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존재하는 것은 망념 때문이고, 망념이 사라지면 모든 분별이 사라지므로 거기에는 중생도 부처도, 열반도 번뇌도 없습니다. 모든 현상은 경계로부터 나타나니, 경계를 넘어서면 이미 그는 진리에 다다른 것입니다.
경계라는 말에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의식현상은 나와 너를 나눈 경계선으로부터 옵니다. 내가 무엇을 의식하려면 ‘나’와 ‘무엇’으로 나눠진 경계가 있어야 해요. 그 다음, 이 사물과 저 사물이 경계로 나누어져야만 서로 분별됩니다. 분별하지 못한다면 세계는 있을 수 없는데, 이런 분별은 어떤 기준에 의해 생겨납니다. 똑같은 탁자인데도 사람의 눈이라는 분별기준으로 보면 탁자의 표면은 매끄럽지만, 바이러스의 분별기준으로 보면 거대한 히말라야 산맥 같이 여겨지겠죠. 다시 말해 세상은 그것을 분별하는 감각기관의 기준에 의해 존재하게 됩니다. 사실 더 깊이 들어가면 감각기관의 분별기준을 사용해서 의식하는 의식적인 기준 때문에 존재하지요. 왜냐하면 감각기관이 만들어 놓은 내적인 흔적들과 우리가 기준삼고 있는 것들 간의 관계를 통해 의식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결국 모든 의식현상은 마음의 의식적인 측면이지, 감각기관과는 별개입니다. 감각기관은 중간단계일 뿐이에요. 어쨌든 모든 세계가 존재하는 것은 마음에 그어진 경계선과 기준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기준은 보는 자마다 다르기 때문에, 각자에게 나타나는 세계는 결국 각자의 느낌의 세계라는 점을 대승기신론 강의 전반에 걸쳐 끊임없이 말해왔습니다. 그래서 이 모든 세계와 현상은 경계로부터 오기 때문에 그 경계를 넘어서면 이미 그는 진리의 세계에 다다른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경계 없음’을 기반으로 ‘경계 있음’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바닷물을 기반으로 다양한 파도들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과 같아요. 그러나 파도는 일시적인 모습일 뿐, 변함없는 물은 아닙니다. 그와 같이 모든 경계는 일시적입니다. 그래서 ‘경계 있음’에 기반을 둔 개별성은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해 항상 고뇌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움직임, 즉 필요와 욕망이 스스로 금 그어놓은 경계 때문에 생겨납니다. 마음에서 이것과 저것을 나누고, 그중 하나에 에너지 중심을 두어서 ‘나’로 삼으면 그때부터 모든 세상만사가 생겨납니다. ‘나’를 중심으로 가까운 사람과 먼 사람이 생겨나고, 옳은 사람과 그른 사람이 생겨나고, 끌리는 사람과 밀쳐내고 싶은 사람이 생겨납니다. 모두 ‘나’라는 것을 기준 삼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에요. 모든 현상이라는 것은 어떤 기준으로 인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기준이 없다면 경계가 없어요. 그 기준이 우리한테는 ‘나’라고 여겨지는 느낌입니다. 그 느낌의 밑바닥에는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데이터, 지식과 오감으로 받은 의식적이고 감각적인 데이터와 경험의 흔적들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토대가 되어 ‘나’라고 여겨지는 것이 형성됩니다. ‘나’의 형성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닌데, 이것이 에너지를 받아서 모든 경계의 초점인 에너지 중심이 되면 주인노릇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럴 때 세상만사가 생겨나고 모든 욕망과 고통이 시작되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 즉각적으로 분별을 떠나면 곧바로 불지佛智입니다. 부처의 지혜이고, 부처의 땅이며 열반이지요.
열반과 깨달음을 찾는 마음은 결국 깨달음과 깨닫지 못함을 나눠놓은 마음입니다. 경계를 그리는 마음이에요. 그런데 그토록 얻고자 하는 깨달음은 경계 없는 마음이니 참으로 모순된 것입니다. 경계 없는 마음에 도달하기 위하여 마음의 경계를 계속해서 만들어내고 있어요.깨닫지 못함과 깨달음을 나누고, 중생과 부처를 나누고, 부족과 충족을 나누고, 도달하지 못함과 도달함을 나누는 마음의 작용을 그대로 내버려둔 채로 경계 없음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내용은 ‘경계없음’을 추구하지만 실제 마음은 ‘경계 있음’의 작용을 하고 있으니 모순 속에 있습니다. 마음의 작용 자체가 ‘경계 없음’으로 가야합니다. 내용만 ‘경계 없음’이고 실제 작용은 ‘경계 있음’이면 아무리 해도 결코 ‘경계 없음’으로 갈 수가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 자기 마음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바라봐야지, 마음에 ‘경계 없음’이라는 그림을 그리는 것은 소용없는 짓입니다.
경계 없음을 파악해내는 부처의 지혜인 불지佛智에 들어가기 위해서 순수한 믿음을 일으키는 것이 신성취발심信成就發心입니다. 우리의 공부는 일원론一元論, 이원론二元論, 불이론不二論의 순서로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중생과 부처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믿는 것’이 공부의 맨 처음이니 일원론一元論입니다. 믿으니까 이 공부를 시작하는 거예요. 만약에 중생과 부처가 다르다면 아무리 애써봐야 부처가 될 수 없는데 소용없는 공부를 누가 하겠습니까? 이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부처가 도달한 경지에 나도 이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공부를 시작합니다. 결국은 중생인 지금 현재의 나와 부처가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믿는 일원론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연습과 수행의 길에 들어서면 ‘아, 난 아직 안 됐어.’ 하는 상태에 늘 있게 되지요. 도달하지 못했다고 여기니까 계속해서 훈련하고 연습하는 거 아니에요? 이원론二元論 속에 들어가 있는 마음입니다. 그렇게 계속 살펴보면서 경험하고, 이해하고, 드디어 증득하면 중생이나 부처라는 것이 마음이 분별해놓은 개념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부처와 중생은 경계 속의 일임을 깨달아 결국 부처도 없고 중생도 없는 세계, 부처와 중생이 다르지 않은 게 아니라 원래 없는 불이不二의 세계로 들어가게 됩니다. 둘이 아닌 세계죠. 중생이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중생과 부처가 원래 둘이 아닌, 사실은 있지도 않았음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단계인 이원론二元論 속에서 믿음이 굳건하여 결코 옆길로 새지도 않고 뒤로 물러서지도 않는 불퇴전不退轉의 용맹의 길을 가는 마음을 신성취발심信成就發心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믿음을 통해 가는 중에 깊은 이해가 일어난 것이 해행발심解行發心입니다. 최종적으로는 증거를 통해 본질을 터득하는 증발심證發心을 이루는데, 이 모든 발견의 기초에 대승에 대한 믿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 《대승, 현상과 본질을 뛰어넘다》 下권 488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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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내용은 ‘깨어있기-의식의 대해부’ 워크숍의 후속모임인 오인회(悟因會)에서 월인 님이 강의한 2012년 대승기신론 강의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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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대승기신론 강의 82강
▶ 강의: 월인(越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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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_현상과_본질을_뛰어넘다_下권_4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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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없음을 기반으로 경계 짓기│대승기신론 마지막 강의 (下권 4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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