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심초기覺心初起부터 다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마음이 맨 처음에 어떻게 일어난다고 했었죠? 의식이 일어나는 가장 기본적인 구조는 태극太極에서 음양陰陽으로, 즉 ‘나와 대상’으로 나누어지는 것입니다. 마음에 가장 처음 일어나는 일은 태극이지만 태극은 분열이 아직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현상화하지 않은 단계이고, 태극이 ‘나와 대상’으로 나뉠 때 드디어 ‘앎’이나 ‘느낌’이 일어나는 현상화가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 바다가 잔잔하여 움직임이 없다가 어떤 움직임이 생겨나 ‘골과 산’이 있는 모습으로 출렁이는 것이 파도인데, 이 파도에 필수적인 산과 골을 음양陰陽의 구조라고 볼 수 있듯이, 마음은 나와 대상이라는 형식의 동시적 구조로 일어납니다. 의식적인 면에서 살펴본다면 나와 대상으로 처음 분열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분열이 없으면 의식, 느낌, 그 무엇과의 동일시 등이 전혀 일어날 수 없습니다. 마음을 바다에 비유해본다면, 마음이라는 바다는 스스로 드러남이 없는데 나와 대상이 생겨서 파도치기 시작하는 것이 바로 마음이 처음 일어나는 모습입니다.
마음이 일어나는 모습을 진정으로 깨달은 사람은 ‘나’라는 것도 파도이며 하나의 마음 작용일 뿐임을 알게 되어 ‘깨달은 자’라는 것이 있을 수 없음을 압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뭔가를 얻었다거나 깨달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아직 마음의 작용 속에 빠져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나와 대상’이라는 미묘한 파도 속에 들어간 것이에요. 이것은 마음의 작용을 처음 보게 되면 일어나는 현상으로, 그동안 ‘나와 대상’으로 나누던 습성이 그대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아~ 내가 봤어.’라는 관성으로 남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바다에는 사실상 파도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파도란 바다가 움직인 모습일 뿐이지요. 마찬가지로 ‘나와 대상’이라는 것도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움직인 모습일 뿐입니다. 그러기에 ‘나와 대상’의 모습들은 수시로 변하고 생겨났다 사라지는 것입니다.
지금 ‘나’라고 여겨지는 이 느낌은 밤이 되면 사라지고, 몰입할 때 사라지고, 마음이 다른 데에 쏟아져 들어가면 느껴지지 않고 나타나지 않습니다. 즉 ‘나’라는 느낌이나 생각도 파도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현상이라는 의미입니다. 파도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바다의 움직임만 있듯이, 마음에도 마음의 본성만 있을 뿐 생겨난 마음이라는 것은 따로 없습니다. 누군가 “파도는 있는 것 아닌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무언가가 ‘있다’고 말하려면 그것이 꾸준하고, 오래 지속되고, 영원히 변함없어야 합니다. 파도는 바람에 의해서 나타났다가 곧 사라지죠. 빠르게 사라지기도 하고 때로는 해일처럼 조금 오래가기도 하지만 조만간 사라집니다. 마찬가지로 나와 대상이라는 현상도 잠시 마음에 나타난 모습일 뿐, 실제로는 마음의 본성만 있습니다. 그런데 나와 대상이라는 마음의 파도가 생겨나면, 이 ‘나’에 자꾸 에너지를 끌어들여 자기를 유지하려고 하는 것이 모든 파도들의 속성입니다. 그런 속성에 빠지지 않고 마음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작용을 드디어 보게 된 것이 각심초기覺心初起입니다. 그 마음의 작용을 보고 “아, 그렇구나.” 하고 아는 것이 초상初相인데, 이 상相을 ‘아는 것’과 ‘알아채는 것’은 다릅니다.
‘아는 것’과 ‘알아채는 것’의 차이
“이것은 안경집이구나” 하고 ‘안다’면 그것은 상相이 있는 것입니다. 그에 반해 마음이 우주적인 원리나 원칙을 파악했는데, 그 파악 안에 파악하고 있는 ‘자기’도 포함되어 있다면 그것이 진짜 파악이고 ‘알아챔’입니다. 이처럼 상相이 아닌 ‘작용하는 모습’을 파악하고 알아챈 것이 ‘마음에는 상이 없다’는 심무초상心無初相입니다. 마음이 처음 생겨날 때 정해진 상相이 없다는 것이죠. 즉, 고정 불변하는 어떤 모습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나’라는 느낌 등의 임시적인 모습은 있어요. 이런 모습까지도 다 없어지는 것은 현상 자체가 사라져 무無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변함없이 고정 불변하는 상相이 없음을 말함이며, 있다면 늘 가변적인 임시적인 모습만 있을 뿐임을 말합니다. 마치 아메바처럼 끊임없이 변하는 모습만 있습니다. 아메바는 모습이 있나요, 없나요? 어떨 때 보면 분명히 이렇게 생겼는데 또 바뀌므로 그 모습은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마음이 생겨나는 것을 처음 깨달았을 때, 깨달은 상相이 있다는 것은 깨달은 누군가가 있음을 말하는 것이고, 심무초상心無初相은 그 누군가란 것도 상의 일종임을, 마음이 지어내는 허구임을 보는 것입니다.
마음의 본성을 알아챈다는 것은 마음의 작용을 보는 것이지, 마음의 모습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마음의 작용을 보는 것이고, 그 작용이 고정 불변하지 않음을 아는 것입니다. ‘내가 알아챘다.’는 것 또한 그러한 마음 작용 중의 하나인데, 이런 것을 자기 언급이라고 합니다. ‘마음은 끊임없이 나와 대상을 나눠 작용한다.’는 것이 명제라면 그렇게 말하고 있는 ‘나’ 역시 그 작용 중의 일부라는 것입니다. “나는 이제 알았어.” 한다면 ‘무언가’를 ‘안’ 것이죠? 이렇게 ‘무엇’이 있고, ‘앎’이 있고, ‘아는 자’가 있다는 느낌이 든다면, 그것도 하나의 현상이라는 걸 즉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순간에 다시 나, 대상, 앎이라는 순환 고리에 빠져들기 때문입니다. ‘앎’이라는 것은 항상 나와 대상 간의 관계에서 일어나고, 내가 지금 그것을 알아챈다는 것마저도 나, 대상, 앎이라는 무한 고리 속에서의 일이므로 “나는 알았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미묘한 문제입니다. “나는 알았어.”라고 마음이 떠드는 순간, 그것은 ‘무언가’를 안 것이고, 그렇게 되면 마음의 작용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인데, 마음의 작용은 나타났다 사라진다는 법칙이 있을 뿐 변함없는 무언가가 있지 않습니다. 그 모든 작용이 일어나는 바탕은 있을지언정 말입니다. 하지만 이 말도 비유해서 한 말일 뿐입니다.
마음작용 중의 하나가 ‘있다, 없다’를 구분하는 것입니다. “있다”라고 말하는 순간 마음의 작용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마찬가지로 “없다”라고 말하는 순간도 마음의 작용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마음의 작용 속에 들어가지 않고 작용 밖에서 바라보면, 그것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요, 있고 없음마저도 아니고, 있고 없음마저 아닌 것도 아닌 것이 됩니다. 그 모든 것이 마음 작용 속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대승기신론이 마음의 본성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대승, 현상과 본질을 뛰어넘다》上권, 229쪽~233쪽
▶ 이 내용은 ‘깨어있기-의식의 대해부’ 워크숍의 후속모임인 오인회(悟因會)에서 월인 님이 강의한 2012년 대승기신론 강의의 일부입니다.
▶ 이 강의 전체가 단행본으로 출간되어 있습니다: 《대승, 현상과 본질을 뛰어넘다》 상,중,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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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대승기신론 강의 16강
▶ 강의: 월인(越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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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 마음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작용을 깨닫다: 각심초기
06:37 ‘아는 것’과 ‘알아채는 것’의 차이: 심무초상
08:55 본성을 알아챈다는 것은 마음의 작용을 보는 것
#깨어있기 #대승기신론 #의식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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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처음 일어나는 모습│대승기신론 강의 (上권 229쪽) (자막을 켜고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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