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랑 속에서 흔들리던 마음이 고요하고 차분해지는 것은 마음의 상태가 바뀌었음을 말합니다. 그러나 본질이란,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뭔가 바뀔 수 있다면 그것은 그림자요, 어떤 ‘상태’이지 본질이 아닙니다. 상태는 격랑에서 고요로, 고요에서 격랑으로 바뀔 수 있어요. 그래서 괴롭고 힘든 마음을 평안한 마음으로 바꾸기 위해 명상과 수련을 한다면, 그것은 본질의 추구가 아닌 고요한 마음을 습관화하려는 습기習氣를 만드는 작업일 뿐입니다. 우리의 본질은 습기 너머에 있고, 그 어떤 습기에서도 떠나 있다는 점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일상에서 괴로운 마음, 불편한 마음, 힘든 마음을 자기라고 여기기 쉽기 때문에 그것을 가라앉히는 작업이 초기에는 어느 정도 필요합니다. 다만 그 후에는 그것이 자기가 아님을 알아채야 하죠.
예를 들어 화나는 감정이라면, 보통 사람들은 화에 휩싸여서 그 끓어오르는 화가 자기가 되어 자동적으로 감정을 터트립니다. 화에 동일시된 무의식적인 마음의 작용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분노의 감정을 살펴보기 시작하면, 분노의 마음과 그것을 바라보는 나로 나누어지고, 자기가 분노의 마음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렇게 마음의 분열을 알게 되고, 그 분열로부터 떠나게 되는 때가 본질로 향하는 첫걸음입니다. 그래서 공부를 처음 시작할 때는 화가 나면 그 화를 없애버리려 하지 말고 화를 바라보고 관찰하라고 합니다. 어느 정도 관찰하면 분열된 마음의 관찰자 쪽에 에너지가 더 몰리면서 관찰하고 있는 동안에는 화가 나질 않게 됩니다. 화가 난다해도 그것이 보이기 때문에 이전처럼 반응하지는 않게 되지요. 그쯤 되면 수련이 됐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에 익숙해지면 신선함이 사라지고 관찰이 시들해져서 관찰자에 더 이상 에너지가 많이 모이지 않게 됩니다. 그러다 자기 안의 기준들이 부딪쳐서 작동하는 일이 생기면 다시 이전처럼 화가 납니다. 이럴 때 후회를 하기도 하죠. “아! 내가 이것 밖에 안 되는구나. 그렇게 공부를 많이 했는데도 아직도 난 멀었네.” 하고 자책하기도 하고,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고 후회가 일어나기도 하는데, 이것을 2차 화살이라고 합니다. 1차 화살은 ‘화가 난 것’입니다. 내 안에 있는 기준이 자동적으로 작동하여 그것에 반하는 외부 사건이나 상황, 다른 사람의 생각과 부딪혀서 폭발하는 분노의 에너지입니다. 공부를 해나가는 과정에서는 2차 화살을 맞기 시작합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어.” 하고 후회하는 마음은 화를 낸 그것을 자기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공부가 더 안 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2차 화살을 안 맞기만 해도 좋은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점차 ‘분노가 내가 아님’을 무의식적으로 알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후회하지 않는 다른 경우도 있습니다. 내가 옳다고 철저히 믿기 때문에 화를 낸 것이 잘한 일이고 필요한 일이라고 합리화를 할 수 있어요. 그러나 그것은 미숙함일 뿐입니다.
일단 후회 자체는 돌아보고 있다는 뜻이고, 그런 후회를 넘어서서 교훈은 얻지만, 후회 속에 빠지지는 말아야 합니다. 화를 낸 것이 자기가 아님을 서서히 알기 시작하면 그것은 경계 없음으로 가는 것입니다. 나와 대상이 분열되기 이전으로 돌아간다는 의미가 아니라, 나와 대상이 일어난 이후에도 그것이 내가 아님을 아는 것, 즉 나와 대상의 분열을 ‘넘어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나와 대상의 분열이 있더라도 그것에 걸리지 않는 것인데, 이것이 참 어려운 지점입니다. 나와 대상의 분열 이전으로 가면 마음은 참 편안합니다. 이렇게 파도가 일어나기 이전의 고요로 돌아가거나 고요한 파도가 되려고 하면 편안하지만, 자칫 마음이 둔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의 분열 즉 경계를 넘어간다는 것은, 경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경계에 걸리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누가 걸리지 않죠? 걸리는 이가 따로 없기 때문입니다.
경계는 내적으로 쌓인 기질 때문에 생겨나는데, 그 경계로 인해 우리가 모든 세계와 현상을 인식하고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경계없는 마음이란 어떻게 보면 상황 파악을 못하는 어리석은 마음일 수 있는 것입니다. 반면 경계 짓는 마음은 경계에 끌려 다니고 집착하기 쉽습니다. 이 두 가지를 다 넘어 가는 것이 본질을 발견하는 길입니다. 경계란 것은 없다는 것을 아는 거예요. 그런데 자기를 방어하는 방편으로 경계 없음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면밀히 검토하고 들여다봐야 합니다. 분명히 자기 안의 기준과 경계에 묶여 화가 나면서도, “화가 나도 상관없다”는 식인 것입니다. 공부하기 이전에는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대체로 화가 ‘납’니다. 아무 이유 없이 ‘화내는’ 사람은 없다는 것의 의미는 이유에 의해 화가 ‘나기’ 때문입니다. 어떤 상황과 내 안의 기준이 맞부딪혀서 화가 일어나는 것이지요. 공부하기 이전에도 화를 ‘내는’ 경우가 가끔 있기는 합니다. 어린아이가 뜨거운 물건을 잡으려고 하거나 차에 뛰어드는 등의 위험한 상황에 부모들이 화를 ‘내죠’. 그러나 그런 경우 아이가 행동을 멈추면 부모의 화 역시 즉각 멈춥니다. 왜냐하면 부모는 그 상황이 못마땅해서 화난 것이 아니라,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행동을 멈추게 하려고 화를 ‘사용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화에 동일시되어 있으면 화를 즉각 멈출 수 없습니다. 그렇게 멈추지 못하면서도 자신은 화를 사용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은 정의를 위해 화를 사용한다고 말하면서 불의를 보고 큰소리를 내는 사람을 잘 들여다보면 “이래야 돼”라는 자기 기준에 묶여있기 때문에 그런 경우가 대부분 입니다. 물론 사회에는 질서가 있어야 하고, 공평하고 조화로운 사회를 위해 어떤 일을 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자신이 먼저 그 ‘이래야 된다’로부터 자유로워진 후에 현상계를 다룰 수 있을때 진정으로 사회를 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본질적인 것이 분명히 파악된 다음에 현상계를 다루어야 합니다.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채 어떤 신념에 동일시되어 분노하는 것은 화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화에 묶여 끌려다니는 것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 자기 자신을 속이지 말고, 자기 안에서 면밀히 구분해내야 합니다.
- 《대승, 현상과 본질을 뛰어넘다》 中권 180쪽
▶ 이 내용은 ‘깨어있기-의식의 대해부’ 워크숍의 후속모임인 오인회(悟因會)에서 월인 님이 강의한 2012년 대승기신론 강의의 일부입니다.
▶ 이 강의 전체가 단행본으로 출간되어 있습니다: 《대승, 현상과 본질을 뛰어넘다》 상,중,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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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대승기신론 강의 39강
▶ 강의: 월인(越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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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가 있어도 그 경계에 걸리지 않기│대승기신론 강의 (中권 1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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