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의 마음이라는 현상이 의식화하는 것에는 단계가 있다.
첫째 무의식이 있고, 다음으로 무의식적 자아가 있고, ‘의식적 의지’를 감각할 수 있는 조건이 있고, 마지막으로 의식적 자아가 있다.
무의식은 한계없는 정보의 보고이다. 거기에서 한발 나아간 무의식적 자아는 그 한계없는 정보의 바다에 자동적, 습관적인 하나의 지향점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아주 의식적이지는 않고 자동적이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이를 닦는 것은 거의 무의식적이지만 일하러 가야겠다라는 지향점이 있고 거기에 따르는 움직임이므로 미묘한 기준인 ‘자아’가 있다고 할 것이다. 이는 특정 방향으로 자동화된 무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에 반해 의식적 자아는 좋고 싫은 ‘기준’이 자리잡아 그것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분석하고 판단하여 결정하는 상태이다. 그런데 이 의식적 자아가 ‘있다’고 느끼게 하는 것은 바로 ‘의식적 의지’를 경험할 때이다. 하버드 대학의 사회심리학자 대니얼 웨그너는 ‘우리의 의식적 사고가, 지각된 행동을 일으킨 원인임을 지각할 때에만, 의식적 의지를 경험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예를 들어 매일 아침 일어나 일터에 가는 사람이 어느날 회사의 문앞에 와 섰는데 문이 잠겨있다. 그리고 그제서야 그날이 일요일임을 알았다. 이때 그는 ‘내가 왔다’라는 ‘의지’를 경험하지 못하게 되며 ‘내가 왜 여기 왔지’라고 하게 된다. 그가 의식적으로 왔다고 느끼려면 일어나 ‘회사에 가야지’라는 생각을 하고 그 생각대로 회사에 도착했을 때라는 것이다. 이것은 생각이 일어나고 그 생각대로 행동한 것이 ‘지각될 때’ 비로소 ‘내가 했다’라는 의지가 ‘경험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개인의 자유의지’란, 의식에 ‘경험되는 무엇’이라는 것이다. 내가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의식한다’는 것이 ‘경험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개인의식’이란 방대한 무의식의 바다에 틀지워진 경험적, 의식적 정보일 뿐이지 결코 무의식으로부터 분리된 섬과 같은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여기에서 무의식의 지혜를 의식화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통찰과 창조성은 바로 이 ‘의식적 자아’라는 틀에서 벗어나되 특정 의도를 유지하는 평범하지 않은 상태로 무의식의 바다를 항해할 때 생겨난다. 즉, 무의식과 의식적 자아 사이를 왔다 갔다 할 때 통찰과 창의성이 발휘된다. 그것을 위해 통찰력게임은 절실한 의도를 주제로 삼게 한다. 절실한 의도가 무의식을 향한 통로를 열어주므로...
이원규 두손
▶ 2019년 2월 통찰력게임 소식지 목차
. 다가오는 강좌 소개 _ 2쪽
. 통찰력게임 동정 _ 3쪽
. 통찰력게임 참가자 후기 _ 4쪽
. 통찰력게임, 그 철학과 구성요소 (1부) _ 6쪽
. 통찰력게임 관련 논문 소개 <코칭 철학의 심리학적 토대에 관한 연구> (6부)_ 9쪽
. 통찰은 어떻게 일어날까요? 책 《통찰의 시대》_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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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차 통찰력게임 마스터교육(안내자교육 레벨 I)
'깨어있기™-의식의 대해부' 마스터 과정 3기
비개인성을 위한 감지수련
2-6차 힐링퀘스트 레벨1 마스터(Healing Quest Master)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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