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2014년에 걸쳐 오인회에 참여하였던 무연 님과의 대담을 위주로 오인회에서 진행되는 작업을 소개합니다. 감지에서 감각, ‘나’라는 느낌에까지 이르러 점차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하나의 ‘마음속 현상’으로 보는 과정을 세세히 담았습니다. 관심있게 봐주세요. 이 글을 정리해준 영채 님에게 감사드립니다. 무연 님은 ‘마음이란 무엇인가’를 탐구하면서, 생각이 어떤 과정으로 일어나는지 궁금했습니다. 우연히 《깨어있기》 책을 만나게 되었고, 책 속의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내 마음의 상”이라는 문구가 가슴에 와 닿았다 합니다. 그후 깨어있기 프로그램과 오인회 모임에 참가하면서, 내 마음의 상이 내면에서 언어로 나타난 것이 생각이고, 외부의 움직임으로 표출된 것이 행동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자각하는 것도 자신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길 중에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깨어있기’란 단어가 사람을 깨어있게 만드는 힘이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지내고 있습니다(편집자주).
무연 :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앎이 있습니다. 월인 : 이제 우리는 두 가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먼저 생각이 끊어졌을 때, 그 당시에는 알아차리지 못했어요. 왜냐하면 생각이 끊어졌다는 것은 또는 마음의 분열이 없었다는 것은 분별의식이라는 현상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의식현상 자체가 이미 마음에 나눠진 것을 기반으로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이 나눠져야 의식현상이 생기죠? 주체와 대상으로. 나눠지지 않은 상태 이것은 의식적이지 않습니다. 주체와 대상의 분별이 없어져 가면 이게 의식이 희미해지는 거예요. 나누는 마음의 작용이 자꾸 없어진다는 것이죠. 그래서 빈 마음상태로 점차 갈수록 ‘무언가를 안다’는 현상이 사라져가요. 그러다가 마음속 주객이 완전히 하나가 되어버리면 미묘한 분열들은 태극 상태처럼 미묘한 앎이 됩니다. 아는 자도 없고 알려지는 대상도 없는 상태의 앎 같은, 완전히 의식이 끊어지기 직전의 상태 같은 것이지요. 이렇게 미묘한 분열, 미묘한 앎이 있는 상태까지 가서 이것마저도 없어져 하나가 되어 버리면 전혀 의식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거기에는 앎이라는 것이 없죠. 그런 상태로 있다가 또 생각이 생겨나면 또 뭔가 앎이 생겨나고, 생각이 일어나고, 마음의 수많은 현상들이 나타나죠. 지금 생각해보니까 이런 것들의 반복이었지요? 이렇게 생각이 있을 때와 없을 때가 있었다는 것을 명확히 압니까? 만약 명확하지 안다면 스스로에게 질문해 봐야해요. 과연 그것을 어떻게 아는가 말이죠. 앎이라는 것은 항상....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