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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는 물을 떠나 있을 수 없다│대승기신론 강의 (中권 3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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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체는 평등하고, 구별이 없으며, 변화가 없고, 늘 그대로인 본질입니다. 반면에 상相은 조건에 따라 달라지고, 끊임없이 변하며, 서로가 서로한테 의존하는 모습이이서 파도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물이라는 본체는 변함이 없지만 파도는 늘 변합니다. 그런데 잘 살펴보세요. 본체라는 것은 물과 같아서 파도가 아닌 것은 아니란 말이에요. 파도도 물로 되어 있지 않습니까? 즉, 우리 마음에서 끊임없이 모습이 변하는 것들, 예를 들어 희로애락喜怒哀樂의 감정이나 생각과 느낌 또는 무의식적인 믿음, 이런 것들은 끊임없이 형성되었다가 사라지는 파도와 같은 상相이지만, 그렇다고 그것들이 본질이 아닌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파도도 물인 것처럼 말이죠. 여러분은 지금까지 공부해 오면서 마음에 일어나는 느낌이나 생각, 감정들은 본질이 아니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것들은 진정한 ‘내’가 아니므로 바라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느껴지기 때문에 본질이 아닌 현상이고, 그래서 진정한 나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에 떠날 수 있다고 말해왔습니다. 그래놓고 지금 와서는 그 현상이 본질이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한단 말이에요. 그런데 정말로 파도는 그 자체가 이미 물이기 때문에 물을 떠나 따로 있을 수는 없잖아요. 그것과 똑같이 우리의 생각이나 감정들도 그 자체가 본질이 아닌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본질로 이루어져 있죠. 그렇지만 보통은 초점을 맞춰서 보고 있는 것은 본질이 아니라 단순히 변하는 모습이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감정이나 느낌은 끊임없이 변합니다. 그 변하는 것들 중에 변하지 않는 것은 뭘까요? 뭔가 변하지 않는 것이 그 안에 있습니다. 파도가 이런 모습이든 저런 모습이든 그 모습 안에 변함없는 물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죠. 생각, 감정, 느낌들, 우리 내면에서 느껴지고 파악되는 그 모든 것들은 끊임없이 변하며 다양한 차이들을 보이는데, 그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변함없는 것을 바로 본질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진여의 체體가 평등하다’는 것은 변함없이 늘 한결같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체體는 상相을 떠나있다고 했어요. ‘상相을 떠나있다.’는 말은 ‘상相은 체體가 아니다.’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상相을 이루는 본질은 이미 상相과 함께 있지만, 상相 자체가 본질은 아니라는 말이죠. 모습이 체體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물의 모습이 물 자체는 아니라는 말이죠. 우리가 보고, 듣고, 느낄 수 있고, 캐치하는 것은 다 상相인데, 그 상相은 미지가 미지를 설명하는 방식에 불과합니다. 각진 느낌은 곡선의 느낌에 대비된 느낌이므로 곡선의 느낌이 경험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느낄 수 없습니다. 즉, X는 Y와 Z로 설명되고, Y는 Z와 X에 의해 설명되고, Z는 X와 Y에 의해 설명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상相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상相 자체에는 본체 곧 실체가 없으므로 허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상相의 실체는 상이 없는 본질일 뿐입니다. 그래서 상을 혼자 서 있을 수 없는 갈대에 비유하는 것입니다.

분노는 그 밑에 내가 믿고 있는 생각과 그 생각에 붙어있는 믿음의 힘인 에너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생각은 수많은 경험의 느낌들로 이루어져 있죠. 경험들이 붙어있어야 생각이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미묘한 생각과 느낌들도 에너지가 붙어야만 힘을 발휘합니다. 생각 자체만으로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럼 그 에너지는 무엇인가요? 에너지 역시 미묘한 분열에 의해 갈등이 일어나고, 서로 밀치고 당기는 작용을 통해 생겨납니다. 양극화가 심하거나 갈등이 심한 곳일수록 에너지가 강렬하게 생겨나죠. 그러므로 에너지는 결코 그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차이에 의해서 생겨납니다. 이것을 현대 용어로 말하자면 갈등은 일종의 정보Information이고 힘은 에너지Energy입니다. 이것을 우리 고유의 언어로 말하자면 정보는 리理이고 에너지는 기氣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리와 기도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하는 상인 것입니다. 이렇게 수많은 것들이 결국은 서로에게 의지하는 상相인데, 본질은 그 모든 것이 아닙니다. 본질은 그 모든 모습들을 떠난 곳에 있습니다.

다시 원문을 살펴보겠습니다. 진여는 상相을 떠났다고 했으면서 왜 다시 그 체體에 다양한 공덕功德이 있다고 말하는지를 물었습니다. 체體는 상相을 떠난 오직 변함없는 그것일 뿐인데 어찌 여러 가지 공덕이 있을 수 있느냐는 질문이죠. 그러니까 이 사람은 여러 가지 공덕(種種功德)이 상相에 해당한다고 보고, 진여의 체體에 그것들이 있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모습’으로 ‘질’을 묻다

오직 유일하게 진여만이 있다고 했습니다. 수많은 모습의 파도가 있듯 공덕도 수많은 모습들을 보이지만, 물과 같은 본질의 측면에서는 차별의 상相이 없기 때문에 오직 하나의 맛이라는 것입니다. 물맛은 오직 하나라는 말이죠. 그러니까 묻는 사람은 상相과 체體를 같은 레벨에 두고 상相의 측면에서 말한 것입니다. 체體가 변함없는 것이라면 어떻게 여러 가지 모습을 띨 수 있는지 물어보는 것입니다. 질적인 측면을 아직 보지 못하니까 모습을 가지고만 묻는 것입니다. 자, 그렇게 대답을 하고서 다시 한 번 설명해줍니다.

현상의 측면에서는 여러 분별이 있지만 본질은 움직이지 않으므로 차별의 상相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의 맛인 물이 다양한 모습을 띠는 것과 비슷하죠. 무분별無分別로 분별상分別相을 떠났다고 그랬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무분별은 분별이 생겨나기 이전을 말합니다. 지금 우리 앞에 컵과 탁자와 책꽂이와 벽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지금 이 순간 분별이란 없습니다. 분별을 보는 것은 누굽니까? 내 마음의 흔적들이 분별을 하고 있습니다. 경계를 짓고서 내 감각에 와 닿은 느낌들의 차이를 분별해내고 있어요. 그러나 그 차이를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 즉 분별심이 없는 사람은 컵과 탁자를 구별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분별이라는 것은, 내 눈에 보이는 대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분별을 보는 내 마음에 있는 것입니다. 무분별은 그 마음에 분별이 없기 때문에 당연히 분별하는 상相을 떠나있게 되고, 이런 이유로 둘이 없다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우리 눈앞에 분별이 가득한 세계가 펼쳐져 있지만, 지금 이 순간 분별없음이 동시에 있는 것이 바로 무분별입니다. 본질은 분별상과 차별상을 떠나있기 때문에 따로 둘이 없습니다. 원효의 대승기신론 소疏에 보면, ‘차별하면서도 둘이 아니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논리적으로 모순되는 말인데, 그것은 모습의 차원에서 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모습의 차원에서 보자면 하나의 모습이 어떻게 또 서로 다른 모습일 수 있겠어요? 그렇지만, ‘차별하면서(差別)’는 모습의 차원이고 ‘둘이 아니다(無二)’는 모습의 차원이 아니므로 헷갈릴 필요가 없어요. 여러분이 책을 보다가 말이 안 된다고 여기는 대부분의 경우는, 차원이 다른 두 가지를 말하고 있는데 이것을 한 차원에서만 바라볼 때입니다.

- 《대승, 현상과 본질을 뛰어넘다》 中권 3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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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내용은 ‘깨어있기-의식의 대해부’ 워크숍의 후속모임인 오인회(悟因會)에서 월인 님이 강의한 2012년 대승기신론 강의의 일부입니다.
▶ 이 강의 전체가 단행본으로 출간되어 있습니다: 《대승, 현상과 본질을 뛰어넘다》 상,중,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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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대승기신론 강의 49강
▶ 강의: 월인(越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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