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無心)으로 가는 감각차단탱크(플로팅 탱크) 체험이
오인회원과 미내사회원을 대상으로
매월 첫째 둘째 주에 진행되고 있습니다.
● 탱크 내 프로그램:
집중 / 명상 / 몸은 자고 마음은 깨어있기 / 본질로 가는 감지연습
(탱크 내에서 수중 이어폰으로 음성 안내 또는 바이놀 비트 음을 통해 깊숙이 들어감)
● 탱크 외에서의 측정
탱크 이용 전후로 ①뇌파 ②HRV ③인체에너지장 측정을 통해
심신에 일어나는 변화를 측정하고, 적용할 프로그램을 수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 1년간 예약을 받아 진행하므로 체험을 원하시는 분은 미리 신청 바랍니다.
★ 신청 및 문의: 02-747-2261, 010-2667-2261
★ 신청 자격: 미내사 정회원, 오인회원
8월에 다녀가신 준아 님의 체험기를 아래에 소개합니다.
감각차단탱크 체험 후기 (2024. 8.2~8.5)
이 고요한 앎은 늘 있던 그것
_ 준아 (IT기업)
첫번째.
첫 체험은 특정한 주제를 정하지 않고 그냥 체험하기로 했다.
탱크 안으로 들어가서 불을 끄자 완벽하게 암흑으로 변한다. 빛이 완벽하게 차단되어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아무 변화가 없어 지금 눈을 감고 있는 게 맞나 싶다. 탱크 안에서 누워 몸의 균형을 잡는 것이 처음엔 어색하고, 특히 팔의 위치가 편하지 않아 자세를 몇 번을 바꿔보니 괜찮아졌다. 몸이 수면으로 떠오르고 몸의 힘이 빠지자 가볍고 편안해졌다. 사해라는 바다에서는 소금의 염도가 진해서 몸이 저절로 뜬다더니... 이런 느낌이겠구나 싶었다.
처음에는 귀에서 두근두근 거리는 소리가 한밤에 큰북소리처럼 크게 들리다가 점차 잦아들고, 몸의 자세가 어느 정도 편해지고 나니 처음에 들었던 두려움도 사라지고 이제 몸의 촉감과 호흡, 그리고 불쑥불쑥 돋는 생각들이 관찰되어지기 시작했다. 물이 몸을 받치고 있는 느낌과 더불어 머리로부터 어깨, 등, 엉덩이, 종아리까지 부드럽고 편안한 경계가 그려지고, 간간히 호흡소리가 들려왔다. 시각과 청각 정보가 차단되니 마음의 변화가 좀더 세밀하게 관찰해지는 것 같았다. 몸의 느낌과 함께 생각들이 오고간다. 파리 올림픽 양궁 소식, 회사에서 최근에 처리하던 일들... 그리고 맥락 없이 불쑥 끼어드는 이유 없는 생각들을 느끼다 탱크 안 램프불이 들어왔다. 시간은 짧게 느껴졌다. 1시간이라고 들었는데 체감상 20~30분 정도 지난 것 같다.
두번째.
주제를 정하지 않으니 생각이 두서없이 생겨나는 것이라는 월인 님 조언에 따라, 주제를 정하기로 하고, 무엇이 이 느낌을 아는가?로 정하였다. 첫 체험보다는 익숙한 느낌으로 곧 편안한 자세가 되었다.
탱크 안에서는 감각기관으로 들어오는 시각과 청각정보는 따로 없으니, 수면으로 드러난 피부에서 느껴지는 물방울이 굴러가는 촉감과 오고가는 생각들이 주로 관찰되었다. 주제를 질문하고 느낌을 관찰하던 중에, 지속적으로 떠오르는 생각 때문에 힘들어졌다. 맥락없는 생각들이 끊임없이 올라오다 보니 스토리를 따라 들어갔다가 관찰로 빠져나오기를 반복하였다. 평소 산책이나 명상을 하다 생각이 올라오면 스토리에 빠져 허우적대는 경우가 많다보니 또 그런 상황이 반복되는 게 아닌가 걱정이 들었다.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 생각을 향해 더 이상 너를 상대하지 않겠다..라고 선언했다. 몇 번 더 스토리 속으로 빠져들다가 나오기를 반복할 때마다 너를 상대하지 않겠다...고 되뇌었더니 어느 순간 생각이 더 이상 올라오지 않기 시작했다.
또, 물이 피부 위를 흐르는 느낌에서 ‘물’이라는 이름과 ‘흐른다’는 동사를 빼버리고 나니, 의식의 어디에선가 조그만 자극만으로 인식된다. 그리고 생각을 상대하지 않자 생각마저 빠져버리게 되니, 그냥 텅 빈 공간(?)에 아무런 스토리가 없는 선명하고 투명한 의식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시작되는 무심의 느낌. 모든 변화와 느낌이 인식되는 그냥 투명한 앎. 생각은 끊어지고 생각이 어디 있는지 살펴봐도 생각을 찾고 있는 주의만 느껴진다.
주제로 삼은, 무엇이 이 느낌... 아니 이 변화(느낌이라는 단어가 모호하다는 생각이 들어 느낌을 변화로 바꾸어보았다)를 아는가?하는 질문에 그냥 ‘텅 빈 마음이 안다. 이 자체가 안다. 모든 사소한 변화도 알아차리고 있다’고 느끼다가 체험이 끝나는 불이 켜졌다.
세번째.
무엇이 이 느낌을 아는가?라는 주제를 품고 세번째 탱크체험을 시작했다.
주제 질문을 던지면서 강조하는 단어에 변화를 주어보았다. '느낌'에 힘을 주었다가 '무엇'에 좀더 힘을 실어보기도 하였는데, 질문에 힘을 주는 단어에 따라 돌아오는 느낌도 조금씩 변화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투명한 존재감과 노곤한 느낌이 반복되었다. 또다시 불청객처럼 끼어드는 생각과의 업치락뒤치락. 생각이 걷히고 명료한 알아차림 상태이다가도 어느새 노곤하고 지루한 느낌이 들고.... 무엇이 이 느낌을 아는지 다시 질문하고.... 노곤한 느낌이 걷어내어지면 투명한 느낌으로 변하는 과정을 몇 차례나 반복하다 탱크불이 켜졌다.
어제 두번째 체험에서의 생각이 끊어진 무심을 기대해서인지, 생각과 씨름만 반복한 것 같아 답답함이 올라왔다.
네번째.
앞선 세번째 체험에서처럼 생각 속에 빠져 허우적대나 나오면 어떡하나...걱정도 되었지만, 그냥 모든 것을 맡겨보자 다짐하고 탱크 속으로 들어갔다. 탱크 안에서 자세를 잡고 편안해지자, 이번에는 의외로 생각이 떠오르질 않았다 (체험직후에 월인 님과의 대화에서, 생각이 올라올 만큼 올라왔기 때문일 수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생각이 어디 있지...하고 샅샅이 살펴보았지만 생각은 보여지지 않는다. 간간히 느껴지는 물방울의 느낌과 숨소리만 느껴진다.
무엇이 이 느낌을 아는가? 무엇이 이 변화를 알아차리는가? 질문을 계속해나가자, 문득 심해 바다 속 바닥에 도달한 것처럼 느껴지면서, 편안함과 명료함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모든 것이 열린 상태에서 모든 변화가 알아차려진다. 이것은 마치 무엇으로인가 가득 차 있다는 느낌인데.. 또 가득 찬 그것이 알아차리는데, ‘아무리 사소한 느낌이라도 변화되는 것이라면 그 즉시 알아차리구나’...라는 통찰로 다가왔다. 비유를 해보자면, 마치 바닷물로 가득 찬 바다에서 헤엄치는 물고기가 움직이면 그 물고기의 아주 사소한 움직임이라도, 그 파장이 움직이는 즉각 느껴지는 그런 상태라고 할까. 문득 진공묘유(眞空妙有)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텅 빈 것 같은데 무언가 있구나. 내가 그 바닷물이야...
한동안 그런 상태를 경험한 것 같다. 생각은 끊어지고 명료한 자각만 남은 상태. 그냥 있다...는 느낌. 동시에 인식의 끝에서 끝까지 어떤 느낌도 알아차려진다. 순수한 알아차림.
다섯번째.
마지막 체험이다. 주제를 바꾸어볼까 잠간 생각하다가 변화보다는 심화가 나을 것 같아, 같은 주제질문을 품고 탱크 안으로 들어갔다. 몸의 촉감과 느낌들이 이내 가라앉고, 고요함이 알아차림과 같이 펼쳐진다.
물방울 하나가 또르르 배 쪽 피부에서 물속방향으로 떨어진다. ‘또르르르 떨어진다’..라고 표현은 되었지만, 그것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느낌을 제대로 설명하고 있지는 못하다는 자각이 들었다. 일전에 월인 님이 이름을 붙이면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하셨는데, 또르르르라는 단어에 물방울이 굴러가고 있는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 알아차려졌다.
또, 탱크 접속부분 어디선가 찌리리릭 하고 물이 빠지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물에서 나는 소리(느낌)와 찌리리릭이라는 개념(단어)이 동시에 떠오르는 것이 보였다. 소리와 개념이 동시에 생겨나는구나! 느낌의 세계와 개념의 세계가 동시에 펼쳐지고 있구나!
어떠한 느낌이 알아차려지면, 그와 동시에 단어 혹은 개념이 붙고, 단어가 연결되어 문장으로 떠오르고, 문장과 문장이 합쳐져 하나의 스토리가 되고, 그 스토리에서 감정에 생겨나는 일련의 과정들이 순간 알아차려졌다.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것이 이렇게 생겨나는구나...라는 통찰이 다가왔다. 표현되는 말이나 생각은 지금 이 순간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묘사하는 매우 제한적인 도구일 뿐이며, 지금 보여지는 현상을 어떻게든 이해를 해보려는 장치이구나.
이런 과정을 통해 느낌의 세계를 개념으로 해석한 현실은 진실(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이 변하는 현상)과 결코 동일할 수 없고, 지금 이 순간을 표현하는 다양한 견해 중의 하나일수 밖에 없고, 코끼리를 묘사하는 장님의 표현과 같이 지극히 개인적이고 단편적임을 알게 되었다. 결국 사람이 스스로 창조한 세계에서 살아가는 것.
완전한 고요와 평화로움을 느끼다 어느덧 끝남을 알리는 탱크불이 들어왔다. ‘이 고요한 앎은 늘 있던 그것이었다’는 통찰이 강하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