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와 대상으로 나뉘어야만 일어나는 ‘느낌’, 그 이전에 있는 우주적 존재, 전체성과의 충만한 일체를 이루는 것이 진정한 명상임을 이야기합니다. 느낌 이전fore-feeling의 앎에 대한 명확한 설명과 함께...(편집자 주).
....저는 오늘 처음으로 선생님 말씀을 들으러 왔습니다. 선생님의 인생철학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먼저 당신이 오늘 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해봅시다. 그 이유를 찾아보면 당신 내면에서 결핍감을 발견할지도 모릅니다. 일종의 굶주림이죠. 당신은 만족하기 위해 여기에 왔습니다. 그러므로 이야기를 계속하기 전에, 새로이 얻게 되는 것은 정말 아무것도 없다는 점을 이해하도록 합시다. 당신이 이 점을 완전히 깨닫는 순간, 멈춤이 있게 됩니다. 어떤 목적을 향해 나아가던 모든 에너지가 그것이 왔던 근원으로 돌아가는 순간 당신은 당신의 존재로 되돌아옵니다. 처음에는 이것이 어떤 대상에 대한 존재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보는 눈과 듣는 귀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보는 것과 듣는 것이 그 동기와 목적, 의도에서 자유롭게 되면, 더 이상 눈과 귀에만 속하지 않게 됩니다. 제한 없는 주의력은 다차원적인 것입니다. 즉 몸 전체가 들으며 당신은, 감각적인 방법이 아니더라도, 보고 듣는 것이 당신 안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이 하는 우주적 존재 안에서 보고 듣는 것조차도 결국 이 존재 속으로 녹아들어가 당신은 존재와 하나가 됩니다. 궁극적으로, 보는 주체와 보이는 대상이 없이 오직 하나 됨만이 있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여기 와서 전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존재, 전체성, 충만함과의 일치가 명상입니다. 하지만 거기엔 명상하는 사람도 명상의 대상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이것은 철학이 아니라 바로 당신의 진정한 본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한 셈이 아닌가요? 그렇습니다만, 우리는 결코....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