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산책 중 태풍이와 까미가 풀을 뜯어 먹었다. 평소에도 잘 뜯어먹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있었는데 꽤 오래, 열중해서 먹는 모습에 감탄하여 영상을 찍었다. 그리고 다시 산책 길을 걸으며 영상을 백일학교 카카오 그룹에 올려야겠다 생각했다. 영상 글을 뭘로 쓸까 고민하다가 ‘개풀뜯어먹는소리’가 생각났다. 옛날 어르신들이 이상하거나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면 개 풀 뜯어먹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한 게 아, 이런 걸 보고 이야기 하셨나보다 하고 생각했다. (개가 풀을 뜯어먹는 건 비상식적인 행동이기 때문에;)
돌아와 영상을 올렸는데 어떤 분이 댓글로 ‘그냥 소리일 뿐인데? 그런 해석을 한거야 아니면 저절로 일어난걸 알게 된거야?’ 라는 질문을 하셨다. 처음엔 멍했지만 곧 내가 그 앎이 올라오는 것을 감지하지 못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본격적인 하루가 시작됐다. 연못과 정원을 가꾸고 뱀 퇴치 작업, 콩 수확, 책 라벨 마무리 작업까지.
오후엔 비가 내렸다. 뱀 퇴치 작업으로 라마님이 백반과 목초액을 집주변 곳곳에 열심히 뿌렸는데 다 쓸려 내려간 것 같아 허무한 느낌이 들었다. 비 지나가면 다시 해야겠구나, 하며.
빗 소리를 들으며 한동안 누워있었다. 피곤함도 무거움도 아니었지만 조금은 들떴던 마음이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후엔 미내사클럽 홈페이지에서 백일학교 관련한 글을 읽었다. 읽으며 이 과정을 오랫동안 정성들여 준비해 오신 분들이 계셨다는걸 처음으로 알게 됐다. 별 생각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온 내가 죄송스러울 정도로. 또 백일학교에서 하는 일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됐다. 취지와 과정, 현재의 모습까지 글을 읽으며 느낄 수 있었다. 동시에 내가 살아온 삶이 느껴졌다. 나도 이런 활동을 하고 싶었는데, 나는 나의 이상과 얼마나 부합되는 삶을 살았나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저녁모임 시간. 오늘의 주제는 장소가 바뀔 때마다 공간(감지로) 느끼기였다. 선생님께 하루 동안 주제를 품고 경험한 것과 그것을 마음에 적용한 통찰까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지금 느낌은?' 하고 물으셨다. ‘아쉽습니다’ 라고 답했다. '지금도 그게 있어?' 다시 물으셨다. ‘지금은 없습니다’ 하고 답했다.
'내가 묻기 전에는 아쉽다는 느낌이 있다는 걸 알았어?'
'몰랐습니다.'
'왜 그럴까'
'아쉽다는 느낌과 동일시 되어 있었는데 선생님 질문으로 그것을 바라보기 위해 아쉽다는 느낌을 대상화 하자 그런 느낌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의식한다는 것은 대상과 내가(관찰자) 둘로 나누어 졌다는 거야.'
'네'
그렇기 때문에 느낌이라는 것은 대상과 함께 생겨나는 것이고 그때 그때 생기고 변하는 임시적인 거라는 것,
'나' 라고 생각하는 것도 그러하다는 것.
다시 질문이 이어졌다.
'아쉽다고 느꼈을 때 아쉽다고 느껴지는 공간이 있어?'
’네‘
'그것을 느끼고 있는 내가(관찰자)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어?'
’네‘
'그 두 개가 사라져도 공간은 남아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어?'
‘네’
'그럼 공부 끝난 거야.'
'!? 네..'
그걸 완전히 느낌으로 아는 것이 아니고 느낌과 이해로 와 닿았다고 말씀드리니 ‘앞으로는 그것을 느낄 수 있도록 연습해봐.’ 라고 말씀하셨다.
오늘 선생님과의 대화로 몇 일 전 느꼈던 막연한 느낌에 좀 더 다가간 느낌이 들었다. 오늘 찍은 영상 댓글에 ‘그것이 일어난 것을 알게 된거야?’ 라는 질문도 같은 맥락이었구나 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지금은 미세한 느낌이지만 감지, 느낌 느끼기, 실시간 탐구 등의 연습으로 감각이 섬세해지면 그것이 일어나는 순간을 그 즉시 감지할 수 있겠구나, 그럼 이 막연한 느낌이 해결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생활 속 느낌 느끼기 연습으로 내가 인식하는 세상이 훨씬 풍요로워진 느낌이다. 그리고 자신에 대해 느껴지는 그대로를 느끼고 알아채는 생활이 반복될수록 자만이나 열등의식 없는 지금 이 순간, 있는 그대로의 나를 긍정하게 된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자연스러움이 되어간다.
참. 고맙다.
- 선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