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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1. 워크숍에서 하던 경험을 집에서도 이어가보세요.
  2. 9月: ‘생각하는 나’를 스스로 비추는 재귀적 의식의 탄생
  3. 7月: 수운의 깨달음의 구조가 보인다
  4. 5月: 다르마와 이상적인 삶
  5. 3月: 사물의 경계와 마음의 경계
  6. 1月: 이유 없는 기쁨, 생명력의 원천
근본이란 것을 믿고 수행한다는 것│대승기신론 강의 (下권 2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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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심信心은 믿는 마음인데, 신심을 수행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진리와 본질에 대한 믿음’이 성취된 사람(信成就發心)은 그 길을 멈추지 않고 갈 사람이므로 이미 이루어진 사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그런 믿음이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은 회의가 들어서 자꾸 멈추게 되고, 옆길로 샙니다. 먼저 신심信心이 이루어져야 멈추지 않고 본질을 향한 길을 가기 때문에 수행신심분을 설說하는 것입니다.

정정正定은 올바른 믿음의 길입니다. 신성취발심 강의할 때 이런 길에 들어선 사람을 정정취正定聚라고 했는데, 항상 진전하여 반드시 성불成佛하기로 되어 있는 부류를 말합니다. 이런 정정취에 들어서지 못한 사람을 위해 신심을 수행하는 것이죠. 정정취에 도달한 사람은 이미 신심이 확고한 사람입니다.

현상 너머에 있는 근본을 믿는 것이 신근본信根本인데, 이것은 진여법眞如法을 즐겨 생각하는 데서 이루어집니다. 근본은 알 수도 없고 건드릴 수도 없다는데, 근본이라는 것이 대체 있기나 한 건지 알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그것을 향해 갈까요? 이 길로 가면 부산에 갈 수 있다는 것을 알면 그것을 믿을 필요도 없이 그냥 가면 됩니다. 그런데 근본을 향한 길은 알지도 못하면서 믿고 가야 하는 길입니다. 믿음이 성취된 사람은 ‘부처가 이러이러한 길을 통해 근본에 도달했다’고 하니 그것을 믿고 행합니다. 사실은 도박입니다. 자기가 알지도 못하는 것을 믿고 가는 거예요. 여러분들 지금 나한테 속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나를 어떻게 믿습니까? 내가 경험했다고 하는데 그 말이 맞는지 어떻게 알아요? 그럼에도 초점이 근본에 방향지워진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어떤 길이 옳은 길인지 직관하게 됩니다. 그렇게 근본이 있고, 어떻게든 이 길을 가면 본질을 발견할 것을 믿고 가는 사람은 정정취正定聚에 든 사람입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믿는 마음을 수행하는데, 그 방법이 진여법眞如法을 즐겨 생각하는 것입니다. 즉, 진리와 연관된 것, 진리를 탐구하는 길을 즐겨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군대에 있을 때 일요일이면 다른 장병들은 밖에 나가는데, 나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면서 ‘이 느낌은 뭐지?’ 이러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답답한 군대에 있는데 일요일이라도 나가서 놀지 뭐하는 거냐?”고 말하지만, 나가서 노는 것보다 이게 더 재미있는데 어떡해요? 이렇게 탐구가 재밌어지면 여러분은 이미 신성취信成就가 된 것입니다. 마음 관찰하기가 재밌어지면 그 어떤 것보다 중독성이 있는데, 그렇게 되려면 미묘한 마음의 느낌들에 대한 감지가 좀 쌓여야 합니다. 그래야 감지의 일종인 주의를 가지고 실험을 할 수 있어요. ‘주의라는 느낌을 잡는 것’과 ‘주의를 사용하는 것’은 다릅니다. 주의라는 느낌은 일종의 상相입니다. ‘주의에 주의 기울이기’(깨어있기 용어)를 하면 주의라는 느낌에 주의를 쏟게 되는데, 주의라는 투명한 상相과 주의의 기울임은 미묘하게 다르게 구별이 됩니다. 이런 내적인 실험을 하기 위해 실험도구와 재료가 있어야 됩니다. 실험도구는 주의이고, 실험재료는 주의라는 상相과 생각, 감정, 그리고 여러 가지 느낌과 감지들입니다. 마음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이런 도구와 재료를 가지고 자기 내면에서 실험하는 마음의 과학입니다. 과학은 너무 세분하여 나누기만 하니까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요. 사실 이것은 분별이 아닌 통합과 통찰로 가는 길이지만 처음에는 세밀하게 나눕니다. 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을 보면 마음의 과정을 아주 세밀하게 나누었습니다. 유식학唯識學은 이렇게 마음을 몇 십 가지로 나눴지만, 그에 대한 경험은 남아있지 않고 이론만 남아있습니다. 우리가 그와 유사하게 세밀하게 분별하는데, 마음을 나누고 재통합해서 통찰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세밀한 분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분별의 멈춤이 불교의 방법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아주 세밀한 분별을 통해 분별 멈춤, 분별없음으로 가는 것입니다. 물론 분별없이 그냥 막무가내로 가는 방법도 있고, 그런 방법이 더 잘 맞는 사람도 있지만, 이렇게 진여법을 즐겨 생각하는 사람들은 세밀한 분별을 하는 사람입니다. 염念이라는 것 자체가 분별이에요. 진리에 관한 현상들을 즐겨 생각함으로써(樂念眞如法) 근본을 믿는 마음을 수행하면 근본을 향한 끊임없는 길에 들어서게 됩니다.

탐구의 길은 일종의 오락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도달하지 못했다고 괴로워하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요. 여러분에게 이미 타고난 것을 발견하려는 작업입니다. 생각과 감정과 느낌이라는 것을 일종의 옷으로 알면 자기 몸을 이미 아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내 몸은 내게 안 느껴지지만 몸 위에 옷을 입으면 옷은 느껴지잖아요. 그 느껴지는 옷이 옷이라는 것을 알면 됩니다. 감정이라는 옷, 생각이라는 옷, 느낌이라는 옷, 느껴질락 말락 하는 속옷. 니트가 생각이라면 거친 털코트는 감정이에요. 제일 거친 것이 감정인데, 그런 감정을 내가 걸치고 있음을 알면 벗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몸에 ‘입혀진 옷’이 아니라 자기 자신인 줄 알기 때문에, 누가 옷을 찢으면 자기가 죽을 것처럼 난리가 납니다. 옷이 찢어져도 괜찮아요. 꿰매면 됩니다. 이렇게 ‘느낄 수’ 있으면 벗을 수 있습니다. 감정이라는 옷을 벗고, 생각이라는 옷이 입혀져 있음을 느끼면 됩니다. 생각의 옷도 벗으면 속옷이 나타나는데 아주 얇아서 몸에 딱 달라붙어 몸인지 옷인지 잘 모릅니다. 이런 속옷과 같은 것이 바로 ‘미묘한 느낌’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자신을 엄밀히 관찰하면 그런 미묘한 옷까지 느껴지고, 느껴지면 그 옷에 개의치 않을 수 있습니다. 그 속옷마저 완전히 벗으면 느껴지는 것이 없기 때문에 삼매三昧로 갑니다. 맨 몸을 바로 아는 것이 아니라, 옷이 있어야 자기 몸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통찰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무감각 탱크floating tank라는 것이 있는데,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의 외부 감각 입력을 차단하는 장치입니다. 그 통은 체온과 같은 온도, 체액과 같은 농도의 소금물로 채워져 있어서 그 안에 3분만 있으면 내 몸에 촉감이 있는지 없는지 모릅니다. 외부의 소리가 차단되고, 빛이 없어 캄캄하며, 냄새도 없기 때문에 청각과 시각, 후각도 차단됩니다.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 다섯 개의 감각을 완전히 차단해서 몸에 대한 느낌이 없기 때문에 몸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됩니다.

깨어있기 기초 과정에서 텅 빈 공간을 느낀 적이 있지요? 주의 연습을 하다보면 내 몸이 텅 빈 것처럼 모든 느낌이 없어집니다. 그러면 ‘내가 어디 있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혹시라도 경비행기를 운전할 기회가 있다면 그때도 경험을 해볼 수 있습니다. 비행기가 날 수 있는 이유는 부양력 때문입니다. 일정 속도, 최소한 2900~3000rpm이 되면 비행기 날개에 가해지는 부양력 때문에 떠오르는데 2500, 2000, 1500rpm이 되면 비행기의 무게에 비해 부양력이 낮기 때문에 가라앉게 됩니다. 이것을 실속현상失速現象라고 하는데, 이렇게 순간적으로 확 떨어질 때 내 몸이 어디 있는지 모르게 됩니다.

내 몸이 있다는 것을 아는 이유는 항상 1기압 상태에 있기 때문입니다. 항상 어깨 위에 쌀 한 가마 무게를 진 것 같은 느낌을 지고 있는데, 이것이 공기압입니다. 그래서 그 중력감이 느껴져요. 손을 들면 무게감이 느껴지죠? 그 중력감이 없으면 여러분은 몸이 있는지 없는지 모릅니다. 몸이 있다고 느껴지는 것은 그런 느낌이 있기 때문인 것처럼, 여러분 마음에 이런 저런 느낌들과 생각, 감정이 있으니까 지금 자신이 있다고 느껴지는 것입니다. 텅 빈 본질을 알기 위해서는 마음속에 자꾸 파도가 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빈 몸과 같은 텅 빈 본질을 알 수 없어요. 그렇게 분별을 통해 분별없음으로 넘어갈 수 있는데, 존재감 같은 미묘한 느낌마저 분별할 수 있을 때 나의 본질은 ‘느낌 없는 상태’임을 통찰할 수 있습니다. 알 수 없고, 느낄 수 없고, 생각되어지지 않는 것이 나의 본질이라는 통찰이 일어나요. 내 벌거벗은 몸이 옷을 통해 파악되듯이 느낌, 생각, 감정이라는 옷을 통해 나의 빈 본질이 파악됩니다.

그런 작업이 바로 진리와 연관된 현상들을 즐겨 분별하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근본을 믿는 작업, 즉 근본을 믿는 신심信心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수행을 하다보면 좌절할 때가 많습니다. 해도 해도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이 길을 믿고 끊임없이 가는 것이 근본을 믿는 것이고 거기에서 힘이 나옵니다.

- 《대승, 현상과 본질을 뛰어넘다》 下권 239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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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내용은 ‘깨어있기-의식의 대해부’ 워크숍의 후속모임인 오인회(悟因會)에서 월인 님이 강의한 2012년 대승기신론 강의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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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대승기신론 강의 69강
▶ 강의: 월인(越因)
▶ 깨어있기 워크숍이 매달 진행되고 있습니다
https://www.herenow.co.kr/bbs/zboard.php?id=lecture&no=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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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_현상과_본질을_뛰어넘다_下권_2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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