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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으로 가는 감각차단탱크 체험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by 홀로스 on 14:21:56 in 최근행사 갤러리
무심(無心)으로 가는 감각차단탱크(플로팅 탱크) 체험이 오인회원과 미내사회원을 대상으로매월 첫째 둘째 주에 진행되고 있습니다.
집중 / 명상 / 몸은 자고 마음은 깨어있기 / 본질로 가는 감지연습 (탱크 내에서 수중 이어폰으로 음성 안내 또는 바이놀 비트 음을 통해 깊숙이 들어감) ● 탱크 외에서의 측정 탱크 이용 전후로 ①뇌파 ②HRV ③인체에너지장 측정을 통해 심신에 일어나는 변화를 측정하고, 적용할 프로그램을 수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 감각이 차단되면 왕의 요가 중 마지막 세단계 (다라나, 디야나, 사마디)에 바로 들어가게 됩니다. ![]() ★ 1년간 예약을 받아 진행하므로 체험을 원하시는 분은 미리 신청 바랍니다. ★ 신청 및 문의: 02-747-2261, 010-2667-2261 ★ 신청 자격: 미내사 정회원, 오인회원 [관련 강좌] - 사마디탱크 (감각차단탱크) 체험 3월에 다녀가신 버들 님의 체험기를 아래에 소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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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청분야 의식확장, 심신치유, 새로운 사회 분야 문의 : 미내사 서울센터 보내실 내용 : 참가를 원하는 분야, 간단한 이력, 해주실 수 있는 내용 계좌이체로 후원하실 분께서는 아래 사항을 입력하시고 입금해 주세요. 후원금액 : 홀로스 발기인 : 1계좌 매달 5천원 이상 200만원까지 적립되면 창립발기인으로 전환, 일시불 가능합니다. 청년백일학교 후원 : 1계좌 120만원, 매달 5만원씩 2년간 후원하시면 청년들을 위한 백일학교 장학금으로 쓰입니다. 문의 : 미내사 서울센터
경남 함양군 서하면 황산길 53-70 / 전화: 02-747-2261~2 / 팩스: 0504-200-7261 / 이메일: cpo@herenow.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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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있기 기초/심화
오인회 화요모임
진행중입니다.
# 1회차
생각, 느낌에 힘을 빼고 사라지게 해보았다. 느낌이 사라지고 느낌이 없음이 확인된다.
이걸 우리는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없음이 무엇일까?’란 의문이 올라왔다.
없음을 어떻게 알까? 없음조차 사라진다면? 없음조차 없는 상태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 경험되진 않았지만 없음조차 인식되고 있음은 분명했다.
생각, 느낌이 사라진 텅 빔도 느낌이고 대상이었다. 흰색 스케치북에 흰색 크레파스가 칠해진 상태 같은 것이 아닐까? 투명하지만 대상인 상태, 사과를 그리면 사과라는 경계 밖의 바탕이 저절로 생겨나는 것처럼, 우리가 보통 텅 비었다, 바탕이다, 배경이다 하는 것은 대상과 함께 나타난 또 다른 대상이라는 것이 인식되었다. 빈틈없이 모든 것이 대상이라는 사실만이 탐구를 할수록 명확해지는 것 같다. 그렇다면 그 텅 빔을 아는 것이 진짜 나일까? 도저히 알 수도, 경험되지도 않는 바탕으로서의?
탱크 안에서 눈을 감았다 떴다 해도 느껴지는 텅 빈 느낌은 같은데, 육체적으로 눈꺼풀 근육에 힘이 들어가고 빠지고의 차이가 있었다. 눈을 뜬 느낌, 근육이 긴장한 느낌에 힘을 빼니 눈을 뜨고도 감은 느낌이 들었다. 몸이 있다는 것, 내가 있다는 것도 모두 어떤 느낌에 근거한 생각이 아닐까? 눈을 뜬 것이 정말 눈을 뜬 것일까?
또한, 몸에 가려운 느낌이 포착되면 그 가려운 느낌을 중심으로 그림이 저절로 그려졌다. 다리의 모습을 그려내고, 그 다리의 어딘가가 가렵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팔을 움직여 긁는 행위가 일어난다. 그렇게 현상이 창조되고 있었다.
# 2회차
탐구 주제를 ‘있음/없음을 아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정하고 탱크에 들어갔다.
잡념에 휩싸여 시간을 허비하다가 어느 순간 텅 빈 상태로 깨어서 보는 자만 성성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다. 그 순간은 그 놈이 모든 것을 보는 주인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곧 그 놈 또한 보여지고 있음, 대상으로 느껴지고 있음이 자각되었다.
그래서 그 깨어서 보는 느낌이 뭔지 느끼며 탐구해 보았다. 그런데 이 느낌에 왜 하필 ‘보는 느낌’이란 이름을 붙였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대략 그런 듯이 느껴지니 그렇게 이름 붙였겠지만 그것 또한 하나의 불명확한 개연성에 근거한 해석일 뿐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떤 특정 느낌을 보는 느낌이라고 해석해서 규정지은 것이다. 결국 이 또한 아는 느낌이다. 아는 느낌은 마음의 데이터로 조작된 대상일 뿐이다. 이 느낌을 어떨 때는 ‘존재감’이라고도 이름붙일 수 있겠다 싶었다. 모든 느낌이 사라지고 남는 느낌, 그래서 존재감이라고 이름 붙였구나 하고 수긍이 갔다.
이번엔 이 느낌에서 힘을 빼 보았다. 그러니 깨어서 보는 느낌, 존재감이라 이름붙일 만한 느낌은 사라졌다. 그리고 일견 알 수 없는 텅 빈 상태가 된 것 같았는데, 그 느낌에 이름을 붙여보려고 하니 이걸 ‘있음’이라고들 하나? 싶었다. 그러나 ‘없음’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떤 대상이 없다는 기준에선 없음이라고 할 수 있을 듯했고, 또 그렇다고 뭔가가 없지는 않은, 미미한 느낌이 있는 듯했다. 존재감이라고 할 만큼 구체적이진 않지만 있음으로 이름붙일 수도 있을 듯했다.
그렇다면 어떤 느낌을 있음으로, 또는 없음으로 규정짓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있음으로도, 또는 없음으로도 해석되는 그 느낌을 아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올라왔다. 그것이 진정한 주인이 아닐까?
# 3회차
이번엔 있음/없음의 바탕으로 있기를 주제로 삼았다.
텅 비어 뒤로 물러난 상태, 그리고 깨어있는 상태가 마치 그 바탕의 상태라고 스스로 여기고 있었다. 그 상태에선 이것저것에 동일시되지 않고 알아차려지며, 인식되는 것은 다 대상으로 여길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바탕이 맞나? 바탕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하는 의문이 또 올라왔다. 이런 관조의 상태조차 동일시된 상태처럼 알아차려지지 않는가 말이다. 다만 다른 종류의 상태일 뿐인 것 같았다.
그렇다면 꿈을 깬다는 것 또한 꿈속의 일이 아닐까? 좀 더 나은, 자유로운, 편안한 꿈을 꾸는 것 아닐까? 지켜보는 상태, 지켜보는 자리 또한 만들어진 자리 같았다. 이 상태는 동일시된 상태가 절대적 상태가 아니라 그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 어떤 하나의 상태가 절대적 상태거나 옳은 상태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 같다.
결국 있음/없음의 바탕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대상에 동일시되지 않고 존재할 수 있느냐? 대상을 대상으로 볼 수 있느냐?를 말하는 것 같으며, 이렇게 대상의 있고 없음을 인식할 수 있을 때 그 바탕으로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것 또한 결국 특정 상태로서 있는 것이므로 사실은 진정한 바탕이라곤 할 수 없을 것 같다.
# 4회차
이번 회차의 주제는 있음/없음을 아는 자리로 존재하기였다.
대상으로부터 물러나서 깨어있는 자리에 머물며 오가는 모든 느낌들을 지켜보았다.
그러다 문득 ‘본다’, ‘안다’라는 인식체계를 뚫고 나가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탐구를 해갈수록 현상의 세계가 점점 더 덧없는 느낌의 세계처럼 여겨지는 와중에 저번 회차에서 머리로 추론하고 파악되었다 여긴 인식의 체계가 스스로 한심하고 답답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인식체계의 구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저 아무것도 인식하지 않는 상태로 있으려고 해보았다. 그러다 보니 이건 또 아무것도 없는 상태라는 대상을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럼 깨어서 텅 빈 허공, 빈자리를 의식해야 하나? 그건 다시 뭔가를 알려는 인식의 세계에서 머무는 것 아닌가? 방법적인 부분이 이것저것 떠오르고 또 시도해 보았지만 무엇이 옳은지 알 수 없었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의식의 블랙홀이 뭔가 그 탈출구일 것 같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인식체계의 주객관계라는 있지도 않은 것, 즉 개념을 벗어나려 했다는 것이 문득 인식되었다. 스스로 상정한 구도와 개념에서 어떻게 벗어날까? 그것이 허구임을 알면 벗어나는 것 아닌가? 묶였다는 것도 개념, 풀려난다는 것도 개념일 것이다. 그래서 지켜보는 자리에서 오가는 대상을 깨어서 지켜보았다. 대상이 실재인지 아닌지 지켜본다면 그것 자체로도 이미 벗어난 것일 수도 있다 싶었다. 깨어있으면 대상을 대상으로 볼 수 있다. 깨어있을 수 있는 기능, 능력이 우리에게 있었다.
# 5회차
텅 빈 상태에서 깨어있는 느낌을 지켜보았다. 과연 깨어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탐구했다.
그러다 심장소리가 쿵쿵 들리기 시작했다. 그때 그 소리를 듣는 나는 없었다. 이 소리를 듣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의문이 올라왔다.
보통은 그 대상에서 뒤로 물러난 자리에 아는 자를 상정하고 탐구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 순간엔 그것이 적합하지 않게 느껴졌다. 왜냐하면 그 뒤에 둔다는 의도와 행위 자체도 대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럼 전체인가? 하는 의문이 일었지만 전체라는 것도 느낌으로 잡혔기 때문에 설득력이 없게 느껴졌다. 차라리 그 느낌 속으로 들어가야 소리를 듣는 자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소리를 듣는 그것은 왠지 소리와 함께 있을 듯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느낌 속으로 들어가려는 의도, 애씀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속으로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았다. 이때는 모든 것이 독립적으로 느껴졌다. 소리, 듣는 귀, 찾으려는 의도, 각각이 스토리로 연계되지 않은 각각의 대상으로 느껴졌고, 그것들을 모두 느끼고 아는 무엇이 있을 것 같았다.
그러는 와중에 목에 통증이 생겨났는데 그 느낌이 없어지질 않았다. 집중에 방해가 되어 차라리 그 통증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그 통증이 움직이며 자리를 옮겨갔고, 이내 곧 사라졌다. 생각보다 빨리 사라져서 원래 있긴 했었나 싶었다.
그리고 그 사라진 자리에 집중했다. 일견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긴 했는데 계속 집중했다. 집중하는 긴장감이 느껴져 긴장을 풀기도 하고 또 집중하며 긴장이 되는 것의 반복이었다. 그러다 순간 의식이 툭 다운되는 느낌을 한두 번 느낀 것 같다. 그때는 집중의 힘도 사라지고 의식이 퍼지며 이완된 느낌이 들었다.
# 갈무리
이번의 탱크 체험은 지난번과는 달리 구조 파악을 통한 비개인적 주체의 통찰보다는 몰입해서 의식이란 것을 경험하는 쪽으로 방향이 전환된 것이 달라진 점이라 할 수 있을 듯하다. 이전엔 비개인적 주체는 ‘알 수 없는 것, 대상을 통해서 경험되는 것’이란 통찰에 묶여 더 깊이 탐구해볼 여지가 없다고 여겼다면, 이번엔 그 통찰 또한 규정일 뿐이라는 사실이 인정되면서 스스로 의식을 탐구해 보고자 하는 의지가 생겨난 것 같다. 일상의 생활에서 실제적인 탐구와 통찰의 적용이 일어나지 않으면 무의식까지 바뀌기는 힘들다는 사실을 경험했기 때문인 듯하다. 사마디 탱크의 효과는 의식적으로도 일어나지만 뭔가 무의식적으로도 일어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이전에 비해 생각, 느낌도 좀 더 대상으로 인식되며, 그만큼 나라는 동일시에서도 조금 더 가벼워진 듯하다. 의식의 탐구와 관성 다루기 등 여러 면에서 가르침을 주신 선생님과 여러 가지로 배려하고 준비해주신 자생 님, 바다 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요가의 고전으로 알려진 파탄잘리의 요가수트라에 요가의 8단계중 아사나-프라나야마(호흡)를 지나면 다섯 번째에 프라티아하라(감각제어)가 나온다. 집중-선정-삼매로 들어가기 전에 거쳐야 할 관문으로서의 감각제어가 어쩌다 명상 중에 살짝 맛볼 때가 있었지만 나에겐 다소 어려운 주제였다. 그러다 오인회를 통해 감각차단탱크가 소개되고 나는 언젠가 꼭 한번 체험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먹었었다. 두 달 전 수목원을 퇴직하고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되면서 함양과 일정을 조율해 드디어 탱크체험을 하게 되었다.
막상 시간이 다가오니 4일간이나 묵게 되는 조건이 어떠할지,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약간의 긴장감과 불안감이 감돌았지만 첫날 2시에 도착해 월인 님을 뵙고 바다님의 안내에 따라 사전 체크를 하고 바로 탱크로 들어갔다.
탱크 숙지사항을 충분히 보았어도, 다른 사람의 경험을 글로 아무리 읽어도 현장은 늘 새로움으로 다채롭다. 캡슐을 닫고 들어가 탱크 안의 불을 끄자 불빛이 새어 들어오는 것을 알아차렸고 공간의 불을 끄지 않고 들어왔음을 알게 된다. 이미 누운 상태라 눈을 감는 것으로 외부의 불빛을 차단한 채 탱크 안을 탐색한다. 생각보다 쉽게 몸은 떠오르는 듯 했지만 몸의 긴장은 뻣뻣하게 힘이 들어감이 느껴졌다. 계속 이렇게 떠있을 수 있나, 잠들면 어떻게 될까... 미지의 불안감이 툭툭 올라오는 중에 몸과 물 사이에 확연한 경계감이 그려졌고 물 위로 살짝 드러나있는 신체 부위에는 서늘한 온도차가, 코에서는 소독약 같은 냄새도 잡혔다. 귓가에는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리며 감각차단이 아니라 오감이 더 미세한 안테나를 세우고 뭔가를 수신하는 듯 했다. 감각이 차단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머리를 조여오며 온 몸에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혼자서 바디스캔을 하듯이 다리... 팔... 머리... 신체 하나하나에 의식적 에너지를 보내 힘을 빼내자, 조금씩 이완이 찾아온다. 몸과 물의 경계지점이 서로가 뒤섞이듯 하나로 일체화되면서 묵직한 무게감만 남고 경계가 사라진다. 어느 때부터인가 온도차도 사라지고 냄새도 더 이상 잡히지 않는다. 동일한 환경의 노출 속에 익숙해진 것인지, 진짜 감각이 차단된 것인지 확실치 않은 상태에서 잠깐 몸이 물에 쑥 빠지는 듯한 착각이 일어나 순간 눈을 번쩍 떴다. 바깥의 불빛 탓인지 희미한 상태의 캡슐 윤곽이 잡히면서 그대로 물 위에 떠있는 것이 확인되어 바로 다시 눈을 감았는데 너무나 완벽한, 투명할 정도로 환한 흑백의 대비가 선명하게 나타났다. 이게 뭐지~ 하며 다시 눈을 떴다가 감으니 또다시 투명한 흑백이 보이다가 천천히 희미해진다. 무슨 의미인지 해석이 불가능해 그냥 경험으로 놓아버린다. 지루할 틈 없이 시간이 지나고 갑자기 밝은 불이 켜진다. 뭘 해야 할지 몰라 이리저리 살피다 보니 거센 물살이 뿜어져 떠밀리듯이 손잡이를 밀고 일어나 탈출하듯 밖으로 나왔다. 그렇게 첫 날은 부유의 안전함과 물과 몸의 경계가 사라짐에 대한 경험만 확인한다.
다음날 아침, 두 번째 탱크에 들어가며 공간의 불을 확실하게 껐다. 탱크 안의 불도 끄고 모든 시각적 작용이 꺼지는 깜깜함을 느끼며 물속으로 머리를 담그는데 아뿔사! 이번엔 귀마개를 놓치고 왔다. 머리에 잔뜩 힘이 들어간 채로 조금씩 조금씩 입수를 하자 귓가로 물이 꼬르륵꼬르륵 들어가는 느낌을 받는다. 귀가 완전히 물속으로 들어가기까지 안전함에 대한 불안과 긴장하는 마음을 바라본다. 몸으로는 조금씩 귀를 적시며 실험하듯이 머리를 물속으로 떨어뜨리고 마음속에서는 귀마개없이 바닷가에서 수영하며 놀던 기억을 오버랩시키며 스스로를 안심시키려는 자신을 본다. 귀 전체가 물속에 잠겼다. 약간의 물이 들어오는 듯 했다가 더 이상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확인한다. 얼마간의 시간이었는진 모르겠으나 아주 촘촘히 자신의 안전을 점검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공간과 부유상태에 대한 확인이 믿음으로 다져진 후, 팔을 한번 들썩, 다리를 들썩, 머리를 조금더 아래로 움직이며 몸의 이완을 통해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낀다. 탱크에 들어갈 때 주제를 가지라는 월인 님의 말씀에 따라 오늘은 ‘나라는 느낌’을 확인해 보자 의도를 내기로 했다. ‘나라는 느낌이 뭐지’라는 물음을 내는 순간 내가 나타나고 몸의 감각을 느낄 때면 내가 사라지고 누가 감각을 느끼지?할 때 다시 내가 나타나고 하는 순간적 경험이 왔다갔다하며 호흡과 비교를 한다. 호흡은 의식하는 순간 호흡함을 알아차리고 의식하지 않으면 느끼지 못하는데 나란 느낌도 그런 것인가? 하다가 나란 느낌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생각에 빠짐을 알아차리고 다시 몸의 느낌으로 주의를 돌린다. 어디선가 미세하게 들리는 삐뽀삐뽀하는 기계음, 이 소리는 실재하는 소리일까, 상상의 소리일까~ 분명 실재하는 소리인 듯 했는데 시간이 흐른 후 고요해졌다. 이번엔 입안에서 미각이 느껴진다. 함양의 모든 식구가 아침을 먹지 않았는데 입안 왼쪽 혀 주변에 매운 맛과 짠 맛이 느껴진다.
탱크에서 나와 나눔을 하는 중에 자생 님이 청향관 바로 옆밭에서 경운기 작업이 있었다고 하니 실재하는 소리였을 수 있겠고, 미각이 움직인 것은 몸 안의 독소가 빠진 게 아닌가 추측해본다. 나라는 느낌과 호흡의 차이에 대해서는 월인 님께서 호흡은 물리적 활동으로 존재하지만 나라는 느낌은 의식적 활동으로 바라볼 때만 나타난다고 설명해주셨다. 두 번째 체험 역시 몸의 감각에 대한 확인만 된 셈이다.
오후 3시, 확실하게 불도 끄고 귀마개도 하고 완벽한 준비를 한 상태로 세 번째 체험에 들어간다. 비로소 처음부터 완전히 힘을 뺄 수 있음을 느끼며 엄청난 안온감과 편안한 느낌을 받는다. 누워서 몸의 움직임이 멈추자 바로 모든 경계가 사라지며 마치 깊은 바다 속에서 숨쉬는 듯한 가라앉음을 느끼는데 언제부턴가 위에서 짓누르는 듯한 압박감에 갑갑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몸이 물에 젖은 수건처럼 아래로 쳐지며 이완이 아닌 불편함, 무거운 느낌이 느껴졌다. 보통은 내 몸의 느낌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불편함이 해소되는 경험이 있었는데 아무리 지켜보아도 점점 더 무거워지는 느낌에 당황스러웠다.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순간 일어남을 알아차리고 몸에서 느껴져는 감각을 감정과 분리시켜 순수하게 감각적 느낌만으로 살펴보았다. 이것은 <무거움>, 이것은 <누름>, 이것은 <답답함>, 이것은 <불편함>...이렇게 이름 붙이며 느낌에 집중하자 짓누르는 느낌에서 훨씬 자유로워졌다. 세 번째 체험은 그렇게 동일시된 감각으로부터 벗어남을 경험한다.
어느덧 함양의 공간이 편안해졌다. 새소리 따라 아침 산책을 즐기고 고양이, 개와 눈인사도 나눈다. 9시 백일학교 아침 미팅에 옵서버로 참석한 후, 복잡한 마음을 좀 더 깊게 지켜보기 위해 1시간에서 1시간 20분으로 늘려 네 번째 체험을 맞는다.
어제의 무거움을 동일시에 대한 이해로 벗어나긴 했지만 무엇이 그렇게 무겁게 했을까~ 살펴보니 탱크 체험에서 무엇인가를 경험해야 할 것 같은 과도한 의도와 알아차리려 애쓰는 마음의 무거움이 머리를 무겁게 하며 온몸을 짓눌렸던 것이었다고 해석되어 조금 더 편안히 지켜보자는 생각을 가지고 들어갔다. 감각의 경계는 쉽게 무너져 빠르게 아무런 감각경험이 없는 순간을 경험하는 듯 했다가 찰나적으로 찌릿한 팔의 통증이 지나감이 감지된다. 오직 <찌릿>이라는 감각의 형태로만 감지되는 느낌, 약간의 움직임으로 물방울이 귀 밑으로 뽀글뽀글 두 방울 밀려오는데, 부드럽다는 느낌을 일으키기 전, 오직 <뽀글>로만 감지되는 감각의 고유의 질을 알아차리며 더 이상 판단이나 기억,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감지의 순간을 즐긴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시간이 늘어나면서 나의 느낌을 이래저래 실험한다. 머리가 무겁다는 느낌에는 육체적 느낌과 감정적 느낌이 따로 있음을 알아차리고 여전히 남아있는 약간의 무거움이 신체적인 느낌인지 확인하기 위해 머리를 이리저리 움직여 본다. 편안하다. 완전히 힘을 뺀 상태로 충분히 이완되어 있음을 바라본다. 그럼 이 느낌은 감정적인 느낌인가 묻고 여전한 마음의 무거움이 그림자처럼 번져있음을 본다. 마음의 무거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마음에 집중해보아도 잡히지 않는 구름처럼 멍하기만 하다. 다만 이것이 마음의 무거움이구나 알아차려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훨씬 가벼워짐을 느낀다. 감각을 느끼는 몸이 있고 마음을 느끼는 내가 있고 몸과 마음의 동요를 알아차리는 전체적인 의식이 있음을 바라보는 것으로 네 번째 체험을 마치고 돌아온다. 더 이상 공간에 대한 불안감, 시간에 대한 구애가 없음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네 번째 체험은 귀하다.
셋째날 오후 3시, 다섯번째 마지막 탱크 체험이다. 마지막은 어떤 의미일까? 무엇인가를 얻어야만 할 것 같은 채무감을 안고 다시 1시간 20분을 약속하고 들어간다. 첫날에 가졌던 졸음이나 빠짐에 대한 걱정은 쓸데없는 기우였음을 경험으로 체득하고서야 비로소 탱크가 완전히 내 공간이 되어 편안한 느낌을 일으킨다. 입수 후 처음으로 앉아서 탱크를 훑어본다. 물살도 만져본다. 소금물이 이렇게나 부드러웠어? 반문하며 첫경험인 양 새로워한다. 팔과 다리를 뻗어 공간의 넓이와 길이도 재어본다. 자리를 잡고 눕자 마치 잊어버린 듯 몸의 경계가 사라지고 모든 감각이 문을 닫아 버린다. 바로 질문으로 들어가 나는 이 탱크체험에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지금 ‘나’를 아는 자는 누구인가, ‘나라는 느낌’이 이건가, 저건가.... 다시 머리가 무거워짐을 느낀다. 질문에 깊이 들어가기보다 옆길로 빠져서 쉬운 감각을 즐기기를 선택한다. 일부러 물살을 일으키고 캡슐 벽에 닿아도 보면서 노는데 몸의 감각이 아닌 그 모두를 지켜보는 의식이 잡혀버린다. 비밀스런 공간에 아무도 보지 않아도 너무나 선명하게 뚜렷하게 보고 있는 하나의 의식이 그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음을 바라본다. 대체 그 의식은 뭐지... 물어도 더 이상의 통찰은 일어나지 않고 갑갑한 마음에 이번 생은 여기까지라고 스스로 포기하고 의식을 따라가기를 멈춘다. 모든 구함을 내려놓고 그저 남은 시간 이 공간에 그대로 있자 마음먹고 한숨 돌리는데, 불현듯 내 몸의 사지가 그대로 정지하는 느낌을 받는다. 팔을 움직이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는데 팔이 꼼짝도 하지 않는다. 동영상이 멈춰버린 듯 정지컷이 나타나고 숨조차 멎은 세상의 고요를 발견한다. 마음이 미동도 하지 않는 평온함이 느껴진다. 고요와 평온이라는 단어가 이런 상태의 느낌이었음을, 마음의 동요를 멈춘다는 것이 이런 것이었음을 경험하는 최초의 순간이다. 환희심이 차오르려다가 환상인가 싶어 바로 빠져나와 의도적으로 어떤 구함도 없는 상태로 들어가본다. 다시 세상이 멈춘다. 몸이 없는 것이 아니라 붙박힌 듯이 고정된다. 고요함이 찾아온다. 두 번, 세 번 반복해보아도 같은 느낌을 확인한다. 탱크에 불빛이 켜지고 가벼운 마음으로 빠져나온다.
함양에서의 시간은 생각보다 바쁘게 지나간다. 아침이면 들려오는 새소리가 청아하고 아직 영하를 오르내리는 싸한 공기가 정신을 일깨운다. 오롯이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도 여느 고급 호텔보다 아늑하다. 요즘 어느 tv프로그램의 백억짜리 아침식사라는 제목처럼 감각차단탱크를 위한 3박4일간의 시간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시간을 선물한다.
하루 두끼 정성껏 밥상을 베풀어준 꽃마리 님, 탱크 체험을 세세하게 살펴준 바다 님, 태풍이, 밤이 밥주고 불 때고 나무 자르며 함양교육원을 지키시는 자생 님,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무지한 나를 이끌어주신 월인 님, 내가 이곳까지 찾아와 이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음에 무한한 감사와 경배를 드립니다._()_