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전牽纏은 끌려다니고 속박 당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세상일에 끌려 다니는 이유는, ‘나’라고 여겨지는 것은 걸려 넘어질 돌부리가 있어야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문제가 없으면 ‘나’라는 것이 생기지 않아요. ‘나’는 어떤 문제나 불편함이 있어야 생겨납니다. 예를 들어 너무 갖고 싶던 물건을 사서 더 이상 세상에 ‘원하는 게 없는 그 순간’에는 ‘나’라는 것이 없지요. 뭔가를 원할 때는 모든 주의가 그것에 쏠리는 ‘흐름’이 생겨납니다. 그런데 내 것으로 만드는 순간 그 마음의 ‘흐름이 멈추어’ 내 마음이 더 이상 어디론가 달려가지 않고 ‘충만’해집니다. 물론 그 순간이 지나면 또 다른 바라는 것이 생기지만, 어쨌든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그 순간에는 ‘나’라는 것이 없어요. 어떤 문제가 있거나 원하는 것이 있어서 마음이 어딘가를 향해 달려갈 때 ‘나’가 존재합니다. 주체로부터 대상으로 주의가 쏟아질 때 주체와 대상이 생기듯, ‘나’라는 것도 어딘가를 향해 달려갈 때 생겨납니다.
그래서 할 일이 많은 사람에게는 많은 ‘나’가 있습니다. 그것들을 잠시 생겨난 임시적인 존재로 여기지 못하고 고정된 변함없는 ‘나’라고 여기는 마음을 핵심적으로 살펴봐야 합니다. 자아自我는 자기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 계속해서 욕망이나 걱정을 만들어냅니다. 걱정이 없으면 심심해서 못살아요. 이상하죠? 걱정거리 없는 사람은 참 좋을 것 같지만, ‘나’라는 것이 워낙 습관화되어 있어서 걱정이 없으면 지루하고 심심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존재한다고 느끼기 위해 자아自我는 늘 불안함을 만들어내고 욕구를 찾아다니거나 생각, 느낌, 감정 등을 붙잡고 있으려고 합니다. 그 모든 것을 놓아버리면 자신이 존재할 기반이 사라지니까 결사적으로 무언가를 마음에 현상으로 남겨두고 그것과 동일시하려는 거예요. 동일시할 대상이 없으면 자아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마구니는 바로 모든 동일시의 대상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구니의 핵심은 집착이에요. 깨달음이라 해도 마찬가지라서 깨달음에 집착하는 것과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은 매우 다릅니다.
얼마 전에 찾아온 어떤 분은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아주 성공한 분이에요. 삼십대 때부터 성공학 관련 책들을 많이 읽고 크게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뭔가 틀어진 일이 있어서 이 공부를 시작했어요. 하다 보니 이 공부는 지금껏 해왔던 식으로는 안 되는 거예요. 세상의 일은 뭔가를 현상화하기 위해서 노력해서 세우고 쌓고 키우는 작업입니다. 그런데 이 공부는 깎아내고 덜어내고 없애는 작업이니까, 마지막에 ‘내가 이렇게 많이 없앴는데 아직도 안 돼?’ 이럽니다. 그 사람은 왜 이 공부를 할까요? 뭔가 원하는 게 있어서 공부를 했던 거예요. 의도하는 그 마음 자체가 살펴봐야 할 핵심인데 그것은 내버려두고, 목표를 상정해놓고 그것을 얻으려하면 방향이 틀어진 것입니다. 얻으려고 하는 ‘나’라는 것을 살피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하는데, 목표를 이루겠다고 목표만 쳐다보고 있으니 마음속에 뭔가를 그려 넣은 상태입니다. 답답함이 없고 자유롭고 무한한 행복이 넘치는 그 상태를 ‘얻고 싶은’ 거지요. 그게 바로 마구니에요. 얻고 싶어 하는 ‘나’를 봐야 하는데, 목표에 초점을 두고 있으니 목표를 원하는 ‘나’를 보지 못합니다. 그 분은 목표를 상정해서 그것을 향해 매진하고 돌진하는 방식으로 세상에서 성공했지만, 이 공부는 그래선 안 된다는 것을 이제 조금 알기 시작했습니다.
깨달음에 대한 욕구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욕망이라고 말합니다. 기쁨과 평화, 지복至福을 추구하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모든 욕망이 사라진 무욕無慾의 행복 상태입니다. 만약 기쁨을 원했다면 기쁨을 얻어 그 속에 있다가 기쁨에 집착하게 됩니다. 기쁜 상태가 계속 유지되지 않기 때문에 다시 그것을 추구하면서 집착하게 되어있어요. 현상세계는 항상 변하기 때문에 같은 상태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현상계인 것이고 다채로운 이 우주가 존재할 수 있는 바탕입니다. 이런 변화무쌍한 세계에서 끊임없이 행복을 추구하는 마음은 지칩니다. 저것을 가지면 행복할 거라 생각해서 가졌더니 진짜로 행복합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면 그 행복한 느낌이 사라지니까 다시 그것을 얻으려 애써 노력하기를 반복하다가 지칩니다. 끝이 없어요. 진정한 평화의 마음은 욕망 없는 마음입니다. 그러면 삶이 너무 심심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심심하다는 것은 흥미로운 상태를 추구하는 마음을 그 밑에 깔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무언가를 추구하는 마음입니다. 추구하는 마음은 ‘부족함’을 전제로 합니다. 욕망이 없다는 것은 원하는 바가 없다는 것이니 다시 말해 모든 욕망이 충족된 상태와 같아요. 지금 이 순간에 만족한 것입니다. 더 이상 무엇을 추구하지 않으니, 자신의 삶에 어떤 일이 다가오더라도 다 만족합니다. 여러분들이 무언가 원하는 것을 이루었을 때를 생각해보세요. 원하던 것이 이루어진 바로 그 순간은 더 이상 아무것도 필요 없는 무욕의 상태입니다. 영원한 무욕의 상태를 원하면서 사람들은 끊임없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무욕無慾을 얻기 위해 욕망한다니 얼마나 아이러니합니까? 늘 다른 것을 원하고 추구하며 집착하는 마음이 마구니의 가장 기본적인 특성입니다. 마구니는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어떤 습성입니다.
- 《대승, 현상과 본질을 뛰어넘다》 下권 356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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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내용은 ‘깨어있기-의식의 대해부’ 워크숍의 후속모임인 오인회(悟因會)에서 월인 님이 강의한 2012년 대승기신론 강의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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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대승기신론 강의 75강
▶ 강의: 월인(越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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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_현상과_본질을_뛰어넘다_3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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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무언가를 추구하고 집착하는 마음이 마구니의 기본 속성│대승기신론 강의 (下권 3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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