통과 인내심, 불안과 싸우는 중에 목덜미 뒤부터 척추를 타고 꼬리뼈까지 쉿덩어리를 지고 있다. 가벼워지고 싶었지만 마음은 꼬이고 비틀어진다. 내가 이렇게 무거운 짐을 지고 살고 있나? 진실로 안정과 행복이란 걸 알기는 아나? 싶기도 했다. 온몸이 긴장감에 천근만근이다. 무거운 생각이 더 짓누르는 같다.
코로 호흡을 길게 계속 하면서 서서히 왼팔에 힘을 빼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오른팔도 놓으니 물 위에 떴다. 몸을 내 의지대로 할 수 없으니 꼼짝 않고 그대로 누워 있다. 60 평생 처음 경험이다.
처음보단 진정이 되었지만 양손은 여전히 가슴 앞으로 오그려 꼭 붙이고 있다. 아무 생각이 없고 언뜻언뜻 잠드는 순간도 있었다.
이제는 약품 비슷한 냄새가 코로 들어오더니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심장까지 오는 듯 토하기 직전이다. 머리도 어지러워진다. '참아야지 한 시간 정도야 금세 지날 거야 지나간다...’
얼마가 지났을까 뭔가 빛이 보이는 듯하다. 잠시 있다가 서서히 실눈을 뜨다가 완전히 뜨고 내 모습을 보니 누워서 웅크리고 있다. 아기가 태어나 두 손을 웅크리고 있는 것처럼.
‘진짜 두렵고 무서웠구나. 그래도 잘 참았네. 괜찮아, 이제 됐어. 안심해.’
씻으며 토를 몇 번 하고 얼굴을 보니 완전 일그러져 고통스러워 보였다. 처음 보는 낯선 얼굴이다.
어지럽기도 해서 대충 씻고 들어가 누웠는데 아무 생각이 없다. 편안한 호흡을 하며 심장이 편안지기를 바랄 뿐이다.
2. 발견
월인 선생님과 체험 한 동료들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에 수영과 물을 좋아하는 사람은 나처럼 물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고 비슷하게 목과 어깨에 강한 통증과 짓눌림이 있다는 경험을 들을 때는 큰 숨이 나오고 비슷하다 싶어 위안도 받았다.
약품 냄새는 선생님이 약간 있을 수 있다고 하셨는데 내가 체험에 몰입을 못하고 냄새에 강한 저항이 올라와 냄새가 더 강하게 덮었겠구나 싶었다.
약품 냄새는 사실이고 물에 대한 두려움과 저항에 몸을 맡기지 못했구나 인정하니까 어제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두 번째 체험에 들어갔다.
호흡을 자연스럽게 하고 싶어 이번엔 문을 약간 열어 놓고 들어갔다. 탱크 안에 불을 끄고 몸을 살짝 뉘어 왼팔을 놓고 오른팔을 살살 놓았더니 몸이 약간 흔들거리더니 물 위에 떴다. 순간 모든 게 멈춘 듯 깜깜한 두려움이 온몸을 덮었다. 정신을 차리자 하고 깊은 호흡을 천천히 계속했다.
‘내가 여기에 온 까닭은? 왜 굳이 이런 체험을 하고 있는 건가? 의미는 있는 건가? 하지만 새로운 나의 의식을 경험하며 확장해 가고 싶음이 있기에 온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긴장이 서서히 풀리는 듯 했다. 시간은 흘러가고 어제보다는 두려움이나 어깨, 등짝 무거움이 덜했다. 한결 가벼워지고 있다. 의도적으로 정수리, 이마, 눈, 눈꺼풀, 코, 얼굴, 인중, 턱, 목 … 발가락까지 힘을 뺐다. 점점 가벼워지는 듯하다. 잠깐 잠도 들고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아무 생각이 없을 때도 있었다.
그러다 문득 엄마, 아버지가 떠오른다. 내가 자라며 지금까지의 순간들이 필름처럼 지나간다. 행복했던 순간보다는 늘 내가 혼자인 모습이 더 보인다. 그래도 ‘60평생 물을 거부했던 몸을 물에 맡긴 경험을 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눈물이 흐른다.
양양 바닷가 근처에 살면서도 물을 발목까지만 허용했던 내가 물에 몸을 맡기다니 나에겐 엄청난 모험이고 도전이다. 탱크 안은 물이 주인이고 나는 떠 있고 가만가만 숨만 쉬어야한다.
‘그렇구나. 나는 살면서 몸과 영혼을 온전히 누구에게 맡긴 적이 없었어. 믿지도 않아. 언제부터 물을 거부했는지 기억이 없어. 어릴 적부터 그냥이었어. 아님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거부했던 건 아닐까? 사람들은 엄마 뱃속 양수 안에서 따뜻하고 평화롭고 안전한 느낌이라던데 난 한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기억이 없어. 이미 그때부터 엄마 뱃속에서 갑갑증을 느끼고 엄마와 투쟁을 했을지도 모르지. 엄마와 사랑, 애정이라는 감정을 느껴본 경험이 기억나지 않아.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꿈에도 보인 적이 없어. 나를 키우며 기쁨도 있으셨겠지만 내가 어찌 알까. 엄마에게 따뜻한 밥상을 받아 본 기억이 없는데. 그래서 나의 삶에는 따뜻하고 정갈한 밥상을 중요시하는지도.’
탱크 경험을 통해 엄마와 관계를 보게 되었다. 아주 멀고 가깝거나 밉거나 사랑스러운 관계가 아닌 그냥 한 발짝 떨어진 사람 관계로. 엄마도 나처럼 나에게 많이 섭섭했을 거라는 생각에 아릿하다. 생명주시고 키워주심에 진심으로 아버지, 어머니께 고맙고 감사하다.
물을 두려워했단 까닭은 이미 뱃속에서 갖고 세상과 만났음을 알았으니 다시 물과 온전히 만난다면 진정으로 몸과 영혼이 해방을 맞이할 것이다.
아바타 영화 《물의 길》에서 로아카와 고래와 비슷한 돌쿨과 바다에서 자유롭게 노는 장면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지금 떠오르는 나의 모습은 탱크 들어가는 입구가 흰고래 머리가 연상 된다. 다시 경험한다면 흰고래와 로아카처럼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성민정 님
지난 4월에 한 사마디탱크 경험이 신비하고도 좋았기에, 시간을 내어 이번에도 참여했다. 양양에서 5시간 긴 시간이었지만 고마리 샘이 동행해주셔서 덜 지루하게 오갈 수 있었다.
탱크에 들어가기 전에 주제를 정하면 좋다고 말씀하셨는데 나는 딱히 주제가 떠오르지 않아 오랫동안 내게 감각되는 목과 어깨쪽 묵직한 통증을 만나보고 싶었다.
월인 선생님께서 감각차단탱크, 즉 사마디탱크에 대해 사전설명해주실 때, 의식적으로 다섯 가지 감각으로부터 탈출, 감각을 차단해줌으로써 바로 의식관찰로 들어갈 수 있는 효율적인 장치라고 말씀해주시면서 만성 통증 환자들에게도 효과가 있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탱크에 들어가 따뜻한 물속에 누우니 편안하고 좋았다. 힘을 빼고 그냥 누워 있으면 그 자체로 아주 편안하고 좋아서 엄마 뱃속 양수 속에 있을 때 마치 이런 느낌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편안한 맘으로 물결을 살짝살짝 일으켜 보기도 하고, 탱크 안에서 이쪽에서 저쪽 벽까지 스르르 움직여가보기도 하면서 놀이를 하다가 잠이 든 것도 같다. 평소 통증과 불편감을 느끼는 몸의 부분으로 주의를 옮겨가자 몸이 꿈틀거리고 근육의 뒤틀림, 움직임이 있고 움직임이 잦아들면서 거친 날숨을 뱉어낼 때마다 코 고는 소리가 난다. 익숙한 몸의 반응이어서 그대로 한동안 내맡기며 거친 날숨을 뱉어냈다. 그 감각을 더 관찰해 들어가보니 무거운 불편감은 슬픔이었다. 근원을 알 수 없는 슬픔이 올라와 가슴에 손을 대고 잠시 눈물을 흘렸다. 내 몸속에 들어있던 슬픔과 무거움이 조금씩 녹아서 거친 호흡으로 몸에서 빠져나오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녹여서 뱉어내기를 반복하며 조금 지루해질 때쯤 불이 켜지고 첫 번째 체험이 끝났다.
지난 4월에도 월인 선생님과의 나눔 시간에 많은 알아차림과 배움이 있었는데 이번에 내게 남는 것은, 우리는 흔히 느낌이 나인 줄 착각하고 사는데 느낌은 나가 아니며 나의 본질은 고요라고 하신 말씀과, 느낌은 신호이니 충분히 잘 느껴줄 필요가 있다는 말씀이었다.
느끼기는 경험하기인데 오랫동안 쌓여온 느낌을 경험하지 않으면 무의식이 느껴주라고 자꾸만 자극을 준다, 느낌을 통해 무의식이 신호를 주는 것이니 느낌 받아들이기 / 느낌 벗어나기 훈련을 통해 알아차림을 키워갈 수 있다고 하신 말씀이 인상적이었다.
김현아 님
함양으로 3박4일 여행가는 것 같은 설레는 기대를 안고 향했다.
사마디탱크에 들어가기 전 어떤 주제를 정할지 생각해보다. 불안으로 정했다.
탱크에 들어가기 전 사전영상을 보며 ‘귀에 물이 들어가면 어쩌나’, ‘나도 물에 뜰까’ 걱정했고 ‘나만 아무것도 못 깨달으면 어쩌나’ 등 걱정을 잔뜩 달고 밤 8시 타임이라 약간 심란함을 안고 향했다.
맛있는 음식이 너무 많아서 배가 부른데도 저녁을 잔뜩 먹고 한껏 부른 배를 안고 끅끅대며 간 탓에 물에는 떴지만 속이 불편했다. 계속 속이 꾸르륵거렸다.
그러다 물에 뜬 채 내 식탐을 마주했다. 나는 은근 식탐이 많아서 적당히가 아닌 배가 꽉 차도록 먹는 편인데 ‘아, 그것도 미래가 불안하니 지금 꽉꽉 채워놓으려는 내 불안감으로 인한 거구나’가 갑자기 알아차려졌다. 그 순간 성경 속 그날 내려 주시는 만나가 내일은 혹시 내리지 않을까봐 절대 저장하지 말라고 한 명령을 어기고 저장했다가 다음날 썩어버린 만나를 마주하는 이들이 바로 나였구나 알아졌다. 그리고 그들처럼 절대자나 보호자에 대한 신뢰가 없음이 불안으로 이어짐도 깨달아졌다.
어릴 때는 부모님이, 지금은 남편이 미덥지 않고, 늘 혼자인 나를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불안을 발동시키며 살고 있는 모습. 탱크 안에서 둥둥 뜬 채 몸이 오른쪽을 향해 부딪히다가 발이 탱크와 닿으면 탈출할 수 있는 입구랑 멀어져서 불안했다.
이제 1시간 쯤 된 것 같은데 불이 안 켜지니, 혹시 시간이 지났는데 불이 안 들어오고 있는 건 아닌가, 자꾸 나만 안 되고 나만 제외되지 않을까 내내 불안에 시달렸다.
아직도 내 불안은 더 마주하고 알아주어야 하겠지만, 내 불안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지를 마주하게 된 것 같다.
여러 사람이 모인 곳에서 각각의 고민과 깨달음을 지켜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었다. 새롭고 신선한 경험을 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노래 (상담/통찰력게임 안내자)
사마디탱크에 들어가기 전에 주제를 떠올린다.
나는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어떤 일이 해결되기를 원하는가, 중심에 붙들고 탐구하고 싶은 것이 있는가, 또는 면밀하게 보고자, 알고자 하는 게 있는가 등등 스쳐가는 주제들 중에 잡아지는 것은 딱 하나 ‘나는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를 종종 떠올리던 어느 때에 ‘나는 누구인가를 묻지않는 사람이다’가 툭 떠오르고 나서 십여 년, 그동안 묻지 않던 질문이 ‘나는 무엇인가’로 돌아왔구나.
찬찬히 준비하고 탱크 뚜껑을 열었다. 푸른빛이 파리하니 흐릿하게 보인다. 지난봄 첫 경험 때 찬란할 만큼 경쾌하게 보이던 느낌과 다르다. 이것은 실제 물리적 변화인 건지, 오래된 연인 같은 상습에서 오는 건 아닌지? 그렇다면 단지 몇차례 접한 것만으로 첫 감각과 다른 빛깔로 만나는 게 우리의 일상이 되는 것이겠구나.
날마다, 매순간 새롭게 보라는 그 의미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주문이면서, 이 또한 지속적으로 찰나찰나 정신을 가다듬으라는 메시지로구나.
그래서 <오직 그것만을 주의집중!>하는 방법을 배우고 익히고 훈습해 나가는 필요가 있는 것이네. 안 그러면 우리는 늘상 찬란함이 빠져있는 흐릿한 실상만을 접촉하며 사는 것일 테니까.
물의 온도는, 접촉할 때는 몸보다 찬 듯 경계가 그려지지만, 담가지면 따뜻하여 안정감으로 이어진다. 자리를 잡고 다시 한 번 공간을 느낀다.
하얀, 푸른, 따뜻한, 아늑한, 그리고 양 옆의 검고 동그란 스위치, 그동안 내가 눌러본 어떤 스위치보다 크다.
스위치를 누른다는 것은 원하는 것이 있고 그 원함을 작동시키고자 하는 명령을 신호로 보내는 것이다.
그 명령을 보낼 수 있는 창구가 크고 선명하니, 이 안에서 숨쉬기 힘들거나 두려울까 염려하는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그 선명하고 큰 단추 하나가 안심하시라 당신을 지키기 위해 나 여기에 있다, 나를 또렷이 기억하시라 얘기하는 것만 같아서, 염려를 표현하는 분들과 그 염려에 응답하는 양편의 사람들이 같이 호흡하는 것 같아, 편안하고 흐뭇한 안정감이 되었다.
그 누구도 이 안에서 위험을 겪지 않으리라.
숨 한 번, 물결 한 번 주고받으며 자신의 내면에 투명해지리.
그 경험이 막연한 불안을 실체없음으로 명확하게 알아지는 기회가 될 수도 있겠지.
습관을 알아차리고 본질의 질문을 듣고~~
나는 무엇인고?
오늘은 우리 공부 친구들 여럿을 인솔하여 온 사람이고, 어제는 배고파하는 정하에게 먹일 밥을 구하기에 마음이 쓰였던 사람이다.
이런 것은 내가 한 행동, 내가 경험한 심정일 뿐, 나는 아니다.
두루 앞으로 결정해야 할 일에 대해서 떠오르다가 지나간다.
그리고 어느 순간, 꽃대 하나 스르륵 올라와 흰꽃 두송이 화들짝 피어나다가 이내 누런 갈색으로 후두둑 꺽여 떨어지는 것이 보인다. 봄날 비온 뒤 꽃밭에 상사화 분홍꽃이 하루아침에 피어나 놀라웠는데, 이건 훨씬 더 빠르고 압축적이다.
앞으로 삶을 어떻게 살까? 거처는? 관계는? 늙음과 죽음을 과제로 안으려는 나에게, 스르륵 피고지는 꽃의 일생을 찰나지간에 마주침으로서, 천지간의 이치를 보여준 것 같았다.
숙고가 지나치면 허송이 되고, 염려가 지나치면 고심이 되리. 한송이 꽃이 피듯이 우리는 피어났고, 두송이 꽃이 지듯이 소리 없이 변태를 한다. 네송이, 다섯 송이, 수없이 피고지는 과정들~
생멸하는 모든 것. 우리 삶의 문양은 물결을 만날 때 선명하게 드러나기도 하고, 그 찰랑임에 씻기워져 흔적은 사라지기도 하고~
나는 무엇인가를 질문했던가.
‘나’라는 실체를 잡을 수가 없는데 그것을 무엇이냐고 어찌 물을 수 있겠는가.
한사람 한사람 경험을 나누고 말씀 듣는 모습이 진지하다.
햇살이 좋은 초겨울 함양에서 질문 하나를 내려놓다.
박정하 님
여러 선생님들과 함께 홀로스평생교육원에 가는 과정부터, 그곳에서 보낸 3박 4일은 전반적으로 참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첫날의 저는 그냥 들떠 있었어요. 사마디탱크가 어디에 있을지, 어떤 모습일지, 들어가면 어떤 느낌일지 온통 궁금했고, 그렇게 도착한 다음 날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체험 첫째 날
탱크가 있는 공간은 아주 조용했고, 물빛의 예쁜 조명이 켜진 탱크에 몸을 맡긴 채 1시간 동안 제 안의 느낌과 생각을 모두 만나보겠다는 마음으로, 그리고 제가 품고 있던 ‘원망’이라는 감정을 들여다보겠다는 다짐을 하고 들어갔어요.
자리를 잡고 뚜껑을 완전히 닫으려는 순간, 느껴보지 못했던 두려움과 거부감이 확 올라왔고 결국 1cm 정도 틈을 둔 채 누웠습니다.
물이 담긴 욕조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익숙할 수 있어 달래보았지만, 그 위를 스스로 완전히 덮는 감각 앞에서는 떠올린 생각이 금세 힘을 잃었어요..
물 위에 힘을 빼고 떠 있었는데, 체감상 5분쯤 지났을 무렵 뒷목부터 통증이 올라오기 시작했어요.
평소에도 목과 어깨 통증이 있긴 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떠 있기만 해도 이 정도로 괴로울 수 있다는 건 처음 느껴봤습니다.
통증은 어깨 라인과 승모근, 목과 연결된 머리 아래쪽으로 번졌고, 시간이 지날수록 머리 전체와 등까지 찢어질 듯 아파왔어요.
분명 힘을 빼고 가만히 있는데도 통증은 점점 심해져 이 상태로는 더 버티기 어렵겠다는 판단이 들어 결국 나오게 됐고, 밖으로 나와 보니 35분이 지나 있었어요.
그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월인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제가 평소 얼마나 목과 어깨를 강하게 긴장시킨 채 살아왔는지를 처음으로 자각하게 됐어요.
제가 생각한 ‘힘을 뺀 상태’는 진짜 힘을 뺀 게 아니더라고요. 잠시나마 ‘힘을 빼는 법’을 조금 연습했고, 다음 날의 목표는 단순해졌습니다.
내일은 꼭 1시간을 채워보자.
체험 둘째 날
둘째 날에는 폐쇄된 공간에 대한 두려움은 거의 없었고, 다만 “오늘도 목이 아프면 어쩌지” 하는 걱정을 안고 들어갔어요.
역시 5분쯤 지나자 슬슬 통증이 올라왔지만, 전날 배운 대로 아주 미세하게, 조금씩 힘을 더 빼는 연습을 해봤습니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통증이 점점 옅어졌고, 시간이 지나도 참을 만한 수준으로 유지되더라고요.
몸이 편해지니까 기분이 좋아져서 팔다리를 조금 움직이게 됐고, 그 움직임은 점점 커져버렸습니다.
그러다 귀에 물이 들어오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반드시 가만히 있어야지’ 하고 멈췄는데, 잠깐 평온해졌다가 자각하지 못한 채 또 움직이고 있더라고요.
그러다 귀에서 공기가 빠져나가는 소리와 함께 미세한 압력이 느껴졌고, 그때는 이건 안 되겠다는 판단이 들어 나왔습니다. 둘째 날의 기록은 40분이었어요.
중간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이전에 체험했던 선생님 두 분이 뚜껑이 열려버렸다는 이야기가 스쳤는데, 그 순간부터 너무 춥게 느껴지는 거예요.
어차피 밀폐된 공간이니 참아보자 했지만 찬 공기가 저를 덮쳐서 도저히 안 되겠어서 ‘뚜껑을 닫아야겠다’ 하고 탱크 안에 불을 켰습니다.
그런데 뚜껑은 아주 잘 닫혀 있더라고요.
그걸 확인하는 순간 몸의 감각이 바로 달라졌어요.
아까까지 그렇게 차갑게 느껴졌던 공기가 전혀 춥지 않게 느껴졌고, 그냥 괜찮아졌어요. 뭐지 싶어서 그때 뻘쭘한 옅은 웃음이 나왔어요.
생각 하나로 몸의 감각이 이렇게까지 바뀔 수 있다는 것과 그걸 경험한 자체가 정말 신기했어요.
몸의 감각이 상황보다 ‘생각’에 훨씬 크게 반응하고 있다니..
탱크에서 나온 후,
아쉬움을 안고 씻으려는데 순간 어릴 적 저를 한 번도 혼낸 적 없던 할머니가 “지독하게 말 안 듣는다”고 하시던 말씀이 불현듯 떠올랐고, 그 기억에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어요.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전제를 알고 있으면서도, 몸은 계속 먼저 움직이고 있었고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어기고 있었습니다.
시작부터 뚜껑을 완전히 닫지 못했고, 끝내 가만히 있지도 못했지만 그런 저를 비난하지 않고 바라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 경험은 제게 아주 값졌습니다.
제 몸의 긴장, 제 성향, 제 무의식적인 행동 패턴을 이토록 선명하게 마주한 시간은 흔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가서 선생님들 얼굴도 다시 뵙고, 다음에는 탱크 안에서 1시간을 온전히 채우며 나에 대해 더 깊이 보고 싶습니다.
오경애 님
1. 차단의 두려움
감각을 차단한다?
감각을 차단하면 느낌과 욕구, 감정 상태가 없는 숨만 쉬는 상태인가? 그야말로 깊은 생각과 더불어 내가 없는 상태도 될 수 있겠구나. 그렇다면 무아? 그러나 기대감이 있는 동시에 물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했다. ‘일단 해 보자’는 나의 삶의 모토인 행동으로 들어갔다.
발을 담그니 따뜻해 내 몸에 큰 반응은 없다. 누워야할 텐데 누워지기는커녕 양팔을 벌린 채로 앉아 어딘가를 잡고 있다가 서서히 누웠다. 어깨, 양팔, 손목, 열손가락은 힘을 빼지 못하고 죽을힘으로 계속 잡고 있다. 무서움에 눈도 못 뜨고 그러고 보니 눈에도 힘을 주고 있다. 어찌해야 할까? 평화가 아닌 고통과 인내심, 불안과 싸우는 중에 목덜미 뒤부터 척추를 타고 꼬리뼈까지 쉿덩어리를 지고 있다. 가벼워지고 싶었지만 마음은 꼬이고 비틀어진다. 내가 이렇게 무거운 짐을 지고 살고 있나? 진실로 안정과 행복이란 걸 알기는 아나? 싶기도 했다. 온몸이 긴장감에 천근만근이다. 무거운 생각이 더 짓누르는 같다.
코로 호흡을 길게 계속 하면서 서서히 왼팔에 힘을 빼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오른팔도 놓으니 물 위에 떴다. 몸을 내 의지대로 할 수 없으니 꼼짝 않고 그대로 누워 있다. 60 평생 처음 경험이다.
처음보단 진정이 되었지만 양손은 여전히 가슴 앞으로 오그려 꼭 붙이고 있다. 아무 생각이 없고 언뜻언뜻 잠드는 순간도 있었다.
이제는 약품 비슷한 냄새가 코로 들어오더니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심장까지 오는 듯 토하기 직전이다. 머리도 어지러워진다. '참아야지 한 시간 정도야 금세 지날 거야 지나간다...’
얼마가 지났을까 뭔가 빛이 보이는 듯하다. 잠시 있다가 서서히 실눈을 뜨다가 완전히 뜨고 내 모습을 보니 누워서 웅크리고 있다. 아기가 태어나 두 손을 웅크리고 있는 것처럼.
‘진짜 두렵고 무서웠구나. 그래도 잘 참았네. 괜찮아, 이제 됐어. 안심해.’
씻으며 토를 몇 번 하고 얼굴을 보니 완전 일그러져 고통스러워 보였다. 처음 보는 낯선 얼굴이다.
어지럽기도 해서 대충 씻고 들어가 누웠는데 아무 생각이 없다. 편안한 호흡을 하며 심장이 편안지기를 바랄 뿐이다.
2. 발견
월인 선생님과 체험 한 동료들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에 수영과 물을 좋아하는 사람은 나처럼 물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고 비슷하게 목과 어깨에 강한 통증과 짓눌림이 있다는 경험을 들을 때는 큰 숨이 나오고 비슷하다 싶어 위안도 받았다.
약품 냄새는 선생님이 약간 있을 수 있다고 하셨는데 내가 체험에 몰입을 못하고 냄새에 강한 저항이 올라와 냄새가 더 강하게 덮었겠구나 싶었다.
약품 냄새는 사실이고 물에 대한 두려움과 저항에 몸을 맡기지 못했구나 인정하니까 어제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두 번째 체험에 들어갔다.
호흡을 자연스럽게 하고 싶어 이번엔 문을 약간 열어 놓고 들어갔다. 탱크 안에 불을 끄고 몸을 살짝 뉘어 왼팔을 놓고 오른팔을 살살 놓았더니 몸이 약간 흔들거리더니 물 위에 떴다. 순간 모든 게 멈춘 듯 깜깜한 두려움이 온몸을 덮었다. 정신을 차리자 하고 깊은 호흡을 천천히 계속했다.
‘내가 여기에 온 까닭은? 왜 굳이 이런 체험을 하고 있는 건가? 의미는 있는 건가? 하지만 새로운 나의 의식을 경험하며 확장해 가고 싶음이 있기에 온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긴장이 서서히 풀리는 듯 했다. 시간은 흘러가고 어제보다는 두려움이나 어깨, 등짝 무거움이 덜했다. 한결 가벼워지고 있다. 의도적으로 정수리, 이마, 눈, 눈꺼풀, 코, 얼굴, 인중, 턱, 목 … 발가락까지 힘을 뺐다. 점점 가벼워지는 듯하다. 잠깐 잠도 들고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아무 생각이 없을 때도 있었다.
그러다 문득 엄마, 아버지가 떠오른다. 내가 자라며 지금까지의 순간들이 필름처럼 지나간다. 행복했던 순간보다는 늘 내가 혼자인 모습이 더 보인다. 그래도 ‘60평생 물을 거부했던 몸을 물에 맡긴 경험을 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눈물이 흐른다.
양양 바닷가 근처에 살면서도 물을 발목까지만 허용했던 내가 물에 몸을 맡기다니 나에겐 엄청난 모험이고 도전이다. 탱크 안은 물이 주인이고 나는 떠 있고 가만가만 숨만 쉬어야한다.
‘그렇구나. 나는 살면서 몸과 영혼을 온전히 누구에게 맡긴 적이 없었어. 믿지도 않아. 언제부터 물을 거부했는지 기억이 없어. 어릴 적부터 그냥이었어. 아님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거부했던 건 아닐까? 사람들은 엄마 뱃속 양수 안에서 따뜻하고 평화롭고 안전한 느낌이라던데 난 한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기억이 없어. 이미 그때부터 엄마 뱃속에서 갑갑증을 느끼고 엄마와 투쟁을 했을지도 모르지. 엄마와 사랑, 애정이라는 감정을 느껴본 경험이 기억나지 않아.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꿈에도 보인 적이 없어. 나를 키우며 기쁨도 있으셨겠지만 내가 어찌 알까. 엄마에게 따뜻한 밥상을 받아 본 기억이 없는데. 그래서 나의 삶에는 따뜻하고 정갈한 밥상을 중요시하는지도.’
탱크 경험을 통해 엄마와 관계를 보게 되었다. 아주 멀고 가깝거나 밉거나 사랑스러운 관계가 아닌 그냥 한 발짝 떨어진 사람 관계로. 엄마도 나처럼 나에게 많이 섭섭했을 거라는 생각에 아릿하다. 생명주시고 키워주심에 진심으로 아버지, 어머니께 고맙고 감사하다.
물을 두려워했단 까닭은 이미 뱃속에서 갖고 세상과 만났음을 알았으니 다시 물과 온전히 만난다면 진정으로 몸과 영혼이 해방을 맞이할 것이다.
아바타 영화 《물의 길》에서 로아카와 고래와 비슷한 돌쿨과 바다에서 자유롭게 노는 장면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지금 떠오르는 나의 모습은 탱크 들어가는 입구가 흰고래 머리가 연상 된다. 다시 경험한다면 흰고래와 로아카처럼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성민정 님
지난 4월에 한 사마디탱크 경험이 신비하고도 좋았기에, 시간을 내어 이번에도 참여했다. 양양에서 5시간 긴 시간이었지만 고마리 샘이 동행해주셔서 덜 지루하게 오갈 수 있었다.
탱크에 들어가기 전에 주제를 정하면 좋다고 말씀하셨는데 나는 딱히 주제가 떠오르지 않아 오랫동안 내게 감각되는 목과 어깨쪽 묵직한 통증을 만나보고 싶었다.
월인 선생님께서 감각차단탱크, 즉 사마디탱크에 대해 사전설명해주실 때, 의식적으로 다섯 가지 감각으로부터 탈출, 감각을 차단해줌으로써 바로 의식관찰로 들어갈 수 있는 효율적인 장치라고 말씀해주시면서 만성 통증 환자들에게도 효과가 있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탱크에 들어가 따뜻한 물속에 누우니 편안하고 좋았다. 힘을 빼고 그냥 누워 있으면 그 자체로 아주 편안하고 좋아서 엄마 뱃속 양수 속에 있을 때 마치 이런 느낌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편안한 맘으로 물결을 살짝살짝 일으켜 보기도 하고, 탱크 안에서 이쪽에서 저쪽 벽까지 스르르 움직여가보기도 하면서 놀이를 하다가 잠이 든 것도 같다. 평소 통증과 불편감을 느끼는 몸의 부분으로 주의를 옮겨가자 몸이 꿈틀거리고 근육의 뒤틀림, 움직임이 있고 움직임이 잦아들면서 거친 날숨을 뱉어낼 때마다 코 고는 소리가 난다. 익숙한 몸의 반응이어서 그대로 한동안 내맡기며 거친 날숨을 뱉어냈다. 그 감각을 더 관찰해 들어가보니 무거운 불편감은 슬픔이었다. 근원을 알 수 없는 슬픔이 올라와 가슴에 손을 대고 잠시 눈물을 흘렸다. 내 몸속에 들어있던 슬픔과 무거움이 조금씩 녹아서 거친 호흡으로 몸에서 빠져나오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녹여서 뱉어내기를 반복하며 조금 지루해질 때쯤 불이 켜지고 첫 번째 체험이 끝났다.
지난 4월에도 월인 선생님과의 나눔 시간에 많은 알아차림과 배움이 있었는데 이번에 내게 남는 것은, 우리는 흔히 느낌이 나인 줄 착각하고 사는데 느낌은 나가 아니며 나의 본질은 고요라고 하신 말씀과, 느낌은 신호이니 충분히 잘 느껴줄 필요가 있다는 말씀이었다.
느끼기는 경험하기인데 오랫동안 쌓여온 느낌을 경험하지 않으면 무의식이 느껴주라고 자꾸만 자극을 준다, 느낌을 통해 무의식이 신호를 주는 것이니 느낌 받아들이기 / 느낌 벗어나기 훈련을 통해 알아차림을 키워갈 수 있다고 하신 말씀이 인상적이었다.
김현아 님
함양으로 3박4일 여행가는 것 같은 설레는 기대를 안고 향했다.
사마디탱크에 들어가기 전 어떤 주제를 정할지 생각해보다. 불안으로 정했다.
탱크에 들어가기 전 사전영상을 보며 ‘귀에 물이 들어가면 어쩌나’, ‘나도 물에 뜰까’ 걱정했고 ‘나만 아무것도 못 깨달으면 어쩌나’ 등 걱정을 잔뜩 달고 밤 8시 타임이라 약간 심란함을 안고 향했다.
맛있는 음식이 너무 많아서 배가 부른데도 저녁을 잔뜩 먹고 한껏 부른 배를 안고 끅끅대며 간 탓에 물에는 떴지만 속이 불편했다. 계속 속이 꾸르륵거렸다.
그러다 물에 뜬 채 내 식탐을 마주했다. 나는 은근 식탐이 많아서 적당히가 아닌 배가 꽉 차도록 먹는 편인데 ‘아, 그것도 미래가 불안하니 지금 꽉꽉 채워놓으려는 내 불안감으로 인한 거구나’가 갑자기 알아차려졌다. 그 순간 성경 속 그날 내려 주시는 만나가 내일은 혹시 내리지 않을까봐 절대 저장하지 말라고 한 명령을 어기고 저장했다가 다음날 썩어버린 만나를 마주하는 이들이 바로 나였구나 알아졌다. 그리고 그들처럼 절대자나 보호자에 대한 신뢰가 없음이 불안으로 이어짐도 깨달아졌다.
어릴 때는 부모님이, 지금은 남편이 미덥지 않고, 늘 혼자인 나를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불안을 발동시키며 살고 있는 모습. 탱크 안에서 둥둥 뜬 채 몸이 오른쪽을 향해 부딪히다가 발이 탱크와 닿으면 탈출할 수 있는 입구랑 멀어져서 불안했다.
이제 1시간 쯤 된 것 같은데 불이 안 켜지니, 혹시 시간이 지났는데 불이 안 들어오고 있는 건 아닌가, 자꾸 나만 안 되고 나만 제외되지 않을까 내내 불안에 시달렸다.
아직도 내 불안은 더 마주하고 알아주어야 하겠지만, 내 불안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지를 마주하게 된 것 같다.
여러 사람이 모인 곳에서 각각의 고민과 깨달음을 지켜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었다. 새롭고 신선한 경험을 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